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꾼’들의 미사일 교환, 다음에 주고받을 것은

최악의 위기 넘긴 미국과 이란…

트럼프는 대이란 제재 실현하고 새 핵협상을 할 수 있을까
등록 2020-01-13 01:59 수정 2020-05-02 19:29
1월8일(현지시각) 이란이 이라크 아인 알아사드의 미군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모습을 이란 관영통신이 공개했다. AFP 연합뉴스

1월8일(현지시각) 이란이 이라크 아인 알아사드의 미군기지에 미사일을 발사하는 모습을 이란 관영통신이 공개했다. AFP 연합뉴스

미국과 이란이 최악의 위기에서 최선의 시나리오로 위기를 일단 봉합하고 ‘상황 관리 모드’에 돌입했다. 지난 1월3일(이하 현지시각) 미군이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가셈 솔레이마니 사령관을 공습 살해한 뒤 전운이 감돌았다. 다행히 1월7일 이란이 “미군 사상자 없는”(미국 주장) 이라크 내 미군기지 공습 선에서 보복을 마무리하고, 1월8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대국민 연설에서 무력 대응 대신 “경제제재”를 선택함으로써 서로 명분을 챙기고 전면전으로 치닫는 파국은 피했다.

공격 1시간 전 구두로 통보

트럼프 대통령은 1월8일 대국민 연설에서 “어젯밤 이란 정권의 미사일 공격에서 어떠한 미국인도 다치지 않았다. 사상자가 없고 우리 모든 병사가 안전하며, 우리 군기지에 최소한의 피해만 입었다”며 “이란이 물러서는 걸로 보이는데, 이는 모든 당사자와 세계를 위해 좋은 일”이라고 밝혔다.

연초 상원 탄핵 심판과 연말 대선을 앞두고 ‘획기적인 돌파구’가 필요했던 트럼프는 국내적으로 상당한 명분과 실리를 챙겼다. 솔레이마니 공습 살해 이후 트럼프 탄핵은 정치권과 언론의 주요 관심 사안 밖으로 밀려났고, 트럼프 지지자들에게는 ‘선을 넘으면(미국인을 공격하면) 누구든지 응징한다’는 강력한 이미지를 심어줬다.

인남식 국립외교원 교수는 1월9일 전화 통화에서 “솔레이마니는 레바논 헤즈볼라의 총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스라엘이 가장 싫어하는 게 헤즈볼라”라며 “(솔레이마니 공습 살해는) ‘거칠고 강한 수’였으나, 펀드(정치후원금)가 많은 미국의 보수적 유대계 및 이스라엘과 형제라고 생각하는 미 유권자를 우군으로 얻었다”고 설명했다. 비록 국제적으로는 이란과 이라크 내에서 높아지던 반이란 정부 정서를 일거에 반미로 되돌려놓는 ‘역풍’이 불었지만, 트럼프한테 더욱 절실한 국내정치적 측면에서는 손해 본 것이 없다는 설명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예방조처와 병력 분산, 그리고 조기 경보가 잘 작동해 미국인과 이라크인 아무도 목숨을 잃지 않았다”고 자화자찬했다. 반면 외신과 전문가들은 사태를 악화할 의도가 없었던 이란이 미군의 피해를 최소화하며 ‘확전 자제’ 메시지를 보냈다고 평가한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1월8일 새벽 1시20분께 이라크 내 아인 알아사드 공군기지와 에르빌 기지 등 미군이 주둔한 군사기지 두 곳에 탄도미사일 십수 발을 발사했다. 이란 국영방송은 “미군 80명이 사망했다”고 보도했지만, 전문가들은 “사상자가 없다”는 미국 쪽 주장에 힘을 실었다.

이란 정부는 솔레이마니 장례식에 반미 정서로 격앙된 100만여 명의 인파가 운집하면서, 납득할 만한 수준의 ‘복수’가 불가피한 상황으로 내몰렸다. 이란은 테러조직이 아닌 외국 정부로는 매우 이례적으로 자국 본토에서 미군 주둔 기지를 향해 탄도미사일을 발사했다. 하지만 이란이 겨냥한 기지가 미군 밀집지역이 아닌데다 공격 1시간 전 이라크 총리에게 공격 계획을 구두로 통보해 미군에 ‘대비’할 시간을 줬다. 특히 모하마드 자바드 자리프 이란 외무장관은 미사일 공격 이후 트위터를 통해 “우리는 긴장 고조나 전쟁을 원하지 않는다”고 천명했다. 대내외적으로 위협적인 ‘미국에 대한 복수’를 감행하면서도, 트럼프에게는 ‘승리’를 선언하고 추가 공격을 자제할 수 있는 명분을 준 신중한 출구전략이었던 셈이다.

