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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담화’ 장려 공간… 들어가면 원자가 분자가 되는 곳

‘미화하지 말아요’ 미화할 수밖에 없는 복합문화공간 더숲 탁무권 대표의 ‘연결 철학’
등록 2024-03-22 11:28 수정 2024-03-27 13:25
복합문화공간 더숲 탁무권 대표. 2016년 12월에 문을 연 더숲은 5년 동안 적자를 봤다. 코로나19 때는 적자에 아랑곳하지 않고 투자했고 2년 전부터 이 수지타산 안 맞아 보이는 사업은 적자 늪을 벗어났다. 사진 김소민

복합문화공간 더숲 탁무권 대표. 2016년 12월에 문을 연 더숲은 5년 동안 적자를 봤다. 코로나19 때는 적자에 아랑곳하지 않고 투자했고 2년 전부터 이 수지타산 안 맞아 보이는 사업은 적자 늪을 벗어났다. 사진 김소민


서울 노원구에 있는 복합문화공간 더숲은 한번 들어가면 나오기가 쉽지 않다. 지하 1·2층 300평 규모인 이 공간엔 40여 석짜리 예술영화관 두 곳과 공짜로 구경할 수 있는 갤러리가 있다. 빵, 와인 등을 파는데 책이 중심인 서점이다. 갖가지 모임을 할 수 있는 세미나실도 있다. 죽치고 앉아 있어도 누구도 눈치 주지 않는다.

이곳 영화관은 이상하다. 한국독립영화 <벗어날 탈 脫> 관객과의 대화를 2024년 3월2일부터 격주로 여섯 차례 연다. 첫날엔 주연배우 임호준씨의 친구인 배우 강일우씨가 사회를 봤다. 이후 촬영·조명감독 편, 배우들의 애장품 편 등 주제를 잡아 관객을 계속 만난다. 잘 알려진 영화도 아니고 이 공간 바로 건너에 대형 극장 체인이 있는데 누가 올까? 신기하게 이 관객과의 대화는 40석 꽉 찼다. 2023년 더숲 영화관에서 ‘관객과의 대화’(GV)가 67차례 열렸다. 일주일에 한 번 이상인 셈이다.

이호준 프로그래머(라 쓰고 ‘눈물’의 GV 진행자라고도 읽는다)에게 힘들겠다고 했더니 그저 웃었다.(혹은 울었을까?) “서울 북쪽에 예술전용관이 없다보니 경기도 의정부, 구리, 남양주에서도 오세요. 서울 광화문까지 나가지 않아도 좋은 영화를 볼 수 있어 고맙다면서요.” 이호준 프로그래머가 고생하는 까닭은 탁무권(67) 더숲 대표의 딱 하나 주문 탓이다. “영화를 보고 뒷담화를 많이 하게 하라.” 영화뿐이 아니다. 인문학 강좌, 북토크, 와인 모임 등이 주야장천 이어진다. 더숲은 ‘뒷담화’ 장려 공간이다.

축제다운 축제 열리는 ‘뒷담화’ 장려 공간

2024년 1월13일, 2월21일과 3월14일 세 차례 만난 탁무권 대표는 60살에 “망할 줄 알고” 더숲을 시작했다. 한국에서 유일한 형태의 복합문화공간인 더숲에서 사업과 사회적 가치가 만나듯 그의 삶에서도 그렇다.(그는 “미화하지 말라”고 했는데 이건 사실이다.) 30년 동안 여러 서점을 운영한 사업가인데 한국에서 부자들이 돈 벌기 가장 쉬운 방법으로 택하는 부동산은 하나도 없다. “젊을 때 부동산은 사회적 범죄라고 생각했는데, 제가 나이를 못 먹었어요. 저는 부동산이랑 안 맞는 운명이에요. 미화하지 말아요.”

임대공간에 자기 돈 거액을 들여 더숲을 꾸리니 사람들이 “미쳤다”고들 했다. “한국에선 인생의 제일 중요한 이벤트인 결혼식, 장례식에 가봐도 다 돈 세리머니예요. 축제다운 축제가 없어요. 한국 사회는 다 원자화됐어요. 그런데 살아 있는 건 원자가 아니에요. 생명체가 되려면 분자가 돼야 해요. 공동체가 허물어지면 행복할 수 없어요. 말만 하면 뒷방 노인네 같잖아요. 구체적인 걸 하나라도 만들어야죠. 우리 동네에 사람들이 모여 이야기 편하게 나눌 아늑한 공간을 찾기 어려웠어요. 이런 공간이 많아야 (이웃 간 교류가 없는) 아파트 문화를 깰 수 있어요. 공간과 문화가 사람을 바꿀 거라고 저는 믿어요.” 이어 번호 매긴 집과 주차장만 연결하고 이웃끼리 인사 한번 나누기도 어색한 아파트에 대한 성토와 자기가 살고 있는 연립주택에 대한 상찬이 이어졌다. “윗집에서 음식을 나눠준다니까요.”

