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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경, 9시22분에도 출동 안 했을 수 있다”

박수현군 아버지, 기록더미와 씨름하다 ‘새로운 의혹’ 발견

목포해경 “9시5분 출동→12시15분 도착” 미스터리 풀릴까
등록 2019-04-12 01:48 수정 2020-05-02 19:29
지난해 10월19일 전남 목포 신항에 있는 세월호 선체.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지난해 10월19일 전남 목포 신항에 있는 세월호 선체.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아버지는 오늘도 새로운 세월호 기록을 모아 돌아오지 않는 아들의 방에서 읽는다. 3년 전 일터로 돌아간 뒤에도 변함없이 새벽마다 세월호와 마주한다. 왜 내 아들을 구하지 않았는가, 정부가 아직 밝혀내지 못한 그 답을 스스로 찾기 위해서다.
2014년 4월16일 세월호가 침몰한 지 5년이 지났지만 그 자리를 맴도는 아버지, 어머니가 있다. 시간이 흘러도 무뎌지지 않는 마음을 부여잡고 오늘도 뚜벅뚜벅 발을 옮긴다.
세월호 어머니로 구성된 4·16가족극단 ‘노란리본’은 수학여행에서 선보일 장기자랑을 준비하는 단원고 아이들의 모습을 담은 연극 을 4월5~6일 선보인다. 어머니들은 단원고 교복을 입고, 단원고 학생으로 출연한다.
진실을 향한 갈망은 여전하다. 세월호 침몰 원인과 304명을 구조하지 못한 이유는 아직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다. 세월호 관련 두 개의 조사위원회가 해결하지 못한 과제를 이어받은 ‘사회적 참사 특별조사위원회’는 최근 “폐회로텔레비전(CCTV) 관련 증거자료가 조작·편집된 정황이 있다”고 수사기관에 수사를 의뢰했다.
다시 발걸음을 내딛는다, 진실을 갈망하며, 우직하게.
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2014년 4월16일 참사 당시 사고 현장에 도착했던 목포 해양경찰서) 122구조대 출동과 관련해 궁금한 게 있어서 그러는데, 시간 되실 때 전화 좀….”

2018년 11월19일 오후 2시께, 단원고 2학년 4반 고 박수현군의 아버지 박종대씨가 내 휴대전화로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아들의 방, 책상에 앉아 세월호 기록을 읽는 아버지 모습이 다시 눈앞에 그려졌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지 5년이 지났지만, 오늘도 아버지는 아들이 남긴 숙제를 풀다가 답답한 마음에 문자를 보냈을 것이다.

참사 당일 수현군은 세월호 4층 우현 쪽 B-19 객실에서 단원고 학생들의 마지막 순간을 휴대전화 동영상에 담았다. 10여 분간의 동영상에는 점점 기울어지는 배 안에서 두려움 속에 친구들끼리 다독이는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 있었다. “절대 움직이지 말라”는 안내방송을 들으며 학생들은 구명조끼를 나눠 입고는 “엄마 아빠, 사랑해요”라는 인사를 건넨다.

2017년 9월 박종대씨가 서울중앙지검에서 고발인 조사를 앞두고 있는 모습. 박종대씨 제공

2017년 9월 박종대씨가 서울중앙지검에서 고발인 조사를 앞두고 있는 모습. 박종대씨 제공

매일 새벽 아들 방에서 기록 헤집는 박종대씨

수현군이 남기고 떠난 동영상 기록을 본 아버지는 숙명처럼, 전국을 돌아다니며 세월호 기록을 모았다. 그리고 아들의 방에서 그 기록을 홀로 읽으며 ‘왜 구하지 않았는가?’ 그 답을 찾아헤맸다. 산더미처럼 쌓이던 기록을 함께 읽겠다며 연대의 손길을 내민 이들이 나타났다. 재단법인 ‘진실의 힘’이었다. 진실의 힘은 1970~90년대 간첩으로 조작돼 고문당한 국가폭력 피해자들의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꾸려진 단체다. 이들은 세월호 유가족과 실종자 가족들의 막막한 심정을 누구보다 잘 이해했기에, ‘세월호 프로젝트’를 10개월간 진행해 2016년 3월 을 펴냈다.

하지만 아버지는 여전히 새로운 기록을 모으고 또 아들의 방에서 그 기록을 읽는다. 해경과 검찰, 감사원 등 정부기관이 만들어낸 참사 초기 기록과 자료를 분석해 정리한 책 한 권만으로는 그날의 진실을 온전하게 밝혀낼 수 없기 때문이다. 그는 직장생활 틈틈이 해경에 정보공개를 청구하며 진실의 조각을 차근차근 맞춰나가고 있다. 2016년부터 그가 제기한 정보공개 청구는 260여 건에 이른다.

최근 아버지는 참사 당일 목포해경 122구조대의 행적을 따라가다 새로운 의혹을 발견했다. 목포해경 122구조대가 사고 당일 오전 9시22분께까지 출동하지 않았을 가능성이 있다는 사실이다. 지금껏 목포해경 122구조대는 오전 9시5분께 출동한 것으로 기록됐다. 당시 출동했던 구조대원들이 감사원 등에서 그렇게 진술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아버지는 목포해경 상황실 통화 내역에서 상황실과 122구조대 사무실이 9시21분, 22분에 통화한 사실을 찾아냈다. 일반적으로 통화가 연결되지 않으면 통화 내역에 기록이 남지 않는다.

