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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에 데우스 엑스 마키나는 없다

10년의 부유 끝에도 여전한 “다 밝혀졌다”와 “밝혀진 것이 거의 없다”의 간극, 10년의 성과를 정리하고 내놓아야 할 ‘출발선’
등록 2024-04-06 07:38 수정 2024-04-24 08:30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쯤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빠르게 전복되고 있는 세월호. 주변에 해경 123정과 어선들이 구조 활동을 하고 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쯤 전남 진도군 관매도 인근 해상에서 빠르게 전복되고 있는 세월호. 주변에 해경 123정과 어선들이 구조 활동을 하고 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제공


지은이의 이름은 ‘김석균’이다. 10년 전 이맘때 해양경찰청장 자리에 있었던 인물이다. 책 제목은 <세월호 3488일의 기록-바다의 징비록>, 초판 발행일은 2024년 2월29일이다. 세월호 참사 10주기가 채 두 달도 남지 않은 때였다. 책날개의 지은이 소개에는 “여러 권의 영문 저서와 다수의 논문을 세계적 학술지에 발표해오고 있다. 동아시아 해양 전문가로 국제적 명성을 얻고 있다”고 쓰여 있다.

숱한 조사 활동을 거쳐 불시착한 곳

‘징비’(懲毖)는 잘못을 뉘우치고 삼간다는 뜻이다. 한껏 조아리는 포즈는 서문 몇 군데에서 발견된다. 본문은 딴판이다. 책날개의 자기소개와 점선으로 이어져 수난과 부활의 서사를 완성한다. “사고 직후 검찰의 초기 수사에서 사고 원인과 의혹이 다 밝혀졌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고, 이후 지난 몇 년간 수차례에 걸쳐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식의 조사와 수사가 반복적으로 이루어졌다.”


책은 한국 사회를 지그시 꾸짖으며 마무리된다. “우리는 ‘신뢰’라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 아직 부족한 사회에 살고 있다. 사고가 정치적으로 해석되고 변질되는 ‘정치화’ 현상은 이런 사회에서 우리가 겪는 혼란과 아픔이 아닌가 한다.” ‘참사’라는 표현은 한 번도 등장하지 않는다.

4.16 세월호 참사 가족협의회 진상규명부서장 정성욱(고 정동수군 아버지)씨는 “세 번의 조사위가 열렸지만 밝혀진 것은 거의 없다. 침몰 원인과 구조 등에 대해서는 대부분 확인된 바 없다”며 “국가는 참사 원인을 명명백백하게 밝혀 피해자들의 한 맺힌 마음을 풀어달라”고 했다고, 언론들이 2월28일 광주발로 보도했다. 김 전 청장의 책이 나오기 하루 전이었고, 정씨를 비롯한 세월호 10주기 전국시민행진단 20여 명이 2월25일 제주도에서 20박21일 일정으로 행진의 첫걸음을 뗀 지 사흘 뒤였다.

“다 밝혀졌다”와 “밝혀진 것이 거의 없다”의 사이는 거리를 잴 수 없을 만큼 아득하다. 김 전 청장이 국제적 명성을 날리며 날아오르는 동안 세월호 유가족은 참사 초기의 고통 상태에 고착돼 있다. 다만 그 아득함도 어느덧 자연의 일부처럼 익숙하다. 유가족의 고통에 대한 사회적 감수성도 많이 무뎌졌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사회는 무엇을 했던가. 그토록 극심한 고통과 갈등을 겪고, 국가와 민간 차원의 숱한 조사 활동을 거쳐 불시착한 곳은 어디인가. 이제 세월호 진실 찾기 활동은 세월호 이후 10년의 여정을 낯설게 돌아보는 것이어야 하지 않을까. 악마는 디테일에 있을 가능성이 크다.

세월호 참사 당시 초동 조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승객을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이 2020년 2월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입장을 밝히며 유족에게 사과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세월호 참사 당시 초동 조처를 제대로 하지 않아 승객을 숨지게 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이 2020년 2월15일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뒤 입장을 밝히며 유족에게 사과하고 있다. 한겨레 강창광 선임기자


김 전 청장의 책을 정교하게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왜 하필 지금일까? 참사 10주기 목전에 책을 낸 건 공교로웠는지 모르나, 때를 기다렸을 거라는 추정은 합리적이다. 서문은 ‘2024년 갑진년 새해를 맞으며’로 끝난다. 2023년 11월2일, 김 전 청장은 참사 당시 지휘부 9명과 함께 대법원에서 무죄 확정판결을 받았다. 이때부터 퇴고까지 두 달 어름이다. 무죄 확정을 일찌감치 내다보고 원고 대부분을 미리 써놨을 수 있다. 이끼식물이 외부 조건이 맞아떨어지는 순간 포자를 날려 낙하시키듯, 그의 책은 사법적 허들을 뛰어넘기 무섭게 위에서부터 아래로 내려왔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신이 공중에서 나타나 사건을 순식간에 해결하는 고대 그리스의 전형적 연극 플롯과 장치)처럼.

