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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권은 유한하고 검찰은 영원하다”

검사 출신 이연주 변호사, 검찰 민낯 폭로한 책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 출간
등록 2020-12-05 01:48 수정 2020-12-05 02:48
류우종 기자

류우종 기자

윤석열 검찰총장과 추미애 법무부 장관의 충돌이 벼랑 끝으로 치닫는 즈음, 검찰의 민낯을 폭로한 책이 한 권 나왔다. 검사 출신인 이연주 변호사(사진)가 쓴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다. 절묘한 때맞춤이다. 출간 며칠 만에, 이 책은 주요 서점의 정치·사회 분야 베스트셀러 목록에 올랐다.

12월2일 서울 서초동 사무실에서 만난 이연주 변호사는 “국민이 검사를 정말 제대로 알았으면 좋겠다”고 책을 펴낸 이유를 설명했다. 책은 그가 2017년부터 자신의 페이스북에 쓴 짧은 글을 묶은 것이다. 스폰서와 성접대 문화, 전관예우, 검사들의 특권 의식, 조직 장악을 위한 암투 등 검찰의 어두운 뒷모습이 생생하다. 감칠맛 나는 문장과 비유는 덤이다. 검찰 조직을 “오랜 세월 바깥세상과 단절된 채 자신만의 진화 과정을 밟아온 독특한 생명체들”이 사는 ‘갈라파고스’에, 검사들을 “안은 텅텅 비고 바람 부는 대로 나부끼면서 자신을 꼿꼿이 세워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권력이라 여겨, 그 권력으로 펌프질하는 공기인형”에 빗댔다.

역대 가장 위험한 검찰총장, 알아주는 조직론자


최근 검찰총장 직무 집행정지에 검사들의 반발이 거센데.

“검사들의 정신세계에 깜짝깜짝 놀랄 때가 있다. 검찰 내부통신망(이프로스)에 ‘부당하고 위법한 징계권 행사에 저항하는 것도, 국민이 검사에게 부여한 의무’라는 등의 글이 올라온다. 그런데 과거사 재심 사건에 ‘무죄 구형’을 했다고 임은정 검사가,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에 항명했다고 당시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2013년 징계받을 때는 왜 가만히 있었나? 그때는 위법하지 않아서? 부당하지 않아서? 그땐 검사 개개인이 다칠 뿐, 검찰 조직의 권한과 위상을 축소하는 문제가 아니어서 침묵했던 거다. 지금 반발은 조직 이기주의로밖에 안 보인다. 그런데도 검사들은 항상 공정과 정의의 옷을 입고 있는 양 가장한다.”

책에 ‘윤석열 검찰총장은 알아주는 조직론자이고, 검찰의 권력을 나누고 쪼개자고 하면 대통령도 집으로 보내실 분’이라고 썼다.

“역대 가장 위험한 검찰총장이다. 그는 2012년 대검 중앙수사부 폐지를 검토하겠다는 한상대 검찰총장을 쫓아내는 데 앞장선 경험이 있다. 정부 부처 외청에서 밑의 간부들이 똘똘 뭉쳐 청장을 몰아낸 사례를 들어본 적 있나. 조폭 1인자가 ‘우리 영업권(중수부) 포기할래’ 하니까 2인자가 1인자를 처단한 거랑 똑같다.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집 압수수색도 ‘이제 그만 물러나라’는 뜻으로 지시했다고 박상기 전 법무부 장관한테 말했다는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자신이 우위에 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수사하는 건 아니잖나.”

문재인 대통령이 윤석열을 검찰총장에 임명한 것이 결국 잘못이었을까.

“임명한 뜻이야 나는 알 수 없다. 짐작이지만, 잠깐 속았던 게 아닐까.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를 했다는 이유로.”

룸살롱, 스폰서… 놀라운 검사 생활

이 변호사는 “검찰에서 근무하는 동안 조직의 불합리와 폐쇄성을 목격한 뒤 극심한 무기력과 우울감에 시달렸다. 매일 잠자리에 들기 전, 다음날 아침에 눈이 떠지지 않기를 바랄 정도였다”고 고백한다. 2001년 검사로 출근했던 첫 주에 부장검사가 초임검사들에게 밥을 사주면서 말했다. “수사를 잘하려면 수사계장하고 같이 룸살롱에 가서 오입질을 하라”고. 수사계장에게 경찰에서 송치된 사건을 맡기고, 검사가 직접 수사를 많이 하라는 이야기였다. “검사 월급으로는 룸살롱 못 간다. 그러니 스폰서한테 용돈 받고 술자리에 대기업 간부 부르고, 그렇게 해서 ‘거악’을 척결하면 그게 국가와 사회에 도움된다고 검사들은 자기합리화한다.” 결국 그는 1년여 만에 검사 옷을 벗었다. “별로 야망이 없어서 쉽게 검사직을 던져버릴 수 있었다.”

