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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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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은 코로나 걸린 정신질환자를 거부했다

등록 2021-01-17 07:44 수정 2021-01-19 00:46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와 회원들이 2021년 1월6일 서울 지하철 광화문역 앞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신아재활원의 코호트 격리 중단과 긴급분산 조치 결정을 촉구하며 농성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와 회원들이 2021년 1월6일 서울 지하철 광화문역 앞에서 코로나19 집단감염이 발생한 신아재활원의 코호트 격리 중단과 긴급분산 조치 결정을 촉구하며 농성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몸무게 42㎏, 폐쇄병동 생활 20년.’
2020년 2월 국내에서 코로나19로 처음 사망한 ㄱ씨(당시 63살)를 설명하는 말이다. 코로나19 첫 사망자가 정신병동(경북 청도대남병원)에서 나온 것은 상징적이다. 환기가 안 되는 ‘폐쇄성’, 여러 명이 한 병실에서 생활하는 ‘과밀함’, 침상이 없는 ‘비위생’, ㄱ씨가 사망 직전까지 머물렀던 공간은 감염병 시대의 대책과 모든 면에서 어긋났다. 이 모든 상황이 맞물린 청도대남병원에선 정신질환자 104명 중 102명이 확진됐다. 사회로부터 격리된 채 밀집시설에서 생활하는 사람이 집단감염되는 출발점이다.
2020년 11월 중순 시작된 코로나19 3차 대유행은 1·2차 때와 달리 감염병이 누구를 목표 대상으로 삼는지를 명징하게 보여준다. 교정시설, 장애인시설, 정신병원 등 한국 사회에서 인권을 주장하기 어려운 격리시설에 거주하는 수용인이다. 본래 교정과 돌봄이 필요한 이들을 위해 만들어졌으나 감염병을 통해 배제와 격리, 고립, 방치라는 격리시설의 본질이 어김없이 드러났다. 인권활동가들은 “한국 사회에 잠복한, 불평등과 차별이라는 문제를 바이러스가 드러내 보여줄 뿐”이라고 말한다.
청도대남병원 이후 밀집·밀접·밀폐를 일컫는 ‘3밀 공간’의 집단감염이 계속 발생했지만, 정부는 ‘코호트(동일집단) 격리’라는 원천 봉쇄 말고는 별다른 대책을 내놓지 못했다. 코호트 격리를 한 곳 가운데 이른바 n차 감염이 일어나지 않은 곳이 없다. 서울동부구치소에서 1193명(2021년 1월14일 기준), 장애인거주시설에서 247명(1월12일 기준)이 확진되고, 전체 사망자 1027명 중 정신질환자가 408명(1월6일 기준)에 이른다. 코호트 격리를 21세기 한국 정부가 집단감염 사태에서 취한 조처 가운데 최악이라 하는 이유다.
지금이라도 죽음을 복기해야 한다. 기억하지 않은 잘못은 반복의 형태로 복수를 감행하는 까닭이다. ‘코로나19 시대 격리시설 보고서’를 시작한다._편집자주

*목욕 금지 이유, 교도관은 알려주지 않았다 기사에서 이어집니다.
http://h21.hani.co.kr/arti/society/society_general/49826.html

‘코호트’라는 이름의 포기와 방치

국내 시민단체 연대체인 ‘코로나19 인권대응네트워크’는 2020년 6월 가이드라인을 내어 구금 필요성이 낮거나 감염병에 취약한 교정시설 수용자의 석방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고 경고했다. 바다 건너 미국에선 캘리포니아주와 뉴저지주 등이 교도소 대량 감염 사태가 현실화하자 재소자 수천 명을 긴급 석방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강성준 천주교인권위원회 상임활동가는 “수용자들이 감염병에 취약하다는 점을 깨닫고 선제적으로 가석방, 형집행정지, 구속집행정지를 활성화하는 방향으로 전체 수용인원을 줄여나가야 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나 정부가 선택한 건 그렇잖아도 배제된 이들을 더욱 고립시키는 방식이었다. 정부는 2020년 3월23일 ‘정신의료기관 폐쇄병동 대응지침’을 내놨다. 환자의 면회·외출·외박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사실상 ‘준코호트(동일집단) 격리’를 하며 문을 걸어 잠갔다.

정신병원은 내·외과 진료를 하지 않기에 코호트 격리되는 순간 의료 사각지대에 빠진다. 수도권의 한 정신병원 원장은 “종합병원이나 하다못해 요양병원만 해도 항생제나 산소포화도 측정기가 있는데, 정신과는 정신과 약과 소독할 수 있는 정도 빼고는 아무것도 없다”고 설명했다. 정신질환자 코로나19 전담병원인 음성 소망병원도 코로나19 전담병원이라기에는 관련 시설이 부족하다. 음성 소망병원에서 의료진 동선 등을 설계한 조승국 대한의사협회 감염병병원지원팀 내과 전문의는 “소망병원에는 ‘이동형 엑스레이’ 기계가 없어 폐렴 증상을 확인할 수 없다”고 했다. 코로나19 환자 상태를 진단·치료할 수 있는 의료체계를 갖추지 못한 셈이다.