면죄부가 아니라 면벌부

검찰 세월호 참사 특별수사단(특수단)은 2020년 2월 해경의 선내 진입과 퇴선 유도를 위한 조처를 하지 않은 혐의(업무상과실치사상)로 해경 지휘부를 기소했다. 법원은 당시 현장 상황을 제대로 보고받지 못해 짧은 시간 안에 ‘인명피해 가능성을 예측하기 어려웠다’는 등의 이유로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법원의 판단은 그 자체로도 다분히 논쟁적이다. 그러나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디테일은 따로 있다. 그들이 사법부에서 받은 건 ‘면죄부’가 아니라 ‘면벌부’라는 사실이다.

유럽 중세 교황청에서 매매했던 증서는 죄 자체를 사해주는 게 아니라 죄에 따르는 벌을 면해주는 것이었다. 요즘 학계에서 면죄부 대신 면벌부로 쓰는 이유다. 법원은 그들에게 형사 책임을 물을 수 없지만, 구조 실패의 관리 책임이 있다고 적시했다. 지나치게 순화된 표현이다. 해경 지휘부는 ‘봉숭아학당’보다 못한 무능과 무책임의 최대치를 보여줬다. 현장 보고와 동떨어지거나 외려 역행하는 지시를 하는가 하면 자기 지시를 스스로 식언으로 만드는 지시를 하는 사례도 숱했다.

해경의 자체 광역위성통신망인 코스넷(KOSNET) 대화방의 참사 당일 풍경은 초현실적이었다. 지휘부는 참사 발생 직후 코스넷을 공식 보고 경로로 지정했다. 2014년 4월16일 오전 9시2분~10시35분 올라온 문자는 1190개였다. 입장과 퇴장을 알리는 문자와 환영 문자 등 세월호와 무관한 게 770개(64.7%)였다. 심지어 목포해경 상황실이 ‘환영 멘트 안 함으로 설정 요청’을 할 때 6.1개였던 평균 환영 문지는 그 뒤 외려 12.6개로 늘었다. 쓸모없는 문자가 쉼 없이 앞의 문자를 밀어 올렸다. 지휘부는 수수방관했다. 그나마 유일하게 세월호와 직접 교신하던 진도 해상교통관제센터(VTS)는 대화방에 초대되지 않았고, 유일하게 참사 현장에 있던 123정에는 아예 코스넷이 설치돼 있지 않았다. 어느 것 하나 김 전 청장의 책에는 실리지 않았다.

2014년 10월29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마치고 국회를 나서는 동안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등이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겨레 이정용 선임기자

2014년 10월29일 박근혜 당시 대통령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시정연설을 마치고 국회를 나서는 동안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 등이 참사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팻말 시위를 벌이고 있다. 한겨레 이정용 선임기자


그렇다고 해경의 총체적 무능과 책임 방기에 대한 사법적 무기력이 그가 포자를 쏘아 올릴 수 있었던 유일한 조건이었을 리는 없다. “세월호를 한국 사회의 근본적 변화를 추동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는 초기의 문제의식은 언젠가부터 무고한 생명을 앗아간 가해자들을 찾아내 형사처벌하자는 주장 뒤로 밀려났다. (…) ‘진상규명을 통한 책임자 처벌’과 ‘책임자 처벌을 위한 진상규명’ 사이에는 미묘하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었다.” 2024년 4월 발간된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재단법인 ‘진실의 힘’)의 서문 한 대목이다. 형사처벌에 대한 과몰입은 역설적으로 김 전 청장이 파고들 수 있는 틈새를 열어주지 않았을까.

