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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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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식·몸싸움이 한국 정치의 노하우”

이념성 없고 여야만 있는 국회 속살 지켜본 유민봉 자유한국당 의원
등록 2019-12-09 03:40 수정 2020-05-02 19:29
이정우 선임기자

이정우 선임기자

20대 국회가 문을 연 2016년 5월30일, 는 1면에 ‘132개의 초심’이라는 제목으로 국회에 첫발을 내딛는 초선 의원 132명의 얼굴 사진과 각자의 각오를 담았다. 투표용지 한 장 무게는 1.8g, 국회의원 배지는 6g에 불과하지만 그 의미는 계량할 수 없을 정도로 무겁다. 초선 의원들은 “공영방송 지배구조 개선 등 방송 개혁에 앞장”(김성수 더불어민주당), “자영업자·노동자가 존엄한 삶을 누리도록 하겠다”(박용진 민주당), “정부의 주요 국정과제를 점검하고 이행하겠다”(유민봉 자유한국당), “환경 당국의 위상을 바로잡겠다”(이상돈 바른미래당), “노사 2자 기구 위한 중앙노사관계법 신설”(이용득 더불어민주당), “노동 개악 막고 인간 존엄 보장되는 일터 만들기”(이정미 정의당), “금융소비자 권리 늘리고 금융회사 책임 높이기”(제윤경 더불어민주당) 등 ‘무거운 각오’를 밝혔다. 이들은 각자의 위치에서 설득하고 싸우며 3년6개월을 보냈다. 때로는 실패하고 때로는 성공했다.
그러나 대통령을 탄핵하고, 촛불의 염원을 받아안았던 20대 국회는 지난 4월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 충돌’과 낮은 법안 처리율 등으로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는 정치’ ‘역대 최악의 국회’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마지막 정기국회(12월10일)까지 자유한국당의 필리버스터(무제한 토론) 신청으로 촉발된 여야 강대강 대치로 진통을 겪고 있다. ‘민생 법안’을 볼모로 삼고 정쟁만 한다는 비판에도 시달리고 있다.
2020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초선 의원 중 일부는 국회를 떠날 준비를 하고, 또 어떤 이들은 재선을 위한 출마를 준비하고 있다. 초선 의원 132명의 각오는 좌절된 것일까? 21대 국회 역시 ‘얼굴’만 바뀌고 같은 경험을 되풀이할까?
은 임기 만료를 앞두고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떠올릴 법한 초선 의원들의 눈으로 꽉 막힌 현재 국회 상황과 20대 국회 전반을 돌아봤다. 국회를 떠나며 몸도 마음도 비교적 가벼운 비례대표 초선 의원들에게서 20대 국회에 대한 ‘쓴소리’도 들었다. 소수 정당 눈에 비친 거대 정당의 모습도 살펴봤다.
이승준 기자 gamja@hani.co.kr

“제 그릇에 넘치는 외풍이었어요. 혼자 서 있기 힘들 정도의 강풍이 몰아쳤어요.”

11월6일 자유한국당에서 처음으로 총선 불출마 선언을 한 유민봉 의원에게 지난 3년6개월간의 국회 생활은 ‘태풍’과도 같았다. “태풍이 몰아쳐 굉장히 많은 잔재가 산더미처럼 쌓였다가 사라지고, 또 다른 쓰나미가 몰려오는 식”의 혼돈의 정치가 버거웠다. 26년간 “학생만 바뀌고 사계절 예측이 가능한” 대학교의 교수로 살아온 그에게 도전과 역경의 시간이었다. “불교의 믿음을 가지고 내 뿌리가 흔들리지 않게 마음공부를 했고, (그로 인해) 큰 신앙적 경험을 했다”고 고백할 만큼 ‘국회의 시간’은 견디기 어려웠다. 11월29일 서울 여의도동 국회 의원회관에서 유 의원을 만나 그 이유를 물었다.

“내 역할은 박근혜 정책 서포트”

2016년 5월, 국회에 발을 디뎠을 때는 순탄했다. 애초에 국회에서 새로운 정치를 하겠다거나 사회를 바꿀 만한 법안을 만들겠다는 포부는 없었다. 비례대표 임기 4년 안에 지역구를 찾아 재선 의원이 되겠다는 계획도 없었다. 박근혜 정부에서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 참여하고 청와대 국정기획수석을 한 유 의원은 비례대표 공천을 받아 국회 입성하며 “정치보다는 박근혜 정부의 정책을 서포트(지원)하는 것”으로 자신의 역할을 정했다.

얼마 못 가 그해 가을, ‘국정 농단’ 사태가 터졌다. 한국당은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정권 교체, 지방선거 대패라는 “초속 40m의 강풍”을 연거푸 맞았다. 특히 유 의원이 심리적 타격을 받았다. 유 의원은 2007년, 2012년 박 전 대통령의 요청에도 대선 캠프에 참여하지 않았으나, 2003년부터 박 전 대통령에게 국정 운영을 자문해주었고 박근혜 청와대에서는 주도적으로 국정의 밑그림을 그렸다. 그렇게 지원했던 박 전 대통령이 국민의 심판을 받은 데 대해 유 의원은 “많이 힘들었다”며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청와대에 있었던 시기는) 정권 초기 2년이었기 때문에 (국정 농단의 직접적 계기가 됐던) ‘미르 사태’ 등은 (내 임기) 이후에 나타난 사건이라서 시기적으로 좀 안 맞고, (정권 초기 최순실 개입도) 전혀 알 수 없었다”고 선을 그었다.

