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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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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말의 바보’ 재밌게 본 바보

<밀회> <아내의 자격> 등 기득권 사회 위선 까발려온 정성주 작가 신작… 그간 우리가 방조·묵인한 사회문제에 대한 비판적 성찰
등록 2024-05-04 04:40 수정 2024-05-05 02:38
<종말의 바보>는 소행성 충돌로 한반도가 사라질 위험에 놓인 상황에서 안전지대로 떠나지 않고 웅천시에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넷플릭스 제공

<종말의 바보>는 소행성 충돌로 한반도가 사라질 위험에 놓인 상황에서 안전지대로 떠나지 않고 웅천시에 남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넷플릭스 제공


*이 글은 <종말의 바보>의 주요 장면 정보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다 죽는다!!! 졸라 공평하다!!!” 폐허가 된 아파트에서 한 남성이 미치광이처럼 소리 지르며 날뛰다가 비명 같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투신한다. 같은 시각 건너편 동인 121동 24층에 임시로 사는 소녀 해찬(조시연)은 그 소리를 들으며 엄마와 함께 보던 동화책을 읽는다. “조마조마해.” 마침 해찬이 읽던 책의 한 문장이다. 넷플릭스 시리즈 <종말의 바보>는 이렇게 조마조마하게 시작한다.

200일 뒤 한반도가 사라진다면

2025년 어느 날, 평범하고 평화로운 일상을 살던 웅천시 사람들에게 ‘전 지구적 중대 발표’가 전해진다. 길이 900m의 소행성 ‘2012 DINA’가 300일 뒤 지구와 충돌할 것이며 충돌 지점은 북태평양 북위 39도 부근으로 피해 지역은 일본, 한반도, 중국 동부, 인도차이나반도일 것으로 예상한다는 내용이었다. 이후 지구는 상상을 초월한 기후위기를 겪게 되고 지구 생태계 복원까지는 최소 30년이 걸릴 것이라고 한다. 전 지구적인 종말보다는 스케일이 작지만, 지구 어느 한 편의 세상은 사라질 운명에 처한 것이다. 그렇게 지구의 일부만 종말을 맞이하게 된 것은 다행일까, 비극일까? 모두가 죽지 않을 수 있는 ‘선별적 종말’이기에 “적어도 나와 우리 가족은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으로 애써볼 수 있다는 면에서 다행이겠지만, “졸라 공평”하지 않은 불평등한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피할 수 없는 비극일 것이다.

드라마는 ‘전 지구적 중대 발표’ 이후 100일이 지난 ‘소행성 충돌 전 200일’부터 시작한다. 그 100일 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정부는 빠르게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혼란에 빠진 시민들을 통제하지만, 전국에서 일어난 약탈과 폭동으로 무고한 시민들이 희생되고 곳곳은 폐허가 된다. 그러는 사이 “권력자들은 내빼고 사기꾼들은 판치고 인신매매범들이 창궐”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재난물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디스토피아적 풍경이지만, <종말의 바보>는 여느 재난물들과는 다른 길을 걷는다. “소행성이 날아와 지구와 충돌할 것이라 믿는 사람도 믿지 않는 사람도 모두 생존할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움직였다”는 해찬의 내레이션처럼 “생존할 가능성이 높은 쪽으로 움직”인 사람들을 주목한 것이다.

문제는 그 “생존할 가능성”에 관한 계획이 서로 다르다는 데 있었다. 자본과 권력과 정보를 가진 이들은 재빠르게 안전한 국가로 이민을 가고, 어떤 이들은 남는다. 그 남은 이들도 각각 사정이 다르다. 자본과 권력과 정보가 부족해서 미처 떠나지 못해 절망한 이들, 자신이 살던 곳에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고 싶어서 남거나 귀환한 이들, 언제라도 떠나고 싶어서 기회를 엿보는 이들이 뒤엉킨 채로 살아간다. 드라마의 배경이 된 웅천시는 그 ‘남은 자들의 사회’를 대표한다.

“내년 봄까지 먹을 김치 담그고 나믄 세상 끝이여”

안전한 국가로 이민 갈 수 있는 길이 희박하게 되자 남은 자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종말을 기다린다. 웅천 성당 신도들과 ‘웅천FFC’ 축구팀 멤버들은 텃밭에 채소를 심고 수확하고 다듬으며 소소한 일상을 이어간다. “열무는 이제 이걸로 끝났고 김장 배추랑 알타리 심어야지. 내년 봄까지 먹을 거 담그고 나믄 세상 끝이여. 더 이상 된장, 간장 담글 필요도 없고.” 그들에게 김장 배추와 알타리는 그냥 채소가 아니다. 종말의 두려움을 견딜 생명의 기운이다.

