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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 투 컴 인 부산

등록 2023-12-01 13:44 수정 2023-12-06 01:51
부산 지하철의 엑스포 광고. 커뮤니티 갈무리 화면

부산 지하철의 엑스포 광고. 커뮤니티 갈무리 화면

1993년 대전 엑스포가 끝난 뒤, 대전에는 엑스포공원이 조성됐습니다. 젊은 시절을 잠깐 대전에서 보냈습니다. 갑천변을 따라 자전거를 타면 곧 도착하는 거리에 있는 공원을 가끔 지나쳤습니다. 콘크리트밖에 안 깔려서 공원 느낌도 없는 곳인데 중간에 한빛탑이 높게 솟아올라 있습니다.

한빛탑은 그 시대의 공기를 그대로 품은 듯 1990년대가 생각한 ‘첨단과학’ 이미지대로 만들어졌습니다. 금속빛 93m 탑은, ‘허리’에 뭔가를 둘러 뚱뚱해 보이는데 깡통로봇 같은 느낌입니다. 외계인이 쳐들어오면 한국과학기술원 산 밑의 급수탑과 한빛탑이 방어막을 펼쳐 과학기술단지 아래에 조성된 기지에서 로봇이 출동한다나 뭐라나 하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를 들었는데, 그게 또 거대 로봇 시대의 도시전설 같은 것이었습니다.

한빛탑은 국가기념일 등에는 점등해 자기 존재를 어둠 속에서 드러냈는데요, 그 빨간색과 파란색의 극단적인 색 배합이 또한 나이트 조명 같아 그 시대의 유물로서 손색없었습니다. 한빛탑 앞에서 데이트 약속도 잡는 듯했습니다. 나중에 들으니 탑의 중간 허리가 전망대라 데이트 장소로도 유명했나봅니다. 그 앞으로는 엑스포가 남긴 또 하나의 유산 ‘엑스포다리’도 놓여 있습니다. 엑스포를 한눈에 보여주는 많은 사진은 엑스포다리에서 행사장을 향해 ‘물밀듯이’ 가는 사람들을 포착합니다.

2012년에도 엑스포가 열렸습니다. 대전이 ‘과학’이 주제였다면, 여수 엑스포는 ‘바다’였습니다. 당시 한창 유행하던 노래 <여수 밤바다>를 엑스포장에서도 적극 활용했다고 합니다. 진짜 엑스포 노래는 아이유의 <바다가 기억하는 얘기>였다고 합니다. 참고로, 대전 엑스포의 주제가는 대규모 행사마다 등장하는 코리아나라는 중창그룹의 <그날은>입니다.

무엇보다 최근의 엑스포가 있습니다. 이 엑스포를 통해 이전의 엑스포는 ‘인정 엑스포’였다는 것, ‘등록 엑스포’라는 5년마다 열리는 엑스포가 따로있음을 알았습니다. 이전 엑스포가 실제 시작된 뒤 면모를 드러냈다면, 부산 엑스포는 실재하지 않는데도(이제는 실재하기 어려운) 이미 존재하는 듯했습니다. 부산 지하철에 나붙은 ‘큰손들이 옵니다’ 포스터는, 대회 유치용이라기보다는 부산 시민들과 속삭입니다. 거의 모든 홍보가 한국 정서로 만들어져 한국 사람끼리 공유됩니다. 그래서 이미 우리는 ‘분위기 완료’ ‘준비되었다’(Busan is Ready)일까요.

반면 행사 실행력이 시험대에 든 것은 2022년의 방탄소년단(BTS) 콘서트였습니다. 엑스포 유치 기원 ‘방탄소년단 옛 투 컴 인 부산'(BTS Yet to Come in BUSAN) 무료 콘서트의 참여 인원은 무려 5만 명, 인파를 도저히 수용하지 못할 동선에 장소가 변경되고, 콘서트가 열리는 날짜의 숙박 가격이 치솟았습니다. ‘아미’(BTS 팬클럽)였기에 아무 사고가 나지 않았다고 했을 정도로 행사 운영은 엉망이었습니다. 그사이 세계적 행사에서 운영 미숙을 여지없이 드러낸 ‘새만금 세계 스카우트 잼버리’도 있었습니다.

BTS의 부산 공연 참관기를 쓴(제1436호 ‘BTS 콘서트 인파도 감당 못한 부산시, 박람회 유치 가능할까’) 케이팝 칼럼니스트 최이삭씨는 “(케이웨이브의 무국적성에) 국가주의를 과도하게 결합하면 반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세계인을 모이게 하는 행사에 이번에도 ‘국가성’은 여지없이 드러났습니다. 자국의 실익만을 앞세우며 악수하는 ‘비즈니스맨’과 누가 ‘거래’하고 싶을까요.

구둘래 편집장 anyone@hani.co.kr

*만리재에서는 편집장이 쓰는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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