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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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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극으로 들어선 부동산, 슬픈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

4년간 강남3구 연평균 1만3천 세대 공급의 영향력은? 거래 절벽은 해소될까?
부동산 애널리스트 등 전문가에게 물어보니
등록 2023-01-16 08:33 수정 2023-01-19 02:35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올림픽파크 포레온) 재건축 현장 모습.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단지’로 관심을 끌었지만 2022년 12월 일반공급 1순위 청약에서 평균 경쟁률 3.69 대 1의 낮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서울 강동구 둔촌주공아파트(올림픽파크 포레온) 재건축 현장 모습. ‘단군 이래 최대 재건축 단지’로 관심을 끌었지만 2022년 12월 일반공급 1순위 청약에서 평균 경쟁률 3.69 대 1의 낮은 경쟁률을 기록했다. 연합뉴스

2023년 부동산 가격이 하향하리라는 전망이 많다. 한국은행이 인플레이션(물가상승)을 잡기 위해 기준금리를 3.25%까지 올렸고, 시중은행의 주택담보대출 금리가 연 5~7%에 육박하면서 이자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자 부담과 경기침체에 따라 아파트값이 앞으로 더 떨어지리라는 예측이 힘을 얻으면서, 1년 전만 해도 ‘완판’ 행진을 이어가던 아파트 청약에도 미분양이 속출하고 있다.

정부는 2023년 1월3일 전방위적인 부동산 규제 완화 조처를 꺼내들었다. 서울 강남3구(강남·서초·송파구)와 용산구를 제외한 모든 투기과열지구·조정대상지역 등 규제 지역을 풀고 대출·세금·청약 규제를 대폭 완화했다. 10년 재당첨 제한, 분양권 전매 제한(3~5년) 등 청약 관련 규제가 풀리고, 2주택 이상 다주택자의 취득세·양도소득세·종합부동산세 중과 등 세금도 줄이겠다고 했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런 규제 완화에 대해 1월4일 “집값이 비정상적으로 높아 부담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라는 입장은 확고하다”면서도 “떨어지는 칼날을 맨손으로 잡지는 않으니 장갑을 주든지 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동산시장의 경착륙을 막아야 한다는 취지였다.

고금리와 DSR를 못 바꾸므로

금리 상승뿐만 아니라 서울 강남권에 아파트가 대규모로 공급됨에 따라 향후 집값이 하향 안정되리라는 분석이 최근 부동산시장에서 주목받고 있다. 이전엔 서울의 좋은 입지에 공급이 부족해 아파트값이 치솟는다는 논리가 대다수였는데, 반대되는 분석이 나온 셈이다.

배문성 이스트스프링자산운용 크레딧애널리스트(채권분석연구원·사진)는 “강남3구에 향후 4년간 연평균 1만3천 세대가 나온다”며 “서울 아파트는 희소성 덕분에 (계속) 가격이 오른다는 건 잘못된 생각이라는 학습 기회가 찾아올 것”이라고 했다. 1월9일 배 연구원을 만나, 부동산시장 전망을 들었다.

정부가 부동산 규제를 대폭 풀었다. 2023년 부동산 가격이 하락세라는 전망이 바뀔까. 

“큰 틀에서 하향 기조가 바뀌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고금리와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개인이 갚아야 할 모든 원금과 이자를 더한 값을 연간 소득으로 나눈 비율)을 정부가 바꾸지 못하고 있다. 금리를 지금 마음대로 내릴 수 없는 형국이고 미국 금리 상황을 봐야 한다. 수요자 입장에선 매수에 나서는 데 (이것이) 가장 큰 걸림돌이기 때문에, 다른 곁가지를 풀어봐야 수요를 진작하는 데 한계가 여전히 크다.”

서울 강남권에 대규모로 아파트가 공급되면서 전체 부동산시장을 하향 안정화시킬 것이라고 한 주장이 최근 관심을 끌고 있다. 

“분명히 하향 안정화에 크게 기여할 것이다. 강남에 아파트 몇 채가 공급된다고 보지 말고 P(분양가)×Q(물량)로 따져봤을 때 (시중 유동성을 강남으로) 빨아들이는 효과가 생긴다. 2008년부터 2021년까지 강남3구의 연평균 입주 물량이 아파트 기준으로 7천 세대가 안 됐는데 향후 4년간 연평균 1만3천 세대 정도가 나온다. 특히 반포 지역에 1만4천 세대가 나오는데 반포에서 그만한 물량이 나온 건 전례가 없다. 반포 (아파트) 분양가를 생각하면 어마어마한 물량이다.”

