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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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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경만보] 공립이 지구를 헤맬 때 명문은 우주로 떠난다

대치동, 파크애비뉴 그리고 베이징 명문공립-국제학교-대안학교
국가와 학교는 달라도 목표는 똑같이 ‘불평등한 계급투쟁’
등록 2020-11-07 02:42 수정 2020-11-11 05:24
베이징 발도르프학교에선 시험보다 ‘인간답게’ 자라는 걸 우선으로 한다. 베이징 발도르프 학교 누리집 갈무리

베이징 발도르프학교에선 시험보다 ‘인간답게’ 자라는 걸 우선으로 한다. 베이징 발도르프 학교 누리집 갈무리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가는 순간, 부모들의 또 다른 전쟁이 시작된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나도 소규모 전투를 치렀다. 어느 날, 아이 학교 수학 선생이 문자메시지를 보냈다. 요지인즉 “전날 내준 숙제를 점검했는데, 당신 아들이 한 항목에서 하지도 않은 걸 ‘했다’고 체크했다. 어릴 때부터 거짓말하는 습관은 좋지 않으니 가정에서 엄중히 교육하기 바란다”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를 불러 자초지종을 물었다. 그건 고의가 아니라 단순한 ‘실수’였고 거짓말할 의도가 전혀 아니었다며 아이는 억울해했다. 수학 선생에게 아이의 항변 내용과 내 의견을 적은 긴 메시지를 보냈다. 그 뒤 전쟁이 시작됐다.

역사에 길이 남을 전투를 치른 뒤

수학 선생은 곧바로 답신을 보냈다. “모든 학부모는 자기 아이를 가장 잘 알고 이해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아이들과 학교에서 종일 시간을 보내는 선생이 학부모보다 더 잘 안다. 당신 아이가 절대 거짓말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건 착각이다. 아이들은 종종 사소한 거짓말을 한다.” 이후 얼마간 다소 감정적인 메시지가 오갔고, 다음날에도 전쟁은 계속됐다.

다음날에는 아이의 담임선생이 나를 호출했다. 교무실 문을 열자마자 분위기가 싸했다. 수학 선생이 맞은편에서 팔짱을 끼고 우리를 노려봤다. 담임선생은 우리가 자리에 앉자마자 대놓고 훈계부터 시작했다. “나는 당신들을 비판부터 해야겠다. 당신 아이는 어제 내준 국어 숙제를 다 하긴 했지만 한 페이지를 잘못했다. 도대체 가정에서 어떻게 하길래 아이가 숙제를 엉뚱하게 하는 걸 모르냐? 어제 수학 숙제만 해도….”

20대 중후반의 담임선생은 40대 중반인 나를 ‘어린애 야단치듯’ 호통쳤다. 내 얼굴에도 핏기가 사라지고 두 눈에선 레이저 광선이 나왔다. 그날 우리의 교무실 전투는 학교 역사에 길이 남을 ‘명전투’로 남았을 것이다. 이기고 진 사람은 아무도 없었으나, 서로 내상을 잔뜩 입은 채 화해 없는 휴전을 했다. 나는 결심했다. 이 망할 놈의 학교를 떠나 아이를 위한 교육 유토피아를 찾고야 말겠다고.

고심 끝에 전학할 학교를 두 곳으로 압축했다. 첫 번째 학교는 남편이 온갖 ‘관시’(關係·인맥)를 동원해서 찾아낸, 일반 학부모와 자녀는 면접 기회조차 얻기 힘들다는 이른바 ‘명문학교’였다. 인맥으로 왔기에 학부모 면접은 생략하고 바로 입학 전 학력평가시험을 치르는 특혜를 누렸다. 결과는 낙방이었다. 입학 담당 선생은 “우리 학교는 최소 두 학년 이상 선행 학습을 한다”며 우리 아이는 모든 과목에서 60점 이하를 받아서 도저히 학교에 받을 수 없다고 했다. 남편은 그냥 ‘발로 시험을 봐도’ 들어갈 수 있었던 명문학교 입학 기회가 날아갔다며 “진즉에 애를 학원에 보내서 공부 좀 시키지 그랬냐”며 나를 원망했다.

