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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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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마-타이 국경에 흐르는 ‘불편한 평화’

정문태 전선기자가 다섯 달 동안 취재한 타이-버마 국경…

전국휴전협정 서명했지만 북부 버마 여전히 전쟁 중
등록 2018-10-06 09:41 수정 2020-05-02 19:29
버마 샨주남부군 본부 로이 따이렝의 아이들. 버마 정치는 1500m 산악을 넘나들며 학교를 다니는 이곳 아이들의 미래를 배신했다.

버마 샨주남부군 본부 로이 따이렝의 아이들. 버마 정치는 1500m 산악을 넘나들며 학교를 다니는 이곳 아이들의 미래를 배신했다.

“지구 표면적의 백분의 구십구가 이 공포의 초록색이리라… 나는 처음 여기 표착하였을 때 이 선선한 초록빛에 놀랐고 사랑하였다. 그러다 닷새가 못 되어서 이 일망무제의 초록빛은 조물주의 몰취미와 신경의 조잡성으로 말미암은 무미건조한 지구의 여백인 것을 발견하고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쩔 작정으로 저렇게 퍼러냐….”

이상의 소설 가운데 한 토막이 오늘도 어김없이 따라붙어 남몰래 히죽거린다. 30년 가까이 수도 없이 달린 이 국경길에만 오르면 늘 그랬듯이.

폭우인가 싶으면 어느덧 땡볕이 쏟아지는 아열대의 장마도 이제 끝물이다. 타이-버마 국경을 가르는 모에이강과 살윈강은 막바지 거센 물살을 숨 가쁘게 흘려대고, 다가오는 일곱 달짜리 건기를 코앞에 둔 국경 산악 밀림은 한껏 물기를 빨아들여 짙은 청록빛을 뿜어댄다. 타이에서 가장 멋들어진 길로 꼽을 만한 이 두 강둑길을 따라 서너 시간 달리다보면 ‘아름다움의 권태’를 느낄 때가 있다. 요즘이 딱 그렇다. 버마 국경 너머에서 들려오던 총소리도 멈춘 지 오래다. 길목마다 버텨선 검문소 바리케이드는 길손을 붙들어 세우지만 정작 고개를 내미는 군인도 경찰도 없다. 뻣뻣해진 목을 감추며 몰래 버마 국경을 넘나들던 ‘개구멍’ 앞에서도 그저 노그라질 뿐이다. 버마 쪽 소수민족해방군 초소도 마찬가지다. 총부리를 땅바닥으로 길게 내린 전사들이 슬리퍼를 끌며 어슬렁거린다. ‘어쩔 작정으로 이렇게 나른하냐!’ 단조로운 청록지대, 긴장감마저 빠진 아름다움은 국경의 몫이 아니다. 국경을 전선으로 경험해온 내 뇌가 읽는 미학이 그렇다는 말이다. 지난 5월부터 9월까지 다섯 달 동안 쫓아다닌 2107㎞ 타이-버마 국경 풍경이다.

타이 지도를 펼쳐놓고 보면 왼쪽으로 버마와 국경을 맞댄 한가운데쯤 매솟이라는 도시가 하나 있다. 버마 소수민족해방 조직들과 민주혁명 세력이 바깥세상으로 통하는 아지트로 삼아온 여기서 모에이강을 끼고 북으로 130km쯤 달리면 까렌민족연합(KNU)과 그 군사조직인 까렌민족해방군(KNLA) 본부인 제7여단으로 통하는 개구멍이 나온다. ‘개’라고 마구 넘어다닐 수는 없고, 미리 까렌군과 선을 달고 재주껏 타이 국경수비대를 따돌린 뒤 까렌군이 보내온 배를 타고 강을 건넌다. 그러고 보니 나는 ‘개’였다. 1992년, 소수민족해방투쟁사에 최대 격전지로 꼽는 뜨위빠위쪼(잠자는 개) 고지를 취재하던 나를 포함한 외신기자 셋을 향해 버마 정부군이 “짖는 개 세 마리를 때려잡겠다”고 라디오로 외친 적이 있었으니.

“죽기 전에 평화란 놈을 볼 수나 있을는지!”

