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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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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진이 미소의 비결

등록 2019-12-04 01:58 수정 2020-05-02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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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호(제1289호) 표지 사진에 등장한 아이는 여섯 살 임여진입니다. 산책하기와 음악수업을 할 때 가장 행복한 여진이는 지적·자폐 장애가 있습니다. 여진이의 수많은 사진 가운데 뉴스룸에 있던 모두가 그 사진을 골랐습니다. “정말 이쁘다”는 탄성과 함께요.

여진이의 밝고 씩씩한 표정은 엄마를 똑 닮았습니다. 엄마 이혜연씨는 여진이가 발달장애 진단을 받은 뒤 전국장애영유아학부모회 대표가 되었습니다. 여러 보육기관이나 단체에서 장애아 엄마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가족이 앞으로 행복하게 지낼 수 있도록 조언도 해줍니다. 이번 발달장애 아동 취재를 하며 만난 제게도 엄마들을 소개해주고, 기사 방향을 짚어주었습니다.

기사가 완성될 무렵, 제 고민은 표지 사진이었습니다. 취재하며 만난 아이들이 또래처럼 때로는 귀엽게 웃고, 때로는 짜증 내는 평범한 얼굴을 담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인터뷰에 적극 나선 엄마들도 아이의 얼굴이 공개되는 것만큼은 어려워했습니다. 장애 유무를 떠나, 아이 얼굴을 언론에 드러내는 것은 대부분 부모에게 쉽지 않은 일이라, 저는 두 번 권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여진 엄마가 “필요하면 여진이의 사진을 쓰라”고 먼저 말해주었습니다. 여진이는 기사에 등장하지 않지만 얼마든지 사진을 찍어 사용해도 된다고 했습니다. 무척 고마워하는 저에게 엄마는 “셋째 늦둥이를 키우며 오히려 내가 큰 행복을 느끼고 있다. 기사를 써줘서 감사하다”고 말했습니다. 그렇게 여진이 얼굴이 표지에 나오게 됐습니다. 여진이의 사랑스러운 표정과 ‘여진아, 행복하게 살자’라는 문구는, 굳이 기사를 읽지 않아도 우리가 여진이와 친구들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 무엇을 해줘야 할지 고민하게 합니다.

물론 모든 부모가 여진 엄마처럼 매 순간 발달장애 아이를 행복한 마음으로 키우고 있지는 못할 겁니다. 기사가 나간 뒤 ‘발달장애 쌍둥이를 뒀다는 부모’ ‘경상남도에서 경기도로 발달장애 아들 치료를 보내는 아빠’ ‘6살 발달장애 아이를 키우는 엄마’ ‘발달장애 아이를 위해 ABA(응용행동분석)를 공부하는 엄마’ 등이 댓글과 전자우편으로 의견을 전해왔습니다. 이들은 치료비 부담, 치료 기관 부족, 주변 시선 등 어려움을 이야기하며 조금이나마 그런 부분을 짚어준 기사에 위안을 받았다고 말했습니다. 물론 제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상처를 가진 부모도 있었습니다. “몇 달 전 어느 신문기사에 폐쇄가옥을 소개하는 기사 제목을 자폐건축이라 뽑아낸 걸 보았습니다. 그 기사를 보며 마음이 무너진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제가 무얼 할 수 있을까 생각해봤습니다. 많지 않습니다. 아이 치료에 건강보험이 적용되고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이 만들어지기를 간절히 바라는 부모들의 마음 헤아리기, 만약 그와 관련한 청와대 청원이 올라오면 힘 보태기, 어딘가에서 발달장애 아이를 만나면 눈 마주치고 웃어주기, 그 아이가 내 아이와 같은 어린이집·유치원에 다니면 둘이 친구가 될 수 있게 도와주기, 장애인에게 상처 주는 표현을 쓰지 않기. 우리가 이런 일만 해도 여진이는 지금처럼 밝고 씩씩하게 웃으며 앞으로 행복하게 살아갈 수 있겠지요.

서보미 기자 spri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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