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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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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로를 믿자, 거기에 노래가 도움 되기를

누가 대통령이 되든 말없이 듣고 싶은 노래들
등록 2022-03-12 16:27 수정 2022-03-13 02:58
4:18 The ebs space_621회_송창식 <우리는> EBSCulture (EBS 교양)

4:18 The ebs space_621회_송창식 <우리는> EBSCulture (EBS 교양)

대선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모르고 쓴다. 그래도 말할 수 있다. 참 재미없는 대선이었다. 정말 답답한 대선이었다.

지지하는 후보의 지지율이 한참 낮았기 때문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대선은 이런 게 아니었다. 대통령 후보와 배우자가 어떻게 살아왔는지가 가장 중요한 대선을 원한 적이 한 번도 없다. 내가 원하는 대선은 지금 가장 중요한 문제를 두고 치열하게 논박하는 대선이었다. 기후위기를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불평등을 없애려면 어떤 정책이 필요한지, 수도권과 타 지역의 불균형을 5년 안에 누가 더 많이 줄일 수 있는지 논쟁하는 대선이었다. 대한민국에서 좀처럼 호명하지 않는 이름을 불러주는 대선이어도 좋지 않았을까. 대통령 후보가 노인, 농민, 비정규직, 성소수자, 이주노동자, 장애인, 청소년을 만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대선 말이다. 앞다퉈 권력형 성폭력 피해자에게 사과하고, 고 변희수 하사의 가족을 위로하고, 현장실습 도중 숨진 홍정운군의 사망 현장을 찾는 대선이면 안 될 이유가 어디 있었을까.

하지만 선거판은 자꾸 거꾸로 가고 망가졌다. 그러다보니 선거가 가까워질수록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는 생각만 가득해졌다. 이 글을 읽을 즈음이면 누군가는 승자가 되고, 더 많은 이는 패자가 되었을 텐데 그 누구도 이겼다 말하기 어려운 대선이었다. 요란하고 시끄러웠지만 추억 하나 남지 않은 대선이 끝난 오늘,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수북이 쌓인 흔적을 치운 뒤, 이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에 잠기는 기분으로 몇 곡의 음악을 골라본다.

다만 함께 음악을 듣기 전에 잠시라도 침묵하자고 제안하고 싶다. 짧은 대선 기간 우리는 너무 많이 말했다. 너무 많이 들어야 했다. 그러니 잠시 고요해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 쏟아냈던 말들을 돌이켜보며 과했던 말들을 부끄러워할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비어야 울림이 생긴다.

‘우리’라는 실체의 확인

❶ 송창식의 <우리는>

원고 청탁을 받고 가장 먼저 떠오른 곡은 송창식의 <우리는>이었다. 송창식이 1983년 발표한 음반의 첫 번째 곡. “우리는 빛이 없는 어둠 속에서도 찾을 수 있”다며 시작하는 노래. 운명적인 만남과 관계의 충만함을 노래하는 곡이 떠오른 이유는, ‘우리’라는 실체를 확인하고 싶기 때문이다. 우리를 다시 만들어가고 싶기 때문이다. 대선 기간 내내 우리는 너무 많이 갈라지고 흩어졌다. 아니 대선 전부터 어떤 정당을 지지하는지에 따라 자른 두부처럼 숭덩숭덩 쪼개졌다.

사실 그동안 한국인들은 “우리는 하나”라는 말을 너무 많이 들었다. 한 민족이고 한 핏줄이니 일치단결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여야 한다는 게 정언명령처럼 무의식화됐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이제 지향해야 할 우리는 그런 우리가 아니다. 서로 의견이 달라도 존중하는 우리,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는 우리다. 그렇지만 지난 5년은 서로를 혐오하고 외면하는 일로 채워지기 일쑤였다. 이념이 다르고 삶의 방식이 다르면 말도 걸지 않았다. 나는 다르다고 말해야 할 필요가 있고 차이를 존중하고 인정해야겠지만, 이제는 차이와 다름만 확인하지 말고, 무엇이 같은지 이야기하면서 함께 꾸어야 할 꿈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그 꿈으로 우리를 묶어야 하지 않을까. 굳이 국민 통합 같은 말은 쓰지 말고.

