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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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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다움’ 넘어서기를

40살 미만 국회의원 13명,
그들에게 전 청년 국회의원·청년 연구자들이 당부하는 “이번만은 꼭…”
등록 2020-04-25 07:01 수정 2020-05-07 01:42
2012년 2월,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이 청년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락파티’를 열었다. 연합뉴스

2012년 2월, 19대 총선을 앞두고 민주통합당이 청년 비례대표 후보를 선출하기 위한 ‘락파티’를 열었다. 연합뉴스

180석 ‘공룡여당’의 탄생에 가려 크게 주목받지 못했지만 제21대 국회는 작지만 소중한 한 걸음을 내디뎠다. 1990년대생 3명이 비례대표 의원으로 당선된 것이다. 특히 2명이 27살(류호정 당선자), 28살(전용기 당선자)로 20대다. 이는 정당투표(1인2표)로 비례대표 의원을 선출하기 시작한 2004년 제17대 국회 이후 가장 많은 수의 20대 당선이다. 그동안은 20대 국회의원이라고는 29살로 당선된 김수민 전 국민의당 의원(20대 비례대표, 21대 미래통합당 후보 출마)이 유일했다. 류호정 당선자는 소선거구제가 도입된 1988년 제13대 국회 이후 최연소 국회의원 기록도 세웠다. 역대 최연소 국회의원은 1954년 제3대 국회의원선거에서 26살로 경남 거제에서 당선된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다.
대의기관인 입법부의 구성이 그만큼 국민의 구성과 닮아 있지 않았다. 이번 선거에서 20~30대 당선자는 총 13명(전체 국회의원 300명 중 4.3%). 제20대 국회에선 3명(1.0%), 제19대 국회 9명(3.0%), 제18대 국회 7명(2.3%), 제17대 국회 23명(7.7%)이었다. 2020년 3월 현재 대한민국 총인구 중 20~30대 인구 비율(26.6%)에 턱없이 못 미친다.
어렵게 당선된 이들도 50~60대가 80% 넘게 절대다수를 차지하는 국회에서 정당을 젊게 보이게 하는 장식품처럼 활용되고 ‘용도 폐기’되는 일이 다반사였다. ‘청년정치’라는 말은 여의도에서 ‘화석’이 됐다.
그래서 90년대생 당선자 3명에게 물었다. 왜 청년정치인가. 어떻게, 무엇을 할 것인가. “하루하루가 아까울 것 같아요.” 이번만은 다를 것이라고 의욕을 불태우는 이들이 ‘아재 국회’를 바꿀 수 있을까, 화석이 된 청년정치를 되살릴 수 있을까.
김규남 기자 3strings@hani.co.kr·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21대 총선 40살 미만 국회의원 13명이 당선했다. ‘청년정치인’이라 부른다. 벌써 10년도 더 된 단어, 그러나 여전히 모호한 단어. 모호해서 쉽게 쓰이고 쉽게 잊혔다. 한때 청년 국회의원으로 불렸던 사람, 청년 국회의원이 되고자 했던 사람, 연구자로 이들을 바라보는 사람이 곱씹는다. 청년정치는 무엇인가. 무엇이어야 하나. 이어 “이번만은” 심정으로 청년 당선자에게 바란다.

단 3명에서 13명으로

청년정치 성패에 대한 판단을 누군가 미뤄둔다. 청년 국회의원 당선자는 늘었다. 20대 국회, 나이나마 청년(40살 미만)인 채 당선한 국회의원은 단 3명(김수민, 김해영, 신보라)이었다. 플러스 10명, 그러므로 성과다. 다만 이번 총선 결과를 ‘진짜 청년정치의 시작점’으로 볼 수 있을지는 조심스럽다. “나이가 청년인 당선자는 늘었는데… 청년정치 의제는 실종된 선거였다고 봅니다.”(최태욱 한림국제대학원대학교 교수) 청년 문제는 총선 과정에서 별달리 주목받지 못했다. (국회의원 당선자 가운데) 청년은 많은데 청년 문제는 수그러든 이상한 총선. 판단은 일단 미뤄두기로 한다.

사정이 있었다. 선거는 코로나19라는 유례없는 재난 속에 치러졌다. 깊고 복잡해진 청년 이야기가 들어찰 자리가 없었다. 비례대표용 위성정당이 등장하며 양당제는 공고해졌다. 청년이 선거의 향방 가를 만한 유권자로 부각되지 못했다. “코로나19 속 선거이기도 했고, 정당들이 청년 표심을 두고 경쟁하기에는 특히 수도권에서 여당의 세가 압도적인 상황이기도 했죠. 결국 나이로는 청년인 후보들조차 ‘대통령을 지키자’ ‘여당을 심판한다’ 같은 기존 정치 언어에 갇혀 선거를 치르게 됐고요.”(김선기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

선거와 무관히 세상에서 한층 깊게 여물어온 청년 논의는 아쉬움을 더한다. 지난해 20대 사이에선 혐오 문제와 젠더 불평등이 주목받았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임명 과정에서 ‘공정성은 무엇인가?’ 논쟁도 폭발했다. 이런 일들을 설명하기 위해 책 <불평등의 세대>(문학과지성사)는 386세대의 사회·경제적 독점이 구조화된 사회를 그려 논쟁을 일으켰다. 또 다른 책 <세습 중산층 사회>(생각의힘)는 여기에 386 부모로부터 청년으로 이어지는 부와 가난의 대물림을 분석했다. 선거제도 개편도 있었다. “국회 대표성이 조금 더 확보된다면 청년 문제를 고민하는 사람들의 자리가 더 늘어날 거라는 기대도 들끓었습니다.”(최태욱 교수) 그랬는데, 모두 물거품이 됐다.

