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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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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도 또렷한 지역 투표, 이유는

대선의 또렷한 지역 투표 성향,
‘호남-리버럴’ 대 ‘영남-보수-시장주의’ 지형 변해도 변하지 않는 것
등록 2022-04-06 16:02 수정 2022-04-07 02:37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일러스트레이션 이강훈


신진욱의 질문
이번 대선 개표 결과에서 눈에 띄는 것 가운데 하나는 확연히 다른 영호남의 투표 성향이다. 혹자는 지역 구도의 부활을 말한다. 지역주의 투표 행태는 왜 지속되는가. 그것은 사라져야 할 병리적 현상인가.(제1404호)

“십 년이란 한 사람이 준 상처를 다스리기에는 너무나 짧은 세월이다”(김수영, ‘누이야 장하고나!’ 중에서)

본론에 들어가기 전 내가 호남 사람이란 사실부터 밝혀야겠다. 광주에서 태어나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다. 명절과 휴가철엔 잊지 않고 고향 집을 찾는 내게 30년 전 떠나온 호남은 여전히 자아정체성을 구성하는 핵심 성분이다. 그러니 이 글은 ‘지역주의 투표’ 일반에 대한 객관적 진단과 예측이 아니라, 호남 태생의 리버럴 서울 중산층이 시론적 수준에서 정리한 ‘호남 지역주의론’에 가깝다.

균등하지 않은 ‘나라 망칠 병’에 대한 비난

‘지역주의 투표’는 후보자의 출신지역이나 그가 속한 정당 지도자의 출신지역, 또는 후보자가 속한 정당이 상징(대표)하는 지역이 어디인지를 따져 투표하는 행태를 가리킨다. 한국에선 오랫동안 ‘나라 망칠 병’으로 불렀다. 다만 같은 지역주의 투표였음에도 비난의 강도는 균등하지 않았다.

공격은 민주당 대선 후보에게 매번 90% 가깝게 표를 몰아준 호남 유권자에게 집중됐다. 총선 때면 ‘전라도는 민주당 공천장만 있으면 작대기를 갖다놔도 당선된다’는 야유가 쏟아졌다. 주류 사회의 시선에 비친 호남의 투표 행태는 이성이 아닌 날것의 감정에 근거해 행사되는, 개화한 문명인의 표준에서 벗어난 후진적 일탈 행위에 가까웠다.

호남 유권자의 투표 행태를 향한 타지역의 냉소는 이번 대선에서도 다르지 않다. 대선 투표일 나흘 전인 3월5일 저녁, 지역별 사전투표율이 공개됐을 때부터 조짐이 보였다. ‘정권교체’를 지지하는 이들은 호남의 높은 사전투표율이 정상인의 사고 구조로는 도무지 이해가 안 된다는 듯 한마디씩 씹어돌렸다. “저 동네 사람들은 자존심도 없어?” “내버려둬, 저렇게 살다 죽으라고.”

83.98% 대 12.76%. 이번 대선에서 이재명과 윤석열이 얻은 호남 득표율이다. 투표일 1개월 전까지도 호남 지지율이 60%대에 머물렀던 이재명이지만, 대선에선 득표율이 80%대 중반까지 치솟았다. 투표율 50%에 육박했던 호남권의 사전투표 열기에서 충분히 예상됐던 바다. 심보선의 시구를 빌리면 “이렇게 된 것은/ 이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슬픔이 없는 십오 초’ 중에서).

개표 결과가 나오기 전에는 지역주의 투표 성향이 과거 대선에 견줘 약해질 것이란 예상이 우세했다. 호남권에서 이재명의 고전 분위기에 더해 연령대별 지지율에서 감지되는 이상 징후 때문이었다. 하지만 지역 구도는 이번 대선에서도 뚜렷했다. 호남과 대구경북(TK)에서 민주당과 국민의힘 후보에 대한 표쏠림이 재현된 것이다. 사전투표와 본투표 양상을 보면 호남이 움직이고, 티케이가 따라갔다. 호남의 결집과 영남의 역결집이라는 지역주의 투표의 전형적 흐름이다.

‘뉴딜 연합’처럼, 리버럴 껴안은 민주당

민주당은 ‘호남’과 ‘리버럴’이라는 두 개의 헤게모니 분파로 구성된 연합정당이다. 2010년 정치부에 배속돼 정당 출입을 시작할 당시 민주당은 2007년 대선과 2008년 총선의 연이은 참패로 호남과 수도권의 일부 지역만 포괄하는 81석짜리 지역 정당으로 쪼그라들어 있었다. 그런데 그해 지방선거에서 ‘무상급식’ 이슈를 앞세워 정치적 반등에 성공하더니, 2012년 총선 직전 리버럴의 주력인 시민사회 세력과 원외 친노(친노무현)의 조직적 결합을 이끌어내면서 2003년 민주-열린우리당 분당 이전의 세력 기반을 대부분 회복했다.

