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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은 정말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허구를 말할 수 있는 존재’ 인간, 말이 인간의 장점인지 약점인지 혼란스러운 요즘
등록 2021-10-31 05:37 수정 2021-11-01 07:04
사람은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듣고 말하는 능력을 훈련한다. 놀이 공간에서 엄마와 아이가 함께 탑을 쌓고 있다. 한겨레 자료

사람은 긴 시간에 걸쳐 서서히 듣고 말하는 능력을 훈련한다. 놀이 공간에서 엄마와 아이가 함께 탑을 쌓고 있다. 한겨레 자료

과학 발전이 인류에게 가져다준 통찰 중 하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그다지 특별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이었습니다. 코페르니쿠스의 생각의 전환은, 지구를 신의 은총으로 만들어진 유일무이한 땅에서 우주에 존재하는 별들, 즉 아보가드로수(6.02×1023개)만큼 많은 행성 중 하나일 뿐임을 우리에게 알려줬습니다. 또한 다윈의 진화에 대한 관점은, 인간이 만물의 영장으로 신의 형상을 본떠 만든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 그저 디엔에이(DNA)라는 분자가 38억 년 동안 자신을 복제하면서 만들어낸 수많은 생물체의 표현형 중 하나임을 알게 했고요. 인류학 발전은 우리 인간 종 호모사피엔스가 유일한 인류가 아니며, 다만 오랜 세월 살아남아 집단을 유지한 유일한 ‘현생인류’임을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과학 발전을 통해 인간이 스스로를 우월하다고 여겨왔던 많은 통념이 여지없이 깨져나갔지만, 여전히 인간의 고유한 점은 남아 있습니다. 바로 ‘말’입니다.

죽어서까지 다른 개체 보호하는 개미

물론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명체들이 의사소통 자체를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매미는 옆구리에 있는 진동막을 초당 300번 이상 진동시켜 특유의 ‘맴맴’ 혹은 ‘찌르르르’ 소리를 내어 이성의 짝을 부릅니다. 개구리는 입과 식도 사이의 인후(목구멍) 벽에 있는 얇은 막인 울음주머니를 부풀린 뒤 공명 현상을 이용해 소리를 내고, 여치는 앞날개 양쪽에 있는 마찰편을 긁어서 소리를 내고 이를 울림판을 이용해 증폭합니다. 사람 귀에는 들리지 않지만, 돌고래는 초음파로 신호를 주고받고 심지어 깜깜한 동굴 속을 날아다니는 박쥐는 초음파를 이용해 동굴 지형과 먹잇감을 귀로 보면서 살아갑니다. 꼭 소리만이 의사소통 도구로 쓰이는 건 아닙니다. 반딧불이는 루시페린이라는 발광물질을 이용해 작은 불빛의 깜빡임으로 의사소통하며, 꿀벌은 공중에서 특정한 모양을 그리며 춤춰 다른 벌에게 꽃이 많은 곳을 알려주기도 하지요.

때로는 화학물질을 이용합니다. 집을 떠나 먼 곳으로 먹이를 찾아나섰던 개미가 길을 잃지 않고 돌아올 수 있는 건 개미가 방출하는 페로몬이라는 화학물질 때문입니다. 이 물질의 냄새를 따라가다보면 집이 나오게 마련이니까요. 그런데 개미는 죽으면 더 이상 페로몬을 방출하지 못하고, 체내 지방이 분비되면서 올레산이 만들어져 체취가 바뀝니다. 그러면 다른 개미들은 동료의 죽음을 인지하고 이 사체를 물어 개미굴 밖이나 폐기물을 저장하는 방으로 옮겨서 혹시나 있을지 모를 감염병의 위험에서 다른 개체들을 보호하는 행동을 보이기도 합니다. 개미에게 냄새란 죽음 이후까지 동료들과 의사소통하는 수단인 셈이죠.