사진=이완 기자

사진=이완 기자

배 연구원은 역사적으로 분석해보면 서울에 고가 아파트 단지 입주가 시작된 뒤 부동산시장이 상당 기간 하락세였다고 했다. 예를 들어 20억원짜리 아파트 1만 채가 들어서면 20조원에 달하는 돈이 그곳에 쏠려, 한동안 다른 아파트를 사거나 전세를 구할 유동성이 없어진다는 주장이다. 배 연구원은 채권을 예로 들어 이런 상황을 설명했다. 2022년 채권시장은 신용등급이 높은 공사채와 은행채 발행량이 늘어나면서 시중 유동성을 흡수했고, 두 채권 가격이 내려갈 뿐만 아니라 그보다 아래 등급의 회사채는 수요가 붕괴해 자금조달이 어려운 상황까지 맞았다. 부동산시장 역시 입지가 좋고 새로 지은 강남권 아파트의 공급이 수도권 부동산시장에 같은 영향을 줄 것이라는 예측이다.

이에 대해 다른 부동산 전문가인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강남권 아파트 공급 요인을 그렇게까지 평가하지 않는다”며 “금리 공포 국면과 경기침체가 (부동산시장에) 심각하게 영향을 끼치고 있고 나머지는 현재 부차적 변수”라고 말했다.

3년 뒤 공급 절벽? 입주 물량은 건설사도 몰라

서울 아파트를 사는 부동산투자는 실패하지 않는다는 통설이 틀릴 수도 있겠다. 

“최근 잠실의 대규모 아파트 단지 가격 하락폭이 컸다. 이 아파트들은 지은 지 20년이 돼간다. 구축 아파트까지 사람들이 더 비싼 값을 주며 사는 건 (그동안) 서울에는 더이상 신규 공급이 힘들 것이라는 잘못된 사실에 기반하고 있었다. 입지가 더 좋은 반포·방배·개포 등에도 결국 시간이 지나면 신규 공급이 나온다는 것을 보게 되면 구축 또는 덜 선호하는 입지의 수요는 점점 약해지는 게 앞으로 진행될 상황이다. 서울에만 있으면 희소성 때문에 가격이 오른다는 건 앞으로 강남권에 쏟아지는 공급으로 인해 잘못된 생각이었구나 하는 일종의 학습 기회가 될 수 있다.”


2020~2021년 부동산 가격이 폭등할 때는 실제로 서울 아파트 공급이 적다는 분석이 많았다. 

“우리가 자주 보는 부동산 애플리케이션(앱)의 경우 분양을 완료한 물량만 입주 예정 물량 통계에 반영하다보니, 사실 착공은 했는데 일부러 분양을 미룬 곳은 반영이 안 됐다. 서울은 이런 곳이 아주 많다. 물론 옛날엔 분양부터 하고 그다음에 착공하는 게 일반적이었으니까 분양 물량만 찾아도 얼추 미래를 예측할 수 있었다. 이후 분양가상한제가 도입되고 나서는 착공부터 하고 분양을 최대한 미루는 의사결정을 한 결과다. 또 하나는 사실 누구도 3년 뒤 입주 물량을 예측할 수 없다. 3년 뒤 입주 물량은 결국 올해 분양을 얼마나 많이 하느냐에 달렸는데 이건 건설사도 모른다. 연초에 계획을 잡아도 시장 상황에 따라 바뀌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보가 실리는 인터넷 블로그 같은 곳을 보면 3년 뒤 서울 아파트 공급 절벽이 장난이 아니라고 하는데 당연히 지금 시점에선 제로에 가깝게 나올 수밖에 없다. 건설업종을 담당했던 애널리스트가 보기엔 사실을 호도하고 말하는 느낌이다.”


주변에 집 매수를 고민하는 분들에게 2020~2021년에 어떤 이야기를 했나. 

