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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후가 시즌 막판에 빠진다…병역 혜택 이미 받았는데 왜?

‘대표팀 발탁=금메달=병역 혜택=FA 대박’ 공식 그대로 따른 항저우 아시안게임 원정대
등록 2023-06-16 06:12 수정 2023-06-20 14:15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 연합뉴스

키움 히어로즈 이정후. 연합뉴스

2018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때 야구 대표팀은 금메달을 땄다. 하지만 고개를 한껏 숙였다. 입대를 코앞에 둔 일부 선수의 특혜성 발탁을 두고 거센 후폭풍이 일었고, 선동열 대표팀 감독은 국회 국정감사에까지 나가야 했다.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아시안게임 대표팀 선정은 그만큼 예민한 문제다. 한국·일본·대만 정도가 메달 색을 놓고 다투는 와중에 일본은 독립리그 혹은 사회인야구 선수가 나오고, 대만 또한 1.5군급 정도로만 출전한다. 한국의 경우, 2018년 대회까지 프로 최정상의 선수들이 아시안게임에 나갔으니 ‘대표팀 발탁=금메달=병역 혜택=자유계약(FA) 대박’ 공식이 자연스럽게 형성됐다. 프로선수의 대회 참가가 허용된 1998년 방콕 대회 이후 2006년 도하 대회(동메달) 때를 제외하고 전부 아시안게임 우승을 차지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코로나19 탓에 1년 늦게 2023년 9월 열리는 ‘2022 중국 항저우아시안게임’ 때는 어떨까.

병역 혜택이 필요한 팀 주축 선수만 발탁

이번 야구 대표팀은 평균연령이 23.24살에 불과하다. 방콕아시안게임(22.33살) 이후 가장 어리다. 한국야구위원회(KBO) 전력강화위원회가 대표팀 세대교체라는 뜻을 품고 만 25살 이하 또는 입단 4년차 이하 선수들로 대표팀 21명을 꾸렸기 때문이다. 나머지 3명은 와일드카드로 만 29살 이하 선수를 뽑았는데 박세웅(롯데 자이언츠), 구창모(NC 다이노스), 최원준(KIA 타이거즈)이 그들이다. 프로 최정예 멤버로 꾸렸던 2023 세계야구클래식(WBC) 대표팀 평균연령은 29.17살이었다.

앞서 잠깐 언급했듯이 이번 대회 이전까지 아시안게임 대표팀 구성은 리그 최고 선수들을 일단 뽑고 남은 자리는 군 미필자 위주로 채우는 식이었다. 과거 한 대표팀 사령탑은 사석에서 “대표팀 엔트리 중에서 18명 정도만 핵심 멤버라고 보면 된다. 나머지 4~6명은 사실 누구를 뽑아도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하지만 항저우 대표팀은 이전과 180도 달라진 방식으로 뽑혔다. 맨 먼저 병역 혜택이 꼭 필요한 팀 주축 선수 위주로 발탁하고 부족한 포지션을 해당 팀에 양해를 구해 메우는 식으로 꾸려졌다. 항저우 대표팀 선수 24명 중 무려 19명이 군 미필자인 이유다.

구단별로 살펴보면 에스에스지(SSG) 랜더스와 두산 베어스(각 1명)를 제외하고 8개 구단에서 2명씩 군 미필자가 포함됐다. 직전 대회인 자카르타-팔렘방 대회 때는 24명 중 9명만 군 미필자였다. 군 미필 선수가 방콕 대회(프로선수 대회 참여가 처음 허용돼 전원 군 미필자로 구성) 이후 최다인 이유는, 사상 최초로 아시안게임 기간에 KBO리그가 중단되지 않기 때문이다. KBO는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게임 잡음 이후 아시안게임에 한해서는 리그를 중단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올림픽이나 WBC 때는 예전처럼 리그를 중단한다.)

구창모·박세웅 군 미필임에도 다년 계약

항저우아시안게임 개최 시기(9월23일~10월8일)를 고려하면 한창 막판 순위 다툼부터 포스트시즌 시작 때까지 대표팀 선수들이 빠져 있게 된다. 포수 엔트리에 김형준(NC), 김동헌(키움 히어로즈) 등 낯선 이름이 있는 까닭도 리그 진행 와중에 팀 주전 포수들을 차출할 수 없어서다. 대표팀 주전 포수로 활약할 김형준은 현재 잔부상에 시달리고 있고, 키움 백업 포수인 김동헌은 2023년 고졸 새내기 선수다. 투수진에 선발 자원만 많은 것도 구단 처지에서 보면 불펜 투수보다는 선발 투수의 병역 혜택이 더 간절하기 때문이다. 이 중 구창모와 박세웅은 군 미필 신분에도 2022년 말 소속팀과 다년계약을 했다. 박세웅의 경우 이번에 금메달을 따지 못하면 입대해야 한다.

