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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란-이스라엘 충돌에 가자가 사라진다

가자지구에서 이란으로 국제사회 시선 돌린 이스라엘, 중동 전역 전쟁 확산 우려는 커져
등록 2024-04-19 12:26 수정 2024-04-20 03:54
2024년 4월1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 자리한 이란 총영사관 건물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무너져 내렸다. 건물 잔해 앞에 찢긴 이란 국기가 걸려 있다. REUTERS

2024년 4월1일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에 자리한 이란 총영사관 건물이 이스라엘군의 공습으로 무너져 내렸다. 건물 잔해 앞에 찢긴 이란 국기가 걸려 있다. REUTERS


팔레스타인 땅 가자지구에서 벌어진 전쟁이 중동 전역으로 번질 기세다. 그간 레바논과 시리아를 상대로 사실상 ‘저강도 전쟁’을 이어온 이스라엘이 마침내 이슬람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과 정면으로 충돌했다. 가자지구의 참상에 쏠렸던 국제사회의 관심이 희석되고 있다.

 

시리아 자국 영사관을 폭격당한 이란

 

2024년 4월1일 오후 5시께(현지시각) 이스라엘이 점령한 골란고원 쪽에서 시리아 수도 다마스쿠스의 메자 지구를 향해 미사일 6발이 날아들었다. 시리아 방공망에 걸린 미사일은 요격됐다. 요격을 피한 미사일은 목표 지점인 시리아 주재 이란대사관 별관(총영사관) 건물에 정확히 꽂혔다. 영국 공영방송 <비비시>(BBC)는 시리아 국방부 당국자의 말을 따 “이스라엘군 F-35 전투기에서 발사한 미사일이 총영사관 건물을 통째로 파괴했고, 사건 당시 건물 안에 있던 모든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고 전했다. ‘외교 관계에 대한 빈 협약’ 제22조 1항은 “공관 지역은 불가침”이라고 규정한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 등 외신 보도를 종합하면, 이스라엘군 공습의 핵심 표적은 이란 혁명수비대 최정예 부대인 쿠드스군의 레바논·시리아 책임자인 모하마드 레자 자헤디(64) 준장이었다. 신문은 이란군 당국자의 말을 따 “이란 정보당국과 이란이 무기·자금을 지원하는 ‘이슬람 지하드’ 등 팔레스타인 무장세력이 사건 당시 건물 안에서 회의를 하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이를 노린 것”이라고 전했다.

이날 공습으로 자헤디와 그의 부관 모하마드 라히미 등 이란군 고위 인사 7명 등 모두 16명이 목숨을 잃었다. 이란 쪽은 즉각 보복을 다짐했다. 호세인 아미르압돌라히안 이란 외교장관은 “이스라엘의 공습은 모든 외교적 규범과 국제조약에 반하는 행위”라고 말했다. 호세인 아크바리 시리아 주재 이란 대사는 “똑같은 규모와 강도로 보복 대응에 나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4월2일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긴급 소집됐다.

“규칙에 기반한 국제질서는, 안보리가 유지할 책임을 진 세계 평화와 안보에 필수적이다.” 칼리드 키아리 유엔 중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사무차장보는 안보리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그는 “외교공관과 외교 인력의 불가침성은 어떤 경우에도 존중돼야 하며, 모든 유엔 회원국의 주권과 영토 역시 국제법에 따라 존중돼야 마땅하다”고 덧붙였다. 시리아 영토에서 벌어진 이란 외교공관을 겨냥한 이스라엘의 공격을 에둘러 비판한 셈이다. 미국 쪽 생각은 달랐다.