이란의 공격으로 인한 아인 알아사드 기지의 피해 상황을 보여주는 위성사진. AP 연합뉴스

이란의 공격으로 인한 아인 알아사드 기지의 피해 상황을 보여주는 위성사진. AP 연합뉴스

“추가 응징” 큰소리쳤지만

향후 레바논 헤즈볼라 등 중동 내 친이란 세력들이 솔레이마니 복수를 내걸고 국지적인 대미 항전에 나설 가능성은 여전히 불씨로 남아 있다. 실제로 1월8일 미국 등 각국 공관이 밀집한 이라크 바그다드 그린존에 다연장로켓인 카추샤 로켓 2발이 떨어졌다. 1월9일 현재 공격 주체가 확인되지 않은 가운데, 미 (CNN) 방송은 미국 관료의 말을 인용해 “현재 미국은 이곳의 이란 대리 세력이 여전히 위협적이라 평가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미국의 ‘임계점’이랄 수 있는 미국인 인명 피해가 발생하지 않는 한 미국이 친이란 세력의 공격을 빌미로 이란과 전쟁을 벌일 가능성은 낮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미국은 이란 정권에 추가 응징적 경제제재를 즉시 부과할 것”이라며 “이런 강력한 제재는 이란이 행동을 바꿀 때까지 유지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트럼프와 백악관은 물론 미 재무부도 추가 경제제재가 무엇인지 명확하게 언급하지 않았다.

이란과 주요 6개국(유엔 안전보장이사회 5개 상임이사국+독일)은 버락 오바마 미 행정부 시절인 2013년 서명하고 2015년 7월 시행한 ‘이란 핵합의’(JCPOA·포괄적공동행동계획)를 통해 이란이 보유할 수 있는 우라늄 농축용 원심분리기의 수량과 성능을 제한했다. ‘오바마 흔적 지우기’에 혈안이 된 트럼프 행정부는 국제사회의 강력한 반대에도 일방적으로 핵합의를 파기했다. 그 뒤로 이란산 원유 수입과 금융 거래 재개를 이행하지 않았고, 6월에는 이란 최고지도자 하메네이 등 주요 지도자들을 경제제재 명단에 올렸다.

이란 경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원유 수출과 금융 거래가 이미 막혀 있고 이란 경제의 85%가 제재하에 놓인 상황에서 트럼프가 말한 “추가 경제제재”가 얼마나 유의미할지 전문가와 미 언론마저 의구심을 나타낸다. 은 이날 “미국이 2018년 5월 이란 핵협정을 탈퇴하면서, 트럼프 행정부는 테헤란에 대해 ‘최대 압박’의 일환으로 경제제재를 늘려왔다”며 이란을 압박할 추가적인 경제제재 수단이 없음을 시사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연설에서 JCPOA를 대체할 이란과의 새로운 협상을 추진할 뜻을 내비치며 “이란에 위대한 미래가 펼쳐질 것”이라고 회유했다. 미국이 이란 핵협정을 파기할 때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밝힌 12가지 재협상 조건을 통해 트럼프의 구상을 짐작해볼 수 있다.

이란에 제시한 12가지 조건

당시 미국이 이란에 제시한 조건에는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이란 핵프로그램 전면 사찰 및 영구적·검증가능한 폐기, 우라늄 농축, 플루토늄 재처리, 중수로 중단, 탄도미사일 개발·시험 중단, 미국인·미국의 우방 국적자 전원 석방, 헤즈볼라·하마스·탈레반·알카에다·예멘 반군 등 중동 테러조직 지원 중단, 시리아 완전 철수, 이스라엘을 포함해 중동 내 미국 우방 협박 중단 등이 담겼다. 하산 로하니 이란 대통령은 이에 대해 “조금도 받아들일 수 없다”며 강하게 반발한 바 있다.

인남식 교수는 “이란이 12가지를 다 수용하기는 힘들겠지만 역내 평화를 위해 일정 부분 조건을 수용한다면 이란 국민에게도 큰 부담을 줄 것 같지는 않다”고 봤다. “주권국인 이란이 자국 핵프로그램 전면 사찰과 탄도미사일 개발 중단 등은 받아들이기 쉽지 않겠지만, 절박한 경제 위기를 고려할 때 미국이 예민하게 생각하는 테러조직 지원 중단 등은 선언적으로라도 고려해볼 수 있다”는 설명이다.

전정윤 기자 ggum@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