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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전공제 확대, 기초학문 소멸 지름길

등록 2024-04-12 09:06 수정 2024-04-19 04:14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 임은희 제공

임은희 대학교육연구소 연구원. 임은희 제공


2025학년도 대입의 큰 변화는 의대 정원 증원과 함께 ‘무전공(전공자율선택제) 입학’의 확대다. 무전공 선발은 전공·학과를 정하지 않고 입학한 뒤 학생이 2학년 때 세부 전공을 선택하는 제도다. 기존에도 자율전공·자유전공학부 등의 이름으로 시행됐는데, 교육부는 2024년 1월 무전공 선발 확대와 대학 재정 지원을 연계하겠다고 밝혔다. 무전공 선발을 늘린 대학은 그렇지 않은 학교보다 수억∼수십억원의 지원금을 더 받게 된다. 일각에선 교육부 방침에 우려를 나타낸다. 최근 대학교육연구소(대교연)는 정보공개청구를 통해 무전공제를 운영 중인 주요 4년제 대학의 약 70%는 학생들이 전공을 정할 때 상위 3개 학과를 선택하는 비율이 50%를 넘는다고 밝혔다. 분석을 맡은 임은희 대교연 연구원은 “(무전공제를 확대할 경우) 기초학문 학과 폐과, 인기 학과 쏠림이 훨씬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2024년 1월 교육부가 무전공 선발 비율을 확대한 대학에 가산점을 주겠다는 ‘대학혁신지원사업’ 기본계획을 발표했다.
“대학혁신지원사업은 정부가 사립대학에 주는 가장 큰 재정 지원 사업이다. 그런데 대학마다 1∼2점 차이, 어떤 때에는 소수점 차이로 재정 지원 대상이 갈린다. 대학 입장에선 정부가 주겠다는 가산점 10점을 포기할 수 없다. 말이 가산점이지, 사실상 정부가 정책적으로 ‘무전공제를 확대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다.”

—무전공제를 확대하면 인기학과 쏠림 심화로 기초학문 고사 가능성이 더 커질 것 같다.
“가능성 정도가 아니다. 학생들이 선호하는 과는 취업이 잘 되는 학과일 수밖에 없다. 시장 원리에 따라서 학과가 재편되는 거다. 예전에는 학과별 칸막이가 있다보니 그 과를 지켜야 하는 교수들과 학생들이 있었다. 안에서 갑론을박하며 싸우기도 하고 통폐합 시기를 늦추기도 했는데, 이제는 그런 것 자체가 없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대학은 ‘학생들이 선택을 안 하는데 어떻게 하느냐’고 하면 끝이다. 기초학문과 관련된 학과 폐과, 인기 학과 쏠림이 훨씬 두드러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도 무전공 입학생의 중도이탈 비율이 높다고 나오는데.
“지금은 무전공제 학과의 규모가 40명, 80명, 100명 정도다. 이번 분석에서 드러난 점은 소규모로 운영하는데도 쏠림이 너무 심하고, 1학년 때 학교 안에서 양질의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중도이탈하는 학생이 많다는 거다. 신입생이 3천 명인 대규모 대학의 경우, 25%를 무전공으로 뽑으면 700∼800명 수준으로 늘어난다. 이렇게 큰 단위의 변화가 있을 땐 더 심한 쏠림과 높은 중도이탈률, 학생 관리의 어려움이 생길 텐데 1년 안에 준비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고 본다.”

—고등교육 관련 기사는 입시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만 다루는 것 같다.
“한국은 워낙 입시가 치열하다보니 대학을 어떻게 보낼지에 관심이 많다. 초·중·고등학교까지는 굉장히 관심이 많은데, 그 이후엔 대학에 관심이 없다. 의대 정원 증원이나 무전공제에 관심을 갖는 이유는 입시와 연관됐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대학 역시 공교육의 연장선상에서 바라봐야 하고, 공공성을 담보하려면 국민 관심이 많이 필요하다. 대학의 서열화라든가, 지역대학에 닥치는 어려움 등 사회문제를 같이 풀려면 입시뿐 아니라 양질의 대학교육, 고등교육에 정부가 더 책임질 수 있도록 방향을 함께 고민하는 게 필요하다.”

—<한겨레21>을 포함한 언론에 아쉬운 점은.
“비수도권 지역대학 관련 기사가 나오는 건 주로 1, 2월이다. 입시와 연관해서 지역대학의 미충원·미달이 심하다는 내용이다. 올해는 그마저도 기사가 덜 나왔다. 윤석열 정부가 글로컬대학을 선정해 지원한다고 하면서 어디가 선정되느냐에 대한 이야기만 나오다보니 지역대학에 대한 관심이 지난해보다 덜해졌다. 그런데 대학의 절반 이상은 비수도권 대학이다. 정부가 장기적으로 지역대학을 어떻게 육성할지에 대한 답을 풀지 않으면 인구 소멸, 수도권 집중이라는 사회문제도 해결될 수 없는 구조다.”

서혜미 기자 ha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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