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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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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나, 나는 너

등록 2024-05-04 04:46 수정 2024-05-10 03:53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일러스트레이션 장광석


대구 달성군에 있는 공단의 한 자동차 부품공장에서 일했던 김민수(42·가명)씨는 한국인이지만 이주노동자들과 닮은 게 많다고 생각한다. 아이엠에프(IMF) 금융위기 때 혼자서 두 자녀를 키우던 어머니가 일하던 공장에서 임금을 떼이고 일자리를 잃었다. 그 뒤로 김씨도 어린 나이에 가출해 피자 배달, 신문 배달, 막노동 등을 하면서 여러 차례 임금을 떼였다.

김씨는 2023년 8월25일 오전 미등록 이주노동자들이 탄 통근버스를 몰고 공장으로 향하다 출입국·외국인청의 갑작스러운 단속에 놀라 차량을 들이받고 단속을 방해한 혐의(특수공무집행방해치상 등)로 기소됐다. 2024년 5월1일 대구고등법원에서 열린 2심에서 김씨는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변호인단과 김씨를 지지하는 대구의 시민사회는 집행유예를 기대했지만, 1심(징역 3년형)보다 1년 감형됐을 뿐이다. 김씨는 <경향신문>과 한 인터뷰에서 “가족도 친구도 없이 ‘돈 벌어야겠다, 가장이니깐 책임져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텼는데 그런 나와 이주노동자들과 뭐가 다른지 모르겠다”며 “‘불법체류’라고 하지만, 우리 같은 영세한 공장에는 다 그 친구들이 있다. 그들이 없으면 공장이 멈추는 게 대한민국 현실인데 보듬고 갈 수밖에 없지 않나”고 말했다.

김씨의 말은 오랜 여운을 남겼다. 고전 경제학에서 시장을 움직이는 것이 ‘보이지 않는 손’으로 비유되는 가격이었다면, 현대 한국 사회에서 시장을 움직이는 것은 미등록 이주민을 포함한 이주노동자들의 ‘보이지 않는 손’이다. 그들의 ‘노동’이 없으면 우리는 음식을 먹을 수도, 옷을 입을 수도, 아파트를 지을 수도 없다.

노동이 이주하는 건 그 자체로 세계가 불평등하기 때문이다. 위험하거나 익숙하지 않은 환경임에도 노동자는 조금 더 많은 임금을 줄 수 있는 곳으로 이주한다. 그러나 그것은 단지 이주하는 자의 욕망에 의해서만 이뤄지는 게 아니다. 경제적·사회적 이유로 정주하는 이들이 하지 않으려는 노동에 이주노동자들이 투입된다. 특히 인구절벽으로 나아가는 한국에 다양한 인종적 정체성을 가진 이들이 어울려 사는 사회는 머지않은 미래다.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가진 이주민을 이해하고, 이주민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 더는 선택일 수 없다. <한겨레21>이 국가인권위원회와 공동기획으로 ‘이주인권'을 소재로 한 소설가들의 연속 연재 ‘동료시민 이주민’(총 8회, 4주에 1번)을 시작하는 까닭이다.

김숨 소설가를 시작으로 최은영, 이서수, 최진영, 전춘화, 조해진, 백수린, 이금이 소설가가 기고에 참여한다. 김숨 소설가는 경남 밀양의 이주노동자 스레이 니읍씨를 인터뷰하고, 인권위와 이주노동119가 공동 주최한 ‘임금체불 피해 이주노동자 증언대회 및 정책토론회’에 참석해 이주노동자들의 사례를 꼼꼼히 취재한 걸 바탕으로 논픽션 소설 ‘니읍'을 썼다. <한겨레21>도 이주민들이 처한 구조적 문제를 함께 고발한다.

이재호 기자 ph@hani.co.kr·손고운 기자 songon11@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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