그에게는 간혹 “검찰에 잠깐 있었으면서 다 아는 척한다”는 비난도 쏟아진다. 이 변호사는 “검찰에 오래 있던 분들은 조직 논리에 젖거나 나중에 변호사가 되어 검찰을 상대로 영업해야 하니까 비판하기 어려운 부분을, 나는 느끼는 그대로 말할 뿐”이라고 했다. 그는 형사사건을 수임하지 않는다. 이 변호사는 스스로를 “소심하고 조용하고 존재감 없는 사람”이라고 말했다. 그런 그가 어쩌다 지금 검찰 비판의 최선두에 서게 됐을까.

“2012년 어느 날, 사법연수원 같은 반 동기인 임은정 검사가 사무실을 찾아왔다. 정말 덜덜덜 떨면서 왔더라. 무죄 구형하기 전날이었다. 결심을 듣고는 ‘너 미쳤구나. 어떻게 하려고 그래’라는 말밖에 못했다. 임 검사가 법무부 법무심의관실에 가 있을 때다. 검찰에서 아무리 여자 검사가 양념이라지만, 좋은 보직의 길이 열린 거였다. 검찰에서는 수사를 공정하게 하고 인권을 보호하는 검사가 아니라, 좋은 보직을 받는 검사가 훌륭한 검사다. 그런데 그걸 마다하고 ‘백지 구형’하라는 상급자에게 ‘무죄 구형’하겠다고 이의를 제기한 거다. 노무현 정부 때 검사가 상급자의 부당한 지휘를 거부할 수 있는 ‘이의제기권’이 검찰청법에 도입됐고, 임 검사가 처음 행사한 거였다. 검찰 내부와 언론에서는 ‘막무가내 검사’ ‘운동권 검사’라고만 손가락질했다. 임 검사는 그 뒤 왕따당하고, 인사에서도 한직으로 밀려났다.”

이연주 변호사의 책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

이연주 변호사의 책 <내가 검찰을 떠난 이유>

임은정 검사처럼 ‘모난 돌’이 되면 검찰 안에서 ‘적’으로 찍힌다는 말인가.

“사법연수원 서열대로 승진하는 법원과 달리 검찰은 발탁 인사를 한다. 자기 목소리를 냈다가 튕겨나가면 끝이다. 검사 생활을 안정되게 하려면, 나중에 변호사로 수입을 올리려면 검찰을 등지면 안 된다. 유일하게 감찰 일을 열심히 한 검사장이 있었다. 유흥접대를 받았다는 검사들 개인 계좌도 털고. 그런데 변호사 돼서 전관예우를 하나도 못 받았다. 검찰청 왔다가 무시당하고. 지금 검사들이 똘똘 뭉치는 건, 검찰의 적이 되기 싫어서다. 정권은 유한하고, 검찰은 영원하기 때문이다.”

정권은 유한하고 검찰은 영원하다


검찰 개혁에 희망이 없다는 말처럼 들린다.

“검찰 개혁은 이 정부에서 안 되면 다음 정부에서라도 해야 한다. 검사가 위법하고 부당하게 수사나 기소를 하는 등 검찰권을 남용하면 징계 또는 처벌을 받아야 한다. 그러려면 대검 감찰본부를 아예 폐지해야 한다. 2년 임기의 감찰본부장을 외부에서 공모하는 것만으로는 안 된다. 밑에 있는 검사들이 말을 듣겠나. 감찰 열심히 하면 조직의 적이 되고, 감찰본부장이 자기한테 줄 게 없는데? 수사권과 기소권도 분리해야 한다. 그래야 검찰이 칼을 빼들었으니 무라도 썰어야 한다며 억울한 사람을 기소하거나 거짓 자백을 대가로 있는 죄를 덮어주는 일이 사라진다.”

한때 검찰에 몸담았다는 이유로, 이 변호사는 여전히 부끄럽고 괴롭고 슬프다. “검사들은 과거 언론 탄압하고, 민간인 사찰하고, 거짓 자백을 강요했던 잘못은 한 번도 되돌아보지 않으면서, 검찰이 휘두른 칼에 억울하게 고통받은 사람들에 대한 연민은 느끼지 않으면서, 검찰 조직 문제에만 기개 있게 덤비고 정의를 내세운다. 정말 부끄러움을 모르는 비겁한 사람들이다.”

황예랑 기자 yrcomm@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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