5:20 오지은 <작은 자유> (Bonus Track) deux19921997

5:20 오지은 <작은 자유> (Bonus Track) deux19921997

누구의 자유도 하찮지 않으니

❷ 오지은의 <작은 자유>

송창식의 노래가 끝난 뒤 이어서 듣고 싶은 곡은 싱어송라이터 오지은의 <작은 자유>이다. 티베트 평화를 바라며 만든 포크 곡이다. 2022년 2월26일 국회 앞에서 열린 차별금지법 제정 촉구 집회 무대에서 오지은은 이 노래를 부르다 감정이 격해져 제대로 노래를 부르지 못했다. 차별금지법 제정이 늦어지면서 막지 못한 수많은 죽음이 떠올랐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우크라이나에서 벌어진 전쟁으로 죽는 사람들과 자기 땅을 떠나야 하는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한국도 평화롭다거나 안전하다고만 말할 수 없지만, 지금 어떤 나라에서는 삶과 죽음이 순식간에 뒤바뀌고 있다. “지구라는 반짝이는 작은 별에서/ 아무도 죽임을 당하지 않길” 바라는 이들의 마음이 미어진다. 그래서 대선 기간에도 많은 이가 우크라이나와 국제구호기구를 위해 모금했고 집회를 열었다. 하지만 “너와 따뜻한 커피를 마실 수 있다면” 하는 일상의 사소한 바람은 지금 산불 피해를 입은 강원도 지역의 이들에게도 쉽지 않은 일이 되어버렸다. 누구의 자유도 하찮지 않으니 결코 흔들리지 않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듣고 싶은 노래다.

4:07 ‘9와 숫자들’ <죽지는 마> (Stay Alive) Official M/V (DIRECTOR’S CUT) ORM ENT.

4:07 ‘9와 숫자들’ <죽지는 마> (Stay Alive) Official M/V (DIRECTOR’S CUT) ORM ENT.

‘적어도 나를 바꿀게’

❸ ‘9와 숫자들’의 <죽지는 마>

오지은의 간절한 마음은 ‘9와 숫자들’의 노래 <죽지는 마>로 이어진다. 모던록 밴드 ‘9와 숫자들’이 2021년 12월 발표한 음반 《토털리 블루》의 수록곡이다. “난 세상을 바꿀 수 없어/ 무엇도 해낼 수 없어/ 널 괴롭히는 어둠에/ 맞설 용기조차 없지만/ 적어도 나를 바꿀게/ 조금이나마 너를 위하는 사람으로/ 울어도 돼/ 부숴도 돼/ 싸워도 괜찮아/ 죽지는 마”라는 노랫말을 찬찬히 읽어보자. 지금 왜 이 노래를 함께 들으려는지 수긍할 것이다. 선거가 끝나도 삶은 이어진다. 세계 최고 수준의 자살률이 가능한 사회의 절망 앞에서 우리는 대통령만 바꾸는 게 아니라 자신의 태도와 삶을 바꿔가야 하지 않을까. 공감이거나 연대이거나 연민 혹은 사랑이라고 불러도 좋을 마음을 더 닦고 넘치게 해야 하지 않을까.

4:51 이한철 <슈퍼스타> [올댓뮤직(All That Music)] ALLTHATMUSIC

4:51 이한철 <슈퍼스타> [올댓뮤직(All That Music)] ALLTHATMUSIC

고민과 열정을 모으고 잇기 위하여

❹ 이한철의 <슈퍼스타>

마지막으로는 이한철의 <슈퍼스타>를 듣고 싶다. 이한철이 2005년 발표한 음반 《오거닉》(Organic)의 수록곡으로 인기 드라마에 삽입됐을 뿐 아니라 촛불집회 등에서도 이한철이 곧잘 불렀다. 이 노래를 고른 이유는 단순하다. “괜찮아 잘될 거야/ 너에겐 눈부신 미래가 있어”라는 노랫말 때문이다. 사실 요즘 세상은 낙관하거나 안심하기 어렵다. 코로나19 팬데믹은 벌써 3년째이고 기후위기는 여전하다. 우리가 이 많은 문제를 죽기 전에 해결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희망이 없지 않다. 역대 최고 수준인 사전투표율이 희망이 아닐 리 없다. 다들 고민하는 것이다. 그 열정을 모으고 잇지 못했을 뿐이다. 그러니 네가 나와 달라서 안 된다고, 될 리가 없다고 생각하지 말고 만났으면 좋겠다. 서로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고, 서로를 응원했으면 좋겠다.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서로를 믿는다고 이야기했으면 좋겠다. 그 순간 노래가 힘이 될 수 있기를.

서정민갑 대중음악의견가




추억 없는 대선이 끝난 날 듣는 플레이리스트

❶ 4:18 The ebs space_621회_송창식 <우리는> EBSCulture (EBS 교양)
❷ 5:20 오지은 <작은 자유> (Bonus Track) deux19921997
❸ 4:07 ‘9와 숫자들’ <죽지는 마> (Stay Alive) Official M/V
(DIRECTOR’S CUT) ORM ENT.
❹ 4:51 이한철 <슈퍼스타> [올댓뮤직(All That Music)] ALLTHATMU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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