지난 6월19일, 까렌민족해방군 레이와 본부에서 열린 까렌민족연합 비상총회에 초대받아 개구멍을 통해 국경을 넘었다. “죽기 전에 평화란 놈을 볼 수나 있을는지!” 까렌민족해방군 사령관 조니 장군은 만나자마자 넋두리부터 늘어놓았다. 올해 우리 나이로 일흔, 전선 나이 쉰넷으로 나날이 경신해나가는 세계 최장기 게릴라 기록이 머잖아 멈출 일은 없다는 뜻이다. “정치는 정치고, 전선은 전선이다. 휴전협정과 상관없이 나는 이미 발포명령 내려놓았다. 버마 정부군이 통보 없이 단 한 치라도 우리 영토를 침범하면 자동 발포다.” 까렌민족연합 7개 해방구에서 온 중앙상임위원 51명이 정부군에 맞설 정치회담을 의제 삼아 난상토론을 벌이는 회의장에서도 조니 장군은 내내 무덤덤했다. 정치와 전선이 엇박자를 내는 낌새였다. 실제 2012년 1월12일 휴전협정을 맺은 뒤에도 까렌민족해방군과 버마 정부군은 심심찮게 충돌했고, 지난 8월29일에도 정부군 제44대대와 까렌민족해방군 제5여단 소속 제102대대가 세 차레나 총격전을 벌였다.

이쯤에서 복잡한 버마 정치판을 잠깐 짚고 넘어가야 국경 여행이 좀 편해질 듯싶다. 50년 웃도는 세계 최장기 독재 기록을 세운 버마 군부는 막다른 벼랑에 몰린 정치, 경제, 외교, 사회적 위기를 벗어나고자 2011년 민간복으로 갈아입힌 테인세인을 대통령으로 내세웠다. 테인세인 준군사정부의 ‘변화’ 바람이 버마 안팎에서 짐짓 인정받으면서 내전 종식을 향한 휴전협정도 탄력을 받았다. 버마 정부군은 그해 11월부터 2013년 사이에 샨주남부군(SSA-S), 까렌민족해방군을 비롯한 15개 소수민족해방군에다 민주혁명 세력인 버마학생민주전선(ABSDF)과 개별 휴전협정을 맺었다. 이어 2015년 버마 정부와 맺은 개별 휴전협정을 공동휴전으로 명문화한 상위 협정인 전국휴전협정(NCA)에 까렌민족연합, 샨주복구회의(RCSS), 빠오민족해방기구(PNLA), 아라깐해방당(ALP), 친민족전선(CNF), 민주까렌자선군-5(DKBA-5), 까렌민족연합/까렌민족해방군 평화회의(KNU/KNLA-PC), 버마학생민주전선이 서명했고, 올해 2월 신몬주당(NMSP)과 라후민주연합(LDU)이 뒤늦게 서명했다.

소수민족 문제와 버마의 미래

그 뒤 2016년 아웅산수찌가 이끄는 민족민주동맹(NLD)은 소수민족 사회의 폭발적 지지를 업고 정부를 세웠다. 버마는 5400만 인구 가운데 정부가 인정하는 소수민족만도 135개에 이르는 다민족 국가다. 버마 정부가 부실한 조사로 얻은 수치에다 부풀렸다는 혐의까지 받아온 공식 수치로야 버마족이 68%로 다수지만, 소수민족 진영에서는 인구조사가 불가능한 국경 산악지역까지 따지면 소수민족이 적어도 반은 넘는다고 주장해왔다. 소수민족 문제를 풀지 않고는 버마의 미래가 없다는 뜻이다. 근데, 버마판 ‘정치시계’란 놈은 딱 여기서 멈췄다. 1948년 독립 뒤부터 소수민족해방 투쟁으로 불거진 내전 종식을 향한 희망도, 1962년부터 군인정치에 짓밟혀온 민주주의 복구를 향한 열망도 모조리 숙졌다.

중국 국경 쪽 북부 버마는 전쟁 중

9월11일 치엥마이, “정부군이 조건 없는 회담 원칙을 깬 탓이지. 군부가 ‘연방 탈퇴 불가’ ‘개별 연방군(소수민족 군대) 불가’를 정치회담 전제 조건으로 고집하며 판을 접은 꼴이야. 해서 돌파구를 찾자는 회의지.” 전국휴전협정 서명 그룹 지도자회의에 참석한 까렌민족연합 부의장 끄웨투윈 말이다. 지난 5월27일 치엥마이에서 전국휴전협정 제20차 평화진행조정팀(PPST) 회의가 끝난 뒤 그이가 했던 말 그대로다. 그사이 전국휴전협정에 서명한 소수민족해방군 대표들은 여러 차례 치엥마이에 둘러앉았고 랭군과 네이삐도를 숱하게 드나들었지만 달라진 건 없다. “군부도 군부지만, 아웅산수찌 정부가 전혀 작동하지 않는 탓이 더 크다. 아웅산수찌가 중재 능력이 없는데다 정치회담 계획도 실행 의지도 못 보였다.” 신몬주당 부의장 나이홍사 말이다. 그렇게 아웅산수찌가 이끄는 허수아비 민간정부는 실권을 쥔 군부 눈치만 보며 2년 세월이 흘렸고, 정치회담은 한 발짝도 못 나가는 형편이다. 본디 테인세인 정부가 내걸었던 평화 진행 3단계 로드맵에 따르면 휴전협정에 이어 평화회담(정치회담)을 거쳐 버마민주연방 창설이 최종 목적지다. 휴전협정 뒤 예닐곱 해가 지났지만 종착지는 멀기만 하다.