더숲은 ‘뒷담화’ 장려 공간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작가 북토크와 영화 <요정> 관객과의 대화 시간. 더숲 제공

더숲은 ‘뒷담화’ 장려 공간이다. <아버지의 해방일지> 정지아 작가 북토크와 영화 <요정> 관객과의 대화 시간. 더숲 제공


세 차례 갈 때마다 더숲은 거의 꽉 차 있었다. 젊은이들, 중년 남녀, 노인들까지 한번 앉으면 잘 안 일어난다. 그만큼 회전율이 낮다. 매출은 떨어진다. ‘연결’의 철학은 테이블 디자인에까지 스며 있다. “저는 회전율 낮다는 얘기 싫어해요. 의자와 테이블을 더 놓자는 데도 반대했어요. 의자로 빽빽하면 답답하잖아요. 1인용 사각 테이블을 제일 싫어해요. 옛날엔 없었던 거예요. 다 사회의 반영이죠. 원칙이 없으면 그런 테이블을 들여놓게 돼요.”

여기 갤러리는 그림을 사고팔기보다는 감상하는 미술관이다. “노원, 도봉, 중랑에 갤러리가 없어요. 우리 아이들은 경쟁 탓에 문화적 감수성을 키울 기회가 별로 없잖아요. 동네에서 ‘쓰레빠’ 신고 부모님이랑 할머니랑 오가며 감상하면 감수성이 길러질 거예요. 예술은 다양성이거든요. 아, 그리고 전 문화적 소양 많지 않아요. 미화하지 말아요.” 그는 회의 시간에 직원들에게 매출을 묻는 대신 이런 철학을 공유한다고 했다. “그렇지 않으면 책임자는 이윤을 택할 수밖에 없거든요. 예를 들어 이 공간에 의자를 더 넣는 거죠.”

탁무권 대표의 예상대로 2016년 12월에 문을 연 더숲은 5년 동안 적자를 봤다. 코로나19 때는 적자 폭이 더 컸다. 탁 대표는 되레 투자를 늘렸다. “만나는 사람마다 고맙다며 걱정해주는 거예요. 제 방향이 틀리지 않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그의 예상과 달리 2년 전부터 이 수지타산 안 맞아 보이는 사업은 적자 늪을 벗어났다.

서점을 좋아하는 사람을 보며 부끄러워지다

1994년, 노원구 상계동에 막 신도시가 들어설 즈음 그는 동네 첫 책방인 노원문고를 열었다. 대학 시절엔 민주화운동을 했다. ‘남조선민족해방전선 준비위원회’ ‘민주화운동청년연합’ 등에서 활동했다. 출판사에서 3년 일하다 책방을 냈다. “서점은 순전히 돈 벌려고 했어요. 그때는 돈벌이와 사회적 기여를 이원화했거든요. 책을 판 만큼, 그것도 몇 달 뒤 출판사에 돈을 지급하는 ‘위탁판매’라 큰 자본이 없어도 됐어요. 당시 한국에 대형서점은 교보, 종로 정도밖에 없었어요. 지역 도서관이 생긴 게 2005년이죠. 그만큼 독서 환경이 척박했어요. 나오는 책이 이렇게 많은데 서점이 작아서 되겠나 했죠.”

넓고, 싸고, 위치 좋은 곳을 찾기는 어려웠다. 중심가에서 벗어난 곳에 150평 규모로 문을 열었다. 어떻게 서점까지 발길을 이끌까? 그는 당시 교과서 지정 판매 서점인 교보문고에서 현금으로 제값을 치르고 교과서를 사 날랐다. “사람들이 교과서 사러 왔다가 다른 책도 보는 거죠. 당시엔 교보에서도 책만 팔았는데 노원문고엔 문구도 들였어요. 새 학기에 책 사면서 학용품도 보잖아요.”

현재 ㈜노원문고는 6곳, 문구점 2곳으로 확장했다. “자기 분야에 전문성을 가지고 재투자하면 살아남을 확률이 높아져요. 그런데 한국에선 돈이 모이면 다들 부동산을 해요. 저는 부동산이 없잖아요. 노원문고에선 디자이너를 두 명씩 썼어요.” 그는 노원문고를 열고 1년 뒤부터 매달 기부했는데 아이들과 함께 서점에 온 부부들을 보며 이런 ‘이원화’가 “부끄러워졌다”. “저는 서점으로 돈 벌 생각뿐이었는데 지역 사람들이 서점을 좋아하는 거예요. ‘내가 있는 곳이 풀뿌리 민주주의가 자라는 곳’이란 생각이 들더라고요.”

