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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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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올림픽 이후, 경고의 시간이 다가온다

지지율↓ 확진자↑ 비용↑… 스가 총리 승부수 실패
“1∼2주 뒤 도쿄에서만 확진자 1만 명” 전망
등록 2021-08-14 16:31 수정 2021-08-15 02:08
도쿄올림픽 폐막식이 열린 2021년 8월8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폭죽이 터지고 있다. 연합뉴스

도쿄올림픽 폐막식이 열린 2021년 8월8일, 일본 도쿄 국립경기장에서 폭죽이 터지고 있다. 연합뉴스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2020 도쿄올림픽’이 마침내 막을 내렸다. 역대 최다 금메달을 획득했음에도 일본 국민이 도쿄올림픽에 느끼는 감정은 처참함을 넘어 분노로 치닫고 있다.

2016년 8월,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마라카낭 주경기장의 올림픽 폐회식에서 당시 아베 신조 총리가 슈퍼마리오 분장을 하고 4년 뒤의 도쿄올림픽을 기약하는 모습은 크게 화제가 됐다. 그러나 이후 도쿄올림픽의 행로는 스캔들로 얼룩졌다. 2019년 3월, 다케다 스네카즈 일본올림픽위원회(JOC) 회장이 돌연 IOC 위원직과 JOC 회장 연임(6월)을 포기하고 자진 사퇴했다. 도쿄올림픽을 유치하려고 IOC 일부 위원에게 금품을 제공한 혐의가 프랑스 사법 당국에 의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어 코로나19로 개최가 1년 미뤄졌다. 도쿄올림픽 조직위원장을 맡았던 모리 요시로 전 총리는 여성 비하 발언(2021년 2월)으로, 안무가 미즈노 미키코는 개·폐회식 총괄책임자인 사사키 히로시 감독의 괴롭힘(이지메)으로(3월) 물러났다. 사사키도 무사하진 못했다. 인기 개그우먼 와타나베 나오미를 돼지로 분장시켜 무대에 올리자고 제안했다가 미즈노 사건과 맞물려 여론의 뭇매를 맞고 쫓겨나듯 떠나갔다. 7월19일에는 개회식 음악감독 오야마다 게이고가 과거 학교폭력이 발각돼 사임했고, 개막식 하루 전(22일)에는 개·폐회식 쇼 연출을 맡은 고바야시 겐타로가 사람 모양의 종이를 만들어 유대인 대학살 놀이를 한 일로 해임됐다.

도쿄올림픽의 개·폐회식 연출은 당연히 엉망진창일 수밖에 없었다. 오죽하면 2류 연출자에 의해 2류 개·폐회식 쇼가 됐다고 일본 국민 스스로가 자조적으로 비아냥댔을까. 수준 낮은 개·폐회식 때문에 평창 겨울올림픽을 다시 틀어 봤다는 젊은이도 많다.

사건·사고·사임 속에 치른 올림픽이 끝났다. 일본은 금메달 27개, 은메달 14개, 동메달 17개로 총 58개의 메달을 획득해 미국, 중국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그래선지 올림픽이 끝난 후 각종 여론조사에서 ‘올림픽이 열려서 좋았다’는 반응이 60% 이상을 차지했다. 하지만 도쿄올림픽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딱 여기까지다.

일본 도쿄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걷고 있다. REUTERS

일본 도쿄에서 마스크를 쓴 시민들이 걷고 있다. REUTERS

하루 확진자 1만 명 웃도는데… “올림픽과 무관”

당장 도쿄올림픽의 손익계산서가 남았다. 아직 정확한 적자 액수가 밝혀지진 않았다. 다만 올림픽 개최에 들어간 총비용이 당초 예상했던 1조4천억엔의 세 배에 가까운 3조4천억엔(약 36조원)에 이른다는 사실은 이미 일본 국내외 언론에서 보도한 바 있다. 우익 성향 <요미우리신문>(2021년 8월8일치)은 올림픽 시설과 정비비로 1조6771억엔(약 17조7천억원)이 쓰였고, 무관중 손실액 1조8108억엔(약 19조700억원)에 티켓·관광숙박비 등 손실액도 1337억엔이라고 보도했다. 또한 도쿄, 오사카를 포함한 6개 도도부현에 발령된 긴급사태 선언으로 경제 손실이 2조1900억엔(약 23조원)에 달한다고 전했다. <요미우리신문>이 친정부 성향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이런 수치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가 어렵다. 노무라연구소 등 경제 전문기관은 도쿄올림픽으로 인한 경제적 손실이 10조엔(약 105조원) 이상이 될 것이라 주장하고, 이는 설득력을 얻고 있다.