정당이 집권을 목표로 삼는 한 선거에서 ‘다수 연합’을 구성하는 게 필수다. 유권자는 계층·지역·세대·종교·이념적 배경이 다양한 이질적 집단으로 구성되는데, 복잡하게 분화된 현대사회의 특성상 특정 정당이 어느 한 지역이나 계층·이념 집단의 지지만으로 권력을 잡기란 불가능한 탓이다. 다수 연합의 가장 성공적인 사례는 1930년대 미국에서 출현한 뉴딜 연합이다. 대공황 덕에 운 좋게 집권한 프랭클린 루스벨트는 대규모 복지·공공정책을 통해 전통 지지 기반인 남부 백인과 가톨릭 세력에, 북동부 노동계급과 이민자들, 대도시 취약계층을 묶어 안정적인 다수자 연합을 구성하는 데 성공함으로써 30년 민주당 장기집권의 길을 열었다.

1997년 한국의 정권교체 역시 미국 민주당의 집권 과정을 닮았다. 기실 민주당에 대한 호남의 배타적 지지는 역사적·정치적 산물이다. 호남은 1960~70년대 산업화 과정에서 중앙권력이 채택한 불균등 발전 전략의 소외 지역이다. 저발전에 따른 대규모 수도권 이주, 수도권 하층민으로 편입된 호남 출향인에 대한 선정착민의 배제와 차별, 영남 기반 정권에 의한 반호남 정서의 정치적 동원과 이에 대항하는 호남의 방어적 결속 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다.

호남의 전폭적 지지와 재야의 조력으로 1987년 민주화 이후 안정적인 제1야당 지위를 유지해온 김대중의 민주당은 오랜 협상 끝에 김종필이 맹주인 충청 세력과의 연합을 성사시켰고, 여기에 여권 분열과 외환위기라는 예상치 못한 변수가 추가되는 천우신조 끝에 집권에 성공한다. 하지만 소수파 정권의 태생적 한계 탓에 정권 재창출은 난망한 상황이었다. 김대중의 선택은 호남의 견고한 지지 위에 ‘자유주의·온건진보 성향의 고학력 도시 중산층’(리버럴)의 지지를 얹는 것이었다. 호남의 헤게모니 아래 리버럴을 하위 파트너로 삼는 다수 연합 구상이었고, 그 결실이 2002년 집권한 노무현 정부였다.

노무현 정권의 등장과 함께 한국의 정당정치 지형은 ‘호남-리버럴 연합’ 대 ‘영남-보수-시장주의 연합’의 경쟁 구도로 재편됐다. 이후의 정치변동은 연합을 구성하는 헤게모니 분파들 사이의 갈등-이탈-재결합의 동학을 따라갔다. 두 번째 정권교체인 2007년 이명박의 대선 승리가 ‘호남-리버럴 연합’에서 리버럴이 이탈한 게 결정적이었다면, 세 번째 정권교체인 2017년 문재인의 대통령 당선은 국정농단과 박근혜 탄핵이 가져온 ‘영남-보수-시장주의 연합’의 붕괴로 인해 가능했다.

민주당 경선에서 ‘출신지역’ 아닌 ‘본선 경쟁력’

민주당의 호남-리버럴 연합 구도가 실질적 붕괴 상태로 치달았던 적도 있다. 2016년 민주당의 전신인 새정치민주연합의 분당이다. 기실 호남과 리버럴이 적잖은 정서적·정치적 거리에도 불구하고 비교적 안정된 연합을 구성할 수 있었던 건 보수 지배동맹이 장기간 이어져온 것에 대한 염증, 그리고 ‘정권교체’의 열망과 기대이익을 두 분파가 공유했기에 가능했다. 그러나 10년의 김대중-노무현 집권 기간을 거치며 이 두 정치적 공약수의 효능은 반감됐고, 2009년 노무현·김대중의 죽음과 2012년 대선 패배, 그리고 두 분파의 상징적 인물들(박지원·문재인)이 격돌한 2015년 2월 전당대회를 거치며 연합은 정치적 파국을 맞았다. 그 결과가 2016년 국민의당의 호남 석권이다.

