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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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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준석과 오늘의 한국어

등록 2023-11-24 14:38 수정 2023-11-29 07:21
2023년 11월20일 서울시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하는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 인터뷰어는 김규원 선임기자다. 박승화 선임기자

2023년 11월20일 서울시 공덕동 한겨레신문사에서 <한겨레21>과 인터뷰하는 이준석 국민의힘 전 대표. 인터뷰어는 김규원 선임기자다. 박승화 선임기자

2012년 1월4일 페이스북에 이렇게 썼다. 줄이고 윤문했다.

“이준석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의 발언을 읽으며 묘하게 핀트가 안 맞는다 생각했는데, 주요한 이유는 그가 쓰는 단어 때문이다. 그는 어제 TV에 나와 한 정치인을 ‘배신자’라고 했다. 그걸 신문 등에서는 ‘변절자’라고 옮겨놓았다. 신문 등에서 옮긴 ‘변절자’가 적절해 보인다. 같은 TV 방송에서 그는 판사들의 SNS 논란에 대해 ‘언론의 자유’라고 해놓았다. ‘표현의 자유’가 옳다. 12월27일 비대위원으로 뽑힐 때 인터뷰에서 ‘내가 어디를 가나 두각을 드러내지 않은 적이 없고’라고 했단다. 스스로에게 ‘두각을 드러낸다'고 하다니, 뭔가 어색하다. 여자친구가 있냐는 질문에는 ‘민감한 질문’이라고 답했다. 그의 자기소개란에는 ‘인생의 절반은 벤처돌이, 나머지 절반은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 대표교사’라고 돼 있단다. 26살의 그가 13년을 벤처 일, 13년을 ‘배움을 나누는 사람들’ 대표교사를 했다는 말은 아닌 것 같고, 인생이 아니라 ‘생활’인 걸까. 생활로도 인생으로도 번역되는 ‘라이프’를 생각했던 것 같다. 하버드대 출신이라서일까. 영어로 사고하고 한국말로 번역해 표현하는 것 같다.”

2023년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제22대 총선을 앞두고 큰 변수로 떠올랐다. 10년 사이 그는 보수 정당의 대표까지 했고, 대통령의 견제 대상이 된 뒤 당원권이 1년 6개월 정지되는 사태를 겪고, 현재 창당 디데이를 정하고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이번 <한겨레21> 인터뷰를 하고서도, 그의 표현을 두고 기자들 사이에서 실랑이가 있었다. 처음에 기사 제목으로 뽑은 것은 이랬다.
‘이준석 “윤 대통령이 공천 파동을 만들 것이란 굳은 신뢰가 있다”’
관용어 ‘I strongly believe’(굳게 믿는다)의 영어 번역투 문장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믿는다’는 부정적인 말과도 긍정적인 말과도 결합하는 중성적인 말인 데 비해, ‘신뢰’는 긍정적인 말이다. 그가 인터뷰에서 한 말은 이렇다. “공천 파동을 만들 것이라는 신뢰, 내부에 총질할 것이라는 신뢰다.” 어색하다는 말과 압권이라는 말이 나왔다. 결국 뉴스룸도 ‘긍정적 단어로 부정하는’(혹은 비꼬는) 그 뉘앙스로 제목을 바꿨다. ‘이준석 “신당을 하면서 가장 믿음직스러운 건 대통령”’

이 전 대표가 어색한 한국 표현을 쓰는 것이 별로 이상하지 않고, 오히려 매력적으로 느껴지는 요소가 된 것은 10년 사이 우리의 언어생활이 많이 바뀌어서일까. 아니면 그가 영어 표현을 한국식으로 잘 ‘번역’하게 된 것일까. 그가 최근 말로 논란이 된 것은 ‘무운을 빈다’가 있다. 2021년 11월 그가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에게 말한 ‘무운을 빈다’를 한 언론이 ‘운 없음’으로 해석해서 생긴 소동이었다. ‘무운을 빈다’는 게임에서 자주 쓰는 말이다. 이번 <한겨레21> 인터뷰에서 가장 적확한 비유도 “대통령이 ‘개인 주식투자자’의 행태를 보인다”는 말이 아닐까 싶다. 누구나 주식을 하는 세대의 표현법이다. 개인적으로는, 누구나 많이 쓰는 마르틴 니묄러의 ‘그들이 처음 왔을 때’라는 인용은 그다지 새롭지 않았다.

아슬아슬한 언어의 세계에 사는 것이 정치인이다. 그는 요즘 유독 말을 많이 하는 정치인이 되었다. 말을 많이 하다 보면 실수도 많을 것이다. 이준석 전 대표의 무운을 빈다.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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