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약하다고 범죄대상이라면 세상아, 망해버려라

발달장애인 자녀 둔 엄마가 본 장애인 대상 범죄, 그 학대가 더 나쁜 이유
등록 2020-11-22 11:57 수정 2020-11-24 22:43
어느날 상처를 입고 들어온 아들 동환이. 류승연 제공

어느날 상처를 입고 들어온 아들 동환이. 류승연 제공

“언니야, 오늘 동환이 무슨 옷 입었노? 까만 코트 입은 애가 눈 위에 앉아 울고 있는데 아무래도 동환이 같다.”

부모 교육을 들으러 장애인복지관에 간 날이었다. 함께 교육 듣기로 한 엄마가 지각했는데 주차장 뒤쪽에서 우리 아들로 보이는 아이가 한 여성에게 머리를 얻어맞으며 울고 있다는 연락이 왔다. 지금 아들은 활동지원사(장애인활동지원사, 장애인의 일상활동과 사회활동을 지원한다)와 함께 음악치료실로 향하고 있을 시간이다. 주차장 뒤쪽 길을 이용한다.

남성 활동지원사의 달콤한 유혹

활동지원사에게 전화하는데 받질 않는다. 숨이 잘 안 쉬어진다. 간신히 치료사 선생님과 연락이 닿았다. 아들 바지가 젖어서 갈아입히는 중이라 한다. 눈 위에 주저앉아 맞았다더니…, 아들이었나 보구나. 까만 코트 입고 “이이이이~” 하며 겁에 질려 울고 있었다던 그 아이. 경찰이 출동해 폐회로텔레비전(CCTV) 영상을 확인하면서 활동지원사의 학대 사실을 확인했다.

3년 전 일이다. 아들이 얼마나 두려웠을지, 나 없는 곳에서 얼마나 자주 맞았을지 생각하면 피가 거꾸로 솟는다. 하지만 그보다 더 견딜 수 없던 건 주변 가까운 이들의 반응이었다. 어쩔 수 없다는 말. 자조 섞인 그 말에 심장에선 피가 뚝뚝 흘렀다.

그들은 나를 위로하며 앞으로도 이런 일이 반복될 거라고 했다. 말도 못하고 행동으로 구체적 상황을 표현하지도 못하니 감수하고 살아야 하지 않겠느냐고, 그때마다 일일이 경찰 부르며 대응할 거냐고, 그것이 발달장애인 자식을 둔 부모가 감내해야 할 숙명이라고도 했다.

자기방어력이 약한 발달장애인이니까 어쩔 수 없다고? 숙명이라고? 현실이 이러니까 그냥 받아들이라고? 사회에서 가장 약한 자가 약하다는 이유로 범죄의 대상이 되는 걸 어쩔 수 없다 해버리는 세상이라면, 망해버려라! 그런 세상! 한동안 울분에서 헤어나오기 힘들었다.

지난해였던가, 평소 친분 있는 사회복지사를 만나 발달장애인 자립에 관해 이야길 나눴다. 사회복지사는 시설에서 자립해 나간 남성 홍길동(가명)씨가 겪은 일을 털어놨다. 돈이 없어 길동씨의 자립 생활이 위태롭다고 했다. 월급을 받아도 며칠 사이 다 써버린다고. 돈 사용에 대한 경제 교육이 체계적으로 이뤄지면 되지 않을까 했는데 그런 차원이 아니었다.

길동씨는 남성 활동지원사의 지원을 받아 생활했는데 어느 날 그가 길동씨에게 달콤한 제안을 했다. “여자 경험 시켜주겠다”고 한 것이다. 대신 여성을 두 명 부르겠다고. 돈은 누가 내고? 길동씨가 내고! 사회복지사는 길동씨를 만날 때마다 “그러면 안 된다”고 타일렀다. 그때마다 길동씨는 “나도 그러고 싶지 않다”며 괴로워했다고 한다. 길동씨는 왜 그토록 괴로워하면서도 같은 일을 반복해야 했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이 발달장애인을 대상으로 한 범죄에서 가장 눈여겨봐야 할 핵심 요소다.

모든 학대가 다 그렇듯, 발달장애인 학대에서도 가해자의 가장 큰 비중은 가족이 차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그 특성상 공개적으로 드러난 사례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러다보니 가족 다음으로 가까운 활동지원사의 학대 사례가 연이어 나왔다. 의도한 바가 아니었음을 밝힌다. 활동지원사를 겨냥하려는 게 아니다. 아들은 그 사건 이후 두 번째 활동지원사와 좋은 관계를 유지했고(지금도 길에서 만나면 엄청 반갑다), 세 번째 활동지원사인 현재 선생님과도 잘 지낸다.

“거절하면 미워할까봐”

학대 사건이 있었음에도 계속 활동지원사와 함께하는 일상을 유지하는 이유는 내가 영원히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아들은 가족이 아닌 타인의 지원을 받아 살아가는 법을 연습해야 한다. 든든한 조력자인 내가 곁에 있는 지금부터 말이다.

어쨌든 다시 길동씨 이야기로 돌아가본다. 왜 길동씨는 멈추지 못했을까? 자신의 생존이 위협받을 지경임에도 활동지원사 뜻에 따라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길동씨 답변은 “거절하면 미워할까봐”였다고 한다.

모든 발달장애인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발달장애인이 타인의 지원을 받으며 생활한다. 그들은 타인의 지원이 자기 생존에 얼마나 절실한 요소인지 잘 안다. 가까운 관계에 대한 의존도가 높을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가까운 관계에서 학대당해도, 부당한 요구에 직면해도 거절하기 힘들다. 거절하면 미움받을 것 같고, 미움받으면 자신을 버리고 떠날 것 같아 두렵다. 출구가 없다고 느끼는 상황에서 벌어지는 학대에 당사자는 무기력해진다. 맞으면서도 그녀 손을 잡고 치료실에 다녀야 했던 아들도 무기력했을 것이고, 전기요금조차 못 내면서 여성들에게 돈을 지급해야 했던 길동씨도 그랬을 것이다.

“발달장애인이라 인지가 낮아서 그런가?”라고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발달장애인이어서가 아니라 사람이라서 그렇다. 강연할 때 나는 종종 질문을 던진다. “혹시 이 중에서 ‘나는 그래도 거절 잘하는 편’이라 생각하는 분 손 들어보세요.” 한두 명 겨우 손 들까 말까 한다. 왜 거절 못하냐 물으면 사람들은 한목소리로 관계가 어그러지는 두려움을 말한다.

관계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학대 상황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발달장애인이 많은 반면, 관계에 대한 기대 때문에 범죄 상황에 노출되는 발달장애인도 허다하다. 웃으며 다가오는 비장애인의 친절에 마냥 기뻐하다 얼떨결에 도장 찍고 사기당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

사랑받으려는 욕구를 이용한 학대

모든 유형의 학대는 나쁘지만 발달장애인이 대상일 때 더 죄질이 나쁜 건 가해자가 사랑받으려는 피해자의 순수한 욕구를 이용했기 때문이다. 다만 사랑받고 싶었을 뿐이고 미워하지 않기 바랐을 뿐이다. 그래서 순종했고 그래서 체념도 했고 그래서 내미는 서류에 도장도 찍었다. 그 마음, 그 애타는 마음을 파고든 심리 범죄라는 점에서 나는 더 용서가 안 된다.

류승연 작가

*표지이야기-장애인 학대 판결문 분석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