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토종벌이 돌아왔다

2021년 토종벌 양봉 시작한 이종현 양봉가… 명나방애벌레·말벌의 공격, 휴업 겪으며 토종벌통 지키다
등록 2024-03-29 11:18 수정 2024-04-02 01:53
이종현 양봉가가 2024년 3월23일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용강리 양봉장에서 토종벌로 가득한 벌집을 살펴보고 있다.

이종현 양봉가가 2024년 3월23일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용강리 양봉장에서 토종벌로 가득한 벌집을 살펴보고 있다.


토종벌이 돌아왔다. 경기도 김포시 월곶면 용강리 상수리나무 숲에 방치된 벌통에 토종벌이 제 발로 들어온 건 2023년 5월이었다. 여왕벌과 함께 들어온 한 무리의 토종벌은 무사히 겨울을 나고 새봄을 맞아 부지런히 꽃가루를 나르고 있다.

‘한봉’ 또는 ‘토봉’이라고도 부르는 우리나라 토종벌은 2009년 낭충봉아부패병이 돌아 98%가 폐사했다. 벌집 하나엔 여왕벌 한 마리에 일벌과 수벌 등 2만여 마리가 모여 사는데 이를 1군이라 셈한다. 전국의 꿀벌 약 200만 군 중 40만 군에 이르렀던 토종벌이 거의 궤멸했던 것이다.

여왕벌이 낳은 알이 애벌레가 되면 일벌이 먹여 키우는데, 일벌 소화기관에 있던 낭충봉아부패병 바이러스가 애벌레에 옮아 애벌레가 죽어갔다. 여왕벌이 벌통을 탈출하자 다른 벌도 일제히 날아올라 집을 나갔다. 이른바 ‘꿀벌 가출’이다. 유전적으로 이 병에 저항성이 있는 서양종 꿀벌은 치료제가 잘 들어 피해를 보지 않았다.

2022년 초 제주도에서 시작해 전라도, 경상도, 충청도, 경기도, 강원도까지 전국으로 번진 ‘꿀벌 군집붕괴 현상’(Colony Collapse Disorder)으로 서양종 벌도 떼죽음을 맞는다. 2006년 미국에서 처음 보고된 이 현상은 ‘꿀벌이 꿀과 꽃가루를 채집하러 벌통 밖을 나갔다 돌아오지 못해, 여왕벌과 애벌레가 떼로 죽는 현상'을 이른다.

꿀벌이 사라진 원인은 복합적이지만, 기후위기로 기온이 올라가 동면 시기인 11월과 12월에 꿀을 채취하러 나선 꿀벌이 심한 일교차에 얼어죽은 것으로 추정한다. 꿀벌 몸에 기생하며 체액을 빨아먹는 진드기인 꿀벌응애가 방제제 내성으로 널리 퍼진 것도 이유로 꼽는다.

용강리 숲에 벌통을 설치한 이는 이종현(58) 양봉가다. 이곳에 오려면 해병대가 지키고 선 민간인통제선 검문소를 지나야 한다. 도시양봉학교에서 양봉을 익혀 2014년 서울 서대문구청 옥상에서 벌을 키우기 시작한 그는 노들섬 텃밭을 거쳐 2019년 이곳에 양봉장을 설치했다. 그의 다른 직업은 <일요신문> 사진기자다.

어려서 늘 주변을 맴돌던 벌과 나비가 사라짐을 아쉬워한 그는, 꿀벌 군집붕괴 현상을 접하고 양봉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벌의 증식을 돕고 싶었고, 전통음식 연구가인 아내에게 천연 식재료인 꿀을 제공할 수 있음도 한 이유였다. 실제 양봉을 시작한 뒤에도 꿀 채취량을 벌과 절반씩 나누는 것을 기준으로 삼는다.

2021년 3월 충북 충주에서 낭충봉아부패병에 저항성이 강한 종자 토종벌 두 통을 받아와 토종벌 양봉을 시작했다. 잘 키워왔던 토종벌 벌통에 2022년 7월 명나방애벌레가 자릴 잡았다. 명나방애벌레는 밀랍으로 된 벌집을 마구 뜯어먹는다. 결국 여왕벌이 사라졌고 토종벌도 모두 떠났다.

휴업을 선언하고 방치한 벌통에 2023년 5월 손님이 들었다. 서양종 벌과 토종벌이 각각 벌통에 들어왔다. 기쁨도 잠시, 그해 9월 말벌이 양봉장을 습격했다. 말벌 방어용 그물을 뚫고 들어온 말벌과 싸우다 서양종 벌은 모두 죽었다. 다행히 토종벌통은 화를 면했다.

벌통을 습격한 말벌(왼쪽 사진). 치열한 전투 끝에 죽은 꿀벌과 말벌의 사체가 벌통 바닥에 가득하다.이종현 제공

벌통을 습격한 말벌(왼쪽 사진). 치열한 전투 끝에 죽은 꿀벌과 말벌의 사체가 벌통 바닥에 가득하다.이종현 제공


씩씩하게 겨울을 난 토종벌에게 상이라도 내리듯 ‘화분떡’과 사양액을 벌통에 넣어준다. 막 터뜨린 꽃망울을 찾아다니며 꽃가루를 묻히고 다니는 일벌이 대견하기만 하다. 이들 덕에 식물은 열매를 맺고, 사람은 식량을 얻는다. 유엔식량농업기구(FAO)에 따르면 세계 식량의 90%를 차지하는 100대 작물 중 70개 작물은 꿀벌 없이는 열매를 맺지 못한다고 한다. 벌을 돕는 건 우리 스스로를 돕는 길이다.

사진·글 이정우 사진가

 

*낯섦과 익숙함, 경험과 미지, 예측과 기억, 이 사이를 넘나들며 감각과 인식을 일깨우는 시각적 자극이 카메라를 들어 올립니다. 뉴스를 다루는 사진기자에서 다큐멘터리 사진가로 변신한 이정우 사진가가 펼쳐놓는 프레임 안과 밖 이야기. 격주 연재.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