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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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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하면 비로소 보이는 것들

세상에 감사하는 만큼 세상은 그 신비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등록 2018-09-22 08:48 수정 2020-05-02 19:29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일러스트레이션 김대중

샌드라 불럭 주연의 영화 를 보다가 사랑스러운 문장을 하나 발견했다. 편집장이 조수에게 ‘자네도 나처럼 무가당두유라테를 마시냐’고 물어보자 조수는 이렇게 대답한다. “그럼요, 그건 마치 찻잔 속의 크리스마스 같아요.” 찻잔 속에 크리스마스가 가득 차오르는 느낌. 그것은 감사와 찬탄과 경이로움을 나타내는 매우 사랑스러운 표현이었다. 향기로운 커피나 차를 마실 때마다 나는 그 표현이 떠오른다. 아, 이건 찻잔 속의 크리스마스 같아. 찻잔은 사물이자 공간인데 크리스마스는 시간이자 기념일 아닌가. 평범한 사물 속에 특별한 시간을 담는 것, 지금의 한정된 공간 속에 지금이 아닌 특별한 시간의 아름다움을 담는 것. 언제 어디서나 찻잔 속의 크리스마스를 경험할 수 있다면,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상황에서도 찬란하게 빛나는 생의 축복을 발견하는 눈이 생기지 않을까.

감사할수록 건강해지는 몸과 마음

얼마 전, ‘감사’라는 것이 정말로 우리 마음뿐 아니라 두뇌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글을 읽고 뛸 듯이 기뻤던 적이 있다. 이라는 책에서 이런 대목을 발견한 것이다. 스위스의 한 연구팀이 약 1천 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는데 ‘감사하는 마음’의 정도와 ‘건강’의 관계를 밝혀낸 결과, 자주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일수록 몸과 마음이 건강하고, 건강에 도움이 되는 활동에 참여할 확률 또한 높았다. 특히 감사를 구체적인 행위로 표현하는 것이 실제 통증 감소와 우울증 치료에 도움이 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나왔다. 주어진 삶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려는 의지와 연관된 호르몬은 세로토닌인데, 세로토닌이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될 대로 되라, 어떻게든 지나가겠지’ 하는 체념의 태도를 갖게 된다. 감사하는 마음을 자주 표현하면 바로 이 세로토닌 수치가 올라간다. ‘감사하는 마음을 일주일에 한 번씩 일기에 쓰도록 한 그룹’은 ‘힘들고 괴로운 일에 관해 일기를 쓴 그룹’ ‘중립적인 일에 대해서만 일기를 쓴 그룹’에 비해 낙천적이고, 통증이 줄었으며, 운동을 더 많이 하며, 우울증 발생률이 낮고, 무엇보다 ‘다른 사람들과 나는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다는 것이다.

감사할 일이 특별히 생각나지 않을 때조차 아주 작은 것들에 감사하려고 노력할 때마다 세로토닌은 증가한다. ‘내 삶에서 감사해야 할 것들’을 떠올릴 때마다, 더 나은 삶을 위해 뛰어들게 만드는 적극성의 호르몬, 세로토닌은 증가한다. ‘감사해야 할 것들’을 떠올리거나 글을 쓰는 몸짓만으로도 우리 뇌의 초점이 긍정적인 방향, 삶의 아름다운 측면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에 따르면 감사는 수면의 질 또한 개선해준다. 캐나다에서 한 한 연구에서는 불면증을 앓는 대학생들에게 일주일 동안 날마다 ‘감사 일기’를 쓰도록 했는데, 이 단순한 실험만으로도 학생들의 수면 질이 개선되고, 신체적 고통도 줄어들었으며, 만성적인 불안과 우울감이 개선되었다고 한다.

창작의 불꽃 피워올린 기대감

‘내 삶에는 아무것도 좋은 것이 없어’ ‘저번에 실패했으니까 이번에도 실패할 거야’라는 막연한 두려움은 상황을 개선하기는커녕 실제로 우리 몸의 세로토닌을 감소시켜 불행을 느끼는 감각의 촉수를 더욱 활성화한다. ‘이제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아’ ‘내 인생에 무슨 좋은 일이 일어나겠어’라는 무기력한 자세는 마흔 이후의 우리 삶을 갉아먹는 커다란 내면의 위협이다. 설령 실망할지라도 기대를 잃어버리지 않는 삶이 좋다.