종말이 가까울수록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위험해진다. <종말의 바보>에서는 권력자들이 노예로 부릴 아이들을 납치해 거래하는 이들과, 이에 맞서 아이들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이 모두 등장한다. 넷플릭스 제공

종말이 가까울수록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위험해진다. <종말의 바보>에서는 권력자들이 노예로 부릴 아이들을 납치해 거래하는 이들과, 이에 맞서 아이들을 지켜내려는 사람들이 모두 등장한다. 넷플릭스 제공


그러고 보면 이 드라마에는 무언가를 돌보는 장면이 자주 등장한다. 해찬은 베란다에 있는 식물을 돌보고, 동네 주민들은 텃밭에서 채소를 가꾸고, 폭동 때 아들을 잃은 마트 주인 여미령(김여진)과 김대한(김영웅)은 늘 그렇듯 마트 문을 열고 동네 주민들에게 식재료를 공급한다. 천동중학교 기술가정 교사였지만 학교가 폐쇄된 뒤 웅천시청 아동청소년부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진세경(안은진)은 청소년들을 지킨다. 그 와중에 전투근무지원 대대 취사반장 소주연(서예화)은 달걀을 부화시켜 닭으로 키우는 ‘다산 프로젝트’를 시작한다. 이 닭들이 낳은 달걀은 비축 식량이 점점 떨어져 굶주린 부대원들의 배를 채운다. 주연은 정성껏 닭을 돌보기도 하지만 호시탐탐 닭을 노리는 마을 주민들로부터 닭을 지킨다. 그리고 동네 어른들은 아이들을 돌본다. ‘종말’이라는 사건만 없다면, 이곳이 천국인가 싶을 정도로 지극히 평화로운 돌봄 공동체이다. 생명을 돌보고 지키며 함께 사는 것. 이것은 그들이 선택한 “생존할 가능성이 높은 쪽”이다.

지키는 이들이 있다면, 빼앗는 이들도 있다. “소행성 충돌 이후 살아남은 자들의 왕에게는 뭐가 필요할까? 자본주의를 다시 세울 노예, 말 잘 듣는 노동자 계급, 미래의 생산력. 생산력의 핵심은 아이들!”이라는 유튜버 ‘옥토끼’(이휘종)의 말처럼 종말이 가까울수록 어린이와 청소년들이 위험해진다. 이들을 납치해 거래하는 이들의 배후에는 돈과 사람을 모아 안전한 곳으로 탈출해 새로운 국가를 세우려는 그릇된 욕망에 사로잡힌 권력자들이 있다. 대통령 비서실장 조광현(백현진)과 합동수사본부 관계자들은 시민의 안전을 지킬 군수 물자를 빼돌리고, 종교 지도자인 백 신부(강석우)는 성당 헌금을 빼돌려 금괴를 만든다. 웅천시를 탈출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던 정하율(김도혜)의 아버지 정수근(박혁권)은 자신의 도박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딸의 신체 양도 각서를 써서 사채업자들에게 넘겨버린다. 이들은 ‘자신들만’ 생존할 가능성이 높은 쪽을 선택했다.

소행성 충돌보다 무서운 사람

드라마는 다가오는 종말이 아니라 현존하는 위험으로부터 이웃과 일상을 지키려는 이들의 분투를 그린다. “소행성 충돌이라는 집단 시한부 선고보다 무서운 것은 사람”이라는, 이 작품을 집필한 정성주 작가의 통찰처럼 진정한 재앙은 ‘소행성’ 때문이 아니라 유해한 가부장, 이기적인 공권력, 위선적인 종교 등 인간 사회가 만든 불의한 체제와 그 체제를 운영하는 무책임한 권력자들 때문에 도래하는지도 모른다. 드라마는 ‘소행성 충돌’이라는 사건을 통해 이런 인간 사회의 문제를 조명하며 “대재앙을 계기로 쏟아져 나와 범람하는 부패와 악덕은 그 모든 것을 별 탈 없이 살던 시절에 방조하고 묵인해온 대가”라는 점을 분명히 한다. 즉 <종말의 바보>는 아포칼립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그간 우리가 방조하고 묵인한 채 만들어온 현실에 대한 비판적 성찰이기도 하다. 이런 세상이라면 차라리 망하는 게 나을지 모르겠다. 그래서일까? 드라마는 같은 소재를 다룬 영화 <돈룩업>과는 달리 종말 이후를 보여주지 않고 끝낸다. 다만 마지막까지 인간을 도구화하고 쾌락을 즐기는 이들과 “(그런 게 어른이라면) 저는 어른 같은 거 안 될래요!”라는 ‘천동중학교 4인방’을 위해 악한 이들을 응징하려는 세경과, 그런 세경과 운명을 함께하기로 한 연인 하윤상(유아인)의 최후를 보여주며 끝낸다.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종말을 기다린다. 웅천 성당 신도들과 ‘웅천FCC’ 축구팀 멤버들은 텃밭에 채소를 심고 수확하고 다듬으며 소소한 일상을 이어간다. 넷플릭스 제공