경빈군 산소포화도 69%의 의미

여기 또 하나의 디테일이 있다.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사참위)는 2019년 10월31일, 세월호 참사 당일 구조 과정에 대한 중간발표에서 고 임경빈군 이송 지연 의혹을 발표했다. 줄거리를 재구성하면, 경빈군의 생존 가능성을 보여주는 산소포화도(69%) 등이 확인돼 응급의학 전문의가 빠른 이송을 지시했는데도, 해경 지휘부가 현장 헬기를 이용하는 바람에 이송이 지연돼 제때 전문적인 소생 치료를 받지 못했고, 뒤늦게 병원에 도착한 경빈군이 사망 판정을 받았다는 거였다.

사참위의 세월호 진상규명국장은 “6명의 응급의학 전문의들의 자문을 구한 결과 (…) 69%라는 수치는 생존했다고 확신하긴 어렵지만 사망이라고는 도저히 판단할 수 없는 이런 지경이라고 입을 모았다”고 밝혔다. 목포한국병원의 원격진료시스템 모니터에 산소포화도가 69%로 나타난 것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묻는 취재진에게 내놓은 답이었다. 언론들은 앞다퉈 ‘해경이 지휘부를 모시느라 구조자를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하지 않았다’는 취지로 보도했다.

사참위의 발표에는 조사한 내용 가운데 많은 주요 부분이 생략되거나 선택적으로 발췌된 것으로 뒤늦게 확인됐다. 69%의 산소포화도는 사망자에게 심폐소생술을 해도 나올 수 있는 수치였다. 물론 사참위도 조사를 통해 알고 있었다. ‘닥터 헬기’로 유명한 이국종 교수 등 전문의 6명의 의견도 사참위 발표와 맥락이 크게 달랐다. 사참위의 ‘참고인 진술청취 보고서’를 보면, 6명의 공통된 의견은 ‘영상 채증 당시 생존 가능성은 희박하다’ ‘현장에서 더 할 수 있는 게 없다’ ‘의사로서는 빠른 이송 말고 지시할 수 있는 게 없다’로 요약된다.

그런데도 같은 해 11월 갓 출범한 검찰 특수단은 이 의혹부터 수사했다. 경빈군의 어머니는 청와대 사랑채 앞에서 89일 동안 진실을 밝혀달라고 호소하며 노숙농성을 했다. 특수단은 관계자 20여 명을 불러 조사하고 전문기관의 자문을 구하는 등 나름 강도 높은 수사를 벌였지만, 2년 정도 뒤인 2021년 8월10일 ‘혐의없음’으로 불기소 처분했다. 경빈군의 어머니는 절규했다. 사참위 종합 보고서에서 관련 내용은 통째로 빠졌다. 우리나라 구조 체계의 미흡함, 응급의료 현장과 병원 의사 사이의 소통이나 의사결정과 관련한 의료법 체계를 개선하도록 권고하는 내용도 찾아볼 수 없다.

조사기구가 형사처벌에 매달린 데는 그럴 만한 사정이 없지 않다. 참사 초기 정부·여당의 대응 행태에 대한 반작용 성격이 강하다. 진상 조사 요구에 대한 국가의 탄압과 진상 조사에 대한 조직적 방해, 하위직만 수사하고 처벌하는 수사기관, 유가족에 대한 감시와 배·보상에 눈먼 존재로 낙인찍기는 촘촘히 엮여 있다. “너 국정원이지?” 2014년 9월, 유가족이 술에 취해 대리기사를 폭행하며 했다는 말이다. 가족의 무참한 죽음이 국가폭력의 빌미가 되는 기막힌 현실에서 터져나온 비극적 주폭 사건이었다.

2015년 12월16일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를 지켜보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2015년 12월16일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들이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가 연 청문회를 지켜보며 눈물을 훔치고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하지만 특별법에 의해 구성된 국가의 공식 조사기구라면 달라야 한다. 합리적이고 삼엄한 이성, 과학과 기술에 대한 전문성과 엄결성 없이는 참사의 실체적 진실에 다가갈 수 없다. <세월호, 우리가 묻지 못한 것>(2022)을 쓴 박상은 전 ‘4·16세월호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 조사관은 “재난을 조사하는 기구가 법적 책임을 추궁하는 조사에 과도하게 집중하지 않기 위해 책임자 처벌이 목적인 ‘수사’와 이에 한정되지 않는 인과관계를 밝히는 ‘조사’를 분리하는 국제 기준을 한국에 적용할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신중하게 제안한다.