나는 최근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일기를 편집한 (위즈덤하우스 펴냄)를 읽으며 소로의 글쓰기가 품고 있는 핵심 주제가 ‘기대’임을 알게 되었다. 숲속의 혹독한 겨울을 견디며 봄을 기다리는 기대감, 전기도 없이 홀로 컴컴한 밤을 지새우며 눈부신 아침이 오기를 기다리는 마음, 작년 이맘때 핀 야생화가 올해도 딱 그맘때 피어주기를 두근두근 설레며 기다리는 마음. 바로 그 기대가 소로의 글쓰기를 밀어가는 아름다운 내면의 원동력이었다. 에서 소로는 이렇게 노래한다. “일출과 새벽뿐만 아니라, 가능하다면 대자연 자체를 기대하라!” 지금이 아무리 어둡고 캄캄한 밤이라도 몇 시간만 기다리면 찬란한 여명이 밝아오리라는 믿음, 그토록 싱그러운 향기를 뿜어내던 아름다운 야생화가 올해에도 반드시 피어나리라는 기대감, 바로 그 믿음과 기대감이 소로를 월든 호수 근처의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위대한 창작의 불꽃을 피워올리게 한 내적 동력이었다.

체로키족의 오래된 전설에는 두 마리 늑대의 싸움에 관한 이야기가 있다. 한 마리는 분노, 질투, 자기 연민, 슬픔, 죄책감, 원한을 나타낸다. 다른 한 마리는 기쁨, 평화, 사랑, 희망, 친절, 진실을 대표한다. 두 늑대의 싸움은 사실 우리 내면에서 벌어지는 싸움이다. 그러면 이 싸움에서 둘 중 어느 쪽이 이길까? 바로 우리가 먹이를 주는 늑대다.

-앨릭스 코브, (정지인 옮김, 심심 펴냄, 2018) 중에서

나는 내 마음속에서 싸우는 두 마리 늑대 중 과연 어떤 늑대에게 먹이를 줄 것인가. 분노와 질투, 원한과 죄책감으로 가득한 늑대에게 먹이를 준다면, 마침내 사랑과 희망, 친절과 기쁨을 표현하는 늑대는 질식해버리지 않을까. 분노나 질투의 ‘싹’이 보일 때마다, 슬픔과 원한의 늑대가 내 안에서 고개를 들 때마다, 나는 그 늑대를 시원한 바람이 부는 들판으로 데려가 쉬게 해주고 싶다. 그리고 평화와 사랑, 진실과 희망을 노래하는 늑대에게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용기를 잃지 않는 힘을 주고 싶어졌다. 그러려면 더 깊은 감사의 마음이 필요하다. 나는 오늘도 느낀다. 감사는 상황 자체를 바꾸지 못하더라도 아주 많은 것을 바꿔낼 수 있는 힘이 있다는 것을. 내 바깥에서 일어난 좋은 일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들리는 좋은 소식에 감사할 줄 아는 일. 막연히 좋은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바라보는 나 자신의 눈에 그득한 감사와 행복을 눈부시게 담아내는 일. 마치 이 세상 무엇을 봐도 그 속에 숨은 아름다움을 발견해내는 보이지 않는 색안경을 낀 것처럼, 이 세상을 아름답게 바라볼 수 있는 힘. 그것이야말로 마흔이 내게 가르쳐준 눈부신 생의 지혜였다.

이 가져다준 것들

올해 처음으로 독자들과 만나 함께 저녁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북 토크는 여러 번 했지만 함께 밥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누는 것은 확실히 더 깊은 친밀감을 느끼게 해주었다. 시리즈를 만들면서 처음으로 나 자신의 한계를 느껴본 힘든 시간이었기에 독자와의 만남이 더욱 뜻깊었다. 독자 한분 한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내가 매달 이렇게 새로운 에세이집을 내는 것이 그분들에게 따스한 위로가 되어주는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 ‘좀더 잘하고 싶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그저 묵묵히 끝까지 해낸다’는 생각에 집중하자 마음이 여유로워졌다. 마흔이 넘어 무언가를 완전히 새롭게 시작하는 것은 힘겨운 도전이다. 도 나에겐 그랬다. 내가 쓰고 싶은 글을 어떤 제약도 없이 자유롭게 쓴다는 장점을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대신, 한 달에 책 한 권을 반드시 출간한다는 엄청난 부담감을 견뎌야 하는 일이었다. 일이 너무 힘들 때는 감사함보다는 피곤함을 더 많이 느끼기도 했다. 이 새로운 도전으로 나는 몸과 마음의 한계를 동시에 느끼며 ‘과연 내가 이 엄청난 도전을 무사히 완수할 수 있을까’ 하는 심각한 두려움을 경험했다.

