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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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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생은 ‘보호’ 무직자는 ‘퇴소’

만 18세 ‘대학 진학 여부’ 따라 차별하는 아동복지법
등록 2019-04-05 02:14 수정 2020-05-02 19:29
지난 12월23일, 요보호 아동인 18살 희현(가명)이가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생활가정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정용일

지난 12월23일, 요보호 아동인 18살 희현(가명)이가 자신이 살고 있는 공동생활가정으로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정용일

아동복지법

제16조(보호대상아동의 퇴소조치 등) ① 제15조 제1항 제3호부터 제5호까지의 보호조치 중인 보호대상아동의 연령이 18세에 달하였거나, 보호 목적이 달성되었다고 인정되면 해당 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은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절차와 방법에 따라 그 보호 중인 아동의 보호조치를 종료하거나 해당 시설에서 퇴소시켜야 한다.

④ 제1항에도 불구하고 제15조에 따라 보호조치 중인 아동이 다음 각호의 어느 하나에 해당하면 시·도지사, 시장·군수·구청장은 해당 아동의 보호기간을 연장할 수 있다.
1. 「고등교육법」 제2조에 따른 대학 이하의 학교(대학원은 제외한다)에 재학 중인 경우
2. 제52조 제1항 제1호의 아동양육시설 또는 「근로자직업능력 개발법」 제2조 제3호에 따른 직업능력개발훈련시설에서 직업 관련 교육·훈련을 받고 있는 경우
3. 그 밖에 위탁가정 및 각종 아동복지시설에서 해당 아동을 계속하여 보호·양육할 필요가 있다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경우

김예빈(21·가명)씨는 아동복지법상 ‘아동’의 연령인 만 18세를 넘은 지 3년차에 접어들었지만, 아직 전북 진안의 한 공동생활가정(그룹홈)에서 ‘퇴소’하지 않았다. 수도권 사립대에 다니는 탓에 기숙사에서 지내고는 있다. 하지만 여전히 그룹홈의 물심양면 지원을 받고 본인이 원하면 그룹홈에서 살 수도 있다. “1월에 갑자기 맹장 수술을 했을 땐 목사님 사모님(시설장 부인)이 바로 (진안에서) 올라오셨다”거나 “집(그룹홈)에서는 장학금도 있고 대출 등급도 높고 전문직이라며 로스쿨 진학을 권유하신다”는 등 예빈씨의 말 속에서 ‘보호자의 존재감’이 느껴졌다.

예빈씨는 1학년 1학기 때 ‘올 에이 플러스(A+)’를 받았다. 덕분에 사립 장학재단에서 4년 전액 장학금을 받고 있다. 그룹홈 아이들에게 학업지원금 사업을 하는 제약회사의 도움으로 학원도 다닌다. 생활비는 한 달 60만원 정도 기초생활수급비를 받아 충당한다. 기숙사비는 공공기관 사무보조 등 국가근로, 도서관 등 교내 근로장학금, 편의점·카페 등 각종 단기 알바로 해결한다.

무적(無籍), 무직(無職)은 나가라

사단법인 한국아동청소년그룹홈협의회 쪽은 예빈씨를 “정말 똑똑하고 야무진 친구”라고 소개했다. 그룹홈 관계자들 사이에서 정평이 나 있을 정도로 ‘똑 부러진 대학생’이지만, 자립만큼은 아직 막막한 상태다. 예빈씨는 3월12일 인터뷰에서 “자립 문제는 완전 깜깜해가지고…”라고 말했다. 유년 시절엔 “형편이 너무 어려우니까 진짜로 살 방법이 공부밖에 없어서 악착같이 공부”했고, 지금은 “돈을 아껴야겠다는 생각에 가계부를 쓰고 한 달에 10만원씩 적금을 붓는 게 자립 준비의 전부”라는 설명이다.

예빈씨는 비록 “항상 불안하고, 유독 자주 배가 아프고, 긴장하고 사니까 어깨도 늘 올라가” 있지만, 스스로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받을 수 있었고, 좋은 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복이 많다”고 말할 정도로 다양한 지원 속에 살고 있다. 김씨가 가정폭력을 휘두르던 아버지에게서 벗어나 ‘아직’ 한국 사회의 보호를 받을 수 있는 배경에는 스스로의 노력과 인복이 있다. 그러나 결정적으로 ‘대학생’ 신분을 빼놓을 수 없다. 예빈씨보다 어린 김규석(제1255호 참조·가명)군이 직장을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고교 졸업과 동시에 아동양육시설 퇴소를 강요받고도 항변할 수 없었던 이유는 대학에 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동복지법 제16조를 보면 아동양육시설 보호대상아동의 나이가 만 18세에 이르면 보호조치를 종료(퇴소)하도록 하면서 몇 가지 예외를 두고 있다. ‘대학에 재학’ 중인 경우나 ‘직업능력개발훈련시설에서 교육·훈련을 받고’ 있는 경우 등이 ‘만 18세 보호 종료 예외’ 사유에 해당한다. 어려운 법 조항을 쉬운 현실 사례로 풀어서 설명하자면, 통상 고교 졸업 후 예빈씨처럼 대학이나 직업훈련기관에 가면 계속 시설에서 보호받을 수 있다. 반면 규석군처럼 ‘무적’(無籍, 소속이 없음)에 ‘무직’(無職, 직업이 없음)이면 시설에서 퇴소해 자립해야 한다는 뜻이다.