내인설은 적극적 부정, 외력설은 미완

“사참위는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 세월호의 급격한 우선회와 횡경사를 유발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결론을 내렸다. 또 세월호 선체 변형과 손상의 원인이 수중체 접촉에 의한 외부 충격일 가능성과 관련해서는, 대한조선학회 자문 결과와 네덜란드 마린 연구소의 세월호 모형 자유항주 시험 보고서 등을 종합할 때, 사참위 조사 결과가 외력 충돌 외의 다른 가능성을 배제할 정도에 이르지 못했으며 외력이 침몰의 원인인지 확인되지 않았다는 최종 결론에 이르렀다. (…) 침몰 원인을 종합적으로 정리해내지 못한 점은 한계로 남았다.”

3년6개월의 활동을 마친 사참위가 2022년 9월 내놓은 종합보고서의 핵심 단락이다. 하나의 단락 안에서 이른바 ‘내인설’(배의 복원성과 조타 장치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 등 기관 고장에 의한 침몰)과 ‘외력설’(잠수함 충돌)을 동시에 기각하는 듯한데, 확정적인 표현 없이 복문과 이중부정의 더없이 복잡한 문장 구조로 이뤄져 있다. 내인설은 적극적으로 부정되는 반면, 외력설은 미완의 뉘앙스가 더 강하다. 그 안에는 사참위가 3년6개월 동안 조사해온 방향과 주요 국면에서의 기이한 의사 처리 절차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2020년 12월17일 서울 중구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대강당에서 박병우 세월호 진상규명국장이 세월호 참사 당일 항적과 관련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2020년 12월17일 서울 중구 사회적참사특별조사위원회 대강당에서 박병우 세월호 진상규명국장이 세월호 참사 당일 항적과 관련한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한겨레 백소아 기자


사참위는 2022년 3월 말 세월호 침몰 원인과 관련한 조사 결과 보고서 3건에 대한 검증 자문을 대한조선학회에 공식 의뢰했다. ①조타장치 고장에 따른 세월호 전타 선회 현상 ②세월호 변경·손상 부위 확인 및 원인 조사 ③세월호 급선회와 횡경사 원인 검증 및 복원성 관계 분석 등이었다. 하나같이 외력설을 강력하게 뒷받침하는 것이었다. 검증 자문 의뢰는 조사 결과 보고서를 작성한 진상규명국의 뜻이 아니었다. 보고서를 승인해야 할 조사위원 6명의 결정이었다.

대한조선학회 해양안전위원회는 3건 모두에 대한 검증에 들어갔다. 그런데 사참위는 2주쯤 뒤인 4월12일 전원위원회에서 ①번 보고서를 격론 끝에 채택해버린다. 이에 대한조선학회는 ①번 보고서는 빼고 나머지 두 개인 ②번과 ③번 보고서에 대해서만 검증을 수행해 제출했다. 대한조선학회는 ②번과 ③번 보고서를 쓴 사참위 진상규명국의 조사 방법이 과학적이지 못하고, 더 유력한 가능성에 대해서는 조사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한마디로 외력설을 기각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①번 보고서가 대한조선학회 조사 대상에서 빠지면서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 세월호의 급격한 우선회와 횡경사를 유발했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는 종합보고서의 기술은 ‘알박기’로 ‘살아남을’ 수 있게 됐다. 대한조선학회가 ①번 보고서도 검증할 수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물론 ②번 보고서와 ③번 보고서의 검증 결과를 종합보고서에 반영하는 과정에서도 사참위 내부에 극심한 갈등이 있었다. 조사위원들은 대한조선학회의 검증 의견 등을 반영해 진상규명국의 보고서를 수정하라고 지시했지만 지시 수준을 충족할 만큼 수정되지 않았다. 거듭되는 수정 지시에도 상황은 되풀이됐다. 조사위원들은 수정 지시를 반영하지 않은 보고서를 채택하지 않을 수도 있으나, 그럴 경우 종합보고서를 채워 넣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된다. 양쪽의 힘겨루기 끝에 조사위원들은 ‘수정 채택’을 결정했다. 외력설에 관한 더없이 복잡하고 모호한 문장이 종합보고서에 실리게 된 배경이다.

세월호 참사 조사 활동 연표

세월호 참사 조사 활동 연표


모형 시험을 알고 있던 위원에게 튄 불똥

내인설만 놓고 보면, 사참위의 종합보고서는 2018년 선체조사위원회(선조위)의 보고서보다 외려 크게 퇴행한 것이다. 선조위가 ‘내인설’과 ‘열린 안’(사실상 외력설) 두 개의 보고서를 냈지만, 양쪽 내용은 매우 많은 부분에서 일치했다. 그러나 대등할 수는 없었다. 내인설이 밝혀낸 수많은 사실을 수용한 채, 세월호가 인천항을 출항하기 전 상태로 돌아가 직접 보지 않는 한 유력한 추정의 영역으로 남을 수밖에 없는 부분을 파고든 게 열린 안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두 보고서는 대등한 이미지로 언론 등에 의해 재현됐고, 그 이미지는 질기게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이미지가 된 이 서사에도 많은 디테일이 박혀 있다.