게다가 전국휴전협정이라고 마치 다 끝난 것처럼 거창한 이름을 붙였지만 중국 국경 쪽 북부 버마는 여전히 전쟁 중이다. ‘따앙민족해방군 9월1일 전투상보: 0430~0530시. 버마 정부군 제88사단 소속 제77보병대대, 만사 마을 공격. 따앙민족해방군 반격’. 뉴스에서는 볼 수 없지만, 이런 전투상보가 요즘도 내 이메일로 하루가 멀다고 날아든다. 소수민족해방군 가운데 최대 화력을 지닌 까친독립군(KIA)이 이끄는 북부동맹(Northern Alliance) 소속 따앙민족해방군(TNLA), 아라깐군(AA), 미얀마민족민주동맹군(MNDAA) 지역은 오늘도 버마 정부군 공격을 받고 있다. 중국 국경 쪽에는 전쟁을 피해온 난민들이 들끓는다. 아웅산수찌는 2년 넘도록 이어지는 정부군의 공격을 놓고 입도 뻥긋한 적 없다. 버마 안팎에서 이제 아무도 아웅산수찌를 입에 올리지 않는 까닭이다.

이제 휴전협정 그룹 가운데 최대 화력을 지닌 샨주복구회의와 그 무장조직인 샨주남부군 본부 로이 따이렝으로 간다. 치엥마이에서 소수민족 지도자 회의를 마친 샨주남부군 사령관 욧석 장군을 동행 취재했다. 국경지대 곳곳에 깔린 타이 검문소는 모조리 무사통과다. 검문은커녕 타이 국경수비대한테 거수경례까지 받고 보니 그동안 버마 정부군이 툭하면 타박했던 타이 정부군과 샨주남부군의 밀월관계를 실감하고도 남는다. 실제로 타이 정부군은 국경을 맞댄 샨주남부군 뒤를 받치며 버마 정부군과 사이에 완충지대를 꾸려왔다.

“어제는 오늘이고, 오늘은 내일이다”
‘너희의 평화를 믿지 못하겠다.’ 휴전으로 전선은 잦아들었지만, 국경엔 정체불명의 불편한 평화가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버마-타이 국경 지역에서 소수민족해방군을 이끌고 있는 욧석 샨주남부군 사령관, 조니 까렌민족해방군 사령관, 비투 까레니군 사령관(위쪽부터).

‘너희의 평화를 믿지 못하겠다.’ 휴전으로 전선은 잦아들었지만, 국경엔 정체불명의 불편한 평화가 이어지고 있다. 여전히 버마-타이 국경 지역에서 소수민족해방군을 이끌고 있는 욧석 샨주남부군 사령관, 조니 까렌민족해방군 사령관, 비투 까레니군 사령관(위쪽부터).

타이 최북단 국경을 넘어 끝없이 펼쳐지는 거대한 샨주 산악 한 꼭대기, 해발 1400m 로이 따이렝에 닿자마자 지휘관 과정 군사훈련 개막식에 맞춰 신사복을 벗고 군복으로 갈아입은 욧석 눈에서는 냉기가 돌았다. “정부군이 평화로 갈 마음이 없다면 우리도 달리 길이 없다.” 그이는 개막식에서 까렌민족해방군과 까레니군(KA) 교환훈련병들을 일으켜 세워 소개까지 했다. 휴전상태라 까렌과 까레니 쪽 지도부는 상호 교환훈련 사실이 드러나는 걸 달갑잖게 여겼지만 욧석은 “휴전이든 말든 군인이 군사훈련 하는 건 상식이다. 정부군도 다 하는데 뭐가 문젠가”라며 대수롭잖게 여겼다. “우리 샨주 평화를 지킬 수 있는 건 군사력뿐이다. 역사가 그렇게 증명해왔다. 항쟁이 없었다면 우린 버마 사람들 노예로 살았을 게 뻔하다.”