화학물질을 이용한 의사소통은 특별한 발성기관이나 발광기관이 없고 움직이지도 못하는 식물에 유난히 두드러집니다. 곤충이 식물의 잎을 갉아먹으면 잎에서는 스트레스호르몬의 일종인 자스몬산이 만들어집니다. 자스몬산은 식물 세포벽을 더욱 단단하게 만들어 곤충이 갉아먹기 어렵게 할 뿐 아니라, 곤충의 소화작용도 방해하지요. 심지어 어떤 식물은 애벌레에게 갉아먹히면 이들의 천적인 노린재를 유혹하는 냄새물질을 공기 중으로 뿜어내기도 하고, 처음부터 개미가 좋아하는 달콤한 수액을 내뿜어 개미가 상시 주변에서 경계를 서게 함으로써 다른 해충의 침입을 막는 식물도 있지요. 이처럼 생물체는 다양한 방식으로 의사소통하며 살아갑니다.

매미는 옆구리 진동막으로, 돌고래는 초음파 신호로 의사소통한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매미는 옆구리 진동막으로, 돌고래는 초음파 신호로 의사소통한다. 한겨레 김봉규 선임기자

말은 못해도 다 알아듣는

애초에 생물이란 결코 홀로 존재할 수 없기에, 살아가면서 접하는 다양한 타자와 긍정적이든 부정적이든 관계를 맺고 의사소통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인간은 ‘말’이라는 세밀하게 분절된 의사소통 수단을 통해 먹이 활동과 번식 행동, 천적과 아군의 구분 등 생존에 필요한 의사소통의 수준을 넘어 추상적인 개념을 전달하고 예술적 아름다움을 찬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물리적 타격이 없어도 말로 얼마든지 치열하게 싸울 수도 있고, 심지어 상대에게 절대 잊을 수 없는 마음의 상처를 남기거나 상대가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하는 것도 가능합니다. 그저 말로써 말이죠. 그러니 인간은 이 세상에서 유일하게 ‘허구를 말할 수 있는 존재’의 위치를 여전히 유지하는 셈입니다.

인간이 말할 줄 아는 생물이라고 해서 인간의 아이들이 말하면서 태어나는 것은 아닙니다. 아이들은 ‘말할 수 있는 능력’은 가지고 태어나지만, 그 말을 자유자재로 하려면 수년의 세월과 수많은 반복학습을 거쳐야 합니다. 아기는 가능성만 가지고 태어날 뿐, 언어를 이해하는 지적인 능력과 실제 말할 수 있는 신체적 능력은 발달 과정을 통해 서서히 이뤄집니다. 흥미로운 점은 자유자재로 말할 수 있는 두 가지 능력, 즉 이해력과 신체적 협응력 중 먼저 발달하는 게 이해력이라는 것입니다.

아이들이 아장아장 걸어다니던 시절이 생각납니다. 엄마, 아빠, 맘마, 무(물), 어야(밖에 나가자) 정도밖에 말하지 못하는 꼬꼬마 시절에도 “잠자러 갈 시간이야”라고 말하면 싫다고 도리질을 쳤고, 할머니와 할아버지 혹은 이모님께 손에 든 것을 갖다드리라고 하면 정확히 그 사람에게 물건을 가져다주는 모습을 보며 어른들이 “아기들이 말문은 안 트였어도 귀는 다 트였다”고 하시던 말씀이 생각나 신기했던 기억이 떠오릅니다.

매미는 옆구리 진동막으로, 돌고래는 초음파 신호로 의사소통한다. REUTERS

매미는 옆구리 진동막으로, 돌고래는 초음파 신호로 의사소통한다. REUTERS

말하려면 구강·혀·입술 다 필요하기에

책 <언어의 아이들>(조지은·송지은 지음, 사이언스북스, 2019년)에 따르면 아기들은 생후 1~4개월이면 언어를 구성하는 최소 단위인 음소(Phoneme)를 구별해 유성파열음 ‘ㅂ’과 무성파열음 ‘ㅍ’을 구분하는 범주지각을 갖출 수 있다고 합니다. 아기는 6개월이 되면 모국어와 외국어를 구분할 수 있고, 두 돌쯤이면 단어의 어근을 분리해서 과거형을 만들 줄 알고, 네 돌이면 두 문장 이상이 붙은 복문을 해석할 줄 아는 수준이 됩니다. 이 시기가 되면 아는 단어가 부족해 더 많은 말을 못하는 거지, 문장구조에 대한 이해는 거의 성인과 비슷해진다는 거죠.

