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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방역의 목표는 ‘이전처럼’ 아니라 ‘더 나은’

새로 구성된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위원회’ 역할과 대응…
장기적 시각으로 대안적 아이디어와 구체적 정책 제시해야
등록 2022-07-25 07:47 수정 2022-07-26 00:24
2022년 7월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려 기다리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2022년 7월19일 오후 서울 마포구 보건소 선별진료소에서 시민들이 코로나19 검사를 받으려 기다리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2022년 7월19일 0시 기준 코로나19 하루 신규 확진자가 7만3582명 발생했다. 7만 명을 넘어선 것은 4월27일 이후 83일 만에 처음이다. 일주일 전보다 확진자 규모가 두 배 가까이 급증하는 ‘더블링’ 현상이 나타나, 9월에는 하루 신규 확진자가 20만 명까지 늘어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온다. 윤석열 정부에서 새로 구성된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위원회’의 역할과 공중보건 위기대응 방향에 대해 보건정치·정책 전공자인 정웅기 선생이 보내온 글을 싣는다. _편집자

아마도 상당수 독자에게 미국의 의회예산처(CBO·Congressional Budget Office)라는 기관은 낯선 이름일 것이다. 1974년 설립된 미국 연방정부의 산하기관 중 하나로, 의회에 제출된 법안이 정부 예산과 지출에 미칠 영향, 즉 그 예상비용을 추정하는 것이 주 업무다. 말하자면, 의회예산처는 법안의 ‘가격표’를 매기는 셈이다. 1990년대 이후, 미국의 어떤 입법 활동도 의회예산처의 추정치(Estimate)라는 시험대를 피하기 어려워졌다. 직원 300명가량의 작은 규모에도, 의회예산처는 전문지식(Expertise)의 체현으로서 의원들에게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회의 결과 정리 배포 등 이전보다 투명해져

코로나19는 어느 때보다 대중이 과학자의 목소리를 중요시하는 계기가 됐다. 마스크 착용에서 다중이용시설의 집합인원과 영업시간 제한, 휴교 등을 포괄하는 거리두기, 진단검사, 확진자 격리 의무까지, 팬데믹(감염병 대유행) 내내 우리 일상을 규정하는 수많은 조치는 과학자가 행사하는 전문지식에 근거한다. 그러나 의회예산처의 추정치처럼, 이런 전문지식은 대중의 눈에 잘 보이지 않는다.

과학은 본질적으로 집단적 실천이며, 구체적인 정책 개입은 전문가 자문기구 형태로 표출된다. 한국에선 팬데믹 초기에 만들어진 생활방역위원회(생방위)와 델타 변이의 지배종화 이후 신설된 일상회복지원위원회(일상회복위)가 그 사례다. 그런데 이 자문기구는 위기시 설치된 비상기구의 성격을 갖는데다 인구 전체의 생명과 생계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에 관여한다는 점에서, 의회예산처 같은 일반 행정 부처와 다르다. 이러한 자문기구 위원들의 경우, 선출직이 아님에도 의사결정 과정에 상당한 투명성과 책임성, 그리고 뚜렷한 비전이 요구되는 이유다.

새 정부 출범으로 생방위와 일상회복위가 폐지되고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위원회’(자문위)가 구성됐다. 적어도 제도 디자인 차원에서 보면 자문위는 이전 위원회에 견줘 근본적으로 개선된 점이 적지 않다. 무엇보다 회의에서 어떤 내용이 논의되고 이견이 발생했는지 누구나 확인하고 검토할 수 있도록 주요 논의 사항을 ‘회의 결과’로 정리해 배포하기로 했다. 물론 회의를 라이브스트리밍(실시간 재생) 하거나 전체 회의록을 공개하는 서구 국가들의 제도에 견줘, 이는 여전히 충분치 않다.

그럼에도 자문위가 제대로 작동한다면 자문체계의 투명성과 책임성을 이전보다 크게 높일 수 있다. 또한 자문위는 해당 사안에 관한 최종 자문 결과를 ‘권고안’ 형식으로 발표한다. 법적 구속력이 없더라도, 다양한 전공자의 견해가 토론을 거쳐 합의된 형태로 나가는 것 자체가 여러 의견을 듣는 데 그쳤던 이전과 비교해 중요한 진전이다. 조직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운영의 묘가 결정적이라는 걸 모르지 않지만, 실질적 변화가 일어나길 바라 마지않는다.

