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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과 여러분, 이삿짐 꾸릴 시간입니다

기후위기 탓에 수시로 이사 다니는 동식물들… 대책회의에 명태는 20년째 안 보이네
등록 2024-04-20 04:23 수정 2024-04-26 12:32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과수원에 붉게 물든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박종식 한겨레 기자

강원도 양구군 해안면 과수원에 붉게 물든 사과가 주렁주렁 매달렸다. 박종식 한겨레 기자


엉망진창행성조사반에 제보가 들어왔어요. 올봄 사과값이 큰 폭으로 오른 이유를 밝혀달라는 거였어요. 사과를 입도선매해 시장 가격에 개입하는 불순한 세력도 있으니 조사해달라고 했죠. 성난 제보자가 말했어요. “심지어 사과를 개한테 간식으로 준다고 합니다. 이렇게 과일값이 비싼데!”

못난이사과 모으는 기후스타트업

“사과값 폭등이 일부 도매상의 사재기 때문이라는 이야기는 예전부터 있었잖아요?”

왓슨 요원의 물음에 홈스 반장이 고개를 갸웃했지요.

“그것만이라고 하기엔 이번에는 좀 심각하지 않은가? 작년보다 3~4배가 뛰었다는데.”

엉망진창행성조사반은 서울 송파구 가락동 농수산물 도매시장으로 향했어요. 후드티를 입은 사람이 5t짜리 화물트럭에 사과를 싣고 있었어요. 화물트럭 앞에는 ‘기후스타트업 개사과’라고 쓰여 있었죠. 왓슨 요원이 달려가 물었어요.

“이렇게 많은 사과를 갖고 어디로 가시죠?”

“사재기 아니라니까 그러시네. 우리는 못난이사과를 모아 파는 기후스타트업입니다. 개사과 아시죠? 이 사과를 개한테 주고 함께 사진 찍어서 보내면 사랑하는 사람에게 미안한 마음을 표현할 수 있답니다.”

“오히려 기분 나쁠 거 같은데….”

“세상 돌아가는 걸 모르시네. 개사과가 얼마나 힙한데. 그거 잘해서 대통령도 된 사람 있잖….”

후드티는 실언했다고 생각했는지, 오른손으로 자기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못난이사과는 ‘비정형과’ ‘흠집사과’라고도 불러요. 재배·운반 중에 갈라지고 찍힌 사과나 못생긴 사과 그리고 비바람에 떨어진 낙과도 수집해요. 세계환경단체인 ‘세계자연기금’(WWF)은 영국 식품유통기업 테스코와 함께 펴낸 보고서에서 매년 25억t의 식품이 먹지 않은 채 버려진다고 밝혔어요. 재배된 농작물 중 약 40%가 먹지 않고 버려진다는 충격적인 수치도 있었죠. 후드티가 신나서 말했습니다. “우리는 개사과로 그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 거예요. 미국의 임퍼펙트푸드는 2015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못생긴 농산물 배달 서비스를 시작해서 지금은 이 분야의 세계 최대 업체로 성장했죠. 미스피츠마켓도 구독 서비스를 운영하는데, 최근 수십억달러의 투자를 유치했어요. 우리는 거기에다가 사과의 마음까지 담아 사과를….”

제보자가 들은 풍문은 오해처럼 보였습니다. 기후스타트업 개사과는 어쨌든 사과값을 안정화하는 데 기여한다고 보는 게 맞았죠. 물론 복잡한 사과 유통 단계가 가격 상승의 원인이 되곤 해요. 기후위기도 함께 거론되는 원인이죠. 마침 한반도에 사는 동식물들이 모여 ‘기후변화에 대비한 동식물 이주 대책회의’를 경북 안동에서 열고 있다는 소식이 들렸죠. 홈스 반장이 말했습니다.

“빨리 가봅시다!”

