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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아정신병동 열두번 입원…아이는 ‘쏘리 쏘리’ 춤 췄다

소아정신병동 3년6개월 열두 번 입퇴원 반복… 병동은 학교이자 사회였다
등록 2024-01-05 10:57 수정 2024-01-24 01:09
일러스트레이션 이지안

일러스트레이션 이지안


철문이 닫히고, 아이는 격리됐다. 분리불안으로 한시도 떨어지지 않았던 아이가 내 곁에 없다.

복도 오른쪽에 있는 면담실로 갔다. 환경조사를 하는 임상심리 전문가가 들어왔다. “집안에 정신병 이력이 있나요?”로 질문은 시작됐다. “건강하게 출산하셨나요?” “아이는 엄마가 키웠나요?” “엄마는 어떤 성격인가요?” “부부 사이는 좋나요?” 이런 질문들이 이어졌다.

남편과 함께 있었지만 내게만 물었다. 나는 아이가 태어났을 때부터 입원에 이르기까지 11년4개월의 일을 성실하게 답변했다. 아이의 다정한 성격, 책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는 것, 선생님과 주말 산행을 가던 학교생활 그리고 바쁜 엄마, 불편한 고부관계까지. 나는 “왜 내게만 물어보나요?”라고 반박하지 못했다. 아픈 아이의 엄마라서, 정신병동에 입원한 아이의 엄마라서 질문할 자격이 없었다.

아이의 상태에 따라 ‘맑음’ ‘흐림’ ‘태풍’

며칠 뒤, 아이와 통화가 가능해졌다. “왜 입원시켰어요?” 아이의 첫마디였다. “나으려고, 좋아지려고 입원한 거지.” 나는 말했다. 보호병동에 입원하면 2주 정도는 면회가 안 된다. 정신질환의 특성상 뇌파검사와 뇌자기공명영상(MRI), 심리평가검사 등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임상 관찰이다.

인류 역사상 1% 유병률을 꾸준히 지켜왔다는 기록이 있음에도, 조현병 연구는 1980년대에야 본격적으로 진행됐다. 유전학적 측면, 진행 경과, 병의 다양한 발현, 두뇌 구조와 기능의 비정상적인 면, 신경전달물질의 화학적 반응과 항정신병약의 작용에 대해서. 실제로는 두뇌 이상과 조현병 증상의 관계나 환자들의 치료 반응에 대한 연구는 더디다. 그래서 외부 자극이 없는 상태에서 증상을 관찰한 뒤 ‘정신장애의 진단 및 통계 편람’(DSM·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에 따라 진단하고, 치료 계획을 세우는 것이 중요하다. 약물치료에 대한 반응을 살피는 것도 물론이고. 보호자는 매일 밤 9~10시에 간호사와 통화하면서 그날의 환자 상태를 확인한다. 환자에게 진전이 있으면 그날은 ‘맑음’이고, 진전이 없는 날은 ‘흐림’ 또는 ‘태풍’이 지나간 엉망진창의 상태가 된다.

정신병동 입원은 자의입원, 동의입원, 보호입원, 행정입원, 응급입원으로 나뉜다(정신건강복지법 제5장). 보호입원은 보호자 2명의 동의와 서로 다른 의료기관 소속 전문의 2명의 진단이 필요하다. 아이가 입원한 2008년은 법 개정 전이었기 때문에, 아이는 부모의 동의와 전문의 1명의 판단에 따라 보호입원을 했다. 병동에 입원할 때는 반입이 안 되는 물품이 많다. 휴대전화를 비롯해 끈 있는 신발, 벨트, 커터칼 등 위해를 가할 수 있는 물건은 안 된다. 십자가나 성경책도 반입할 수 없다. 종교망상이 있는 환자들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한편,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엠피(MP)3는 무료한 병동 생활에 필수품이다.

아이는 엄마를, 엄마는 아이를 살핀다

2주가 지났다. 아이와 첫 면회를 하는 날이다. 단정한 옷을 입고 웃는 연습을 한 뒤, 아이가 먹고 싶다는 치킨을 들고 병원에 갔다. 복도 가족실에서 아이와 만났다. 아이는 간식을 먹으며 엄마를 살핀다. 가짜인지 진짜인지. 나는 아이를 살핀다. 좋아졌는지 그대로인지.