한덕수 국무총리가 2022년 7월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위원회’ 민간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주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덕수 국무총리가 2022년 7월19일 정부서울청사에서 ‘국가 감염병 위기대응 자문위원회’ 민간위원들에게 위촉장을 주고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역·공동체 거주자 역할 점점 더 주목받아

뚜렷한 제도적 쇄신이 있지만 여전히 우려되는 대목도 적지 않다. 많은 쟁점 가운데, 자문위가 생의학적 사고에 머물지 않고 ‘위드 코로나’ 사회에 더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비전을 가질 것을 무엇보다 강조하고 싶다. 두 가지 이유에서다.

첫째, 이런 시각을 확보하지 못하면 그 목표가 ‘현 상태’(Status Quo)를 관리하는 데 국한된다. 즉 팬데믹 대응은 의료체계 확충, 백신·치료제 확보와 곧장 등치된다. 물론 환자를 돌보고 치료하는 일이 감염병 대응의 핵심이라는 데 이견은 없다. 유행이 일어날 때마다 병상과 돌봄 인력의 동원에 어려움이 있었고, 그마저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과제가 산재한다는 것도 잘 알려졌다. 그러나 단기적 문제 해결에 매몰되면 자문기구에서 다루는 의제가 협소해진다. 예컨대, 팬데믹 대응에서 ‘건강의 사회적 결정요인’이 수행하는 역할에 대한 논의와 이를 정책화하려는 시도는 이뤄지지 않을 공산이 크다. (1차 의료, 커뮤니티케어, 주거환경 등 중요한 의제가 많지만 환기시설 개선은 이에 관한 최소한의 리트머스라 할 수 있다.)

이전처럼 거리두기 조정이나 격리기준 설정, 백신 접종 범위에 관한 논의가 핵심이라면, 이는 미국의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예방접종자문위원회(ACIP)나 식품의약국(FDA)의 백신·생물의약품자문위원회(VRBPAC) 사례처럼 해당 유관기관의 자문기구가 맡아서 할 수 있는 일이다. 예를 들어 예방접종에 관한 자문과 권고는 예방접종전문위원회(예접위)에서 수행하되 외부 관련 전공자를 핵심 이슈별로 초청하는 방식으로 운영해도 문제가 없다. 이렇게 보면 현행 구조는 외려 옥상옥에 가깝다. 그러나 국무총리 소속으로, 여하튼 이론적으로 전 부처를 포괄하는 자문위를 기왕 다시 만들었다면, 장기적 시각에 입각해 대안적 아이디어와 구체적인 정책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지역사회(Community)에 기반한 공중보건 위기대응을 고민하는 것은 그런 사례 중 하나가 될 수 있다. 중앙집권적 대처가 주를 이뤘던 한국의 코로나19 대응에서 현지 또는 지역 공동체의 활동은 2020년 초 대구 정도를 제외하면 언론과 학계에서 거의 주목받지 못했다. 오미크론 대유행에 들어서야 동네 병·의원이 백시네이션(Vaccination·대규모 백신 접종)과 진료에서 수행하는 역할이 조명됐지만, 의료기관의 역할은 보건소와 기능적으로 구분된다.

보건소가 팬데믹 내내 과도한 업무와 인력난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는 사실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공중보건 관점에서 보면 그에 못지않게 중요한 이슈는, 그동안 코로나19 대응 과정에서 시민이 정부 정책에 순응해야 할 대상일 뿐 능동적 행위자로서 인식되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코로나19 같은 감염병을 비롯해 다양한 공중보건 위기의 대응에서 각 지역이나 공동체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점점 더 주목받고 있다.

‘비약물적 중재’ 여전히 중요

이른바 ‘지역사회 보건 일꾼’(CHWs· Community Health Workers)과 같이 지역사회 수준에서 공중보건 위기를 대비할 수 있는 인력과 인프라를 구축하는 작업이 대표적이다. ‘지역사회 보건 일꾼’은 해당 지역에 거주하는 시민으로서, 취약계층의 식사 배달이나 복용약 체크 같은 기본적인 공중보건 예방사업을 수행한다. 위기시에는 중요한 방역정보를 공동체 구성원에게 전파하고 설명하는 일, 필수의약품을 전달하거나 필요한 개인정보를 취합해 유관기관에 전송하는 일 등을 맡을 수 있다.

