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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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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로가 되는 책들 - 좋은 정치는 가능하다

혐오하고 조롱하기 쉬운 앞으로의 5년에 참고가 될 책들
등록 2022-03-12 16:08 수정 2022-03-13 02:52

정치를 혐오하고 조롱하긴 쉽습니다. 눈을 감아버리면 되니까요. 그러나 정치혐오는 또 다른 정치 실패의 무한루프로 귀결될 뿐입니다. 화가 날수록 숙의하고, 상황이 절망적일수록 의지로 낙관할 때, 사람도 사회도 성숙해집니다. 당장의 뉴스 대신 책 속에서 나침반이 될 문장들을 찾아봤습니다. 선거 과정에서 누구를 지지했든, 누구를 증오했든,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시간 속에서 우리가 민주공화국의 시민으로서 더 많은 낙관을 품을 수 있길 바라면서요.

경계할 건 숙고하길 거부하는 사회

<타인에 대한 연민>

(마사 누스바움·RHK)

힐러리 클린턴(민주당)과 도널드 트럼프(공화당)가 겨룬 2016년 미국 대선은 이번 대통령선거 결과를 받아든 우리에게 참고가 됩니다. 미국의 정치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은 당시 분위기를 두고 “선거 결과에 좌절한 많은 미국인들이 세상이 곧 종말할 것처럼 반응하고 있다. 요한계시록에서처럼, 선이 악과 싸워야 하는 종말이 다가오고 있다고 말이다”라고 기록했습니다. 그때 그가 경계한 것은 누가 집권하느냐가 아닙니다. 두려움에 휩쓸려 숙고하길 거부하는 사회입니다. 이 두려움은 누군가에겐 혐오로, 누군가에겐 분노와 시기로 발현되기 때문입니다.

2021년 1월6일 대선 결과에 불복하는 트럼프 지지자들이 미국 워싱턴 국회의사당을 점령한 사건을 기억하시지요? 미국 민주주의가 휘청인 장면에 전세계가 경악했습니다. 이번 대선에서 ‘전부 혹은 전무’ 식의 정치 양극화가 극심했던 한국 사회에서라고 그런 일이 없으리란 법은 없을 듯합니다. 상대방이 집권하는 순간 ‘종말’이 오리라고 생각하는 한 말이죠. 누스바움은 이 책에서 민주주의를 망치는 그런 “두려움의 맹습”을 견디고 민주적 호혜를 보장하는 사회로 가기 위한 구체적인 정치적 삶의 강령을 제시합니다.

“정파에 상관없이 공포는 위험을 과장할 뿐만 아니라 그 과장이 실제 재난으로 이어지는 더 위험한 상황을 만들기도 한다. 삐걱거리는 결혼생활처럼, 진짜 문제가 무엇인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한 숙고를 두려움과 의심이 압도해버린다. 그 감정 자체가 문제가 되어 경청과 노력과 협력을 가로막는다.”(29쪽)

“해로운 정보 폭포의 해결책은 무엇인가? 정확한 사실과 이를 토대로 한 공개 토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것은 시민으로서 반대할 수 있는 독립 정신이다. (중략) 두려움은 사람들을 지도자의 품이나 동질 집단의 품에서 위로를 구하며 숨어들게 만든다. 문제를 제기하게 되면 혼자 발가벗고 있는 것 같은 느낌을 받는다.”(81쪽)

“우리는 보복에 대한 환상 없이도 부당함에 단호하게 반대하는 정신을 유지할 수 있다. 이 미래지향적 전략은 위법행위에는 반대하되 이를 암울한 세계경제, 아웃소싱, 자동화 등의 원인으로 지목하지 않는 것이다. 무력감을 비난으로 대체하지 않지만 절망에도 굴복하지 않는다.”(123쪽)

쪼개진 사회에서 보여줄 최상의 정치

<정치를 옹호함>

(버나드 크릭·후마니타스)

신문과 방송을 보면, 정치가 모든 악덕의 근원인 것처럼 여겨질 수 있습니다. 여의도 국회의사당엔 300명의 세금 도둑이 모였다고 혀를 찰 수도 있습니다. 역대 대통령들마저 정책 실행이 지연되는 책임을 모두 여야의 정쟁에 가뿐히 몰아주곤 했습니다. 역사적으로 정치는 언제나 도전받았습니다. 전체주의와 민족주의, 기술만능주의, 때로 정치의 친구들(‘비정치적 보수주의자’와 ‘정치에 무관심한 자유주의자’, ‘반정치적 사회주의자’)로부터도요. 영국을 대표하는 정치학자 버나드 크릭은 “전혀 안전하지도 효율적이지도 않은 장애물”로 간주하는 공격들로부터 ‘정치’를 뜨겁게 옹호합니다.

