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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것이 온’ 요양시설 집단감염

등록 2020-03-07 05:54 수정 2020-05-02 1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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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북 청도 운문댐에 물이 들어오기 전이니 25년도 훨씬 지난 일입니다. 할머니와 운문산 초입에 있는 절 ‘운문사’에 자주 갔습니다. 할머니 손을 잡고 돌계단을 오르면 향로에 달아오르는 향내와 숲 내음에 정신이 번쩍 들었습니다.

할머니는 돌아가시기 몇 해 전 뇌졸중을 앓으셨습니다. 몸의 반쪽이 통제되지 않아 한쪽 다리로 바닥을 쓸고 다니셨지요. 할머니가 돌아가신 뒤 요양병원에 봉사활동을 갈 때면 그곳 노인들을 보며 늘 할머니를 떠올렸습니다. 그래선지 운문사에서 그리 멀지 않은 청도대남병원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일어났다는 소식을 듣고 돌아가신 할머니가 떠올랐습니다.

대남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환자 중 총 8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대부분 나이 많고, 기저질환을 앓았습니다. 3월5일에는 경북 봉화군 푸른요양원에서 환자가 무더기로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36명에 이릅니다. 역시 고연령이고 기저질환이 있는 환자가 많습니다. 이는 사망자가 더 나올 수 있음을 뜻합니다. 요양시설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일어난 사례는 더 있습니다. 경북 칠곡 밀알사랑의집(24명), 경북 경산 서린요양원(13명)에서도 집단감염이 있었습니다.

치매를 앓거나 건강하지 않은 노인을 수용하는 시설은 환경이 열악합니다. 대남병원 사례에서 보듯, 좁은 방에 여러 명이 함께 생활합니다. 시설에 거주하는 노인들은 음식을 잘 먹지 못해 면역력이 약합니다. 바이러스 감염에 취약할 수밖에 없습니다. 보건의료계에서 요양시설 집단감염 소식을 듣고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중앙치매센터가 지난해 발간한 ‘대한민국 치매 현황 2018’을 보면 국내 65살 이상 치매 노인은 70만5천여 명으로 추정됩니다. 2024년엔 치매 노인이 100만 명에 이를 것으로 내다봅니다. 이들을 모두 요양시설에 수용하는 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2019년 노인보건 분야 화두는 ‘커뮤니티 케어’(지역사회 돌봄)였습니다. 커뮤니티 케어는 장기 요양 서비스가 필요한 노인과 환자를 시설에 수용하는 것이 아니라 집이나 지역사회에서 보호하는 개념입니다. 서비스를 받는 당사자의 신체, 정신적 능력을 저하시키지 않고 사회적 비용을 줄일 수 있다는 점 때문에 미국과 영국에서 빠르게 자리잡았습니다.

한국은 지난해 8개 지방자치단체(△노인 분야 광주 서구, 경기 부천, 충남 천안, 전북 전주, 경남 김해 △장애인 분야 대구 남구, 제주 제주시 △정신장애인 분야 경기 화성)를 선정해 시범사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시범사업을 수행하는 도시에서 일어나지 않은 건 우연이 아닐 것입니다. 정부는 커뮤니티 케어를 2026년께 전국으로 확대하는 목표를 갖고 있습니다. 커뮤니티 케어가 조금만 더 빨리 정착됐다면 요양시설에서 집단감염이 일어나지 않았을까요?


이재호 기자 p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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