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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복직했어요!

등록 2022-02-26 03:40 수정 2022-02-26 03:40
2021년 2월7일 부산에서 걸어서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 도착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한겨레 이종근 선임기자

2021년 2월7일 부산에서 걸어서 서울 종로구 청와대에 도착한 김진숙 민주노총 지도위원. 한겨레 이종근 선임기자

“수천 번을 마음속으로 외쳤던 말, ‘저 복직해요!’”

이 한마디를 하는 데 37년이 걸렸다. 2022년 2월25일 옛 한진중공업(HJ중공업) 영도조선소의 ‘마지막 해고노동자’ 김진숙(62) 민주노총 부산본부 지도위원이 그토록 복귀를 꿈꾸던 일터로 돌아갔다. 물론 정년이 지난 그에게 허락된 시간은 하루다. 복직한 날 당일 퇴사했다. 2월23일 민주노총 전국금속노동조합과 HJ중공업이 김 지도위원의 명예복직과 퇴직을 전격 합의한 데 따른 조처다. 그의 굴곡진 삶을 위로하기에 너무나 짧은 시간이지만, 적어도 이제 그는 ‘부당한 해고노동자’가 아니다.

그의 삶은 노동운동과 민주화 투쟁의 역사를 관통한다. 21살이던 1981년 대한조선공사 영도조선소에 용접공으로 입사한 김 지도위원은 1986년 노조활동을 하다 경찰 대공분실에 끌려가 고문이 동반된 조사를 받았다. 이후 회사는 그를 해고했고, 그는 조선소로 돌아오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투쟁은 끝이 아니라 시작이었다. 2003년 노조 파업에 대한 회사 쪽의 손해배상·가압류 청구에 항의하며 김주익 한진중공업지회장과 곽재규 조합원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때 그는 노동자들과 어깨를 겯고 싸웠다. 특히 2011년 한진중공업 노동자들이 정리해고됐을 때 그가 부산 영도조선소 85호 크레인에 올라 벌인 309일 고공농성은 ‘희망버스’라는 이름으로 수많은 사람을 부산으로 이끌었다. ‘정리해고’ 문제를 사회적 의제로 끌어올렸다. 쌍용자동차, 케이티엑스(KTX) 승무원 등 해고된 노동자들 곁에도 늘 함께했다.

그의 복직은 사회적 과제가 됐다. 2009년, 2020년 ‘민주화운동관련자명예회복 및 보상심의위원회’가 1986년 김 지도위원의 ‘노조 민주화 투쟁’을 민주화운동으로 인정하고 부당해고를 인정해 복직을 권고했지만, 한진중공업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2년 전 정년을 앞두고 아픈 몸으로 마지막 복직 투쟁에 나서자 수많은 시민과 노동자가 뒤를 따랐다.

끝내 그의 복직이 ‘배임’이라며 거부하던 회사는 2021년 9월 동부건설 컨소시엄에 인수되고 HJ중공업으로 바뀌었다. HJ중공업은 “법률적 자격 유무를 떠나 같이 근무했던 동료이자 노동자가 시대적 아픔을 겪었던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고 인도적 차원에서 명예로운 복직과 퇴직의 길을 열어주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는 복직을 요구하며 2020년 12월30일 부산에서 출발해 2021년 2월7일 청와대 앞에 도착할 때까지 430㎞를 걸었다. 청와대에 도착한 김 지도위원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1년이 지나 대선을 앞둔 지금도 유효한 말인 듯싶다. 여전히 ‘제2, 제3의 김진숙들’이 사회 곳곳에 ‘유령’으로 떠돌고 있기 때문이다.

“노동인권 변호사가 대통령인 나라에서 왜 아직도 노동자들은 굶고 해고되고 싸워야 하는가. 이주노동자들은 왜 비닐하우스에서 살다 얼어 죽어야 하는가. 전두환 정권에서 해고된 김진숙은 왜 36년째 해고자인가. 36년간 나는 유령이었습니다. 자본에게 권력에게만 보이지 않는 유령이었습니다.”

이승준 <한겨레> 사회부 이슈팀장 gamja@hani.co.kr

*뉴노멀: 이주의 주요 뉴스 맥락을 주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코너로 김규남 기자, <한겨레> 이승준, 장수경 기자가 돌아가면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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