2017년 5월, 문재인 정부 출범으로 국회가 태풍의 중심으로 들어갔다. 적폐 청산을 놓고 여야가 극하게 대립했다. 행정고시 출신으로 대학에서 리더십·인사·조직관리 등을 가르친 행정 전문가의 눈에 “당의 이념성은 없고 여야만 있는” 국회의 속살이 더 또렷하게 보였다. “어느 당이 집권하든 여당이 됐을 때 포지션(위치)과 야당이 됐을 때 포지션”이 비슷했다. 더불어민주당이든 한국당이든, 여당은 국정 과제를 밀어붙이기만 했고 야당은 반대만 했다. “나도 (청와대와 여당에서) 국정 운영 주체일 때는 (정쟁에 빠져 반대만 하는 야당에) ‘이거 해도 너무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한국당이) 여당에서 야당이 되니까 그걸(발목 잡기를) 반복하는 거다. 또 (민주당도) 야당에서 여당이 되니까 힘이 생겨서 자신들이 야당일 때 주장했던 법안을 어느 정도 통과시킬 수 있을 텐데 그걸 하지 않는다.”

단식, 농성, 집단 몸싸움 일상적으로 벌어져

지난 4월부터는 “자괴감이 드는” 순간이 많아졌다. 민주당과 야 3당이 한국당을 배제하고 선거제도 개편안을 담은 공직선거법 개정안과 검찰개혁 법안 개정안을 패스트트랙(신속 처리 안건)으로 지정하는 과정에서, 합리적인 대화와 타협 대신 단식, 농성, 집단 몸싸움이 일상적으로 벌어졌다. 패스트트랙에 선거법 개정안을 태우는 합의를 이끌어낸 지렛대도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이정미 정의당 의원의 ‘단식’이었고, 이를 막겠다며 황교안 한국당 대표가 꺼내든 무기도 ‘단식’이었다. 유 의원은 이런 비정치적 방식이 일종의 “한국 정치에 축적된 노하우”가 됐다고 본다. ‘숫자가 밀릴 때 통하는 방식은 단식이나 물리적 저지’라는 인식과 기술이 국회에 만연해 있다는 뜻이다.

“한때 (이런 방식을) 참 이해하지 못했던” 유 의원도 어느 순간 동료 의원들과 스크럼을 짜고 국회 복도에 누워 있었다. 패스트트랙 지정을 막기 위해 물리력을 행사하는 과정에서다. 그는 “게임의 룰을 정하는 선거제도 개편을 합의 처리하지 않는 것에 (한국당이) 분노할 이유가 충분함에도, (물리력 외에) 그걸 저지할 다른 방법이 없다”는 생각으로 당 지도부의 지시에 따랐다. 하지만 “(의원이) 개인이 아니라 집단행동에 들어갔을 때 이성을 유지하기는 굉장히 힘들구나”라고 절감한 순간이었다. 그래서 당시 생생한 심경과 상황을 메모했다. “거리의 골목에서도 볼 수 없는 집단적인 몸 부딪침이 벌어진 것에 자괴감이 들었다. 그런 모습을 보여드려 국민께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유 의원은 패스트트랙 지정과 처리 과정에서 드러난 의회주의 실패에는 한국당의 책임도 크다고 생각한다. 모든 정당이 그러하듯, ‘1인 보스’ 중심의 위계적 집단주의로 굴러가는 한국당에서 박 전 대통령 이후 당을 안정적으로 이끌어갈 만한 대선 후보급 인물이 없고, 이를 뒷받침하는 승계 계획과 시스템도 없는 것이 “지금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초래한 근본 원인이라고 분석한다. 여기에 오랜 기간 집권한 한국당 안에서 가치가 아니라 이익 중심으로 집단성이 유지된 것도 당의 큰 문제라고 그는 생각한다. “탄핵 정국 이후 현 정부의 적폐 청산 등에 반응하는 과정에 (보수만의) 가치를 추스를 필요성이 있다는 내부의 요구가 있었는데도, (당은) 분노를 통해 결집하는 쉬운 방법을 선택했다.”

한국당 “분노 통해 결집하는 쉬운 방법” 선택

자신을 비롯해 김세연 의원 등이 당의 쇄신과 혁신을 요구하며 잇따라 불출마 선언을 한 뒤에도 이렇다 할 변화는 없지만 유 의원은 “내 행동이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으면 그 길을 가야 한다”며 크게 아쉽지는 않다고 말했다. 정책에서 성과도 있었다. 박근혜 정부가 신성장동력으로 추진했던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이 통과되지 못했지만 또 다른 중점 과제였던 ‘규제프리존 특별법’의 일부 내용이 문재인 정부에서 ‘규제 샌드박스’(신제품·신서비스를 출시할 때 일정 기간 기존 규제를 면제해주는 제도)로 빛을 볼 수 있게 된 것은 잘됐다고 생각한다. 박근혜 정부에 참여하며 교수직을 그만둔 그는 내년 4월 총선이 끝나면 시민으로 돌아간다.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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