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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장에서 짓는 목조건축

공사 기간 줄이고 품질 보장 일석이조
등록 2018-10-20 07:58 수정 2020-05-02 19:29
캐나다 에드먼턴의 에이시큐건축 공장에서 숙련공들이 목조주택의 지붕을 만들고 있다.

캐나다 에드먼턴의 에이시큐건축 공장에서 숙련공들이 목조주택의 지붕을 만들고 있다.

캐나다 앨버타주 에드먼턴의 에이시큐(ACQ)건축 공장에 들어서는 순간, 이곳을 찾은 한국 건축가들의 탄성이 터져나왔다. 1년에 단독주택 400채를 지어 공급하는 규모 있는 목조주택 제조업체였다. 기계로 못을 박고, 지붕에 올라가 방수 작업을 하고, 배선·배관 공사를 하고, 석고보드 마감을 하는, 각 작업 공정을 지나칠 때마다 기록사진을 찍어두기 바빴다. 한국에서 앞서가는 유사한 ‘목조주택 제작공장’을 운영하는 ‘리플래시기술’의 이홍원 회장은 “대단하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이 회장은 “우리나라 목조주택 건축에서 불거지는 불만은 대부분 공사 현장에서의 들쭉날쭉한 부실 시공 때문”이라고 꼬집으면서 “여기는 수십 년간 일한 숙련공들이 이렇게 날씨와 안전 등 모든 조건이 통제된 실내 환경에서 빈틈없이 균일한 제품을 만들어낸다”고 부러워했다.

공사 기간 절반 이상 단축

에이시큐 쪽은 “공장에서 집채의 각 부분을 제작하는 동안 현장에선 기초공사를 동시에 진행한다”면서 “트럭과 크레인으로 집의 기본 뼈대를 옮겨 완성하는 데는 이틀이면 충분하다”고 했다. 통상적 방식으로 현장에서 집을 지을 때는 6~9개월이 걸리지만, 에이시큐는 전기와 단열을 포함한 모든 작업을 마치는 데 석 달이면 충분하다. 절반이나 3분의 1로 줄어든 공사 기간에 집 한 채를 뚝딱 지어내는 것이다.

주택 건축에서 공장 생산의 가장 큰 장점은 저렴한 가격이 아니었다. 숙련공의 인건비가 높아 오히려 일반 건축 방식보다 조금 더 비싸다고 했다. 대신 공장식 목조주택 건축은 공사 기간을 단축하고 품질을 보장한다는 큰 장점이 있었다. 건축회사 쪽에서는, 자재를 효율적으로 관리해 손실을 최소화하는 이점도 누린다.

에이시큐 쪽은 지금까지 41년 동안 무려 1만7천 채의 목조주택을 공급했다. 공장에서 생산할 수 있는 기본 주택 디자인만 40종에 이르고, 200종까지 소화할 수 있는 역량을 갖추었다. 이 회장은 “우리는 고층 목조건물은커녕 소규모 목조주택 건축시장도 자리잡지 못했다”며 “수요가 턱없이 적고 인식과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밴쿠버에서 내륙 쪽으로 2시간 달려가 도착한 ‘메트릭모듈러’에서는 마침 8가구(각 60m2) 규모의 노인과 장애인용 3층 공공임대주택 시공이 한창이었다. 이 회사는 에이시큐처럼 집채 일부를 생산해 현장에서 조립하는 게 아니라, 집채를 통으로 지어 현장으로 옮기는 ‘모듈러’(modular) 생산 방식의 건축회사였다. 트리니티웨스턴대학의 5층 기숙사도 이 회사에서 시공했다. 숙련공들은 8개의 집채를 실내 인테리어까지 하나씩 완성해가고 있었다. 단열과 내화 등 모든 품질관리가 꼼꼼하게 이뤄지고 있었다. 작업이 마무리되면 현장으로 옮겨 1층부터 차례로 올려 쌓는 식으로 한다.

공장에서 집채 완성

메트릭모듈러의 톰 팰리스제프스키 기술개발 책임자는 “공사 현장이 고립된 섬이어서 숙련공들을 데려갈 경우 먹이고 재워야 해, 우리의 모듈러 방식보다 총공사비가 2배 많아지고 공사 기간은 3배 길어진다”면서 “프로젝트 규모가 클수록 모듈러 시공 방식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일본에서 찾아간 도쿄 외곽의 목조건축회사 ‘윙’은 건축 현장에 맞게 갖가지 규격의 목재를 맞춤형으로 제작해 공급하는 회사다. 벽체를 통째로 짜서 공급하기도 하지만 전체 생산의 20%에 그친다. 도쿄 공장을 포함해 전국에 흩어진 5개 공장에서 공급하는 규모는 무려 월 700채에 이르렀다. 노동자들이 신발을 벗어 양말만 신은 채 못을 박는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그만큼 현장이 깨끗하고 품질관리에 자신 있다는 뜻이었다.

9월28일 찾은 밴쿠버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의 캐나다임산물연구소(FP Innovations)는 목조건축의 최첨단 기술개발을 끌어가는 전진기지였다. 목조건물이 높이 올라가도 지진에 잘 견디는 사실을 과학적으로 입증해, 5~6층에 해당하는 중층 목조건물 건축의 길을 터는 핵심 두뇌 역할을 했다. 캐나다임산물연구소의 노력으로, 여러 주에서는 4층으로 제한된 목조건축 층고 제한을 2009년부터 6층으로 끌어올리기 시작했다. 2015년에는 연방법 개정도 관철해냈다.

지진·화재에 강한 목조건축

원래 목재는 가볍고 유연하면서 복원력이 강해 지진에 더 잘 견디는 성질이 있다. 거기에 더해, 마리안 포포브스키 수석연구원은 ‘중판전단벽’(Midply Shearwall)이란 단순하고 강력한 시공 방식을 개발해 중층 목조건축물의 내진 불안을 깨끗이 씻어냈다. 포포브스키는 “벽체의 힘을 많이 받는 부분에 2×4인치 목재판을 이중 시공해, 같은 수의 못이 2배의 무게를 이겨내도록 고안했다“고 말했다.

포포브스키 연구팀은 일본 고베 외곽의 미키연구소에서 실제 중판전단벽으로 시공한 6층 목조건물을 지어, 내진 실험을 벌이기도 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1994년 일어난 진도 6.7의 노스리지 지진 강도를 재연한 실험 동영상을 보면, 6층 건물은 석고보드와 못 접합 부분에 경미한 피해가 있었으나 골조는 전혀 상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캐나다와 일본에서는 중판전단벽을 시공한 5~6층 목조건물 시공이 확산되고 있다. 중판전단벽 시공 방식은 경북 경주 같은 국내 지진발생 지역의 문화재 보수에도 활용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일본 정부는 중판전단벽 시공 목조건축물에 대해 2시간 내화인증서도 발급했다. 흔히 목조건축이 불에 약하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불이 나도 2시간 동안 건물이 무너지지 않는다고 일본 정부가 인정한 것이다. 목재는 불이 붙더라도 내부로 잘 타들어가지 않는 속성이 있다. 표면에 형성되는 검은 탄화층이 오히려 화재를 지연시키는 구실을 한다. 목재 내부 온도가 100도 이상 올라가지 않아, 화재 30분이 지나도 표면에서 18mm 타들어가는 데 그친다. 하지만 철근은 뜨거운 열에 녹고 콘크리트는 쉽게 부서진다.

에드먼턴·밴쿠버(캐나다)·도쿄(일본)=글·사진 김현대 선임기자 koala5@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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