‘연결’은 더숲 이전 일복과 함께 시작됐다. 사회혁신공간데어 이사장, 윤이상평화재단 이사장 등 일 많은 직함이 여럿이었다. 노원구청과 지역 주민이 함께 만든 노원교육복지재단 이사장으로도 6년 일했다. 지역 취약계층에 장학금, 생계비, 주거비, 의료비 등을 지원하는 단체였다. “사회복지는 기본적인 거예요. 그거로는 부족해요. 행복감을 주려면 문화복지가 중요하더라고요. 중산층이 구심점이 돼야 해요. 중산층 모임이 형성되고 이들이 지역에 관심을 가질 때 공동체가 시작됩니다. 지금은 사는 곳이 그냥 잠자는 곳이잖아요.”

노원교육복지재단이 한국에서 처음으로 구립도서관 ‘휴먼라이브러리’를 만든 이유다. 휴먼라이브러리는 사람이 책인 도서관이다. 책이 되고 싶은 사람이 도서관에 자신을 등록하고 그 ‘책’을 ‘대출’한 사람과 대화를 나눈다. 멘토 대여 시스템인 셈이다. “처음에 600여 명이 ‘책’으로 자신을 등록했어요. 그런데 사실 ‘인간책’은 매개체였어요. 이 사람들을 중심으로 다양한 커뮤니티가 형성돼 지역에 관심이 커지길 바랐는데, 거기까지 나아가진 못해 실망스러웠습니다.”

탁무권 대표가 운영하던 노원문고의 2004년 모습. 이곳을 운영하면서 탁무권 대표에게 ‘내가 있는 곳이 풀뿌리 민주주의가 자라는 곳’이라는 생각이 싹텄다. 한겨레 자료

탁무권 대표가 운영하던 노원문고의 2004년 모습. 이곳을 운영하면서 탁무권 대표에게 ‘내가 있는 곳이 풀뿌리 민주주의가 자라는 곳’이라는 생각이 싹텄다. 한겨레 자료


건설 재벌의 별장을 열어 즐기는 공간으로

지역의 문화 거점인 서점들을 살리려는 ‘연결’도 이어졌다. 쉽지 않았다. 그가 책방을 시작했을 때는 어디서든 책값이 같은 도서정가제가 굳건했던 시절이다. 2000년 들어 대형마트, 온라인서점 등이 들어오며 할인 경쟁이 이어졌다. 10년 동안 서점 5683곳(1994년) 중 1500여 곳이 사라졌다.(<동네책방 생존 탐구>, 한미화 지음) 지역 서점을 묶는 협동조합을 만들었지만 ‘협력’엔 한계가 있었다. 대형 서점 중심으로 재편하는 양극화에 맞서려고 22개 서점을 연결해 회생절차에 들어간 도매상을 살리려던 시도는 실패했다.

‘연결’의 씨앗 중 하나였던 더숲은 자랐다. 자생력을 확보했다. 게다가 여러 지방자치단체에서 더숲과 비슷한 공간을 만들어달라고 손을 내민다. 경기도 시흥 소전미술관에서 2024년 4월 세 번째 더숲이 열린다. “백자 청자 도자기들이 유리벽 뒤에 전시돼 있다보니 관객이 많지 않았어요. 건설 재벌의 별장을 열어, 사람들이 즐길 수 있는 공간으로 바꿨습니다. 공간의 힘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요.” 4월 소전미술관 더숲에서 소설 <로기완>을 쓴 조해진 작가, 이소연 시인, 은유 작가 북토크가 이어진다.

그가 어린 시절엔 글이 귀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처음 받아본 신문을 그는 기억한다. “잊히지 않아요.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신문 냄새부터 맡았어요. 아침이 정말 좋았어요.” 이제 글은 사방에 널렸고 사방에서 잊히고 있다.(그마저도 “‘쇼츠’에 중독돼가고 있다”고 했다.) “대세는 인터넷으로 넘어갔어요. 서점 수요는 줄 수밖에 없어요. 더숲이 서점의 미래, 진화라고 생각해요. 책은 거의 모든 것의 근원이에요. 영화, 그림, 게임 모든 상상력의 체계적 근원이 책이에요. 한국 사회는 가치관이 붕괴했어요. 너무 거대하게 붕괴하면 의식을 못해요. 그런데 그 말은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 회복될 수도 있다는 뜻입니다. 제 일이 사람들 사이 관계 회복에 도움이 된다면, 스스로 보람을 느낀다면, 난 정말 여한이 없어요.”

김소민 시민이음본부 연구위원

*[희망제작소×한겨레21 공동기획] X의 지역작당:​ 경쟁이 아닌 연대, 개인이 존중받는 공동체, 자연을 해치지 않는 인간의 삶을 찾아 다 아는 길 대신 미지의 X를 택한 사람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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