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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대 보수화’는 트렌드인가, 일시적 현상인가

변화무쌍한 20대, 지난 대선 때 득표율 가장 낮은 후보가 지금은 가장 인기
등록 2021-11-10 02:15 수정 2021-11-17 09:11
2017년 제19대 대선 때 서울의 한 대학가 유세 현장에서 청년들이 운집해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2017년 제19대 대선 때 서울의 한 대학가 유세 현장에서 청년들이 운집해 있다. 한겨레 김태형 기자

‘청년세대는 진보, 기성세대는 보수’라는 전통적 세대론이 깨졌다. 상당 기간 한국 사회에서 이 명제는 사회와 정치여론을 분석하는 데 강력한 틀이었다. 어지간한 이슈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살펴볼 때 끌어다 썼다. 마치 어려운 수학 문제를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공식을 외워 풀듯이 말이다.

‘청년은 진보’라는 전통적 세대론 깨져

그러나 최근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또 2021년 4월 보궐선거 결과를 보면 이러한 분석틀은 작동하지 않았다. 대선을 앞두고 이런 세대론의 변화는 정당이나 진영별로, 또는 후보별로 유불리가 갈리기에 주요한 이슈로 부상한다.

혹자는 특별한 상황에서의 일회성 결과라며 과도한 의미부여를 해서는 안 된다고 한다. 원래 흐름으로 복원될 것이라고도 한다. 하지만 이에 대한 답을 쉽게 내긴 어렵다. 롱패딩 열풍처럼 일시적 유행(Fad)인지, 피처폰에서 스마트폰으로 바뀐 근본적 흐름(Trend)인지 말이다. 지금 이 순간 거대하고 강고한 흐름에 균열이 난 것은 틀림없어 보인다. 젊은층은 진보, 노년층은 보수라는 인식으로는 최근 현상에 대해 설득력 있는 해석을 내놓을 수 없다.

20여 년 전에는 ‘2030 젊은층, 40대 중간층, 5060 노년층’이라는 표현을 쉽게 볼 수 있었다. 2030세대는 무조건 진보층이고, 5060세대는 무조건 보수층이며, 어느 한쪽으로 기울지 않은 40대가 민심의 캐스팅보트를 갖고 있다고 했다.

그러면서 40대는 왜 진보 성향이 약한지 논의가 활발했다. 젊은 시절 권위주의 정부를 겪고 민주화로의 이행을 목도한 세대이니 진보적 색채가 진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질문이 제기됐다. 이에 대해 학문적 표현은 아니나 ‘이념 진보, 생활 보수’라는 설명이 나왔다. 이념적으로는 진보이지만, 40대가 되면서 자녀 양육과 부모 부양 등 의무를 짊어지면서 경제적 관점이 강화되고 사상적 이상론이 제약되기 때문이라고 했다. 50대 이상은 왜 보수 성향을 지니냐는 질문에는 ‘나이 들수록 보수화된다’는 이른바 연령효과(Age Effect)를 들어 설명했다.

시간이 흘러 10년 전부터는 세대 구분에 1차 변화가 나타났다. 2030이 2040으로 확장됐고, 중간층으로 불리는 그룹은 50대로 옮겨갔고, 노년층은 6070으로 묶였다. ‘2040 진보층, 50대 중간층, 60살 이상 보수층’이라는 표현이 자리잡았다.

진보 경향이 강한 30대가 40대로 가면서 이념 성향을 유지했고, 이른바 386세대가 대거 50대로 진입하면서 일방적으로 보수 색채가 짙던 50대에서도 좌우 균형이 형성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 보수층은 계속 뒤로 밀려 쪼그라드는 것 아니냐는 지적에는 우리 사회의 급속한 고령화 현상에 따라 60살 이상 인구가 과거보다 대폭 늘어났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사회의 진보와 보수 간 균형 흐름이 유지된다고 했다.