등장인물들은 각자의 방식대로 종말을 기다린다. 웅천 성당 신도들과 ‘웅천FCC’ 축구팀 멤버들은 텃밭에 채소를 심고 수확하고 다듬으며 소소한 일상을 이어간다. 넷플릭스 제공


<아줌마>(MBC), <아내의 자격>과 <밀회>(JTBC), <풍문으로 들었소>(SBS) 등을 통해 남성 기득권 사회의 위선과 무능을 까발려온 정성주 작가가 오랜 침묵을 깨고 선보인 이 드라마가 반가운 이유는, 그가 그간 견지해온 인간 사회에 대한 비판적 성찰의 날이 여전히 살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각자도생’이라는 시대정신을 가장 악랄하게 실천한 정수근, 조광현, 백 신부를 통해 무익한 남성과 약탈적이고 무책임한 체제의 문제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다가 추락시킴으로써 종말을 맞이하게 한 점이 인상적이었다. <아줌마>에서 위선적 남성 지식인의 화신인 장진구를 연기한 강석우가 <종말의 바보>에서는 그런 위선적 인물의 ‘끝판왕’인 종교 권력자 백 신부로 부활한 것을 보게 될 줄이야!

물론 작가는 절망도 인간이 만든 것이지만, 희망도 결국 인간에게서 나온다는 사실도 상기시킨다. 그저 제 살길만 찾는 ‘바보’들이 끊임없이 우리 일상을 위협하고 절망하게 하지만 결국 ‘바보’같이 서로를 지키는 이들을 통해 희망을 발견할 수 있다. 이웃과 일상을 지키기 위해 위험도 마다하지 않는 세경, 윤상, 신부 우성재(전성원), 군인 강인아(김윤혜). 그 네 친구의 ‘다음 세대’인 천동중학교 4인방(그중 ‘상냥한 아이’였던 민호는 죽었지만 남은 친구들은 그를 잊지 않는다). 시민의 안전을 담당하는 군인들과 서로를 돌보는 선량한 마을 주민들. 그리고 최후까지 남아 민원 업무를 감당한 공무원들과 한 명의 미성년 아동이라도 탈출시키려 노력한 부시장 임선주(정연) 등 각자의 자리에서 그저 할 일을 하는 이들 덕분에 종말이 덜 비극적일 수 있었다.

<아줌마>에서 위선적 남성 지식인을 연기한 강석우는 <종말의 바보>에서 종교 권력자 백 신부로 등장했다. 넷플릭스 제공

<아줌마>에서 위선적 남성 지식인을 연기한 강석우는 <종말의 바보>에서 종교 권력자 백 신부로 등장했다. 넷플릭스 제공


지루하고 난해한 면 있지만…

빠른 전개와 스펙터클한 화면이 주목받는 치열한 오티티(OTT)의 세계에서 느리고 진지한 방식을 선택한 <종말의 바보>는 분명 지루하고 난해한 면이 있다. 게다가 뜻하지 않은 주연 배우 리스크로 내용의 상당 부분이 편집돼, 드라마의 어떤 대목은 우리에게 도착하기 전에 이미 어느 소행성과 충돌한 것처럼 조각난 채로 흩어져 있다. 그래서 1화 시청을 시작했어도 ‘정주행’을 마친 이는 드물다. 그럼에도 나는 정성주 작가의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종말’이란 단박에 오지 않는다. 세월호 같은 사회적 참사를 통해, 몇 년 동안 진행된 팬데믹을 통해, 이제는 일상에서 체감하게 된 기후위기를 통해, 무능하고 불의한 가부장 체제와 정치를 통해, 소명을 잃어버린 제도 종교를 통해 우리는 느리게, 때론 격렬하게 종말적 상황을 경험하고 있다. 이 드라마는 이런 우리에게 ‘2026년 소행성 충돌’이라는 근미래에 닥칠 재앙을 보여주며 의미 있는 질문을 던진다. “모든 희망이 사라진 후 희망 없이 어떻게 살 것인가. 그런데 희망은 뭐지? 우리가 남길 것은 뭐지?” 당신의 대답은 무엇인가?

오수경 자유기고가·<드라마의 말들>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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