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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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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교수는 피해자 괴롭힘도 ‘수준급’

‘서울대 음대 C교수 성폭력 사건’ 피고인, 무죄율 높은 국민참여재판 신청했지만 징역형 선고되자 2심에선 1심 변호사 탓하며 피해자 비방 전략 계속
등록 2023-10-14 03:55 수정 2023-10-16 23:25
2018년 대학가에서 교수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활발한 가운데, 서울대는 가해 교수들을 알파벳으로 명명했다. 피고인 김 전 교수는 서어서문학과 A교수, 음대의 다른 B교수에 이어 C교수로 불렸다. 사진은 2020년 8월6일 서울대에서 22개 예술계 단체와 학생회가 기자회견을 연 모습. 연합뉴스

2018년 대학가에서 교수 성폭력을 고발하는 ‘미투 운동’이 활발한 가운데, 서울대는 가해 교수들을 알파벳으로 명명했다. 피고인 김 전 교수는 서어서문학과 A교수, 음대의 다른 B교수에 이어 C교수로 불렸다. 사진은 2020년 8월6일 서울대에서 22개 예술계 단체와 학생회가 기자회견을 연 모습. 연합뉴스

“부디 피고인을 위하여 작성된 탄원서에 대하여 피해자(고소인) 측의 열람·등사 신청이 있더라도 그 신청을 불허해주시기 바랍니다.”

제자를 성추행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아무개 전 교수(현재 파면)의 2심 선고를 앞두고, 김 전 교수 쪽에서 184명이 참여했다는 탄원서를 제출하며 덧붙인 말이다. 재판부는 “피고인(김 전 교수) 선처를 구하는 탄원서라면서, 피해자를 비난하고 공격하는 내용을 담아 제출하는 것이 적절하냐”고 지적했다. 김 전 교수는 서울대 음대에서 정교수로 20년 넘게 재직하며 학장까지 맡았던 인물로, 클래식 음악계에서 영향력이 매우 크다. 서울대 전·현직 교수, 타 대학 음대 교수, 법조인, 음악계 관계자 등이 직접 작성했다는 탄원서는 피고인의 사회적 영향력을 보여주는 지표이자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에 해당했다. 김 전 교수 쪽이 취한 전략이 ‘피해자 비난하기’임을 또다시 보여준 사례이기도 했다.

대리운전기사까지 신원 확인하고 변호인이 한 말

김 전 교수는 2015년 10월 공연 뒤풀이 장소에 데려다준다면서 차량 뒷좌석에서 피해자를 추행했고, 다음날 피해자에게 ‘어제 술에 취해 생각이 잘 안 나는데 혹시 내가 실수했다면 용서해달라’는 취지의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피해자는 가족을 포함해 피고인 부부와 오랜 기간 친분을 유지해왔고, 클래식 음악계에서 피고인의 막강한 지위 등 여러 이유로 사건 직후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못했다. 그러다 2018년 대학가로 이어진 ‘미투 운동’(성폭력 고발 운동)의 영향을 받아 2019년 6월 고소하게 됐다.

이 사건을 모니터링하기로 결심한 것은 서울대 전 교수들이 성범죄 재판에서 연달아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했다는 소식을 접하고서다. 이미 동덕여대 하일지(본명 임종주), 세종대 김태훈, 제주대 조아무개 등 전 교수들의 재판을 모니터링해왔던 입장에서, 교수가 피고인인 사건에서 피해자를 얼마나 괴롭히는지 잘 알던 터이기도 했다.

성범죄 사건 피고인들이 국민참여재판을 신청하는 것은 무죄율이 높기 때문이다. 성범죄 국민참여재판 무죄율은 2008~2022년 평균 28.7%(같은 기간 전체 국민참여재판 무죄율 18.1%)이며, 2022년에는 50%를 넘기기도 했다. ‘조두순급’이 아니면 유죄를 선고하기 주저하는 배심원단 경향성에다 공판검사의 미숙한 범죄 입증, 재판부의 소극적인 소송지휘가 더해질 수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피고인 입장에서는 무죄를 끌어내기에 유리하다고 판단하는 것이다. 김 전 교수 쪽의 국민참여재판 신청에 법원이 한 차례 배제 결정을 내렸음에도 항고까지 하며 국민참여재판 진행을 강력히 요구한 것은 이런 현실적인 이유가 포함된다.