“추격 매수하지 말라고 했다. 2019년보다 더 높은 가격에 매수하는 것을 추천하지 않았다. 그렇게 이야기해도 대부분이 집을 사야 한다는 분위기에 노출되니까, 부동산 유튜버 이런 분들한테 컨설팅을 받고 집을 사는 분도 적지 않았다. 당시엔 ‘무주택자는 실패자’라는 분위기가 굉장히 한몫했다. ‘벼락거지’라는 말도 유행하고, 다들 부동산 매매로 몰리는 분위기였다. 이제는 주변에 보면 금융업종에 종사하는 40대들은 소득이 높은 편이지만 감당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금융비용이 올랐다. 내 주위에도 ‘영끌’ 한 사람이 많은데 이들 앞에서 부동산 가격 하락이 길어질 수밖에 없다고 이야기하는 건 편치 않다. 이제는 해법이 딱히 없는 상황이다. 결정을 되돌릴 수 없으니 이것을 견뎌야 한다거나 지금이라도 집을 팔아야 한다고 말하며 책임질 애널리스트나 부동산 전문가 또한 없다.” 

배 연구원은 정부의 부동산 규제 완화를 시장 상황 변화의 신호로 잘못 받아들이면 안 된다고 했다. 이른바 ‘영끌’ 등 무리하게 아파트를 매수한 이들이 이자율 상승으로 힘들어하는 상황에서, 다주택자나 무주택자가 이들이 가진 아파트를 받아주도록 퇴로를 열어준 것인데 이 때문에 집값이 반등할 수 있다고 오해하면 안 된다는 주장이다. “버티는 쪽으로 의사결정을 할 경우 다행히 자산 가격이 오르면 성공하지만 오히려 가격이 더 내려가면 개인의 손실도 커지고 (돈을 빌려준) 금융기관 입장에서도 채무불이행 가능성이 커져 부실채권이 된다”는 설명이다. 그는 “현재 부동산시장의 수요 현실은 냉혹하다. 지금 가격을 받아줄 만한 수요가 그렇게 풍부하지 않다. (가격이 더 내려갈 것으로 예상하는) 잠재적 수요자와 (그렇지는 않을 거라는) 잠재적 매도자의 동상이몽이 이렇게 심해지면 오히려 거래 절벽이 더 심각해진다”고 말했다.



정부가 세금과 다주택자 규제 같은 정책을 확확 바꾸고 있다. 다시 부동산시장이 과열되면 어떻게 할 것이냐는 비판도 나온다. 

“주택시장이 급등할 때는 후행적으로 규제책이 나오고 급락할 때는 완화책이 막 나온다. 급등과 급락 기울기를 낮추려는 것인데 지속하지 않는 정책은 효과가 없음을 생각해야 한다. 이전에 분양가상한제나 종합부동산세가 당장에 기울기를 낮추는 효과가 작았던 이유는, 사람들이 나중에 정책이 바뀌어 또 풀어주겠네라고 생각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부분 선진국에서 집값 움직임에 따라 정부가 세제를 바꾸는 일은 없는 것으로 안다.”

나중에 바뀌겠네, 생각하게 하는 정책 방향

정부가 각종 부동산 규제를 소급 적용해 완화하는 등 정책 방향을 한꺼번에 바꾸는 것에 많은 전문가가 우려한다. 장기적으로 정책이 신뢰를 잃는 부작용이 크다는 것이다.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은 “다음 정부에서 어떤 정책 수단을 쓰더라도 (대통령 임기인) 5년만 기다리면 된다는 인식을 강화하고 있다”며 “정권에 따라 이전 정부 정책을 다 유지하지는 않더라도 양도소득세 등 세제를 바꾸는 것은 진폭이 너무 크다. 지금 법률로 정해진 세제도 사회적 합의로 만든 건데 국회에서 이를 바꿔야 할지 따져봐야 한다”고 했다. 여경희 부동산R114 수석연구원도 “세제정책이 계속 바뀌면 시장 참여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기에 다른 규제는 몰라도 세금만큼은 일관적일 필요가 있다”고 했다.

이준구 서울대 명예교수(경제학)도 2023년 초에 펴낸 책 <누가 내 집 마련의 꿈을 빼앗아 갔는가?>에서 이런 의견을 밝혔다. “우리나라 주택시장이 안고 있는 비극의 핵심은 냉탕-온탕 정책으로 정책의 일관성을 상실하게 만들었다는 데 있다. 우리 정치인들이 조금만 더 긴 안목으로 일관성 있는 부동산 정책을 펴왔다면 이런 비극을 충분히 피할 수 있었을 텐데 그러지 못한 점이 몹시 아쉽다.”

이완 기자 wani@hani.co.kr



*인터뷰는 배문성 연구원의 의견이며, 소속 회사의 입장과는 무관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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