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 11월 전남 순천만에 1만 마리 가까운 흑두루미가 몰려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월동하는 흑두루미 수(4천여 마리)의 두 배 넘는 규모다. 흑두루미 최대 월동지인 일본 가고시마현 이즈미시에 고병원성 조류인플루엔자(AI)가 발생했기 때문이다. 방역을 강화하고 먹이와 쉼터가 없어지자, 새들이 바람을 거슬러 다시 대한해협을 건너왔다.
조류 전문가들은 1만 마리 이상 흑두루미가 몰리는 이즈미시의 생태적 과포화 상태를 걱정해왔다. 좁은 우리에서 사육되는 가축처럼 열악한 환경의 야생조류는 전염병에 취약해 종 보존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어서다. AI는 그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이즈미시에서만 AI로 흑두루미 1341마리와 재두루미 75마리가 집단 폐사했다. 순천만에서도 192마리가 고병원성 AI 감염이 확인된 채 희생됐다. 전체 개체 수가 1만6천~1만8천 마리 정도니, 지구상에 남아 있는 흑두루미의 십 분의 일이 사라진 것이다.
매년 새들이 다니는 하늘길에도 큰 변화가 있었다. 러시아나 중국의 번식지를 출발하면 한반도 동쪽 낙동강 지류를 따라 내려와 일본으로 이동하는 편이 지름길에 가깝다. 그러나 한때 두루미가 겨울을 나던 대구 달성습지 미나리꽝은 비닐하우스와 공단이 들어선 지 오래다. 또 4대강 사업으로 강을 막으면서 새들이 쉬어가던 모래톱(구미시 해평면)이 물에 잠겼다. 먼 길을 가야만 하는 새들에게 고속도로 휴게소 같은 곳이 사라져버린 셈이다. 천수만과 순천을 거쳐 가는 서해안 코스도 순탄치만은 않다. 잠자리였던 천수만 간월호 모래섬도 수장됐다. 가뭄에 대비해 저수량을 늘린다고 사람들이 간월호 수위를 높였기 때문이다. 잠자리를 잃은 흑두루미들은 천적의 위험을 무릅쓰고 수십 일 동안 논 한가운데서 한뎃잠을 자는 일도 생겼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생존의 위협을 느꼈던 인류처럼 흑두루미들도 화들짝 놀랐을 것이다. 조류인플루엔자가 수그러들면서 이즈미시는 평상을 되찾았다. 순천만에 몰렸던 흑두루미는 대부분 다시 대한해협을 건너갔다. 최근까지 천수만에 남아 있는 300여 마리를 마지막으로 끔찍했던 겨울은 끝난다. 이제 이들 대부분은 북쪽으로 이동을 마쳤다. 하지만 11월이면, 새들은 월동지로 다시 날아올 것이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사진·글 김진수 선임기자 js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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