그렇게 몸의 체력은 물론 마음의 체력에도 한계를 느끼던 중 교도소 수감자 K씨의 손편지를 받았다. 놀랍게도 K씨는 매달 을 읽으면서 자신의 과거를 아프게 되돌아보며 다시 사회로 나갔을 때 새로운 삶을 살 수 있기를 기원하고 있었다. ‘과연 다시 정상적인 사회인의 삶을 살 수 있을까’ 하는 불안 때문에 괴로울 때도 많지만, 그때마다 책을 한줄 한줄 읽으며 매일 조금씩 무언가를 배우고 느끼는 일의 소중함을 깨닫는다는 그분의 사연을 읽으니 독자로 인해 오히려 나 자신이 위로받는 느낌이었다. 나뿐만 아니라 편집자, 디자이너를 비롯한 많은 분들의 땀과 눈물이 모여 만들어낸 책이 누군가에게 커다란 힘이 되고 있음을 알게 되자, ‘어쩌면 여기가 내 한계일지 모른다’라고 믿었던 깊은 두려움이 눈 녹듯 사라졌다. 언젠가부터 독자를 향한 따스한 감사의 마음은 내 안에서 타오르는 글쓰기의 열정만큼이나 소중한 동기부여가 되어가고 있다. 감옥 안에서도 내 글을 읽고 힘을 내는 독자가 있다는 것, 그가 얼마 전에는 오랜 과정 끝에 중요한 자격증을 따서 사회에 무사히 복귀할 수 있는 준비를 마쳤다는 소식에 내 마음도 함께 환해졌다.

나에게는 어렵고 힘들었던 집필과 출간 작업이 누군가에게는 삶의 커다란 응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이 ‘내가 지금 이 순간의 삶에 감사해야 할 이유’로 느껴졌다. 독자의 편지를 통해 내가 더 큰 위로를 받고 있는 느낌이었다. 그 무엇도 씻어낼 수 없을 것 같은 깊은 피로와 권태를 씻어내는 힘도 삶에 대한 감사의 마음에서 우러나오고, ‘벌써 마흔이 넘었구나, 도대체 지금까지 뭘 한 거지?’ 하는 아찔함에 휘청거리는 나를 다잡아준 것도 지금의 이 불완전한 삶 자체에 감사하는 애틋한 마음이었다. 한발 한발 오늘의 피로를 견뎌낼 수 있는 힘, 어쩌면 나 자신이 꿈을 이룰 수 없을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지지 않을 용기. 그것도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한 소유욕과 열등감이 아니라, 내가 이미 지니고 있는 것에 대한 감사에서 우러나왔다.

‘감사’라는 무료입장권

나는 날마다 느낀다. 우리가 더 많은 것에 감사할수록 더 깊은 생의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우리가 세상에 감사하고 놀라워하고 설레는 만큼, 딱 그만큼만 세상은 우리에게 그 신비와 아름다움을 보여준다. ‘감사’라는 무료입장권을 제시하면 세상은 비로소 자신 깊이 숨기고 있던 아름다움과 향기를 보여준다. 그러니 감사라는 입장권은 얼마나 소중한가. 감사라는 입장권을 사는 데는 조금도 돈이 들지 않지만, 이 감사라는 무료 티켓만 있으면 생의 모든 순간을 찬란한 기적으로 느낄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생기지 않는가. 나 자신의 한계를 인정할 줄 아는 솔직함과 그 한계를 뛰어넘을 수 있는 용기, 그 두 가지 모두가 더없이 소중하고 감사한 시간, 마흔이다. 삶이란 이렇다. 알 수 없는 인연의 고리들이 한올 한올 빚어내는 눈부신 감사의 축제, 그것이 바로 삶이 아닐까.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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