만 18세가 된 요보호아동 중에서 ‘퇴소 유예’를 받아야 하는 ‘더 취약한 계층’을 구분하는 건 별로 의미 있는 분류 방식이 아니다(그런 아이들이 몇이나 될까 싶지만 번듯한 정규직 직장을 구한 경우는 일단 논외로 치자). 대학에 가든, 아니면 대학 안(못) 가고 직장도 못(안) 구하든 사실 한국 사회 평균 자립 나이를 고려해보면 전자 후자 모두 아직 보호가 절실하기 때문이다. 아동복지법상 ‘아동’ 나이를 만 18세에서 올리고 양쪽 다 보호를 연장하는 게 정답이다. 다만 아동복지법이 굳이 들이댄 ‘경중’의 잣대를 들이대자면 오갈 곳 없는 무적·무직자야말로 나라의 보호 연장 없이는 홀로서기가 불가능한 요보호 대상이라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아동복지법 제16조는 이런 현실을 외면한 채, 가장 취약한 ‘어른 아이’들을 시설 밖으로 내쫓고 있는 셈이다.

‘법률이 만들어진 지 오래돼서’ 그럴 수 있을 듯싶지만, 사실 해당 조항 개정일은 2016년 3월22일이다. 2000년대 후반 들어 민법상(만 19세부터 성년) 아직 미성년자인 만 18세 요보호아동의 보호 연장에 대한 사회적 요구가 높아졌다. 이미 사회적 요구가 높아지고도 강산이 한 번 변한 뒤 개정된 조항이라는 뜻이다. ‘법이 왜 이 모양이야?’라는 탄식에 가까운 의문이 주무 부처와 입법부, 이를 방치한 전문가 모두를 향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기계적 평등이라도

최경옥 청운대 사회복지학과 외래교수는 ‘그룹홈 퇴소 청소년들의 홀로서기 준비과정 경험’에서 “일반 가정의 청소년 대다수의 자립은 ‘자신의 상황에 맞는 선택의 자유’를 전제로 한다. 개인의 상황이 고려되지 않고 18세라는 정해진 시기에 살던 곳을 나가야 하는 (중략) 측면에서 아동보호체계의 청소년과 일반 가정 청소년의 자립 상황은 매우 다르다”라고 지적한다. 아동양육시설 아이들의 자립이 일반 가정 아이들과 ‘기계적 평등’이라도 이룰 수 있으려면, 특정 연령이나 진학 여부 등이 아닌 ‘개인의 상황’에 따라 자립 시기를 판단해야 한다는 취지다. 전문가들의 지적이기도 하거니와 “아동은 자신 또는 부모의 성별, 연령, 종교, 사회적 신분, 재산, 장애 유무, 출생 지역, 인종 등에 따른 어떠한 종류의 차별도 받지 아니하고 자라나야 한다”는 아동복지법 제2조 제1항 ‘기본 이념’에도 부합한다.

국가인권위원회 담당자는 에 “(대학 진학 여부에 따른 보호 종결 조처 차별에 대해) 인권위 차원의 공식적인 입장이 없다”고 밝혔다. 다만 “18세를 보호 종결 기준으로 삼는 데 사회적 우려가 있어 조만간 연구기관과 계약해 상반기 중 실태 조사를 시작할 계획이고, 나이 외에 대학 진학 여부 등에 따라 차별적 부분이 있는지 현황을 파악할 예정”이라고 덧붙였다.


대학생도 내모는 현실


‘남을’ 권리는 없다


대학 진학 여부에 따른 ‘합법적인 차별’ 외에, 만 18세가 되면 시설에서 무조건 내보내는 ‘불법적인 퇴소조치’도 문제다. 대학에 간 아동양육시설 아이들에겐 만 18세 이후에도 시설에서 살 수 있는 권리가 있다. 원생이 수백 명인 일부 대형 아동양육시설에서는 아이들에게 이런 권리를 알리지 않은 채, 고교 졸업과 동시에 일괄 퇴소시키기도 한다. 고교를 졸업한 ‘선배’들이 나가줘야, ‘후배’들이 새로 들어올 자리가 생기기 때문이다. 서울의 한 아동양육시설에서 최근 자립한 한 퇴소생은 에 “제가 살던 시설에서 고등학교 졸업한 친구들은 (대학 입학 여부와 상관없이) 모두 나왔고, (만 24세 이하 시설 퇴소생에게 숙소를 제공하고 자립을 지원하는) 자립생활관 같은 게 있다는 얘기도 안 해주셨다”고 했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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