최원준, 김지찬(삼성 라이온즈), 강백호(kt 위즈) 등 내외야 수비가 모두 가능한 선수들을 뽑은 것도 비슷한 이유에서다. 군 문제를 해결한 붙박이 야수를 발탁하기 힘들었다. 도쿄올림픽 때 동메달 이상의 성적을 냈다면 박세웅, 원태인(삼성), 강백호, 이의리(KIA) 등 팀 핵심 선수들은 이번 대표팀에서 빠졌을 수도 있다.

아시안게임 출전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해 구단별로 최대 3명까지만 뽑았으나 충격파는 구단마다 다를 것으로 보인다. 롯데의 경우 토종 선발 원투펀치(박세웅·나균안)가 빠지고, 키움은 타선의 핵심 두 명(이정후·김혜성) 없이 리그 막판 경기를 치러야 한다. 2년 연속 우승을 노리는 SSG 또한 주전 유격수(박성한)와 중견수(최지훈)가 이탈하고, 엘지(LG) 트윈스(고우석·정우영)는 뒷문이 헐거워진다. 리그 중단 없는 대표팀 구성이 몰고 올 파장은 누구도 예측할 수 없다.

경남 마산용마고 3학년 투수인 장현석이 대표팀에 뽑힌 것도 2018년 사태와 무관치 않다. 2002년 부산 대회 때부터 아마추어선수 1명이 늘 아시안게임 대표팀 명단에 포함됐는데 2018년에만 단 한 명도 뽑지 않았다. 프로선수 병역 혜택을 위해 아마추어 쿼터를 없앴다는 비난이 따라올 수밖에 없었다. 다만 2002년 인하대 정재복, 2006년 연세대 정민혁, 2010년 중앙대 김명성, 2014년 동의대 홍성무처럼 대학 선수가 대표팀에 승선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 처음으로 고교 선수가 아시안게임 티켓을 받았다. 속구 평균시속 155㎞ 안팎의 공을 뿌리는 장현석은 현재 메이저리그 진출도 고려 중이라서 엔트리 발표 이전부터 승선 여부가 관심이었다. 2024년 신인드래프트는 아시안게임 이전에 열리는데, 만약 장현석이 미국행을 택해 드래프트를 신청하지 않을 경우 예기치 않은 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

아마추어선수냐, 국내리그 흥행이냐

아시안게임 야구 대표팀을 다른 말로 표현하면 ‘금메달 원정대’라 할 수 있다. 리그 중단 없이 구성된 항저우 대표팀은 구성 면에서 그 목적이 더욱 뚜렷하게 드러난다. ‘병역특례’다. 혹자는 불필요한 논란을 줄이기 위해 아마추어선수로만 대표팀을 구성하자고도 하지만 국제대회 성적은 국내리그 흥행과도 무관치 않아서 결단을 내리기 쉽지 않다. 더군다나 어린 선수들은 올림픽, WBC 등 더 큰 대회를 준비하기 위한 경험이 필요하다. 항저우 금메달 원정대는 과연 뜻하는 바를 이룰 수 있을까. 벌써 후폭풍이 염려되는 것은 왜인지 모르겠다.

덧붙이기 이번에 뽑히지 못한 프로 1~2년차 선수들은 실망할 필요가 없다. 다음 아시안게임은 4년이 아닌 3년 뒤인 2026년에 열린다. 2026년 5월까지 실력을 입증하면 된다. 다만 다른 대회와 달리 야구 금메달이 조금 어려울 수도 있다. 야구를 국기로 아는 일본(아이치현 나고야시)에서 열리기 때문이다.

김양희 <한겨레> 문화부 스포츠팀장·<야구가 뭐라고> 저자

*김양희의 인생 뭐, 야구: 오랫동안 야구를 취재하며 야구인생을 살아온 김양희 기자가 야구에서 인생을 읽는 칼럼입니다. 4주마다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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