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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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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 탈출’을 꿈꾸는 이 시대 청년들

등록 2021-05-29 07:52 수정 2021-05-30 01:15

“지금 살고 있는 방은요….” “제가 사는 오피스텔은….”

짧게는 1년, 길게는 14년, 좁게는 3평, 넓게는 10평 크기의 ‘방’을 전전하는 청년 10명(기사에 인용된 6명 포함)과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거주 지역도, 방 평수도, 건물 형태도 조금씩 다른데,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했습니다. 인터뷰에 참여한 그 누구도 현 거주지를 집이라고 ‘무심결에’ ‘함부로’ 지칭하지 않았습니다.

그 방은 왜 집이 될 수 없는지 궁금했습니다. 물었더니 답은 비슷비슷했습니다. 쉽게는 구조 자체가 단일한 하나의 방으로 돼 있기 때문입니다. 최저주거기준(14㎡)을 갓 넘긴 방 한 칸에서 밥 먹고, 공부하고, 재택근무하고, 영화나 드라마를 보고, 책을 읽고, 잠듭니다. 코로나19 시국이다보니 이 방에서 24시간을 보낼 때도 있습니다. 답답함을 참지 못해 밖으로 나오는데 그러면 필연적으로 돈을 쓰게 됩니다. 누군가는 “잠만 자는 곳”이라 하고, “임시 거처”라고 표현하기도 하더군요. 원룸은 이상적인 형태의 집으로 건너가기까지, 그 과도기에 잠시 머무는 거처이겠지요. 그러나 그 과도기가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깊어집니다.

14년째 방에 사는 이병훈(32·가명)씨에게 ‘집’이라는 건 뭘까 물었습니다. “‘우리 집’이라고 하면 거의 모든 게 있잖아요. 충족되고 의지할 수 있는 그런 공간이요. 그런데 독립하고 나서 제집이라는 건 한 번도 겪어본 적 없고 아직까지 구체화된 게 없잖아요. 그러니까 그냥 ‘숙제’ 같은 느낌이에요. 당위성도 필요성도 이해돼서 노력은 하고 있지만, 아직 겪어보지 못했고, 언제 겪을지 모르는….”

꾸역꾸역 대출받아 1억~2억원대 전세를 구하거나, 40만~60만원의 월세를 내는데 그 돈으로 구할 수 있는 게 고작 이 방 한 칸이라는 게 생각할수록 ‘신기하다’고 말한 사람도 있었습니다. 돈이 돈을 버는 시대. 전세자금으로 돈이 묶이거나 월급의 상당 비율이 월세로 빠져나가면 자산 축적이 어려워지니 방 탈출 시기는 더 멀어지겠지요. 그리고 이미 집을 산 또래 친구와의 자산 격차 또한 벌어지겠지요. 언제 끝날지 모르는 방살이가 잠시 감내하고 말 불편으로 끝나지 않을 거라는 이야기입니다. 최저주거기준만 충족하는 최저의 삶, 떠남을 예정해둔 임시의 삶이 언제 끝날지 모른다는 체념만 깊어집니다.

2016년 청년의 방살이를 연구한 구승우 신촌문화정치연구그룹 연구원의 말입니다. “서울, 수도권의 집값은 연구 당시에 비해 수배 더 올랐다. 비좁은 방에서 공간적으로, 신체적으로 제약받고 불안한 감각을 느끼면서 자신의 집을 갈망하게 되는데 사회구조적으로 내 소유의 집은 엄두도 못 내는 상황이다. 체념의 감각이 점차 심화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건가.’ 독자 반응 중에는 이런 짧은 피드백이 있었습니다. ‘왜 청년들만의 문제인 것처럼 세대갈등을 부추기나.’ 이런 반문도 있었지요. 누가 더 힘든지 겨뤄보자는 게 아닙니다. 정부에 무언가 더 요구할 여유도 없습니다. 희망을 버리고 아주 단념하는 마음(체념)에는요. 절대주거빈곤을 의미하는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 담론에서 ‘영끌’ 담론으로 넘어간 여론 지형1)을 돌이켜봤을 때 누수된 수많은 마음 마음들이 그렇습니다. 2021년의 청년 주거사입니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

1) “‘지옥고 담론’이 ‘영끌 담론’으로 넘어간 여론 지형 매우 암울”, 최은영 한국도시연구소장 인터뷰, 2020년 12월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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