눈여겨볼 지점은 호남이 리버럴과의 연합에서 이탈한 뒤에도 ‘반(反) 영남-보수-시장주의 연합’의 경계선 안에 완강하게 머물렀다는 사실이다. 미국 민주당의 지지 기반이던 남부가 1960년대 이후 공화당 지지로 전향해버린 것과는 다른 선택이었다. 호남과 리버럴의 갈등은 이념이나 경제적 이해관계의 차이가 아닌, 연합의 헤게모니를 누가 쥐느냐를 둘러싼 경합적 갈등의 성격이 짙었기 때문이다. 2017년 대선에서 문재인의 60%대 호남 득표는 연합 복귀를 알리는 호남의 정치적 세리머니였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호남의 주류가 ‘문재인의 대안’으로 선택했던 안철수의 집권 경쟁력이 대선 레이스 기간 뚜렷한 한계를 드러낸 게 결정적이었다.

호남은 복귀했지만 연합 내부의 역학관계는 리버럴 쪽으로 확연히 기울어져 있었다. 리버럴의 세력 기반인 고학력 도시 중산층의 확대 속도와 호남 출신이란 정체성에 따라 투표하는 유권자층의 감소세를 견줘보면, 이 추세를 역전시키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호남은 결국 연합 내 주도권을 깨끗이 포기하되 집권의 과실을 우선 배분받는 리버럴의 하위 파트너 자리를 받아들인다. 그 결과 호남은 문재인 정부의 인사·예산 배분에서 최대 수혜 지역이 됐고, 그 과실은 호남의 엘리트뿐 아니라 기층 대중에게도 정치적·심리적 안정감을 줬다. 문재인의 호남권 국정 지지도가 집권 기간 내내 고공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던 배경이다.

이렇게 보면 2021년 민주당 대선 경선 당시 호남이 보여준 선택도 충분히 설명된다. 경선에서 호남은 중앙정치 경험과 안정감에서 앞서는 동향 출신의 이낙연 대신 영남 출신 경기지사로 팬덤이 두터운 이재명에게 더 많은 지지를 보냈다. 그들의 판단 기준은 ‘후보의 출신지역’이 아니라 오로지 ‘본선 경쟁력’이었기 때문이다. 그 판단에 책임지듯 호남은 본선에서 84%의 표를 이재명에게 몰아줬다.

복합쇼핑몰 10개를 호남에 세운다 해도

‘누이야 장하고나!’는 김수영의 연작시 ‘신귀거래’의 일곱 번째 시편이다. 혁명의 희열이 차갑게 식어버린 5·16 직후 김수영은 누이 방 벽에 걸린, 10년 전 전쟁통에 실종된 남동생의 사진을 바라보며 이렇게 묻는다. ‘누이야/ 풍자가 아니면 해탈이다/ 너는 이 말의 뜻을 아느냐’. 그의 물음엔 열정도 희망도 사라져버린 암담한 시대를 견뎌야 하는 모더니스트의 번뇌가 담겨 있다. 이 번뇌 속에서 시인은 세월과 상처에 대해 이야기한다. 사람이 준 상처는 쉽게 아물지 않는다는 것, 강산도 변화시킨다는 세월의 치유력도 상실이 초래한 내상 앞에선 별무소용이라는 것.

시인의 말대로 사람이 준 상처가 아물기에 10년은 너무 짧다. 미국 남부인이 이데올로기적 친연성이 떨어지는 민주당을 100년 가까이 지지한 것도 내전의 패배와 상실감 없이는 설명이 쉽지 않다. 호남이라고 다를까. 오랜 차별과 42년 전 학살의 기억을 집단적으로 공유한 이들이, 가해 집단과의 연을 여전히 청산 못한 정치세력에 마음을 열기란 어려운 일이다. 복합쇼핑몰 10개가 들어가도 마찬가지다. 민주당에 대한 호남의 전폭 지지는 따져보면 40년이 채 안 된다. 배제와 죽음의 기억을 상쇄할 강력한 정치적 균열이 등장하지 않는 한 ‘견고한 호남’은 상당 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다.

이세영 한겨레 논설위원

이세영의 질문 지난 대선에서 몇몇 온라인 커뮤니티의 활동은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반페미’ 정치에 큰 힘을 실어줬다. 더불어민주당 쪽 팬덤정치는 ‘노사모’, ‘문파’를 거쳐 ‘명파’로 변신하며 지속되고 있다. 이런 정치행동을 어떻게 봐야 하는가. (제1409호로 이어집니다.)

*신진욱X이세영의 정치크로스: 정치사회학자인 신진욱과 정치부 기자 출신인 이세영이 한국 정치에 대해 서로 묻고 답하는 형식의 정치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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