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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부색 따라 ‘전쟁 보도’에도 차별이?

우크라이나 전쟁에는 분노하면서 1만 명 숨진 에티오피아 내전에는 무관심한 ‘불편한 진실’
등록 2022-03-15 17:05 수정 2022-03-16 02:43
BBC의 제러미 보언 기자(왼쪽)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에서 약과 같은 필수품을 구하러 나온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BBC 뉴스 갈무리

BBC의 제러미 보언 기자(왼쪽)가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키예프)에서 약과 같은 필수품을 구하러 나온 시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BBC 뉴스 갈무리

러시아 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의 포탄이 우크라이나를 불태우자 세계는 분노했습니다. 대한민국 시민도 더불어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연일 전쟁의 참상을 알리고 부당한 침공을 규탄하는 게시물이 올라왔습니다. 프로필 사진 배경을 우크라이나 국기로 바꾸고 기부금을 보내는 운동이 한창입니다.

고통받는 우크라이나 민중과 연대하는 분이 많다니 반가운 소식입니다. 세계시민으로서 반전의 목소리를 내는 일은 두말할 나위 없이 옳습니다. 다만 숭고한 관심이 지구촌 다른 곳에서 벌어지는 또 다른 비극에는 가닿지 않는 ‘불편한 진실’도 한 번쯤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클릭 장사’ 위한 엽기적 사건이 단골 메뉴

잠시 눈길을 아프리카로 돌려봅시다. 에티오피아에서는 2020년부터 이어진 내전으로 지금까지 1만 명이 숨지고 난민이 100만 명 발생했습니다. 2012년부터 내전을 벌인 중앙아프리카공화국에선 인구의 4분의 1이 난민이 됐지요. 2021년 쿠데타로 군사정권이 들어선 수단, 기니, 차드, 말리도 혼란스럽습니다.

이런 아프리카의 참상에 우리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대부분 그런 일이 있는지조차 모르지요. 유럽인과 아프리카인의 목숨값이 다르지 않을 텐데 우리는 왜 푸른 눈에 금발을 가진 백인의 죽음에 더 많은 관심을 보내고 더 많이 분노할까요? 그 배경에는 비극에 선별적 관심을 보내는 미디어의 영향이 있습니다.

2021년 7월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대한민국 지위를 개발도상국에서 선진국으로 변경했습니다. 우리나라가 ‘도움을 받는’ 나라에서 ‘도움을 주는’ 나라로, 명실공히 세계가 인정하는 선진국으로 성장한 겁니다. 당연히 가슴 뿌듯한 소식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과연 모든 분야에서 ‘선진국다운’ 선진국이라 말할 수 있을까요? 적어도 국제뉴스 분야에서는 자신하기 어려울 것 같습니다. 우리 언론은 여전히 해외 언론의 도움에 의존하지 않고선 국제뉴스를 만들어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한국 언론은 국제뉴스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미국 대통령이 바뀌거나 일본 정치인이 망언하지 않는 한 국제뉴스가 크게 보도되는 일은 드뭅니다. 심층기사를 중심으로 국제 이슈를 비중 있게 다루는 ‘선진국’의 신문·통신사들과 대조적이지요.

한국에서 국제질서의 변화를 읽어낼 안목과 지성을 길러주는 보도를 찾기란 하늘의 별 따기입니다. 국제뉴스는 포털에서 클릭 장사를 하기 위한 선정적 가십들로 채워집니다. ‘뱀술을 담갔다가 뚜껑을 열었더니 튀어오른 뱀에 물렸다’ 따위의 엽기적 사건이 단골 메뉴입니다.

국제뉴스에 대한 인식이 이렇다보니 거의 모든 언론사에서 국제뉴스를 생산하는 부서는 푸대접받습니다. 국제부는 늘 최소한의 인력으로 운용됩니다. 정치부·사회부 등 이른바 ‘주요 부서’에서 고생한 기자들이 ‘쉬어가는 곳’ 정도로 국제부를 생각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해외에 주재하는 특파원은 극소수에 불과합니다. 지국을 두는 나라도 몇 군데 되지 않습니다. <2020 한국언론연감>을 보면, 국가 기간통신사 연합뉴스가 19개국에 33명으로 그나마 가장 많은 특파원을 보냈습니다. 공영방송 KBS는 8개국에 17명을 운용 중입니다. 종합일간지들은 미국·중국·일본 등에 1명씩 겨우 5명 안팎의 특파원을 보냅니다.