서울 마포구 공덕시장 인근 한 과일가게에서 손님들이 사과를 고르고 있다. 백소아 한겨레 기자

서울 마포구 공덕시장 인근 한 과일가게에서 손님들이 사과를 고르고 있다. 백소아 한겨레 기자


명태 없는 동식물 이주 대책회의

회의장에는 각양각색의 동식물이 모여 있었어요.

“명태는 20년 가까이 안 보이는구려. 각자 자기 상황을 보고해보세요.”

대책회의 의장인 밍크고래가 회의 시작을 선포하자 오징어가 10개 다리로 총총 뛰어 단상에 올랐어요.

“우리 오징어는 가을과 겨울 각각 대한해협과 동중국해에서 알을 낳은 뒤 봄이 되면 따뜻한 해류를 타고 한반도로 올라옵니다. 그런데 2023년 봄의 동해 수온이 관측을 시작한 이래 42년 만에 가장 높았습니다. 그래서 난류를 타고 더 북쪽으로 올라가기로 했죠. 어부들이 오징어가 없어 한숨을 쉰다고 하더군요. 당연하죠. 북쪽으로 이사 간 오징어가 다수인데.”

이번에는 탄저병 때문에 불참한 사과를 대신해 참석한 안동 농민이 연설했습니다. “우리 사과의 경우 다양한 품종이 있습니다만, 가장 맛좋은 부사로 말할 거 같으면, 분지 지형에서 나는 대구 사과가 제일이었죠. 그런데 지금 사과 주산지는 경북 북부로 올라갔습니다. 전국 5대 사과 주산지가 어딘지 아십니까? 4곳은 경북 안동·청송·영주·의성으로 경북 중·북부이고요. 남쪽에선 유일하게 덕유산과 가야산이 있어서 서늘한 경남 거창입니다.”

참석자들의 보고가 끝나자 밍크고래 의장이 말했습니다.

“오늘 이렇게 모이시라 한 이유는 앞으로 여러분이 살 곳을 바꿔야 하기 때문입니다. 특히 과일 여러분에게 앞으로 이사 가야 할 곳을 알려드릴 겁니다.”

두툼한 보고서를 쥐고 단상에 오른 과학자가 말했습니다.

“모든 과일나무에는 생육에 필요한 적정한 온도가 있습니다. 이를테면 사과와 배는 섭씨 7도 이하에서 1200~1500시간 경과해야 정상적인 재배가 가능합니다. 먼저 사과의 경우 현재 추세대로 인간이 온실가스를 배출하면 2090년대에는 고품질 사과 재배 가능지가 국내에서 없어집니다. 배 여러분도 이삿짐을 꾸리십시오. 2050년대부터 재배 가능지가 줄어들어 2090년대는 살 곳이 거의 없어집니다. 단감에게는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현재 단감의 재배 가능지는 제주도와 남해안 지역으로 전 국토의 9%밖에 안 되는데, 2090년대에는 소백산맥과 강원 영서 지역을 빼고는 전국에서 살 수 있게 됐습니다.”

과학자의 말을 들은 과일들의 희비가 엇갈렸습니다. 배는 고개를 떨궜고, 단감은 활짝 웃었지요.

“사과꽃 필까 겁나, 온도계 들고 밤새울 줄이야”

조사반은 사과를 재배한 지 100년이 됐다는 충남 예산의 사과농장으로 갔어요. 1923년 일본인에 의해 경제작물로 도입된 것이 ‘예산 사과’의 기원이죠. 과거에는 대구 사과, 충주 사과와 함께 한국 사과의 삼위일체를 이뤘죠. 한밤중인데도 농민 한 분이 과수원을 지키고 있었어요.

“아들 녀석 감기 걸렸을 적에 앞으로 또 이렇게 온도계를 들고 밤새울 줄 알았겠소? 사과꽃이 피면 겁나요. 온종일 사과꽃 앞에서 일기예보만 보고 있소.”

