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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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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인간 중심 혁신’으로 방향을 틀어라

인간 일자리 대체하며 경제 불평등 확대 방향으로 첫걸음 뗀 AI 현실… 기업가들에게서 마이크를 빼앗고 시민 중심 담론으로 기술도입규범 바꾸어야
등록 2024-02-17 04:51 수정 2024-02-19 23:41
기술혁신 선두인 구글, 메타 등 빅테크기업들이 인공지능(AI) 서비스나 기능을 확대하면서 기존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있다. 영국 코번트리에서 아마존 물류창고 노동자들이 2023년 1월 노동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며 시위하는 모습. 로이터

기술혁신 선두인 구글, 메타 등 빅테크기업들이 인공지능(AI) 서비스나 기능을 확대하면서 기존 노동자들을 해고하고 있다. 영국 코번트리에서 아마존 물류창고 노동자들이 2023년 1월 노동환경 개선 등을 요구하며 시위하는 모습. 로이터


다음은 1978년 미국 컴퓨터 매거진 <데이터메이션>에 실린 ‘영국 노동조합에 떠도는 농담’이다.

“새로 생길 전자회사에는 몇 명이 일하게 될까?”

“사람 한 명과 개 한 마리.”

“사람은 무슨 일을 하나?”

“개밥 주는 일.”

“개는 무슨 일을 하나?”

“어떤 사람도 기계에 손대지 못하게 지키는 일.”

이 농담에 마냥 웃을 수만은 없다. 순다르 피차이 구글 최고경영자는 2023년 12월 인공지능(AI) 투자를 위해 인력 감축을 하겠다고 선언하는 전자우편을 직원들에게 보냈다. 아마존, 에스에이피(SAP), 듀오링고 등 알 만한 테크(기술)기업도 줄줄이 인공지능발 구조조정을 발표하고 있다. 1만 명 이상 단위의 대규모 해고가 이어지고 있다.

빅테크기업에서 인공지능 투자를 확대하면서 비용 균형을 맞추기 위해 조직의 일부를 지속적으로 덜어내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다. 즉,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업무와 조직이 재편되는 중이다. 그야말로 구조조정이 일어나고 있다.

미국 기업의 해고 집계를 하는 레이오프스(Layoffs.fyi)에 따르면, 2024년 초부터 2월11일까지 141개 테크기업에서 3만4천 명 이상이 해고됐다. 2023년 한 해 동안 26만 명이, 2022년 한 해 동안 16만 명이 집계됐다.

인공지능과 자동화 바람으로 ‘개와 인간의 공장’이 현실이 돼가는 건 아닐까?

‘개와 인간의 공장’ 농담에 웃음 안 나오는 이유

챗지피티(ChatGPT)의 등장으로 생성인공지능 붐이 일어난 게 불과 1년여 전이다. 그새 구글은 제미나이 울트라를 내놓고 챗지피티와 경쟁 중이며, 유명 작가처럼 그림을 그려주는 달리3와 미드저니6가 나왔고, 마이크로소프트는 오피스 코파일럿을 내놓고 파워포인트 자동생성과 엑셀 데이터 자동분석을 미는 중이다.

삼성전자도 ‘AI폰’이라며 갤럭시S24를 내놓고 애플은 다른 차원의 기기라며 비전프로를 내놓았다. 로레알은 자동 맞춤형 화장코치를 들여왔고, 레이밴은 스마트안경에 인공지능 비서를 장착했다. 글·그림·음악을 창작해내는 인공지능이 나온 데 이어, 스마트폰에도 노트북에도 자동차와 냉장고, 세탁기에도 스며드는 중이다.

챗지피티를 내놓은 오픈에이아이(OpenAI)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은 범용인공지능이 인류 전체에게 이익을 줄 것이라는 장밋빛 비전을 설파하고 있다. 특정 영역에 한정되지 않는 인공지능을 개발해 꼭 인간처럼 지적 활동을 할 수 있게 만들자는 이야기다. 비전에서라면 테슬라 최고경영자 일론 머스크도 뒤지지 않는다. 테슬라는 전기차와 자율주행차를 넘어서서, 인간과 비슷한 로봇 옵티머스를 내놓았다. 머스크가 투자한 뉴럴링크는 인간의 뇌에 칩을 심어 신호를 읽는 기술을 개발했다. 민간 인공위성을 쏘아 지구 곳곳을 살펴보고, 화성 이주를 꿈꾸며 민간 우주여행을 실행했다.

기술은 빛의 속도로 진화하고, 미디어는 기업가들의 앞서가는 비전을 전하느라 열심이다. 그런데 눈앞의 현실은 구조조정과 해고의 연속이다. 인공지능이 약속한 더 나은 세상은 아직 기사와 광고 속에만 존재한다.