하지만 그에 비해 말하는 것은 늦습니다. 애초에 옹알이할 수 있는 것 자체가 생후 백일 전후에야 가능하고, 타인이 분명히 인지할 정도로 분명한 단어를 말할 수 있는 것은 돌쯤에나 가능합니다. 심지어 정확한 발음으로 말하는 것은 이보다 훨씬 늦습니다. ‘엄마, 사랑해요’를 ‘엄마, 따랑해요’가 아닌 정확한 발음으로 하기는 여섯 살이 넘어야 가능하다는 거죠. 아, 물론 이 나이가 지나면 이런 말은 할 줄 알면서도 일부러 안 해주기 때문에, 운이 없다면 평생 몇 번 듣지 못할 수도 있답니다.

이처럼 귀보다 입이 늦게 트이는 건 신체구조상의 문제입니다. 발음을 분명하게 하기 위해서는 성대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구강·혀·입술 등 조음기관과 이들의 운동을 조절하는 근육의 세밀한 조정 능력이 완전히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제대로 발음되지 않는 거죠. 우리나라 아동의 소리 발달 양상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아기들은 ‘비음 - 파열음 - 파찰음 - 유음 - 마찰음’ 순서대로 말할 수 있다고 합니다. 이를 음소로 표기해보면 대략 ‘ㄴ/ㅁ/ㅇ - ㅂ/ㅃ/ㅍ, ㄷ/ㄸ/ㅌ, ㄱ/ㄲ/ㅋ - ㅈ/ㅉ/ㅊ - ㄹ - ㅅ/ㅆ/ㅎ’ 순서가 됩니다. 괜히 아이가 제일 처음에 하는 말이 엄마, 아빠, 맘마, 까까가 아닙니다. 그 말이 제일 쉽게 발음할 수 있기 때문이죠.

인간의 특성 중 하나가 말할 수 있다는 것이기에 이와 연관된 장애나 심각한 문제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는, 아이들은 성장 과정에서 비약적으로 언어를 익히고 사용합니다. 여기에는 절대적 조건이 하나 있습니다. 누군가가 끊임없이 아이에게 말을 걸어주고 답을 해줘야 하는 것입니다.

아동학대의 희생양으로 언어 발달의 절대적 시기가 있다는 사실을 알려준 지니(Ginie)의 사례처럼 조음·발화 능력에 이상이 없어도, 오랜 시간 다양하게 말을 걸어주지 않으면 아이는 제대로 말할 수 없게 자랍니다. 아이는 부모 혹은 주변에 있는 이들이 말할 때 그것을 모방하면서 말을 익힙니다. 소리와 의미뿐 아니라 말이 발화될 때의 분위기, 표정, 태도 역시 따라 하지요. 동물 중 인간의 뇌에서 유독 발달한 거울신경이 모방을 통한 학습으로 언어를 익히는 데 중요한 구실을 하기 때문이죠. 또한 말은 상호적인 특성이 있습니다. 누군가가 아이에게 말을 걸고 그 말을 되받아줘야 합니다. 그래서 매체를 통해 일방적으로 단어를 익힌 아이는 상호작용 속에 말을 익힌 아이보다 말의 핵심을 파악하는 능력이나 행간을 읽는 능력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고 합니다.

거친 단어, 날 선 어조, 막말…

어린 시절은 언어 학습기의 결정적 순간이며, 이렇게 형성된 언어습관은 오랫동안 지속되고 어떤 이 특유의 말투와 말버릇을 만들어냅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어린 시절에 이미 끝냈어야 하는 말투와 말버릇 습관을 어른이 된 지금도 제대로 익히지 못한 사람을 종종 봅니다. 거친 단어와 날 선 어조로 타인을 깎아내리고 막말로 마음을 후벼 파면서 동시에 다른 이가 말하는 바의 핵심을 전혀 파악하지 못하거나 곡해하면서도 이를 인지조차 못하는 이가 너무 많아서, 과연 말할 줄 아는 능력이 인간의 장점인지 약점인지 혼란이 올 지경입니다. 그저 말뿐이었다고 하기 전에, 고작 그 말 한마디 때문에 사람들에게 등돌림 당하고 잊힌 사람이 얼마나 많은지를 한 번 더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이은희 과학커뮤니케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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