두 번째 학교는, 내가 수소문해서 찾았다. ‘발로 시험을 볼 필요도 없고’ 아예 시험 자체가 없는 학교다. 문제는 베이징 교외에 있어 대중교통으로 다니기 힘든 곳이라 반드시 이사해야 하는 것. 그 학교는 1919년 독일 슈투트가르트에 설립된 대안학교의 대명사, 발도르프학교(华德福学校)다. 이곳은 학과 공부보다 아이들의 신체활동과 음악·미술 등 정서 발달에 좋은 교육을 더 중시해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인격체로 길러내는 것을 목표로 한다. 베이징 발도르프학교는 2007년 유치원부, 2010년 초등학교와 중학교 과정이 개설됐고, 2019년 고등학교 과정이 생겼다.

강남 8학군과 중국 쉐취팡

초등학교부터 중학교까지 9년은 국가 의무교육제로, 거주지에서 가까운 학교로 배정받는다. 고등학교부터는 입시로 철저하게 학교 서열이 나뉜다. 일반 공립학교, 고급 사립학교와 국제학교, 발도르프 등 대안학교 계급.

먼저 일반 공립학교. 이 안에도 서열이 존재한다. 베이징 내 명문 공립학교들은 대부분 베이징대학과 칭화대학 등 유명 대학이 몰려 있는 하이뎬구에 집중됐다. 서울 대치동 학원가처럼 그 주변으로 고액 학원이 즐비해서 방과 후 5시 이후부터는 학생과 학부모로 불야성을 이룬다. 자녀를 하이뎬구에 있는 명문학교로 보내기 위해 베이징 학부모들은 유치원 때부터 그 근처로 이사하거나 그쪽 집을 산다. 중국에선 이를 ‘쉐취팡’(學區房)이라 하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서울 강남 8학군처럼 학군 좋은 지역의 주택을 뜻한다. 쉐취팡 가격은 집의 상태와 연식과는 상관없이 ‘부르는 게 값’이다. 이런 집을 사는 학부모들의 목표는 ‘칭베이’. 칭화대학과 베이징대학을 줄인 말로, 우리나라 명문대를 약칭해 ‘SKY’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두 번째 부류인, 고급 사립학교와 국제학교파 학부모들은 ‘칭베이족’ 학부모를 ‘촌스럽다’고 비웃으며 자신들만의 교육 왕국에서 자녀를 ‘글로벌 인재’로 키운다. 베이징 내 고급 사립 국제학교는 대부분 수도국제공항이 가까운 순이구에 몰려 있다. 그 일대에는 최고급 별장식 주택이 포진해 있다. 국제학교는 대부분 1년 학비와 부대비용이 인민폐로 30만위안(약 5천만원)이 넘는다. 외국 계열 국제학교는 중국 국적 아이의 입학을 허용하지 않지만, 이들 학교에 다니는 중국인 학생은 대부분 이중국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문제되지 않는다. 이곳 학생들의 목표는 국내 ‘칭베이’가 아니라 외국 명문대다. 그래서 이 부류의 학부모들은 “너희가 지구를 헤맬 때 우리는 우주로 떠난다”는 우스갯소리를 한다.

세 번째는, 발도르프 등으로 대표되는 대안학교다. 대안학교를 선택하는 학부모는 공통으로 제도교육에 실망과 염증을 느낀다. 이들의 목표는 칭베이나 외국 학교가 아니라 아이들을 ‘인간답게’ 키우는 것이다. 같은 생각을 가진 학부모들이 합심해서 직접 소규모 가정식 학교를 꾸려 자녀를 교육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에서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고 가르친들

베이징 발도르프학교가 있는 창핑구 신좡촌이라는 마을은 주로 딸기농장과 사과농장이 많은 교외 농촌이다. 하지만 마을을 자세히 둘러보면 베이징 내 다른 교외 농촌 풍경과 조금 다르다는 걸 발견할 수 있다. 농촌에 있을 법하지 않은 안경 쓴 ‘지식인’의 모습이 곳곳에서 목격되고, 유기농 빵집과 채식주의 식당도 눈에 띈다. 동네는 이미 발도르프학교 학부모들이 ‘장악한’ 상태였다. 원래 살던 촌민들은 자기 집을 그들에게 세주고 근처 다른 농가로 이사했다. 전국 각지에서 학교 소문을 듣고 찾아온 ‘의식 있는’ 학부모들이 세들어 살 집을 구하다보니 ‘똥값’이던 마을 주택 ‘연세’(年貰)가 폭등하고 그나마도 구하기 힘들어 이웃 마을까지 학부모 세입자로 꽉 차 있다.