그래도 어쨌든 13명. 숫자만큼은 기대를 품게 한다. “일단 수가 많아진 것 자체는 긍정적이라고 봅니다. 수가 많다는 건 그 안에 새로운 주제를 품은 후보들이 포함됐을 가능성이 커졌다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실제 그런 후보들도 보이고요.”(김선기 연구원) 청년의원들 대개 ‘청년 문제’를 앞세워 당선하지 않았지만, 아직은 모를 일이다. 청년정치의 성패는 이들이 실제 국회에서 어떤 청년정치를 펼칠지에 달렸다. 판단은 미뤄졌으되 끝나지 않았다. 이제 시작이다.

결핍되고 바뀌어야 할 집단?

혼란 속에 흐릿해진 청년정치의 의미를 누군가 추스른다. 2000년대 후반 ‘청년이 겪는 세대 문제가 있다’고 주목하기 시작했다. 경제적 문제였다. 취업이 되지 않았고, 각자도생해야 했고, 비정규직을 맴돌아야 했다. 그런데도, 어쩌면 그래서 더 정치에 무관심하다고 여겼다. 반론 섞인 질문이 나왔다. 청년세대는 의미 있는 구분점인가? 왜 계급이 아니라 청년인가? 청년을 대충 20~30대 나이로 설명하는 것은 온당한가? “‘90년대생’은 출신학교, 직업, 소득, 자산, 사회적·문화적 경험에 이르기까지 다중의 불평등을 경험한다. ‘계급의식’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세계관의 차이를 만든다. 따라서 그들은 ‘세대’로 묶을 수 있는 단일한 실체가 아니다.”(조귀동, <세습 중산층 사회>) 한데 묶은 청년이 ‘그들 안’의 격차를 무의미하게 할 우려가 있었다. 그러나 또한 다른 세대에 견줘 줄어든 기회만큼은 공통적이다. “열차 자리 몇 개를 두고 경쟁한다. 구조적 불황이 세대를 집어삼킬지도 모를 상황이니 목숨 건 경쟁일 수밖에 없다.”(이철승, ‘세대, 계급, 위계: 386세대의 집권과 불평등의 확대’, 2019)

정리되지 않은 청년의 모습, 정치의 자리도 불안했다. 청년정치인이라는 사람들,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 사람인지 불분명했다. 역할은 취업이나 등록금 문제, 발랄한 이미지 같은 것으로 한정됐다. 정치권은 어떤 자리에서든 상상 속 청년의 모습을 만들어 활용했다. ‘본래 진보적이어야 할 청년이 정치에 무관심한 성향을 지니고 있어 해소해야 한다’고 했다. ‘미숙함 탓에 선동당해 진보적 성향을 띠었다’고 주장했다. 어느 쪽이든 그저 40대, 50대와 같은 시민으로 청년을 부르지 않았다. “청년세대는 무언가 결핍되어 있고, 무언가 바뀌어야 할 집단 범주로 끊임없이 소환된다.”(김선기, ‘청년세대 구성의 문화정치학’, 2016) 그저 나이가 20대 혹은 30대라면 맞바로 ‘청년정치인’이 되고, “청년 문제라고 선 그어진 것 너머를 고민할 때 제 관심사만 챙긴다는 볼멘소리를 듣기도 했다”(장하나 19대 국회의원). “기성 정치권이 열어주는 만큼만 들쭉날쭉 제도정치의 자리를 차지했다.”(오세제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선임연구원)

청년정치를 다시 정리해내려는 노력이 움튼다. 더불어시민당 비례대표 후보로 출마했던 권지웅 전 민달팽이주택협동조합 이사장은 말한다. “단순히 나이로 청년정치를 이야기하기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기존 울타리로 다수의 시민을 보호하던 사회가 변했어요. 그럼 울타리 밖 시민의 존엄을 고민하는 사람, 그들을 포함해서 새로 울타리를 치는 사람이 필요해요. 이런 일을 내 문제로, 1번으로 고민할 수 있는 사람들한테 붙여야 할 이름이 청년정치인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그는 ‘집 없는 사람들의 정치’를 주장하며 출마했다. 낙선했다. 그래도 구호는 소중하다. 집 없는 청년이라 함께 울타리 바깥에 있는 집 없는 중년, 집 없는 노인의 정치도 상상했다. 누구보다 절박할 자신이 있었다. 국회의원은 못 됐어도 삶에서 고민은 이어갈 테다. 13명 청년 국회의원 가운데, 함께 절박한 누군가를 찾아 도울 것이다.