도쿄올림픽 기간에 일본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급증했다. 현재 연일 1만 명이 넘는다. 8월11일 도쿄에선 4200명이 코로나에 감염됐고, 일본 전국 총 확진자 수는 1만5788명에 이르렀다. 의료 전문가들은 1~2주 후면 전국이 아닌 도쿄에서만 하루 확진자 수가 1만 명을 넘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까지 도쿄올림픽을 위해 스가 요시히데 정부가 의도적으로 PCR(유전자증폭) 검사를 극도로 억제해왔기 때문이다. 일본 전국에서 하루 1만 명 이상 확진자가 발생하는데도 검사 수는 7만~8만 명에 불과했다.

그런데도 스가 총리는 코로나19 확진자 수 급증과 도쿄올림픽은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한다. 스가 총리의 최측근인 마루카와 다마요 올림픽 장관은 8월10일 국무회의 뒤 기자회견에서 “올림픽 개최는 (코로나19) 감염 확대의 원인이 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올림픽을 위해 일본에 입국한 4만3천 명 중 확진자는 151명에 불과했다는 사실을 들었다.

일본 국민의 분노는 한계에 달해

반면 61%의 일본 국민은 올림픽 개최로 코로나19 확산에 따른 자숙 분위기가 ‘느슨해졌다’고 대답했다(<아사히신문> 여론조사). 이뿐만 아니라 스가 총리 개인과 정부의 대응에 대해서 ‘신뢰하는가’라는 질문에 66%가 “신뢰하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현재 일본 국민이 가장 불안해하는 것은 코로나에 대한 스가 총리의 안일한 대응이다. 코로나 확산으로 중증환자가 급증하고 병상 수가 턱없이 부족해 입원이 거부되는 일이 연일 수백 건에 이르는데도 자가격리만 강조하는 스가 정부에 대한 불신과 불안이 크다.

한 민방 텔레비전에 출연한 정치부 기자는 이렇게 말한다. “스가 총리는 자신의 업적을 위해서라도 코로나19 확산과 올림픽 개최의 인과관계를 인정할 수가 없다. 마루카와 올림픽 장관과 가토 가쓰노부 관방장관도 스가 총리의 측근이므로 인과관계가 없는 것으로 밀어붙이는 수밖에 없다.”

여당인 자민당 중진 의원도 시사주간지 <아에라>와의 인터뷰에서 지적했다. “일본 선수의 메달로 분위기가 달아오르는 것과, 코로나19 감염에 스가 총리가 책임을 다하지 못한 채 올림픽 개최를 단행한 것은 완전히 별개의 문제다. 많은 국민이 스가 정권에 대한 불신으로 분노가 점점 강해지고 있다. 앞으로 코로나19 확진자가 더욱 증가하면 과연 스가 정권이 버텨낼 수 있을지, 말기적인 상황을 맞이하고 있다.” 실제 일본 국민의 분노는 한계에 달하고 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인터넷 커뮤니티 사이트에서 스가 정부에 대한 불만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올림픽을 하면서 국민에게는 밖에 나오지 말라고 하면 듣는 사람이 바보다. 이제 정부가 말하는 것을 듣는 국민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올림픽이 감염 확대에 일조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확진자 2명, 입원 거부당해 끝내 숨져

일본 국민을 들끓게 한 또 하나의 사건도 터졌다. 8월10일, <요미요리신문> 계열사 <니혼 텔레비전>의 <정보 라이브 미야네야>를 진행하는 미야네 세이지 아나운서는 울분에 찬 목소리로 유명 탤런트 노노무라 마고토(57살)의 소식을 전했다. 노노무라가 코로나19 양성으로 판명된 것은 7월30일. 열이 38도였지만 보건소에서는 자택요양을 지시했다. 다음날에는 다시 열이 40도까지 오르고 심한 두통과 몸의 통증이 왔다. 이날도 보건소에서 해열제를 먹으라고만 할 뿐 병원 입원은 못했다. 간호사가 상주하는 호텔 요양소라도 가게 해달라고 사정했지만 이마저 만실이라며 거절당했다고 한다. 8월4일, 산소포화도 수치가 90까지 내려가 구급차를 불렀지만, 수치가 다시 96으로 올라가는 바람에 96 이하일 경우에만 입원이 가능하다는 이유로 입원이 거부됐다. 그가 입원한 것은 8월5일. 이미 그의 양쪽 폐는 하얗게 변해 있었다. 미야네 아나운서는 노노무라의 상태를 전하면서, 노노무라가 괴롭다고 고통을 호소할 때마다 자신은 힘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문제는 이 같은 노노무라의 상황이 스가 정부의 코로나19 대응, 즉 현재 일본의 의료체계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사실이다. 올림픽 기간에는 확진자가 증상이 악화돼 구급차를 불렀지만 도쿄 시내 병원 수십 군데로부터 입원을 거부당해 거리를 떠돌다가 8시간 만에 도쿄 교외 병원에 입원했다는 뉴스도 나왔다. 8월11일에도 확진자 2명이 입원을 거부당해 집에서 자가치료를 하다가 끝내 숨졌다는 소식이 들렸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연합뉴스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 연합뉴스

