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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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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드러시’ 50센트 식사를 30달러로 만들다

19세기 캘리포니아의 일확천금 행렬 속 치솟은 물가 등 생활상 담은 서부 활극 <시스터스 브라더스>
등록 2023-10-20 13:58 수정 2023-10-25 04:44
영화화된 <시스터스 브라더스>의 한 장면.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영화화된 <시스터스 브라더스>의 한 장면. 한국영화데이터베이스

책을 펴기 전 표지만 보고 ‘시스터스 앤드 브라더스라, 형제와 자매가 잔뜩 나오는 소설인가’라고 생각했습니다. 읽어보니 골드러시가 한창이던 1851년 미국 서부에서 활약한 시스터스 집안의 형제 찰리와 일라이 이야기였습니다. ‘제독’이라 불리는 오리건시티의 악명 높은 범죄조직 두목은 시스터스 형제를 캘리포니아로 파견합니다. 금 채굴꾼 허먼 커밋 웜을 찾아 ‘비법’(그것이 뭔지는 알려주지 않았습니다)을 알아낸 뒤 죽이라는 임무입니다. 시스터스 형제는 오리건뿐 아니라 미국 서부 전역에서 명성(또는 악명)을 떨친 총잡이인데다, 제독이 파견한 정찰병 헨리 모리스가 웜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해 이번 일은 누워서 떡 먹기만큼 쉬워 보입니다. 형제는 티격태격하며 길을 떠나고 근사한 모험이 펼쳐집니다.

금 채굴꾼에 상인, 매춘부, 광대까지 몰려들어

골드러시는 1848년 1월24일 캘리포니아 새크라멘토의 서터스 제재소 인근에서 운영자 제임스 마셜이 금 조각을 발견하면서 시작됐습니다. 캘리포니아는 1821년 멕시코가 스페인에서 독립한 이래 멕시코 영토였지만, 1846년 시작된 미국과 멕시코의 전쟁으로 분쟁지역이 됩니다. 수세에 몰린 멕시코는 1848년 2월2일 과달루페 이달고 조약을 체결하고 캘리포니아, 네바다, 유타 등의 지역을 1500만달러에 미국에 넘깁니다. 지금은 상상할 수 없는 헐값이지만 멕시코로서는 당시 영토의 절반 이상을 넘겨주는 굴욕적인 조약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셜이 금을 발견한 지 불과 일주일 지난 시점이라 역사의 장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뒤이은 골드러시로 캘리포니아는 미국에서 가장 핫한 지역이 됩니다.

찰리와 일라이, 웜과 모리스 외에 소설에는 다양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수많은 금 채굴꾼은 물론이고 식품과 채굴장비 등 온갖 물품이 교환되는 교역소(Trading Post)의 상인, 호텔과 식당 직원, 매춘부, 의사, 마구간에서 말을 돌보는 사람, 심지어 중국인 광대까지. 이들은 모두 어디에서 왔을까요? 찰리와 일라이는 오리건시티에서 잭슨빌, 샌프란시스코로 이어지는 시스키유 트레일을 따라 이동합니다. 골드러시에 처음 참여한 오리건 준주(지금의 오리건·워싱턴·아이다호 주 전체와 와이오밍·몬태나 주의 일부)에서 온 채굴꾼들의 실제 이동 경로입니다.

제임스 포크 대통령이 1848년 말 의회 연설에서 ‘캘리포니아에서 믿기 어려울 정도의 막대한 금이 발견됐다’고 확인한 뒤, 금 발견의 소문은 미국 전역과 세계로 퍼져갔습니다. 미국 동부에서 캘리포니아까지 이동하는 데 6개월이 걸리고 비용도 노동자 연봉의 절반 이상이 들었지만, 일확천금을 노리는 행렬은 막을 수 없었습니다. 1848년 불과 1천 명 남짓했던 샌프란시스코 인구는 1850년 2만5천 명에 이를 정도로 급증했습니다. 미국 전역과 남미, 유럽, 심지어 중국에서까지 몰려들었고 이들은 ‘1849년 이주자’라는 뜻으로 ‘포티나이너스’라고 불립니다. 이는 샌프란시스코 프로미식축구팀 이름에 남아 있습니다.

전세계 물가 30% 끌어올린 골드러시

골드러시로 인구가 급증한 캘리포니아는 1850년 미국의 정식 주로 승격됐지만, 여전히 행정력이 거의 미치지 못하는 무법천지에 가까웠습니다. 하지만 일확천금을 찾아 떠나는 사람들에게 이는 흠이 아니라 오히려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금광소유권·인허가료·세금 등의 제도는 존재하지 않았고, 멕시코 시절의 규칙이 적용됐습니다. 금광을 먼저 발견한 자는 말뚝을 박아 자신의 채굴지로 선언할 수 있었습니다(Staking a Claim). 권한은 채굴꾼이 본격적으로 채굴 작업을 하는 동안만 유지됐고, 그렇지 않은 경우 다른 채굴꾼이 금을 캘 수 있었습니다(Claim-Jumping). 웜이 제독의 지시를 거부하고 홀로 채굴 작업에 들어간 곳은 새크라멘토 동쪽 15㎞ 떨어진 계곡 깊은 곳입니다. ‘웜이 채굴권을 사놓은’ 지역으로 번역됐는데 산 것은 아닙니다. 작은 실수로 보입니다.