법조인이 위원의 절대다수를 차지했던 특조위나 사참위와 달리, 선조위에는 위원 8명 가운데 6명이 조선·해양 분야 전문가였다. 2018년 2월 초, 솔레노이드 밸브 고착이 확인되면서 전문가들 사이에 세월호의 급선회와 침몰 원인에 대한 의견이 한쪽으로 수렴되고 있었다. 한편 잠수함 충돌설뿐 아니라 앵커 침몰설 같은 고의 침몰설이 지금보다 훨씬 큰 사회적 관심을 끌고 있었다. 그즈음 선조위 안에서 2014년 참사 직후 검찰 의뢰로 선박해양플랜트연구소(CRISO, 크리소)가 모형 시험을 한 사실이 새삼스레 불거졌다. 모형 시험 결과는 검찰 수사 자료에 포함되지 않았다. 세월호 기관장의 진술 번복으로 적재물 데이터를 다시 반영해 시험해야 했으나, 검찰이 기소 시점으로 잡은 10월 초 이전에 결과가 나올 수 없어 포기한 탓이다.

논란은 엉뚱한 방향으로 비화했다. 크리소의 시험 결과가 검찰 논리를 뒷받침하지 못한다고 나오자 증거에서 배제했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크리소의 모형 시험 경위를 이미 알았던 두 위원에게 불똥이 튀었다. 이미 증거 능력을 상실한 4년 전 시험 결과를 알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증거 은폐 의혹과 검찰 공범이라는 모욕을 받았다. 심지어 이 중 한 위원은 유가족 단체에서 추천한 인물이었다. 또 다른 위원 두 사람은 각각 검찰 전문가 자문단으로 활동하거나 해양심판원 특별보고서를 자문한 경력 때문에 덩달아 공격받았다. 위원회 구성 단계에서도 이미 공개된 사실이었다.

선조위는 이들 가운데 크리소 소속 위원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다른 세 위원은 일제히 사퇴 의사를 밝혔다가 김창준 위원장의 설득으로 뜻을 접었으나, 이 가운데 한 사람은 이후 선조위원 활동을 전혀 하지 않았다. 공교로운지 몰라도, 선조위 안에서 문제를 키운 이들은 외력설을 주장하던 비전문가였고, 표적이 된 이들은 내인설을 주장하던 전문가였다. 이에 따라 선조위원은 사실상 6명으로 줄었고, 내인설 보고서와 열린 안 보고서에 각각 3명이 서명했다.

처벌할 수 없는 솔레노이드 밸브

이때 열린 안에 서명한 장범선 서울대 교수(조선공학)는 따로 언급할 필요가 있다. 사참위는 2018년 12월 조사 개시 당시 선조위의 두 보고서에서 일치하지 않는 부분만 집중 조사하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대부분의 조사 활동을 외력설 입증에 쏟아부었다. 대한조선학회 해양안전위원회 일원이기도 한 장 교수는 사참위가 검증 자문을 의뢰만 하고 전원위에서 통과시켜버린 ①번 보고서를 개인적으로 들여다본 뒤 과학성이 없었다고 줄기차게 공개 비판했다. 그는 열린 안에 서명한 이유도 내인설의 완성도를 높이려면 추가 조사가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라고 지인들에게 얘기했다. 장 교수는 암으로 투병하다 2023년 4월 타계했다.

국가 공식 조사기구의 구성원 일부가 외력설에 집착한 배경을 입증할 길은 없다. 형사처벌에 대한 과몰입과 무관하지 않으리라 추론할 뿐이다. 솔레노이드 밸브는 처벌할 수 없다. 구조와 시스템도 마찬가지다. 적어도 국내 잠수함이라면 사정은 다르다. 그러나 우리 사회가 더 안전한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심층의 문제에 다가가는 길을 가린다. 피해자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한 뜻이라 해도 다르지 않다. 상처만 덧내기에 십상이라는 건 경험으로도 알 수 있다.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은 지난 10년 동안 공식 조사기구 세 곳의 조사 활동에 직간접으로 참여하거나 밀착 취재해온 전문가와 언론인 등이 ‘기록팀’을 꾸려 협업한 결과물이다. 900쪽 가까운 분량뿐 아니라 자료의 충실함과 분석의 엄밀함, 서사의 완결성에서 국가 공식기구 보고서를 능가한다. 같은 곳에서 2016년 2월 펴낸 <세월호, 그날의 기록>의 증보판 성격도 넘어선다. 보태 썼다가 아니라 다시 썼다고 제목을 단 이유가 거기에 있다.

