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티나무는 여름이 되면 봄부터 모았던 에너지로 또 한 번 햇가지(여름 순)를 힘차게 밀어낸다. 포물선을 그리며 동서남북으로 고루 뻗은 햇가지가 출렁출렁. 양옆으로 연한 빛깔의 햇잎이 돋아, 덥수룩한 머리(수관)가 유난히 밝다. 봄에 한 번만 새 가지를 내는 ‘보통 나무’보다 빨리 자라는 건 당연한 일. 건강 체질이라 수백 년에서 천 년 이상 장수한다. 그래서 불과 30~40년 전만 해도 느티나무 고목은 우리나라 곳곳에 참 흔했다. 마을 어귀엔 어김없이 정자나무로 느티나무가 있었다. 빽빽한 잎으로 넉넉한 그늘을 만든 덕에 누구나 모였고, 이야기가 피어났다. 그땐 매미 소리도 참 우렁찼다.
“여기 원래 60여 가구 마을이 있었는데, 일본강점기인 1910년대 쌀을 늘린다고 둑이 만들어지면서 물에 잠겼다고 해요. 남쪽으로 함안 대산(면), 북쪽으로 의령 신반(리), 동쪽으로 창녕 남지(읍)로 드나드는 길목이라고 삼걸(삼거리)마을, 세 산에 둘러싸였다고 삼산마을이라고 했어요. 이 둑 안쪽을 웃삼걸마을, 이 바깥쪽을 아래삼걸마을이라고 불렀지요. 두 마을의 경계에 당산나무 네 그루가 있었어요. 마을만 희생된 게 아니라 수백 살 된 나무 두 그루도 베어지고 둑이 만들어지면서 둥치는 물에 잠겼어요. 원래 열 사람이 손을 뻗어야 겨우 닿는 굵기라서 ‘천년나무’라고 불렀죠. 제가 어릴 때도 이 밑동을 둥그나무(동구나무)라고 불렀어요. 밑동이 얼마나 넓었는지, 저수지 위로 밑동이 드러나는 날이면 마을 사람들이 모여 그 위에서 목욕하고 빨래하고 낚시했지요.”
2023년 7월13일 오전 경남 의령군 지정면 두곡저수지 앞 느티나무 아래에서 만난 동곡 법사(64·전 김해화엄불교회관 태림원 원장)가 돌이켰다. 아버지, 할아버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다. 삼걸마을(삼산마을)은 현재 두곡천 아래 두곡리에 편입돼 이름도 희미해진 상태다. 동곡 법사는 한산당 화엄 스님(1925~2001)을 은사로 모셨다.
남은 두 그루 중 더 큰 한 그루를 살펴봤다. 곧게 자란 뒤 사방으로 가지를 뻗는 여느 느티나무와는 달랐다. 땅과 맞닿은 부분에서 1.5~2m 굵기의 가지 6개가 뻗어 있었다. 둑 축조 때 남아 있는 느티나무 줄기도 2층 높이 정도의 흙으로 덮였기 때문이다. 사람으로 따지면 턱밑까지 파묻혀 100년가량 살았다는 얘기다.
현장을 찾은 박정기 ‘노거수를 찾는 사람들’ 대표활동가는 △잎의 크기가 작고 △나무껍질이 제대로 벗겨지지 않고 △말라 죽은 가지가 많으며 △여름 순이 생기지 않은 것을 확인한 뒤, “생육 상태가 매우 좋지 않다”고 진단했다. 이런 점 때문에 마을 주민들은 두 나무의 보호수 지정을 군청에 건의하려 한다. 박 활동가는 “과거 이 네 그루가 ‘웃상그리마을’ 들머리에 숲을 이뤄 입구(동구나무) 구실을 했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나무는 잔뿌리를 지표면 30㎝ 이내에 뻗어 호흡한다. 흙을 높게 덮는 복토는 나무를 병들게 하고 죽게 하는 일이다. 정이품송(충북 보은), 용문사 은행나무(경기기 양평) 등이 대표적인 복토 피해 사례로 꼽힌다.
그런데도 이날 이 억센 두 고목나무의 촘촘한 수관(나무의 잎과 가지)은 비탈을 따라 20m 이상 늘어져 아래는 어두컴컴했다. 옛 위세를 짐작할 수 있었다. 둘 다 키가 약 18m였다. 땅속에 묻힌 가슴높이 둘레는 8.5~9m 정도로, 수령은 300~500살 정도로 추정된다.
“전부 일급 논이었는데….” 함께 마을을 한 바퀴 돌던 동곡 법사가 잡초밭을 가리키며 말했다. 빈집이 절반가량, 잡초가 무성한 묵힌 논도 수두룩했다. 이제 부산 등 도시에서 귀촌한 가구를 합쳐도 마을엔 10여 가구만이 있을 뿐이다. 동곡 법사가 2016년 이 마을로 귀향했을 때 8명이던 90살 이상 어르신도 이제 그의 부친 이종윤(100) 옹을 비롯해 2명뿐이다. 올 사람이 없어 마을 경로당이 문을 걸어 잠근 지도 벌써 3년. 이종윤 옹을 찾아 ‘천년나무’에 관해 물었다. 귀가 어두운 이 옹은 “무슨 나무? (…) 세월이 지겹다”고 말했다.
이렇게 마을도 농업도 쇠락해가지만 2011~2012년 한국농어촌공사는 안전 우려 때문에 두곡저수지의 둑을 1.5m가량 높였다. 동곡 법사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논은 줄었지만 둑은 되레 높아졌다는 게 참….”
의령(경남)=김양진 기자 ky0295@hani.co.kr
☞☞[의령 느티나무②] ‘물속 100년 산 천년 느티나무, 불상 천개로 다시 태어나’ 기사로 이어집니다.
☞☞[의령 느티나무③] ‘느티나무 한 그루가 숲으로 컸지만…열매 보다 아름다운 이야기는 계속될 수 있을까’기사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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