부동산·젠더 이슈가 20대 유동성 더 키워

이러한 분석은 상당히 매끄러웠다. 그런데 자세히 뜯어보면 20대에 대한 설명은 빈약했다. 왜 애초부터 변화 없이 20대는 고정적 이념 성향을 지녀야만 하는지에 대해서는 설명이 소홀했다. 과거에 대학생활을 한 20대는 이념적 진보성을 학습했기에 그렇다 쳐도, 민주와 반민주의 구도가 희미해지면서 새롭게 20대로 진입한 세대가 당연히 이념적 진보성으로 무장해야 할 근거 역시 약해졌는데 말이다.

사실 20대의 다양성 흐름은 이전에는 전혀 없다가 최근에야 표출된 것만은 아니다. 이미 2000년대 중반에 ‘20대의 보수화’라는 제목을 단 여론조사 결과 분석 기사가 간간이 있었다. ‘20대 초반 보수화 ‘눈에 띄네’’(<경향신문> 2004년 1월2일), ‘20代 정치성향 ‘보수화’ 뚜렷’(<문화일보> 2006년 5월12일) 등이 대표적이다. ‘20대 보수화’라는 표현을 언론에서 인위적으로 만든 것 아니냐는 논란이 있었지만 그 현상이 대세는 아니어서 비교적 조용히 넘어갔다.

다시 20대가 주목받은 것은 2017년 대선이다. 선거 결과는 진보정권 탄생으로 나왔지만 출구조사를 보면 의미 있는 부분이 있었다. 20대에서도 대통령으로 당선된 문재인 후보가 가장 많은 득표를 했지만, 다른 경쟁 후보들도 상당한 득표율을 보였다. 안철수 후보, 유승민 후보, 심상정 후보 모두 20대에서 10% 이상 득표했다. 홍준표 후보도 10%에는 못 미쳤지만 이에 근접하는 수준이었다. 전체 결과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당시에도 20대는 어느 한쪽에 완전히 기울어진 특성을 보이지 않았다. 정확히 얘기하면 ‘20대의 다양화’가 증명됐다. 기성세대가 그간 보여온 동일 세대의 단일한 흐름과는 차이가 있었다.

시간이 더 흘러 지금 20대는 그때보다 변화의 흐름이 더 강해졌다. 진보 경향성은 약해지고, 보수 경향성은 강해졌다. 지난 대선에서 20대에서 득표율이 가장 낮았던 후보가 가장 인기 있는 현상이 나타나기도 했다. 변화무쌍한 세대로 등극한 셈이다. 하나의 잣대로 20대를 규정하는 게 조심스러워졌다.

20대가 과거처럼 어느 한쪽의 이념적 특성을 고집한다고 더는 볼 수 없게 됐다는 점에서 20대의 변화 자체는 트렌드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20대가 지금 보이는 정치 성향이 계속될지는 불확실하다는 점에서 일시적 유행인 특성도 함께 지닌다. 아마 지금의 20대는 부동산 등 경제적 이유와 젠더 등 사회문화적 이유로 인해 최근 변화의 특성을 더욱 강하게 드러냈을 것이다.

같은 세대 안에서도 다른 세대 존재

일찍이 세대 연구의 장을 연 헝가리 출신의 독일 사회학자 카를 만하임은 ‘같은 세대 안에서도 다른 세대가 존재할 수 있다’고 했다. 우리가 세대를 단순히 수직적으로만 이해해 중간을 잘라 어린 쪽은 진보, 나이 든 쪽은 보수라고 도식화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한 측면이 있다. 이런 도식에 익숙해지면 유권자는 존중받지 못한다. 어차피 지지하거나 지지하지 않을 사람들이기에 특별히 신경 쓸 필요가 없어진다.

그러면 정치가 게을러진다. 대충 해도 고정 지지를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의 20대든 이후 다른 연령대이든 유동성이 커진다는 것은 유권자 입장에서 보면 주인으로 인정받는 길이기도 하다. 또한 이에 대한 정치권의 대응이 더욱 정교해지면서 실질적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한 걸음 더 다가가게 하는 일이기도 하다.

윤희웅 오피니언라이브 여론분석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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