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우리 닮은 후보’가 그립다 못해 마렵다

사법 리스크·방탄·종부세 내는 후보 없는 녹색정의당, 선거 공보물을 뜯어보니 정신이 번쩍 든다
등록 2024-04-05 12:50 수정 2024-04-06 04:53
녹색정의당 김찬휘 공동대표(왼쪽부터), 심상정 원내대표, 김준우 상임선대위원장이 22대 총선 선거운동 첫날인 2024년 3월28일 경기도 고양시 화정역 광장에서 열린 출정식에서 절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녹색정의당 김찬휘 공동대표(왼쪽부터), 심상정 원내대표, 김준우 상임선대위원장이 22대 총선 선거운동 첫날인 2024년 3월28일 경기도 고양시 화정역 광장에서 열린 출정식에서 절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파랑과 빨강 두 정당 후보자만 나붙은 선거 벽보 앞에서 망연자실했다. 주위로 노란 산수유꽃만 가득했다. 직장 근처에 살던 때를 빼고 나는 지난 세기부터 쭉 수도권의 한 동네에 거주한다. 어느 선거든 3당, 4당 혹은 풀뿌리나 무소속 후보가 등장하지 않은 적이 없었다. 녹색당과 정의당 계열 3선 시의장을 연이어 배출한 동네다. 이런 단출한 벽보는 처음이다. 사라진 꿀벌이 떠올랐다.

조국혁신당에 한눈팔다 “노란봉투법은 민(주)노총 구제법이 아니냐는 의구심이 있다”는 그 당 비례후보의 발언을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는 친구는 “정의당이 그립다 못해 마렵다”고 했다.

녹색정의당은 제22대 총선에서 254개 지역구 가운데 17곳에만 후보를 냈다. 해사하던 김준우 상임대표의 낯빛이 갈치속젓이 될 만도 하다. 민주노동당 시절부터 평당원이었던 김 대표는 총선을 불과 반년 앞두고 비상대책위원장을 맡으며 20년 넘도록 자신에게 ‘양당 외에 찍을 곳’이 되어준 당에 대한 고마움이 커서 중책을 맡았다고 했다. 그는 정의당에는 없는 세 가지를 내세운다. 사법 리스크, 방탄, 종부세 내는 후보.

선거운동 첫날 경기 고양갑 심상정 후보 유세에서 김찬휘·김준우 대표와 심 후보가 세 차례 무릎을 꿇고 엎드렸다. 부족함을 반성하고 잘하겠다고 다짐했다. 나는 심 후보의 연골을 걱정했는데 친구는 비 맞고 서 있던 김종대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의 정수리를 걱정했다. 안 그래도 “살려만 주십시오” 고개 숙이고 다니는데 더 휑해질까봐서란다.

비례대표 공보물을 뜯어보니 짠한 마음이 더하다. 이렇게 준비가 돼 있는데! 접어서 네 쪽, 한 장짜리지만 여느 정당의 것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묵직하고 알차고 직관적이다. 돌봄의 나순자, 노동의 권영국, 녹색 허승규, 지역 이보라미, 기후 조천호… 저마다 대표 키워드가 있는 후보들이 당장 입법화할 시급한 정책 네댓 가지씩을 걸고 있다. 전세사기·깡통전세 피해자를 위한 입법안을 유일하게 내놓았고, 대통령·단체장·국회의원 결선투표제를 도입하자고 한다.

이번 총선은 유난히 쟁점이 없다. 대신 여야 지역 가릴 것 없이 마구 던지는 환심성 개발공약이 판을 친다. 재개발, 재건축, 도로 지하화는 기본이고, 광역철도니 비행장이니 메가시티니 스케일도 어마어마하다. 자산 가치 높이는 게 정치의 본령이라도 되듯 앞뒤 없이 경쟁적이다. 이런 분위기니 수십억짜리 집을 군대에 있는 자식에게 물려주는 게 아무렇지 않고 또 다른 자식에게 얼마를 줬건 위법만 아니면 상관없으며, 강남의 똘똘한 한 채를 위해 대학생 자식 이름으로 사기에 가까운 편법 대출을 받고도 버티나보다. 이들이 주류인 국회가 전세금 떼이고 길바닥에 나앉게 된 젊은이들의 어려움을 해결할 수 있을까. 눈곱만 한 공감이라도 할까. 가덕도신공항과 제주2공항, 새만금공항 건설을 반대할 까닭이 있을까.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자료에 따르면, 녹색정의당 후보자 평균 재산은 4억6천만원이다. 국민의힘·국민의미래는 45억6천만원으로 열 배, 더불어민주당·더불어민주연합은 18억5천만원으로 네 배, 개혁신당과 새로운미래는 각각 13억5천만원, 13억3천만원으로 세 배꼴이다. 우리는 우리를 닮은 정치인을 가질 권리가 있다.

이번 선거는 심판선거, 응징투표가 되고 있다. 다들 우르르 몰려가 하얗게 불태울 기세다. 그런데 파란 불꽃이든 빨간 불꽃이든 재는 남는다. 그 청소는 누가 할까. 누군가 한다. ‘누군가들’을 위한 정당이 있다는 사실에 나는 안도한다.

김소희 칼럼니스트

 

*김소희의 정치의 품격: 격조 높은 정치 칼럼입니다.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