우리는 지금 인공지능과 함께 유토피아로 가는 것일까, 디스토피아로 가는 것일까? 이 기술이 가장 직접적으로 영향을 끼칠 경제적 불평등을 중심으로 짚어보자.

AI 불평등,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일

“AI는 당신을 대체하지 않는다. AI를 사용하는 사람이 당신을 대체할 것이다.”(AI will not replace you. A person using AI will.)

챗지피티 충격이 처음 대중을 덮친 2023년 1월이었다. 엑스(X·옛 트위터)에 올라온 이 메시지는 인공지능 기술이 분배 구조에 가져올 영향을 선명하게 요약했다. 일자리가 사라지고 불평등이 커진다면, 본질적으로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벌어지는 일이다. 기술은 대체로 번영을 가져왔고, 그 번영의 과실을 사람들끼리 나누는 과정에서 벌어진 현상이 불평등이다. 기술은 사람들이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불평등을 키울 수도 있지만 줄일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불행하게도 인공지능 기술은 불평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첫걸음을 뗀 것으로 보인다.


2023년 12월 국제결제은행(BIS)이 내놓은 보고서는 인공지능 투자가 소득불평등을 키운다는 실증적 연구 결과를 제시한다. 이 연구는 2010~2019년 86개국 사례를 조사했다.

결론적으로 인공지능 투자가 높을수록 상위 10%(10분위) 계층의 소득점유율이 높고, 하위 10%(1분위)와 중간 계층(5분위)의 소득점유율은 낮았다. 또한 인공지능 투자가 클수록 소프트웨어 등 서비스 수출도 컸다. 인공지능 투자는 총요소생산성 증가와도 연관이 있었다.

그리고 인공지능 투자와 고용 사이에는 음의 상관관계가 있었다. 투자가 클수록 노동자는 중급 기술직 비중은 낮아지고 고급 기술직·관리직 비중이 높아졌다. 또한 인공지능 투자가 클수록 노동소득분배율이 낮았다.

국제결제은행 연구는 인공지능 기술의 빛과 그늘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빛은 경제의 질적 수준이 높아지는 것이다. 인공지능 투자가 클수록 총요소생산성이 높고 고급 기술직이 운용하는 서비스가 많으며 서비스 수출도 잘되는 경제이기 때문에 그렇다. 그늘은 불평등이 확대된다는 것이다. 소득 상위와 하위, 자산가와 노동자 계층의 격차가 커진다.

자동화가 일자리 줄여 불평등을 키운다

<권력과 진보>를 쓴 대런 아세모글루(다론 아제모을루)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는 언젠가 노벨경제학상을 받을 것이라고 자주 언급되는 경제학자다. ‘예비 노벨상’이라는 존 베이츠 클라크 메달을 받기도 했다.

아세모글루는 2022년 파스쿠알 레스트레포 보스턴대학 교수와 함께, 기술이 자동화를 부르고 자동화가 일자리를 줄이고 결과적으로 불평등을 키우는 과정을 실증적으로 입증해 화제를 불러모았다. 그들은 1980~2016년 미국 노동시장에서의 변화를 분석한 결과, 임금불평등 확대 중 최대 70%까지가 자동화의 결과로 설명된다고 밝혔다. 그 기간에 기술 발전으로 많은 업무가 자동화됐는데, 자동화된 업무를 수행하는 노동자들의 임금이 상대적으로 하락하면서 임금 격차가 커졌다는 설명이다.

심지어 연구 대상 기간은 인공지능 기술이 본격적으로 현장에서 사용되기 이전이다. 알파고가 이세돌을 이긴 해는 2016년이다. 산업현장에 인공지능이 본격적으로 들어온 것은 그 이후라고 봐야 하고, 특히 챗지피티 같은 생성인공지능은 이제 막 기업에서 적용을 시작하는 단계다. 아세모글루는 이제부터 시작될 인공지능 기반 자동화는 상황을 더욱 악화할 것이라고 우려한다.

인공지능이 불평등을 키우리라는 전망에는 반론도 있다. 가장 인기 있는 세 가지 반론을 따져보자.

첫째, 기술 수준이 아직 사람의 지적 활동을 대체하는 데는 다다르지 못했다는 반론이다. 너무 미리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둘째, 사라지는 일자리도 있지만 새로 생겨나는 일자리가 더 많을 것이라는 반론이다. 과거 자동차가 처음 생겼을 때, 마부 일자리는 없어졌지만 자동차산업에 더 높은 임금을 주는 일자리가 훨씬 더 많이 생겼다는 사실이 자주 언급된다.