이를 고려하면, 위기대응에서 ‘지역사회 보건 일꾼’은 적어도 두 가지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데 긴요하다. 첫째, 이들은 누구보다 현지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이므로, 해당 지역의 사회적 취약계층이나 소외인구를 발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둘째, 통상 ‘지역사회 보건 일꾼’은 지역 공동체에서 신뢰할 만한 인물을 중심으로 자발적으로 조직된다. 따라서 핵심적인 공중보건 정보를 정확히 전달하고 설명하는 메신저가 될 수 있다. 이는 백신을 둘러싼 여러 음모론에 대처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렇다면 이는 코로나19 대응 내내 문제시됐던 보건소의 과부하 이슈를 해소하는 데도- 물론 적정 인력 확충은 필수다- 기여할 수 있는 방안이다. 자문위가 그저 당면한 또 다른 유행을 벗어나는 데 그치지 않고 포스트 오미크론 사회를 고민한다면, 체계를 변화시키는 의제를 발굴해 공론화하는 데 지금보다 훨씬 적극적이고 뚜렷한 역할을 해야 한다.

자문위가 장기적이고 구조적인 비전을 가져야 하는 두 번째 이유다. 자문위의 목적이 현행 수준의 관리가 되면 대중의 일상을 최대한 적게 ‘침해’한다는 명분이 거의 모든 이슈를 잠식한다. 달리 말해, 정부의 목표는 시민의 일상을 팬데믹 이전과 최대한 같게 하는 것이 된다. 게다가 코로나19에 대한 대중의 피로도와 ‘방역패스’를 둘러싼 지난 사회적 논란을 고려하면, 이런 태도는 방역 당국에도 반가운 일이다. 자문위의 관심이 백신·치료제 확보에 집중되는 것은 그에 비춰보면 대단히 자연스럽다. 거리두기 불가를 천명하는 등 이미 자문위 내부 발언에서도 그 기조는 감지된다.

그러나 ‘비약물적 중재’(NPIs)는 핵심적인 공중보건 조치로서 팬데믹 대응에 여전히 유효하다는 것을 분명히 해두자. 그저 비약물적 중재라서 문제가 아니라, 그 효과성이 운용방식(어떻게 쓰느냐)에 의존한다는 것은 연구결과로도 잘 알려졌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비약물적 중재가 대중의 신뢰에 기초한다는 사실이다. 따라서 그에 관한 수용성을 높이려는 노력은 단지 코로나19만이 아니라 차기 공중보건 위기에 준비하는 것과도 직결된다. 이를 등한시하는 건 미래의 결정적 자산을 스스로 포기하는 일이다.

인간행태를 깊이 이해하는 정책 연구도 필요해

백시네이션에서도 점검해야 할 이슈가 많다. 항체양성률 조사, 접종 자체의 필요성이나 대상 범위, 업데이트 백신 도입 시점 등의 논의를 차치하더라도, 4차 접종이 저조한 상황에서 ‘근거에 입각한’(Evidence-informed) 전략이 체계적으로 수립됐는지 살펴봐야 한다. 그 요체는 인구집단별 특성에 근거한 표적화(Targeting) 접근이다. 그간 방역 당국이 ‘내셔널리즘 수사’에 크게 의존했으며, 위기 소통에 성공적이지 못했다는 데 별다른 이견이 없다. 게다가 정부의 백신 이상반응 대처를 둘러싼 비판과 방역패스 논란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허위정보와 오정보를 확산하는 ‘안티-사이언스’ 운동이 세를 얻기 시작했다. 하지만 인간행태에 대한 깊은 이해와 이에 기초한 정책 연구는 여전히 적다. 지난 오류를 되풀이한다면 과학적 백시네이션은 더욱 어려운 과제가 될 수밖에 없다.

“회복탄력성은 충격에 저항해 이전 상태에 머물고자 하는 반면, 안티프래질(Antifragile·무질서와 불확실성으로부터 이익을 얻고 살아남고 번영하기 위해서 무질서를 원하는 특성)은 더 나은 상태를 지향한다.” <안티프래질>의 저자 나심 탈레브의 말이다. 조금 바꿔 말하면 이런 얘기다. 우리는 그저 팬데믹에 피로감을 느끼는 데 그치지 않으며, 이번 위기를 통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원한다. 지금 자문위에 필요한 것은 그런 비전이다.

정웅기 미국 존스홉킨스대학 보건정치·정책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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