정치는 비용이 많이 듭니다. 결과에 비해 과정은 지난합니다. 당선자 역시 승리의 경험에 도취하는 순간 정치의 과정을 귀찮은 장애물로 여길 위험이 큽니다. 반대자를 만나 설득하고, 야당에 기꺼이 정보와 자리를 내줄 수 있는 정치인, 정치를 옹호하는 정치인이 필요합니다. 대통령은 갈등으로 쪼개진 우리 사회에서 최상의 정치를 보여줘야 할 사람일 겁니다.

“정치란 지저분하고, 따분하며, 결론이 없고, 엉망으로 뒤엉키는 일이다. 거기에는 확실성을 추구하는 열정이나 전체주의적 지식인들을 괴롭혔던 전세계를 뒤흔들어놓을 매력적인 질문들은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것은 적어도 최악의 정치적 상황에서도 한 인간에게 무엇인가를 할 수 있는 선택의 기회를 주고, 일단의 다양한 공동 경험과 그 자신의 영혼을 통해 무언가를 할 수 있는 능력을 제공한다.”(88쪽)

“보수주의자가 기대가 너무 적은 사람이라면, 자유주의자는 기대가 너무 많은 사람일 것이다. 자유주의자는 어떤 비용이나 고통 없이 정치의 모든 열매를 즐기고자 하는 사람이다. 그는 열매를 수확하기를 바라지만, 수확한 후에는 그것들을 정치와의 접촉이라는 위험으로부터 보호하려 한다.”(205쪽)

육아 고민부터 의원들에게 직접 전화 걸기까지

<약속의 땅>(버락 오바마·웅진지식하우스)

그렇다면 좋은 정치란 무엇일까요. 정치발전소 학교장으로 대중에게 정치를 널리 알려온 정치학자 박상훈은 “정치가라면 대중의 실제 경험세계와 소통할 수 있는 튼튼한 다리를 만들고 뚜벅뚜벅 건너서 자신의 길을 넓혀나갈 수 있어야” 한다고 짚었습니다. 이번 대선 과정에서 각 진영은 그런 구실을 충분히 해냈을까요. ‘이대남’의 여성혐오 정서에 편승하거나, 지지율에 흔들려 부동산 등 주요 정책을 두고도 말을 바꾸기 일쑤였습니다. 선거 과정이었으니 취임 뒤 새로운 정치력을 기대해볼 따름입니다.

전문가들의 긍정적 평가와 국민의 사랑을 받으며 8년의 임기를 마무리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의 선거·재임 기간을 다룬 회고록은 ‘대통령의 좋은 정치는 가능하다’는 기대를 줍니다. 내각을 꾸리는 과정에서의 섬세한 고민부터 백악관에서의 ‘육아’ 같은 인간적 문제(!)까지 다루는 동안 오바마는 “정치는 잔혹했다”고 말하면서도 끝내 최선의 길을 찾는 리더의 태도를 잃지 않습니다. ‘오바마케어’로 불리는 전국민 건강보험법을 통과시키기 위해 의원들에게 직접 전화를 돌려 협조를 구하는 겸손한 자세도요. 정치는 좋은 것이고, 좋은 정치는 가능하다는 것. 우리도 확인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 니다.

“내가 금세 발견한 대통령직의 특징은 내 책상에 놓이는 국내외 문제 중에서 깔끔한 100퍼센트짜리 해법이 있는 문제는 없다는 점이다. (중략) 그 대신 나는 끊임없이 확률과 씨름했다. 이를테면 아무것도 안 하기로 결정했을 때 재앙을 맞을 확률은 70퍼센트, 이 방법 저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할지도 모르는 확률은 55퍼센트, 어느 쪽을 선택해도 전혀 효과가 없을 확률은 30퍼센트, 문제를 악화시킬 확률은 15퍼센트라는 식이다. 이런 상황에서 완벽한 해결책을 좇으면 도리어 옴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된다. 반면에 직감에 너무 자주 의존하며 선입관이나 정치적 저항이 가장 적은 경로를 판단의 지침으로 삼고는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실을 취사선택하게 된다.”(387쪽)

“나는 날마다, 때로는 오벌 오피스(집무실)에서 대개는 전화로 이들(의원들)과 일대일로 대화하느라 많은 시간을 보냈다. (중략) 돌려말하긴 했어도 의원들이 원하는 것은 명확함이었다. 그들은 자신이 누구인지, 자신의 양심에 무엇이 필요한지 알고 싶어 했다. 이따금 나는 그들이 전개하는 찬반 논리에 귀를 기울였다.”(547쪽)

엄지원 기자 umkij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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