특히 ‘생산성 밴드왜건’(Productivity Bandwagon) 이론으로 뒷받침된다. 기술이 투입돼 생산성이 높아지면 오히려 일자리가 늘어난다는 이론이다. 노동자 1명이 창출할 수 있는 가치를 높이면, 기업은 사람을 더 고용해 더 높은 가치를 만들어낼 유인이 생긴다는 논리다. 기술투자로 생산성을 높이면 고용이 늘어나고, 고용이 늘어나면 다시 생산성을 높이기 위해 기술투자도 늘리면서 쏠림효과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셋째, 꼼꼼히 들여다보면 기술이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직업은 거의 없다는 반론이다. 기술이 대체하는 것은 직업이 아니라 직무, 즉 특정한 일의 한 단위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로봇은 외과의사를 대신해 수술할 수 있다. 그러나 수술할 환자의 가족을 만나 가장 좋은 치료법이 무엇인지를 상담하고 설득하는 일은 대신하기 어렵다. 와상 환자를 주기적으로 안아 올려 자세를 바꿔주는 일은 로봇이 대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환자의 표정이나 눈짓을 보고 그에게 필요한 처치를 생각해내는 일은 오랫동안 로봇이 할 수 없는 일일 것이다.

‘생산성 밴드왜건’ 이론 깨뜨린 실증연구

첫 번째 반론은 알파고와 챗지피티를 만나면서 순식간에 무너져버렸다. 창작을 포함해 많은 업무를 인공지능이 대체할 수 있고, 아직 대체되지 않았다면 기술이 없어서가 아니라 인간을 고용하는 것보다 기계를 사용하는 것이 비용이 더 들어서일 수 있다.

두 번째 반론을 깨뜨린 게 아세모글루의 실증연구다. 흥미롭게도 아세모글루는 이 반론을 옹호하던 사람이었으나, 2017년 실제 데이터로 이런 논리를 검증한 뒤 변심했다.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보자. 왜 디지털과 인공지능 기술은 이전 기술과 달리 일자리를 줄일 것이라고 전망하는가? 자동차산업 노동자는 과거 마부보다 압도적으로 많은데, 이번에는 왜 다른가?

에릭 브린욜프슨 미국 스탠퍼드대학 인간중심인공지능센터장은 기술의 성격이 바뀌었다는 점을 지적한다. 인공지능 기술은 앨런 튜링이 제안한 ‘튜링 테스트’를 기준으로, 인간을 모방하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필연적으로 인간의 역할을 온전히 대체하는 게 최종 목표가 됐고, 차차 실현되는 중이다.

20세기에도 많은 기술이 도입됐지만, 노동자의 노동과정과 통합돼 인간의 생산성을 직접적으로 높이는 기술이 많았다. 그런데 21세기 디지털화와 함께 도입된 자동화는 상당 부분 노동자를 대체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설명이다.

기술혁신은 고용관계에 따라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고용증대형 혁신과 고용대체형 혁신이다.

타자기만 있던 회사에서 복사기를 도입했다고 해보자. 타자 담당 직원은 과거에는 회의용 문서 10부를 타자로 쳐야 했지만, 이제는 1부만 타자로 치고 9부는 복사하면 된다. 30분 걸리던 일이 6분으로 줄어들 수 있다. 이때 직원 1명을 더 고용하면, 그보다 문서를 5배 더 생산할 수 있다. 회의용 문서 생산이 주업인 회사라면 직원을 더 고용하는 게 이익이다. 앞서 반론에서 제시한 생산성 밴드왜건 효과가 일어나면서 기술이 고용을 늘리는 사례, 즉 고용보완형 혁신이다.

반례로 마트에서 자동계산대를 도입했다고 해보자. 계산원을 줄일 수 있으므로 직원 1인당 매출은 늘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마트에서는 직원 1명을 더 고용해도 생산량(판매량)이 크게 늘지 않는다.

현장 노동자가 사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더 극단적으로 앞의 농담에 등장한 ‘개와 인간의 공장’을 떠올려보자. 여기서 개밥 주는 인간의 고용을 늘린다면 1인당 생산성은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이때는 생산성 밴드왜건 효과가 일어나지 않고, 기술이 고용을 줄이게 된다. 고용대체형 혁신이다.

문제는 최근 일어나는 인공지능 관련 해고는 대부분 고용대체형 혁신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구글은 광고를 자동화하면서 광고·마케팅 담당 직원을 대규모로 해고했다. 투자은행들은 트레이더를 해고하고 거래를 자동화한다. 이런 업무에서 다시 고용을 늘린다고 가치가 늘어날 것 같지는 않다.

세 번째 반론은 사실 합리적이다. 다만 현재는 인공지능과의 보완성이 높은 (대체할 가능성이 낮은) 직종은 고소득 직종이라 오히려 불평등을 키우는 요인이 될 수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2024년 1월에 낸 보고서에서 선진국 일자리의 60%가 인공지능에 노출됐고, 이 가운데 절반이 부정적 영향을 받을 수 있다고 밝혔다. 그런데 인공지능과 보완성이 높은 직업은 안전하다고 판단했다. 기술이 업무를 대체하기보다는 보조하는 역할을 할 것으로 예상되는 직업이다. 여기 속하는 직업은 의사·변호사·판사처럼 책임이 크고 인간과의 상호작용이 중요하다. 이 직종에서는 인공지능의 도움으로 오히려 더 효과적으로 높은 가치를 낼 것으로 보인다.