250개 국가에 300명 넘는 기자를 보내는 미국 AP 통신이나 50개 국가에 200명 넘는 기자를 보내는 영국 BBC와 비교하면 창피한 수준입니다. 가뜩이나 기자 수가 부족하고 재정이 어려운 상황에서 비용을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지요.

서구 언론 렌즈를 통해 보는 세계

주재기자가 많은 해외 유력 언론들은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일을 기자가 발로 뛰어 취재합니다. 하지만 우리 언론은 이 해외 언론들을 취재합니다. 국내에 있는 기자가 외신 기사를 참조하고 번역해 ‘옮겨 적는’ 방식입니다. 우리가 보는 대부분의 국제뉴스는 별도 취재 없이 이렇게 외신을 인용해서 만들어집니다.

제3국에서 벌어진 사건을 우리 눈과 귀로 직접 보고 듣는 게 아니라 서구 언론을 거쳐 전해 들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무엇보다 미국이나 유럽 기자가 뉴스에 담아낸 그들의 관점이나 이해관계가 우리 뉴스에도 부지불식간에 반영될 위험성이 있습니다. 뉴스 독자는 세계를 우리의 주체적 시선으로 해석하는 게 아니라 서구의 렌즈로 바라보게 되지요. 그렇게 ‘노란 피부에 푸른 눈’을 가진 한국인이 만들어집니다.

우리 언론이 다른 지역 분쟁보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더 크고 중요하게 다루는 데도 미국과 유럽 언론의 판단이 영향을 미쳤을 수 있습니다. 미국 CBS 기자는 우크라이나가 이란·아프가니스탄과 달리 “유럽과 가깝고 비교적 문명화된 곳”이기 때문에 전쟁이 충격적이라고 말했다가 호된 비판을 받았습니다. 다른 지역의 전쟁, 다른 인종의 난민에 비해 우크라이나에 보이는 서구 언론의 차별적 관심이 어디서 비롯되는지 엿볼 수 있습니다.

더욱이 우크라이나는 서구 강대국들과 지리적으로 가깝고 전략적으로 깊은 이해관계를 갖는 지역입니다. 서구 언론이 다른 지역보다 더 많은 관심을 갖는 건 당연하지요. 그런데 아시아 안보 이슈에는 무관심하던 한국 언론이 유독 우크라이나에 높은 관심을 보이는 건 아무래도 이상합니다.

우크라이나 보도를 하지 말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다른 지역에서 벌어지는 사건에도 그만큼 많은 관심을 보내야 한다는 겁니다. 반전과 연대의 정신은 대륙과 인종을 가리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와 이해관계가 밀접한 지역 이슈는 더 자세히 다뤄야 합니다.

제국을 경영한 나라들과 달리 식민을 경험한 우리는 바깥세상을 바라보는 시각이 좁았던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제 국제사회에서 우리 위상과 역할이 달라졌습니다. 기후위기를 비롯한 현안에 슬기롭게 대처하기 위해서라도 국제정치에 능동적으로 관여할 필요가 있습니다.

외신 베껴 쓰기 넘어선 국제뉴스를

시민사회에서는 이미 변화의 조짐이 보입니다. 미얀마 민중과 아프가니스탄 여성이 느끼는 고통에 연대 메시지를 보내는 시민들이 있습니다. 이제 언론이 응답할 차례입니다. 국제뉴스에 대한 인식 변화와 과감한 투자가 필요합니다. 외신 ‘베껴 쓰기’에서 벗어나 기획과 심층보도를 늘려야 합니다. 국제뉴스가 바뀌지 않는 한 ‘국격에 맞는 언론’은 영원히 남의 나라 얘기일 겁니다.

박영흠 협성대학교 미디어영상광고학과 교수

*박영흠의 고구마 언론 비평: 시원한 사이다보다는 고구마처럼 건강에 좋은 언론 비평을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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