1792년부터 1847년까지 55년간 미국에서 생산된 금은 총 37t인데, 1849년 한 해에 캘리포니아에서 채굴한 금만 해도 이 규모를 훌쩍 뛰어넘었습니다. 이 시기 각국의 통화제도는 금은 같은 귀금속에 기반했기 때문에 캘리포니아와 뒤이은 오스트레일리아의 골드러시로 전세계 물가가 전반적으로 올랐습니다. 1850~1855년 약 30%포인트 물가가 상승했다고 합니다. 물론 골드러시의 핵심 캘리포니아의 물가 수준은 이보다 훨씬 큽니다.

샌프란시스코 항구에서 일라이는 닭을 안고 쓰다듬으며 걷는 괴짜에게 캘리포니아의 작은 도시에서 매춘부한테 25달러나 줬다고 투덜댑니다. 그러자 괴짜는 ‘샌프란시스코에서는 바에서 매춘부와 앉기만 해도 그 정도 돈을 내야 하고, 한판 뛰려면 최소 100달러를 내야 한다’고 대답합니다. 당시 뉴욕 노동자 일당이 1~2달러였음을 생각하면 엄청난 금액이 아닐 수 없습니다. 또 금을 캐고 와서는 ‘고향에서는 50센트였으면 충분했을 고기와 감자, 아이스크림을 30달러를 내고 먹었다’면서, 캘리포니아에서는 절약과 합리적 소비의 전통이 사라졌다고 한탄합니다.

채굴꾼을 채굴하는 사업이 더 짭짤

이는 실제 수치에 부합합니다. <뉴욕 헤럴드> 기자 출신으로 샌프란시스코 금 채굴에 뛰어들었던 에드워드 굴드 버펌은 저서 <금광에서의 6개월>(1950)에서 ‘빵, 치즈, 버터, 정어리와 맥주 두 병을 먹고 믿기 어렵겠지만 43달러를 냈다’고 기록했습니다. 현재 가치로 대략 150만원입니다. 포크 대통령은 앞의 연설에서 ‘캘리포니아의 넘쳐나는 금과 채굴 열망으로 물가가 전례 없는 수준으로 올랐다’고 우려를 표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일상적인 업무는 오히려 마비됐습니다. 샌프란시스코 항구에 정박한 배에서 오랫동안 화물이 내려지지 않고 방치된 것을 보고 일라이가 궁금해하자, ‘강 속에 금이 가득하다고 생각하는데, 누가 하루 1달러를 받고 밀가루를 내리겠어요. 다 금 캐러 뛰쳐나가지’라는 답변이 돌아옵니다. 앞서 최초로 금이 발견된 서터스 제재소를 말씀드렸죠. 제재소 직원들이 모두 금을 캐겠다고 그만두는 바람에 이 제재소는 망해버렸습니다.

소설 속 채굴꾼들은 금을 발견하지 못하거나, 채굴한 뒤에도 흥청망청 낭비하거나 총잡이들에게 뺏기는 통에 대부분 성공하지 못합니다. 실제로도 금을 채굴하는 것보다 ‘채굴꾼들을 채굴하는’(mine the miners) 사업이 더 수지가 맞았습니다.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광부들에게 팔던 거친 바지는 리바이스 청바지가 됐고, 채굴장비를 나르는 손수레를 만들어 팔던 존 스튜드베이커는 미국 최대의 자동차 왕국을 일구었습니다. 채굴꾼들에게 돈을 빌려주던 헨리 웰스와 윌리엄 파고의 사업은 세계적인 웰스-파고 은행의 모태입니다.

<시스터스 브라더스>는 본격적으로 경제와 금융을 다룬 소설은 아닙니다. 오히려 거친 서부 개척기의 전통적인 웨스턴 소설과 영화의 문법을 충실히 따르면서도 유머를 잃지 않는 작품입니다. 하지만 이 책은 경제사 책보다 더 실감 나고 재미있게 골드러시의 시대상을 보여줍니다.

신현호 이코노미스트·<나는 감이 아니라 데이터로 말한다> 저자
#책 정보


<시스터스 브라더스>와 패트릭 드윗

패트릭 드윗은 1975년 캐나다 밴쿠버에서 태어난, 특이한 이력의 소설가입니다. 독서광인 목수 아버지와 책에 대해 얘기하면서 작가의 꿈을 키웠다고 합니다.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해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바텐더와 공사판 노동자로 생활하다 2009년 소설가로 데뷔한 뒤 다섯 권의 소설을 냈습니다. 힘든 시절의 경험이 소설 쓰는 데 도움이 되는 것 같다고 합니다. 소설가도 유명 대학 출신들이 두각을 나타내는 시대에 반가운 예외가 아닐 수 없습니다. 2011년 출간한 두 번째 작품 <시스터스 브라더스>가 대표작입니다. 캐나다의 가장 권위 있는 문학상인 총독문학상(아직 캐나다에는 영국 왕이 임명하는 총독이 있습니다)을 포함해 캐나다 문학상을 휩쓸었고, 영국의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올랐습니다. 대중적으로도 인기가 높아 2011년 캐나다에서 가장 많이 팔린 소설입니다. 2018년 자크 오디아르가 영화로 만들어 베니스영화제 감독상을 받았습니다. 국내에는 김시현 번역으로 문학동네에서 2019년 출간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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