보완성이 낮아 위험한 직업은 단순사무직이나 단순기술직이다. 이들 직종은 일자리가 줄거나 처우가 악화할 가능성이 크다.

챗지피티(ChatGPT)를 서비스하는 오픈에이아이(OpenAI)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위쪽) 등 빅테크기업가들은 인공지능으로 기후변화 대응이나 암치료 등이 가능해지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다. 반면 대런 아세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아래)는 인공지능(AI) 기술이 불평등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며 발전 방향의 전환을 강조한다. REUTERS, 위키미디어 제공

챗지피티(ChatGPT)를 서비스하는 오픈에이아이(OpenAI) 최고경영자 샘 올트먼(위쪽) 등 빅테크기업가들은 인공지능으로 기후변화 대응이나 암치료 등이 가능해지는 장밋빛 전망을 내놓는다. 반면 대런 아세모글루 미국 매사추세츠공과대학(MIT) 교수(아래)는 인공지능(AI) 기술이 불평등을 확대할 가능성이 크다며 발전 방향의 전환을 강조한다. REUTERS, 위키미디어 제공


Daron Acemoglu. 위키미디어 제공

Daron Acemoglu. 위키미디어 제공


그래서 세 번째 반론에서 대안을 찾는 사람이 많다. 아세모글루나 브린욜프슨 같은 경제학자들의 해법도 그렇다. 기술발전 경로를 고용대체형 혁신이 아니라 고용보완형 혁신으로 바꾸자는 것이다. 의사나 변호사만 인공지능을 보조원으로 사용하란 법은 없다. 어떤 작업장이든 현장 노동자가 사용할 수 있는 인공지능을 만들어낸다면, 기업이 고용을 늘리면서 인공지능 활용도 늘릴 수 있다는 이야기다.

이런 변화를 어떻게 끌어낼 수 있을까? 실리콘밸리 기업가들에게서 마이크를 빼앗고, 시민들이 담론을 형성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노동자를 조직화해 기술 도입 규범을 바꿔야 하고, 시민사회운동이 인공지능 거버넌스에 참여해야 한다. 정책적으로는 빅테크기업을 분할하고, 인간 중심 기술 연구에 보조금을 투입해야 한다.

우리 현실을 돌아보면 쉬운 일은 아니다. 시민은 생계에 지쳤고, 노동자는 사업장에 갇혔고, 시민사회에는 시민이 없다. 기술 연구를 잘해둬도 기업이 도입하지 않으면 쓸모없는데, 그들에게는 그럴 유인이 없다.

하지만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한국은 인공지능 기술 수용성이 높으면서도 기본소득제처럼 강력한 소득보장 정책에 대한 논의 수준도 높다. 강력한 분배 정책으로 일자리 불안과 소득 불안을 줄이고, 적극적인 시민 참여를 통해 인간 중심 인공지능 기술로 방향을 트는 일을 같이 만들어가보면 어떨까? 어쨌거나 생계 불안은 시민 참여를 가로막는 걸림돌이니 말이다.

반도체 만드는 일처럼 중요한 일 ‘돌봄’

그나저나 ‘개와 인간의 공장’ 농담은 생각보다 현실적이다. 이미 반도체 같은 첨단제조업의 대공장에 가보면 노동자를 찾기가 어려운데, 자동화된 보안시설은 그야말로 철통같다. 이미 로봇개가 공장을 에워싸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공장 무인화는 더 진행될 것이다. 인간은 이 공장을 소유하고 통치하는 일만 하게 될지 모른다.

반면에 인간이 해야 할 일 중 가장 중요하게 떠오르는 건 ‘돌봄’이다. 상당 부분 자동화하기 어려운, 매우 보완성 높은 직업이라고 할 수 있다. ‘개밥 주는 일’이라고 멸시할 게 아니라, 누군가를 돌보는 일이 반도체 만드는 일만큼이나 가치 있고 중요한 일이라는 인식을 키워가야 한다.

인공지능 시대를 인간답게 살아가려면, 무엇이 가치 있는 일인지에 대해 이렇게 내러티브를 바꿔가야 한다. 환경운동이 ‘석유가 금’이라는 내러티브를 ‘석유는 탄소’라는 내러티브로 바꿔낸 것처럼 말이다. 이건 테크기업가들이 제시하는 ‘AI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며 아세모글루가 내놓은 실천적 대안이기도 하다.

이원재 경제평론가·<이원재의 끝내주는 경제> 진행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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