코로나 대책보단 연임에 급급한 스가 총리

일본 국민의 불행은 무능한 것인지 무심한 것인지 아니면 정권 야욕에 불타는 것인지 모를 스가가 총리라는 사실이다. 9월30일 임기가 만료되는 스가 총리는, 9월에 중의원을 해산하고 10월에 선거를 치러 차기 총리에 재선될 대책을 세우느라 분주하다. 노력이 결실을 이뤘는지 각 파벌의 캐스팅보트를 쥔 니카이 도시히로 자민당 간사장이 일찌감치 차기 자민당 총재(총리 겸함)는 스가라고 선언했다. 아베 신조 전 총리를 배출한 자민당 내 최대의 파벌 수장인 호소다 히로유키 회장도 8월8일 기자회견에서 스가 총리의 재선을 지지한다고 발표했다. 2020년 9월에도 파벌이 없는 스가 총리는 호소다, 아소, 다케시타, 니카이파 등의 지지로 자민당 총재에 선출된 바 있다.

이와 달리 일본 국민의 마음은 스가 정부에 등을 돌린 지 이미 오래다. 언론이 내놓은 여론조사가 이를 증명한다. 8월7~8일 <아사히신문>이 실시한 여론조사를 보면 “스가 내각을 지지한다”가 28%, “지지하지 않는다”가 53%, “응답 없음”이 19%로 나타났다. “스가 총리가 계속 연임했으면 좋겠느냐”는 질문에는 60%가 반대, 25%만이 찬성했다. 스가 총리의 코로나19 대책에 대한 신뢰도에도 66%가 “신뢰할 수 없다”, 23%가 “신뢰한다”고 응답했다. 그런가 하면 <요미우리신문> 조사(8월7~9일)에서는, 응답자 35%가 “스가 내각에 대해 지지한다”고, 54%가 “지지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이런 여론조사 결과를 자민당 의원들도 자각하고 있다. 자민당의 한 중진 의원은 8월9일 <아사히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민이 스가 총리를 싫어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했고, 각료 출신의 의원 또한 “지방에서도 아무도 스가 총리를 말하지 않는다”고 한 발언이 소개됐다.

이처럼 분위기가 심상치 않자 스가 총리는 8월11일에 중증환자, 중증 가능성이 있는 환자, 산소 투여가 필요한 환자의 경우 병원에 입원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체계화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그 말 끝에 붙인 사족이 오히려 일본 국민을 더욱 분노하게 만들었다. “다만 의사의 판단에 맡기겠다.”

이미 의료 현장에서는 병상 수 태부족으로 열이 40도까지 올라도 입원 거부를 당하는 상황인데, 또다시 의사의 판단에 맡기겠다는 스가 총리의 대응책에 일본 국민은 “국민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다”고 맹비난을 퍼붓고 있다. 해당 기사에는 “올림픽은 국민이 반대해도 밀어붙이더니 국민 생명이 걸린 코로나19 대응은 왜 그리 더디냐. 코로나19 사태에 대해서도 그렇게 강력하게 밀어붙여봐라” “이번에는 자민당 총재 때문에 또 코로나19 대응이 뒤로 밀려난 거냐. 국민 생명보다 자신의 정권 연장이 더 중요하냐”는 등의 댓글이 달렸다.

올림픽 적자는 아무것도 아니다

스가 정부는 폭풍 전야다. 도쿄올림픽의 천문학적인 적자 액수와 그 책임 문제, 도쿄올림픽을 기점으로 급증하는 코로나19 확진자와 병원 입원이 거부돼 집에서 서서히 죽어가는 중증환자, 차기 총리 연임 문제 등 당장 해결할 일들이 쌓여 있다.

여기에 한일 문제는 끼어들 틈조차 없다. 일본 국내 문제만으로도 벅찬데 한국과의 외교 문제까지 다룰 역량이 스가 총리에게는 없다. 스가 총리를 너무도 잘 아는 일본 정부 관리들이 이구동성으로, 8월11일 일본으로 귀국한 소마 히로마사 전 총괄공사의 “일본 정부는 한일 문제에 신경 쓸 여유가 없다. 대통령 혼자서만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문 대통령이 마스터베이션을 하고 있다”는 발언이 ‘혼네’(본심)라고 짚는 이유다. 스가 총리에게 이 말은 현재도 유효하다. 자민당의 한 중진 의원은 말한다.

“지금 스가 정부는 폭풍 전야 상태다. 만약 도쿄의 하루 확진자 수가 1만 명이 넘고 입원하지 못해 제대로 치료받지 못한 채 죽어가는 사람이 두 자릿수를 기록한다면 그다음은 아무도 장담하지 못한다. 올림픽 적자는 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시간이 점점 다가오고 있다.”

의료 전문가가 경고한, 도쿄 코로나19 확진자 수 1만 명이 넘는 시간은 이제 코앞까지 다가왔다.

도쿄(일본)=유재순 JP뉴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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