2016년 1월,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청년 앞으로! 새누리당 2030 공천 설명회’를 열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2016년 1월, 20대 총선을 앞두고 새누리당이 ‘청년 앞으로! 새누리당 2030 공천 설명회’를 열었다. 한겨레 이정아 기자

청년 문제는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다

부딪히며 구한 청년정치의 의미를 누군가 기억한다. 2012년 5월30일, 민주통합당 청년 비례대표 국회의원 장하나(당시 35살)가 국회에 들어섰다. 긴장했다. 또한 다짐했다. “변하지 말자.” 음악이 좋았지만 악기 배우는 데 돈이 많이 들 것 같아 지휘봉 하나만 있으면 될 줄 알고 ‘지휘자’를 장래희망으로 적어냈던 초등학교 6학년, 반지하 자취방과 아르바이트를 돌고 또 돈 대학생, 처음 헌법을 읽으며 모든 게 내 탓만은 아님을 깨친 장애인 활동가, 낮은 학점 탓에 어쩔 수 없이 취업한 영업사원. 모두 변하지 말아야 할 장하나였다. “상임위원회가 몇 개인 줄도 모른 채 얼결에 청년 국회의원이 됐다.” 그래도 잊어선 안 됐다. 평범하게 가난한 채 고민했다는 것만이 정치적 자산이었다. “국회의원이 되기 전 환경·평화 운동에 집중했지만 오히려 의원이 되고 나서 청년 문제를 펼쳐보니 이게 다 가난한 집에서 자란 내가 보고 겪은 문제인 거예요.” 국회의원이 되고 알았다. 왜 당사자가 국회의원이 돼야 하는지. “사실 지금 우리 정당이 정책 정당으로서 고도의 전문성을 가지고 있지는 않아요. 오히려 문제를 제대로 겪어본 당사자가 법조인, 기업가 출신의 이른바 정치 엘리트보다 훨씬 잘할 수 있고 소중하다는 걸 깨달았어요.” 4년의 좌충우돌, 물론 깨달음은 여기 그치지 않는다.

청년 문제는 청년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비정규 노동, 계급 사다리, 지금은 젠더에 이르기까지 모두 얽혀 있는 문제”다. 논의는 있되 정치권에선 대개 뒷순위로 밀리는 주제다. 뒷순위로 밀리는 또 다른 많은 것의 목록을 부여잡는 것 또한 청년 국회의원의 역할이었다. “가습기살균제 피해자, 쌍용차, 강정, 밀양 송전탑, 동물권… 현장에서는 절박한데 기성 정치인들은 논의하지 않는 주제를 계속 던져야 한다는 압박감, 힘없는 젊은 의원이나마 곁에 있어야 한다는 의무감”이다. 분주하게 현장 다녔다. 이쯤 되니 청년으로 불려나온 국회에서 풀어야 할 문제는 더는 내 세대 문제만은 아닌 게 돼버렸다.

정치 문법에 주눅들지 않기

돌아온 청년정치인에게 누군가 기대하고 바란다. 2020년 5월30일. 13명 청년 국회의원이 국회에 들어선다. 긴장하고, 또한 다짐할 것이다. 그 다짐에 하나쯤 얹혔으면 하는 바람을 전한다. ‘당사자 정치인’의 소중함을 되새기기 바란다. 기성 정치권이 그은 청년다움을 넘어서기 바란다. 그렇게 세상에는 있는데 정치에만 없던 문제를 길어 올려주길 바란다. 쉽지 않은 짐, 용기를 북돋고 싶다.

“제가 만났던 20대, 30대 당선자들은 대개 달라진 세상에, 나나 내 주변 사람이 겪는 문제에 기성 정치인보다 훨씬 더 민감한 사람이었어요. 어떨 때는 청년정치인이 내놓는 이야기가 기존 정치 문법에서 보면 어색하고, 그래서 당내에서 호응을 얻지 못할 때도 있을지 몰라요. 그런 순간에 주눅들지 않았으면 해요.”(권지웅 후보자)

“‘청년정치’라는 단어가 가진 의미를, 그동안 정치에서 소외됐던 다양한 가치를 끌어오는 정치로 확장할 수 있다고 봐요. 실제 기본소득을 주장하고 젠더에 대한 고민을 넓히고 당론과는 다른 자리에서 조국 이슈에 대한 입장을 밝히는 몇몇 당선자를 보면 그럴 수 있을 것 같아요.”(김선기 연구원)

“정치는 가진 게 없는 사람이 잘할 수밖에 없는 일이에요. 쟁쟁한 의원들 보면서 나도 걱정했어요. 세금 도둑 되면 어떡하지. 근데 한 달 반 만에 알겠더라고요. 취업 고민도 해보고, 억울하게 망해도 보고, 돈이 없어 초라함도 느껴봤던 당사자가 잘할 수밖에 없는 일이구나. 잘해낼 거예요.”(장하나 전 의원)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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