김 전 교수 쪽은 국민참여재판 신청 외에도 성범죄 가해자들이 보여줄 수 있는 최악의 방어 전략을 계속 구사했다. 사건과 관계없는 피해자의 일상을 들어 피해자를 비난하고, 고소 시기와 목적에 대한 의구심(피해자가 합의금 등을 노린 허위 고소라는 주장)을 주장했으며, 피해자와 피고인의 겹지인들이 피해자 비난에 동참하도록 했다. 피해자는 일상이 무너지고 음악계에서 사실상 매장됐다.

가장 끔찍했던 것은 피고인 쪽 변호인이 최후변론 중 수사과정에서 확인 못한 사건 당시 대리운전기사를 찾았던 사실을 언급하며 한 말이다. “대리운전기사의 이름을 확인한 날 내가 무슨 생각을 했는지 아느냐. 피해자의 안위가 걱정됐다. 혹시라도 안 좋은 생각을 할까봐.” 수많은 사람을 접하는 대리운전기사가 7년 전(재판 연도 기준) 사건을 정확히 기억하는 것도 무리거니와, 그 기사의 신원을 확인했다고 해서 피해자에게 걱정을 빙자한 자살 가능성을 운운하는 게 사람으로서 할 수 있는 말인가.

법정구속 않자 피해자 추가 피해 계속돼

다행히 2022년 12월13~14일 진행된 국민참여재판은 피고인 쪽의 무죄 기대를 산산조각 냈다. 배심원단 7명은 전원 유죄평결(징역 1년 4명, 징역 1년6개월 3명)을 내렸고, 재판부는 다수 의견대로 징역 1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피해자 쪽의 의견진술을 제한하려는 등 소극적인 소송지휘 행태를 보였지만, 공판검사들이 적극적이고 노련하게 범죄 입증을 위해 노력했다. 피해자도 직접 나와 사건 및 자신의 상황·상태를 일관되게 증언했으며, 피해자 변호사도 제한된 의견진술을 효과적으로 활용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도주 및 증거인멸의 위험성이 없다’고 판단해 방어권 보장 차원에서 실형을 선고하고도 법정구속을 하지 않았는데, 이런 안일한 대응으로 피해자는 2심 선고를 앞둔 현재까지 피고인 쪽으로부터 추가 피해를 보고 있다.

김 전 교수는 1심 선고 뒤 변호사를 교체했다. 그리고 1심 변호사 탓에 자신이 거짓말했다고 밝혔다. 그는 1심에서 ‘차 안에서 불편한 자세로 있던 피해자를 편히 앉히려고 양팔을 잡은 것에 불과하다’며 ‘추행에 해당할 만한 그 어떤 신체접촉도 없었다’고 주장했다. 2심에서는 ‘피해자를 안고 싶은 충동이 순간적으로 발생해 피해자의 양 어깻죽지 및 머리를 잡아 피해자가 크게 놀라며 뿌리쳤던 일은 있었지만 공소사실에 해당하는 (더 심각한 형태의) 추행행위는 없었다’고 입장을 번복했다. ‘공소사실에 해당하는 것은 아니지만 부적절한 의도를 가진 행위를 했다’고 인정한 것이다.

하지만 피고인 쪽은 2심에서도 피해자를 비난하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합의금이나 피고인 부인과의 갈등 등 고소 목적과 경위에 대한 의구심도 여전히 강조했으며, 재판부의 제지에도 피해자를 깎아내리려 애썼다. 진지한 반성이나 합의를 위한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으면서 재판부에는 그런 노력을 하고 있다며 선처를 요청하기도 했다.

“제대로 처벌받아야 용서도 시작할 수 있어”

“한때 저는 피고인의 사과를 받고 싶었고 피고인이 저에게 용서를 구할 수도 있다는 순진한 생각을 했습니다.…이제는 피고인의 사과는 받고 싶지 않습니다. 법에 따라 제대로 된 심판을 받고 처벌을 받는 모습을 보고 싶습니다. 그때 저는 비로소 피고인에 대한 인간적 용서가 시작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2022년 12월13일 의견진술 기회를 얻은 피해자의 말이다. 피해자 말대로 피해 복구와 일상의 재구성은 가해자 처벌에서 시작할 수 있다. 법원은 2023년 10월27일 두 번째 답을 내놓게 된다.

마녀 D 반성폭력 활동가·<그림자를 이으면 길이 된다> 저자

*마녀 D는 성폭력 재판이 열리는 전국 법원을 찾아가 지켜보고 기록하고 공유합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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