면회를 마치고 아이와 함께 병동에 들어간다. 병동은 처음이다. 병동 중간에 둥근 모양의 공개된 간호사실이 있고, 복도를 중간에 두고 병실이 쭉 둘러싸인 모양새다. 5인실 병실 6개, 1인실 2개, 그리고 안정실이 있다. 간호사실과 병동 문 사이 로비에 탁구대가 놓였고, 로비 한쪽에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공간이 있다. 다음 면회를 올 때까지 아이가 먹을 간식거리를 정리해둔다. 이제 다시 아이와 헤어질 시간이다. 아이는 손잡고 몇 바퀴만 걷고 가라 한다. 우리는 병동 복도를 걷고, 또 걷다가 헤어진다. “엄마 때리는 사람 없어요? 괴롭히는 사람 없어요?” 아이는 묻는다. “또 올게.” 병동 문이 닫힌다.

병동 일과는 단조롭다. 하루 세끼 식사, 약물복용 그리고 프로그램 참여, 이런 일상이 반복된다. 환자는 정기적으로 주치의와 면담한다. 간호사는 3교대로 근무하며 24시간 아이들을 돌본다. 소아이고 정신병동이기 때문에 정서적 케어가 중요하다. 특히 환자의 환청이나 망상에 잘 대응해야 한다. 환자가 흥분하거나 자해나 타해의 위험이 있을 때는 2명씩 근무하는 보호사가 출동한다. 평소에는 아이들의 말동무가 돼주거나 프로그램을 지원하지만, 이럴 땐 아이들을 보호실로 데리고 가는 역할을 맡는다. 의대 실습생과 인턴들은 아이들과 탁구를 하거나 함께 텔레비전을 보면서 대화를 나눈다. 관찰의 일환이다.

햇살이 좋았던 봄날의 기억

아이는 병동에서 탁구를 배웠다. 아이돌 춤도 병동에서 배웠다. 2009년 봄이었다. “너의 모든 모습을 사랑하고, 있는 그대로의 너를 사랑한다. 2009년 4월28일” 이런 구절이 있는 편지를 나는 어린이날 행사에서 읽었다. 울지 않겠다고 다짐했는데, 자꾸 눈물이 흘렀다. 그래도 끝까지 읽었다. 아이가 보고 있으니까. 아이는 춤을 췄다. 슈퍼주니어의 <쏘리 쏘리>에 맞춰 앞줄 왼쪽 셋째 자리에서 춤췄다. 우리는 손이 아프게 박수를 쳤다. 이 춤은 간호사 선생님들이 지도했다. 아픈 아이들과 얼마나 씨름하면서 행사를 준비했을까? 그때 간호사 선생님의 이름을 기억한다. 아이를 진심으로 대해줬다. 아이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함께 외출하고, 간식을 사줬다. 아이는 지금도 그날을 이야기한다. 햇살이 좋았던 봄날을.

아이의 소아정신과 병동 생활은 초등학교 6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 입퇴원을 열두 번 반복하며 계속됐다. 맞는 치료제를 찾는 데 3년6개월이 걸렸다. 중학교 3학년 때는 매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경기도 파주까지 통학했다. 아이가 꼭 학교를 마치고 싶다고 했다. 아침이 되면 병실에서 교복을 갈아입고 1시간30분을 달려가 1시간 수업하고, 다시 병원에 돌아오는 식이었다. 그렇게 아이는 중학교를 졸업했다. 3년6개월, 소아정신과 병동에서 지낸 그 기간 동안 아이에게 병동은 학교이자 사회였다.

윤서 여성학 박사

*정신병동에서도 아이는 자라요: 16년째 조현병과 동거하는 28살 청년 ‘나무씨’(가명) 이야기를 어머니 윤서(필명)가 기록한 글. 조현병을 앓는 나무씨의 시점에서 이지안이 그림을 그립니다. 3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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