아버지는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해경에 물었다. “해경 구조대가 9시5분께 출동했다면 텅 빈 사무실에서 누가 통화했다는 것인가.” 해경이 답했다. “당시 122구조대는 비번자 포함 10명이 모두 현장으로 이동, 구조에 투입돼 (구조대) 사무실은 비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통화 성공 여부 및 통화 내용을 확인하기 어렵다.” 빈 사무실에서 누군가 통화했을지도 모르지만, 그게 누구인지, 어떤 내용으로 통화했는지는 답할 수 없다는 것이다.

애초에 참사 당일 122구조대의 행적에서는 의문이 많았다. 잠수 능력을 갖춘 수난구호 전문조직인 122구조대는 해상 사고가 나면 즉각 출동해야 한다. 침몰한 배에서 사람을 구조할 방법은 잠수사가 선내로 들어가는 것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포해경 122구조대가 사고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낮 12시15분. 세월호가 오전 10시31분 완전히 뒤집힌 채 뱃머리만 남기고 물속으로 가라앉은 뒤 2시간 가까이 속수무책으로 지켜볼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122구조대, ‘늑장 출동’에 당직함 놓쳤나?

목포해경은 상황실이 세월호 침몰 사고를 오전 8시56분께 신고받고 삼학도 부두에 있던 122구조대에 명령을 내려 9시5분께 출동했다고 주장했다. 다만 배가 아니라 차량을 이용하는 바람에 현장에 늦게 도착했다고 했다. 배로 이동하면 35㎞라 40~50분이면 도착하는데도 상황실이 차량을 이용하는 게 더 빠르겠다고 잘못 판단한 탓에 두 배 이상(79㎞) 먼 길을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122구조대가 출동했다고 주장하는 9시5분께는 해경 당직함 513함이 삼학도 부두에 있었다. 그 함정들은 122구조대 사무실에서 문만 열고 나가면 보였다. 목포해경 상황실의 지시로 9시20분께 사고 현장으로 출동한 513함을 타고 122구조대가 갔다면 늦어도 11시10분께 사고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

‘목포해경 상황실과 통화한 9시22분까지 122구조대가 사무실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늑장 출동 탓에 당직함(513함)을 놓쳐 차량으로 이동한 것은 아닐까. 그 사실을 숨기기 위해 감사원에서 해경이 거짓 진술을 한 것이 아닐까.’ 의문은 꼬리를 잇는다. 그래서 오늘도 아들의 방에서 아버지는 기록 더미와 씨름하고 있다.

아버지가 품은 의혹은 사실일 가능성이 커 보인다. 실제 목포해경 122구조대는 ‘최초 수중수색 시간’을 조작한 전력이 있다(제1091호 특집 ‘최초 수색 11시24분? 조작된 시간’ 참조). 정부는 참사 직후 “(오전) 11시24분 목포해경 122구조대가 첫 수중 수색했지만 거센 물살 탓에 선체 진입에 실패했다”고 발표했다. 청와대와 국회에도 그렇게 보고했다. 그러나 거짓말이었다. 앞서 밝힌 대로 목포해경 122구조대는 513함에 승선하지 않고 차량→어선→경비정→구명보트로 옮겨 타는 바람에 출동한 지 3시간10분이 지난 12시15분께 사고 현장에 도착했고, 오후 1시께야 세월호 수색을 처음 시도했다.

(왼쪽부터) 박종대씨의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해경의 답변서. 박재동 화백이 그린 고 박수현군 모습. 박종대씨가 세월호 관련 기록을 검토하며 작성한 메모. 한겨레 자료

(왼쪽부터) 박종대씨의 정보공개청구에 대한 해경의 답변서. 박재동 화백이 그린 고 박수현군 모습. 박종대씨가 세월호 관련 기록을 검토하며 작성한 메모. 한겨레 자료

감사원도 놓친 ‘거짓말’ 아빠가 찾았나?

그런데 서해해경청 상황보고서가 “11:24 목포 122구조대 4명 여객선 투입”이라고 잘못 적었고, 이를 토대로 4월17일 언론에 ‘11시24분 첫 수중 수색’이라는 발표가 나갔다. 그 오류를 덮기 위해 목포해경 122구조대는 “현장 도착 시각은 11시15분에서 20분경”이라고 거짓말한 것이다. 작은 거짓말을 감추기 위해 큰 거짓말을 이어간 셈이다. 나중에 감사원이 ‘왜 거짓 보고를 했느냐’고 추궁하자 해경은 ‘침몰할 때 (122구조대가) 창문을 깨고 승객을 구조해야 했다는 비판이 들끓고 있어서’라고 털어놨다.

‘같은 이유로 9시22분 이후에 늑장 출동했다는 사실을 감추기 위해 122구조대가 9시5분께 출동했다고 거짓말했던 것은 아닐까. 감사원도 놓친 그 거짓말을 아버지의 집요함으로 찾아낸 것은 아닐까.’ 나 역시 의문이 이어졌다. 지난 4월2일 아버지에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아버님 말씀을 들으니 (세월호) 기록을 다시 봐야겠다 싶네요.”

참고 문헌: , 진실의 힘, 2016정은주 기자 eju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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