사과는 온대지방에서 자라는 과일나무입니다. 추운 겨울을 나기 위해 휴면 상태로 지내다 꽃눈이 발아해 개화에 이르게 됩니다. 문제는 이른 봄입니다. 3월이 너무 따뜻하면 사과나무가 착각해 꽃을 일찍 피워요. 그럴수록 꽃샘추위는 엄혹합니다. 봄이 온 줄 알고 일찍 핀 꽃은 사나흘 반짝 추위가 닥치면 얼어 죽고 말아요. 암술과 수술이 수정돼야 ‘사과’라는 열매가 열리는데, 수정될 기회를 빼앗기는 거죠.

여름도 문제입니다. 덥고 습할수록 병충해가 창궐합니다. 대표적인 게 탄저병이에요. 작은 반점이 사과에 나타나면 주변 나무까지 번지기 마련이어서 과수원에 비상이 걸려요. 마지막으로 가을에 일교차가 커야 합니다. 이때 사과가 빨갛게 익고 달콤해져요. 그런데 9월에 열대야가 일어나면 어떻게 될까요? 사과나무가 저녁에도 활동해야 하는 줄 알고 잠을 안 자서 착색이 안 되고 열매도 실하지 않죠.

서울 가락동농수산물시장에서 사과 등 과일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 가락동농수산물시장에서 사과 등 과일 경매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예산 사과, 이젠 맛볼 수 없을지도

빨리 찾아오는 봄, 고온다습한 여름, 초가을 무더위까지 사과는 기후위기 삼종 세트를 뛰어넘어야 해요. 농부 옆에 있던 예산 사과가 말했습니다.

“우리 사과에게 지금은 전쟁에 준하는 시기입니다. 오락가락한 날씨에 역병이 들끓고…. 기후에 맞춰 이사 가면 되는 거 아니냐고요? 천만의 말씀! 새로 심은 사과나무는 제대로 된 열매를 맺을 때까지는 4년 이상을 기다려야 해요. 아무 데나 가서 집 짓고 사는 인간과 다르단 말입니다.”

과학자들은 기후위기에 강한 사과 품종을 찾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뉴질랜드에 본사를 둔 벤처프루트(VentureFruit)는 더운 기후에서도 건강한 열매를 맺는 브랜드 사과 ‘투티’(Tutti)를 선보였지요. 투티는 스페인의 40도 넘는 낮, 따뜻한 밤을 견디기 위해 개발됐다고 해요.

사과나무가 기후위기에 약해진 이유는 재배종이 상업적 품종으로 집중되면서 유전자 다양성이 떨어진 이유도 있습니다. 1900년 이후 영국의 소규모 과수원 80%가 사라졌어요. 그만큼 소수 품종도 사라졌을 가능성이 크죠. 왓슨 요원이 한숨을 쉬었습니다.

“이러다간 사과를 못 먹는 거 아닙니까?”

홈스 반장이 사과나무를 바라봤습니다.

“기후위기로 작은 과수원들은 점차 경쟁력을 잃게 될 테고 정부는 국제무역을 통해 문제를 풀려고 하겠지. 결국 소수 품종으로 이익을 극대화하는 전략을 취하는 기업만 살아남을 수도 있어. 마치 바나나처럼 말이야. 기후위기가 가둔 악순환에 빠져버리는 거야.”

얼마 뒤 예산에서 안타까운 소식이 들렸습니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사과 재배 농가를 대상으로 블랙사파이어(길쭉한 모양의 씨 없는 포도)와 체리 등 아열대 과수로 재배 과수를 전환하겠다고 예산군이 발표했습니다. 예산 사과는 어떻게 될까요?

남종영 환경논픽션 작가·<동물권력> 저자

 

*본문의 과학적 사실은 실제 논문과 보고서를 인용했습니다.

*엉망진창행성조사반: 기후위기로 고통받는 생물종의 목마름과 기다림에 화답할 수 있기를 바라며 쓰는 ‘기후 픽션’. 격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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