휴전협정과 상관없이 로이 따이렝 강당에선 3개월짜리 지휘관 과정 훈련병 250명이 눈알을 부라리고, 산악 연병장엔 새내기 250명의 6개월짜리 신병 훈련이 한창이다. 샨주남부군 1만 병력은 그렇게 길러졌고, 지금도 전쟁을 준비하고 있다. 무장 신봉자인 욧석이 전에 없이 평화를 외치고 있지만 칼자루를 쥔 정부가 휴전을 정치로 풀어가지 못하는 까닭이다.

로이 따이렝에서 다시 타이 국경을 넘어와 독불장군 까레니를 찾아간다. 타이 최북서 도시 매홍손에서 서쪽 버마의 까레니주 국경 넘어 냐무에 까레니민족진보당(KNPP)과 그 무장조직 까레니군(KA) 본부가 있다. 까레니군은 2012년 정부군과 휴전협정을 맺었지만 여태 전국휴전협정에는 서명하지 않은 채 버텨왔다. 이 까레니의 고집이 전국휴전협정이란 간판의 상징성에 찬물을 끼얹은 셈이다. 하여 전국휴전협정에 서명한 소수민족해방군들 사이에도 골칫거리다.

“내가 뭐랬나. 전국휴전협정 서명한들 정치회담 못하잖아. 우리가 미리 꿰뚫어본 거지.” 올해 예순셋, 타고난 무장 체질에다 전선에서 잔뼈가 굵은 까레니군 사령관 비투의 한결같은 거친 말투에 정감이 묻어난다. “까레니가 내건 ‘개헌 입안과 공식화’니 ‘정부와 소수민족해방군 합동군사감시위원회(JMC) 설치’ 같은 9개항 전제 조건이 서명 그룹들 의제와 같은데 왜 안 들어가고 버티는지?” “어떻게 믿으라고? 그동안 휴전 한두 번 한 것도 아니고, 때마다 정부군이 깼잖아. 1995년 휴전 깨질 때도 자네가 취재했으니 잘 알잖아.” “그래도 이번에는 전국휴전협정이니 서명하고 힘 보태는 게 좋을 듯?” “그걸 누가 모르나. 서명하기 전에 확실하게 못 박자는 거지.” “혼자 떨어져서 할 수 있는 일도 없을 텐데?” “정부군이 싸우자면 싸우는 거지.” “까레니 무장도 전만 못하고. 이제 기껏 병력 500은 되려나?” “쓸데없는 소리. 게릴라전은 50명만 데리고도 돼.” 비투는 믿을 수 없는 버마 정치를 “어제는 오늘이고, 오늘은 내일이다”라는 한마디로 압축했다.

소수민족 가운데도 또 소수인 까레니의 독자 노선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부와 덩치 큰 소수민족 틈에서 생긴 피해의식이거나 생존본능 같은 게 아닌가 싶다. 까레니를 함께 데리고 갈 수 있는 유일한 길은 정치회담뿐이다. 아웅산수찌 정부가 중재에 나서 군부가 막은 정치회담 물꼬를 트면 저절로 해결될 문제다.

불길한 예감만 커져간다

2018년, 형편은 진영마다 서로 다르지만 버마-타이 국경을 낀 소수민족 사회는 정치회담에 운명을 건 모습들이다. 국경 소수민족해방 세력은 고장 난 버마의 정치시계를 고치겠다고 온갖 애를 쓰지만, 정작 네이삐도는 손을 놓은 지 오래다. 휴전으로 전선은 잦아들었지만 국경엔 정체불명 불편한 평화가 이어지고 있다. 버마의 내전 종식도 평화 정착도 헛바람으로 그칠 것 같은 불길한 예감만 커져간다.

2011년 휴전협상 밀담에서부터 휴전협정 서명을 거쳐 정치회담 앞에서 발목이 잡힌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는 버마 현대사가 돌아가는 현장을 내 눈으로 직접 바라보는 엄청난 행운을 누렸다. 그러나 버마 앞날을 생각하면 이상의 가운데 한 구절만 자꾸 떠오를 뿐이다. “나는 그 물가에 앉는다. 앉아서 자 — 무슨 제목으로 나는 사색해야 할 것인가 생각해본다. 그러나 물론 아무런 제목도 떠오르지는 않는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생각 말기로 하자….”

로이 따이렝·레이와·냐무·다운타만(버마)=
글·사진 정문태 전선기자 beyondheadline1@gmail.com
*인명·지명 등 현지어는 필자의 요청에 따라 현지인 발음에 충실하게 표기했습니다. 문장과 표현 역시 필자의 요청에 따라 최소한의 교열만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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