2016년 판 서문에는 “이 책이 때로는 나침반이 되고 때로는 지팡이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라고 쓰여 있다. 특조위가 정부·여당의 집요하고 조직적인 조사 방해에 맞서기에도 힘에 부쳐 할 때였다. 기록팀은 국가 공식 조사기구의 활동을 지원하고, 나아가 다음에 출범할 기구의 참고자료로 삼을 수 있기를 기대했다. 8년 뒤에 나온 <세월호, 다시 쓴 그날의 기록>에는 국가 공식 조사기구의 ‘실패’를 넘어서기 위한 민간의 의지가 실려 있다.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하는 것은 세 차례의 세월호 조사위원회를 거치면서 참사의 진상규명을 통한 사회의 개선과 개혁을 더 이상 염원하지 않게 된 한국 사회의 분위기다. 수백 명이 죽어야 했던 이유를 밝힘으로써 조금이라도 더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다고 믿기는커녕 이제 공적 제도를 통한 진상규명의 요구를 짜증스러워하는 사회가 된 것은 아닌가. (…) 이태원 참사가 일어난 것은, 여러모로 아쉬움을 남긴 사참위 종합보고서가 발간된 바로 다음 달이었다. 세월호 진상규명의 경험이 이태원의 진상을 규명하라는 목소리를 위축시킨 것은 아닌지 우리는 걱정한다.”

다시 시작하는 출발점
2024년 4월1일 서울 중구 ‘세월호 기억관’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4.16연대 회원들이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2024년 4월1일 서울 중구 ‘세월호 기억관’ 앞에서 민주노총 조합원들과 4.16연대 회원들이 생명안전기본법 제정 등을 요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한겨레 윤운식 선임기자


누군가 고의로 배를 침몰시켰거나 승객을 구하지 않았음을 입증하는 데 국가 공식 조사기구가 계속 매달린다면 조사기구 차원의 불행에 그치지 않는다. 10년 전 수많은 시민이 “미안하다”고 했고 “잊지 않겠다”고 했다. “진실을 밝히겠다”고도 했다. 할 수 있는 말이 그것 말고 없었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가 참극을 빚은 이 사회의 거대한 심층구조에 연루됐음을 모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언제부턴가 미안한 마음도 잊고, 잊지 않겠다는 약속도, 알고자 하는 간절함도 잊은 건 아닐까. 그렇다면 연루 의식도 함께 사라졌다는 뜻일 것이다.

세월호는 언제든 넘어질 수밖에 없는 배였고, 일단 기울어지면 속수무책으로 침몰할 배였다는 사실마저 부인하기는 쉽지 않다. 설령 빠르게 침몰하고 있어도 선장과 선원이 먼저 도망치지 않고 승객들을 탈출시켰거나, 해경 지도부와 현장 요원 중 누구라도 기민하게 대응해 탈출을 유도했다면 희생자 수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는 데 이론을 달기 어렵다. 솔레노이드 밸브가 아니라 잠수함이어도 변하지 않는다. 둘 다 참사의 방아쇠일 수 있으나, 도미노처럼 배치된 규정 가운데 하나라도 엄격히 지켜졌으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우리 사회는 지난 10년 동안 더디게라도 이 사실을 깨닫는 데까지 온 것이다. 다시 시작한다면, 출발점도 여기여야 한다. 잠수함은 데우스 엑스 마키나가 아니다.

재난 현장 연구자인 스콧 가브리엘 놀스(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교수)는 “재난은 쉽게 종결되지 않는다. 억울하게 가족을 잃은 이에게 완전한 해결이란 없다. 재난을 겪고서야 무엇을 배운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재난을 겪고서도 배우지 못하는 것은 더 슬픈 일이다”라고 말한다(이정일 전 선조위 사무처장, ‘304명은 어떻게 희생됐나- 구조하지 ‘않았다’와 ‘못했다’를 넘어’에서 재인용).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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