 

보복의 악순환 우려

 

“더 이상 정세를 격화시켜선 안 된다. 2023년 10월7일 (하마스의) 테러공격이 발생한 직후부터 미국은 이란이 상황을 악용해 이스라엘을 상대로 장기간 끌어온 대리전을 확대하지 말라고 경고해왔다. 이란은 경고를 무시했다.” 로버트 우드 주유엔 미국 차석대사는 안보리 회의에서 이렇게 말했다. 이어 그는 “아직 다마스쿠스 현지 상황에 대해 확실하게 알지 못한다. 외교시설에 대한 공격은 미국에도 우려 사항이다. 전시에도 외교시설은 보호받아야 한다. 아울러 사건 당시 테러 관련자가 해당 건물에 있었다는 보도에 대해서도 우려하고 있다. 이란이 지속하고 있는 테러범과 폭력적 극단주의자 훈련·무장에 대해서도 비난한다”고 덧붙였다. 이스라엘에 대한 비판은 한마디도 없었다.

지난 반년여 이란은 이스라엘의 가자지구 전쟁을 맹비난하며 하마스와 연대할 뜻을 여러 차례 밝혔지만, 실제 군사행동엔 나서지 않았다. 상황이 달라졌다. 주유엔 이란 대표부 쪽은 4월11일 소셜미디어 ‘엑스’(옛 트위터)에 올린 성명에서 “안보리가 외교공관에 대한 이스라엘의 끔찍한 공격을 비판하고 관련자를 처벌하도록 했다면, 이란이 보복공격에 나설 명분은 사라졌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4월13일 밤부터 이튿날 새벽까지 약 5시간 동안 이란군은 무인기 170대, 크루즈미사일 30발, 탄도미사일 120발을 이스라엘을 향해 쏘아 올렸다.

아이언돔과 애로우, ‘다윗의 돌팔매’ 따위 이스라엘군 요격체계가 총동원됐다. 미국·영국·프랑스·요르단 공군도 이스라엘 방어에 나섰다. 다니엘 하가리 이스라엘군 대변인은 4월14일 “이란이 발사한 미사일 99%를 요격했다”고 밝혔다. 이란 수도 테헤란의 거리에선 보복공격을 축하하는 노래가 울려 퍼졌지만, 실제 이스라엘은 별다른 피해를 입지 않았다.

다시 이스라엘 차례다. 요아브 갈란트 이스라엘 국방장관은 4월15일 로이드 오스틴 미국 국방장관에게 “보복대응 외엔 선택의 여지가 없다”고 말했다. 이란도 맞받았다. 에브라힘 라이시 이란 대통령은 4월17일 테헤란에서 열린 연례 군사퍼레이드 연설에서 “이란에 대한 어떤 사소한 공격도 압도적이고 가혹한 대응과 마주하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중동 전역이 일촉즉발이다.

앞서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이란의 보복 직후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한 통화에서 이스라엘에 대한 ‘철통같은 방어’를 약속하면서도, “반격에는 가담하지 않겠다”는 뜻을 분명히 밝힌 바 있다. 우크라이나와 가자지구에 더해 ‘세 번째 전쟁’을 원치 않는다는 뜻이다. 미국은 4월17일 이란의 미사일과 무인기 개발과 관련한 추가 제재를 발표했다. 이란도 사태 확산을 원치 않는 모양새다. 4월13일 ‘진정한 약속’이란 작전명으로 이스라엘을 공격하기 전에 미리 주변국에 관련 사실을 공개한 것도 그런 맥락에서다. 이스라엘은 셈법이 다른 모양새다.

 

중동 전역으로 고조되는 전쟁 위기

 

“네탸나후의 전시 내각이 통제력을 잃었다. 이스라엘이 중동전쟁으로 빨려들 수 있다.” 이스라엘 일간 <하레츠>는 4월18일 이렇게 보도했다. 구호요원 폭격 사태로 거세진 국제사회의 비난 여론을 돌리기 위해 이란과 전쟁이라도 불사하겠다는 걸까? 현지 매체에선 “미국이 이스라엘의 이란 보복 타격을 무마시키기 위해 그간 반대했던 가자지구 최남단 라파 진입작전에 동의했다”는 얘기까지 나온다. ‘이란 변수’가 가자지구의 참극에 기름을 붓는 모양새다. 2023년 10월7일부터 전쟁 194일째를 맞은 2024년 4월17일까지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가자지구 주민 3만3899명이 숨지고, 7만6664명이 다쳤다.

정인환 기자 inhwa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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