결론부터 말하면, 둘째 아이는 발도르프학교도 가지 못했다. ‘여러’ 사정상 포기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살 집을 구하기 힘들다는 거였다. 집을 구해도 농가를 개조해서 살아야 하고, 학비를 감당할 수 없었다. 초등학교 학비만 1년에 무려 5만위안(약 850만원)이고, 중·고등학교는 9만위안(약 1500만원)이나 된다. 발도르프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학부모는 대부분 중국 내 소득 최상위 계층이거나 최소한 중상위층에 해당한다. 학력도 거의 석·박사 이상이고 명문대 출신이 많다. 일부 학부모는 직접 학교 선생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친다.

미국 인류학자 웬즈데이 마틴이 쓴 책 <파크애비뉴의 영장류>는 뉴욕의 최상류 부자들이 몰려 산다는 어퍼이스트사이드에서의 삶에 대한 ‘인류학적 관찰기’다. 저자가 아이 교육을 위해 그곳에 이사해 직접 보고 경험한 것을 기록했다. 책에는 미국 주류 상류층의 ‘기상천외한’ 삶의 방식이 담겼다. 또한 그들만의 ‘계급적인 교육’ 방식도 묘사했는데, 그곳 아이들은 태어나는 순간부터 ‘맞춤 교육’을 한다. 2살 때부터 각종 전문 과외 선생들을 배정했고, 3~4살 이후에는 명문 사립 유치원에 들어가기 위해 과외 선생을 고용하고 심지어 놀이 지도 선생까지 고용한다.

엄마들은 모두 에르메스 ‘버킨백’을 들고 끼리끼리 몰려다니며 사교육 정보를 교환하고, 자기 아이가 뒤처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한다. 이들의 인생 목표는 오로지 자녀가 명문대학에 들어가고 사회적 성공을 거두는 것이다. 그래야 자신들도 실패하지 않은 인생을 살았다고 자부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베이징의 세 부류 ‘영장류’도 이들과 여러모로 비슷하다. 특히 ‘계급교육’은 빼닮았다. 더 인간적이고 자유로운 교육을 선호하는 베이징 발도르프학교 학부모들도 별반 다르지 않다.

마을 입구에서 한 잔에 무려 50~60위안(약 1만원) 하는 고급 융드립 전문 카페를 운영하는 부부는, 종일 그 카페 단골인 동네 학부모들 이야기를 듣고 있노라면 ‘회의감’이 든다고 했다. 애초 학교 교육 이념과는 다르게, 학부모들이 행여라도 자기 아이들이 다른 학교 아이들에게 뒤처질까봐 “좀더 공부를 시켜달라”고 요구한다는 것이다. 일부 아이는 도중에 원래 ‘본질적인’ 발도르프 교육을 받기 위해 외국 발도르프학교로 유학을 가거나, 졸업하더라도 대부분은 외국 대학에 들어간다고 한다. 뉴욕의 어퍼이스트사이드 파크애비뉴에 사는 학부모들처럼 중국의, 그리고 베이징의 상류층도 그들만의 ‘교육 계급투쟁’을 하는 것이다. 그러니 학교에서 아무리 ‘인간은 모두 평등하다’고 가르쳐도, 그것을 ‘사실’로 받아들일 학생이 몇 명이나 될까. 사회주의국가 중국에서도 교육은 가장 불공평한 계급투쟁 영역이다.

우주보다 먼 교육 유토피아

둘째 아이는 결국 아무 데도 전학을 못 가고 그 학교에서 졸업했다. 또 같은 학교의 중학교로 진학했다. 감히 무엄하게도 레이저 광선을 쏘며 선생들에게 쌍심지를 켜고 대들었던 ‘철없는’ 엄마도 항복했다. 그 뒤로, 아이들 선생이 올리는 소셜네트워크 글에 매번 ‘좋아요’를 열심히 눌러주고 가끔 ‘아부 떠는’ 댓글도 단다. 어차피 ‘그들처럼’ 우주로 날아가지 못할 바에야 지구 안에서라도 편안히 살고 싶기 때문이다. 그런데 과연 이 지구상에 진정한 교육 유토피아가 있을까?

베이징(중국)=박현숙 자유기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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