장애인 거주시설도 상황은 비슷하다. 실제 확진자 발생 여부와 관계없이 보건복지부의 ‘사회복지시설 대응지침’에 따라 장애인의 외출·외박·면회가 제한됐다. 비장애인들이 ‘생활 속 거리두기’로 전환해 자유로운 이동을 했던 것과 대비된다. 이미정 어깨동무연구소 소장은 2020년 9월 국가인권위원회가 개최한 ‘감염병 시기의 인권’ 온라인 토론회에서 “대부분의 시설은 확진자도 없는데 감염병 예방을 위해 구치소 독방 생활처럼 개별 방에서만 식사하게 하거나 시설 내 이동을 제한하는 등 과도한 조처가 내려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확진·비확진 구별 없이 시설 격리”

코호트 격리의 가장 큰 문제는 외부와 격리해 수용자를 고립시키면서도 정작 그 안에서 확진자와 접촉자, 비접촉자를 따로 관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변재원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정책국장은 “확진자와 비확진자 그룹을 구별하지 않고 시설 자체를 격리하는 방향으로 이뤄지다보니, 비확진자 그룹 안에서 또 확진자가 나온다. 종사자와 장애인이 섞여 있고 모두 스트레스가 높아진 상황에서 내부에서 어떤 인권침해가 일어나는지도 파악하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신아재활원에서도 발생 초기 40여 명이던 확진자가 76명까지 늘었는데, 이는 내부에서 제대로 격리 조처를 하지 않았다는 방증이다.

동부구치소 집단감염 사태에 대한 법무부의 초기 대응도 다르지 않았다. 집단감염이 일어나면 중앙방역대책본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역학조사관을 파견해 전수검사하고 밀접접촉자와 비확진자를 분리하는 게 통상적인 절차다. 하지만 교정 당국은 2020년 11월27일 동부구치소 직원이 가족에게 감염된 이후 12월16일 17명(직원 16명·수용자 1명)이 확진 판정을 받을 때까지 최초 확진자와 접촉한 292명만 검사했을 뿐 별다른 조처를 하지 않았다.

그 결과 확진자가 폭증했다. 최초 확진자가 나온 뒤 3주가 지난 12월18일에야 첫 전수검사가 이뤄졌다. 확진자 수가 185명(수용자 184명·직원 1명)으로 껑충 뛰었다. 이후 추가 검사 때마다 수백 명의 확진자가 더 나왔다. 보건의료단체연합 전진한 정책국장은 “수용자 간 접촉 가능성이 없도록 최대한 분산하거나, 밀접접촉자는 교정시설 밖 시민들과 같은 기준을 적용해 생활치료센터나 수련원 같은 공간에서 1인1실 생활하도록 격리해야 했다”고 지적했다.

확진자와 밀접접촉자, 일반 수용자를 가리지 않고 같은 시설에 가둬놓는 코호트 격리는 수도권 병상 부족 사태를 가리려는 정부의 책임 회피성 대책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우석균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공동대표는 “확진된 수용자들을 보낼 병상이 없어서 옮기지 못한 것을 정부가 ‘코호트’라는 이름으로 부른 것이다. 사실상 확진자들한테 시설에서 그냥 죽으라고 놔둔 것과 같다”고 비판했다. 허약한 공공의료 토대는 가만히 놔둔 채 그 성취에 심취한 이른바 ‘케이(K)방역’의 민낯이라는 것이다.

보건의료단체연합은 1월14일 성명을 내어 정부에 원칙 없는 코호트 격리를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정부가 시행한 ‘코호트 격리’는 감염 확산과 죽음에 대한 방치다. 또한 동일집단 격리 원칙에 어긋나므로 모든 시설에서 중단돼야 한다.” 공공의료를 확충하는 한편 집단수용시설 수용자를 긴급히 시설에서 나오도록 조처하고 감염관리 방안도 마련하라고 촉구했다.

바이러스는 숙주인 인간한테 무차별적으로 접근한다. 하지만 여기에 반응하는 인간세계는 취약계층부터 감염되는 방식으로 내부의 불평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앞서 콜센터 집단감염이, 쿠팡 등 물류센터 감염이 그랬다. 사회적 거리 두기로 인한 매출 감소도 영세 자영업자 가게를 먼저 찾아들었다.

‘탈시설’이라는 큰 목표를 향해

교정시설과 장애인시설, 정신병원 등에 적용된 코호트 격리도 다를 바 없다. 전문가들은 일반 시민에 대한 대처와 비교할 때 이는 명백한 차별이라고 지적한다. 시민에게는 5명 이상 모임을 금지하는 ‘사회적 거리 두기’를 강화하면서 시설 수용자한테는 고립된 밀집을 강요한 탓이다. 정형준 보건의료단체연합 정책위원장은 “사회에서는 11개월 동안 철저히 준수하라 했던 방역 지침이 교정시설에서는 전혀 지켜지지 않았다. 보편적인 시민권에 준하는 서비스와 방역 조치를 수용자에게 동일하게 제공하지 않았다는 심각한 문제를 드러냈다”고 말했다.

격리되고 배제된 이들을 향한 불평등하고 차별적인 코호트 격리는 결국 취약계층의 대량 희생으로 이어졌다. 2020년 12월에만 코호트 격리된 요양병원 14곳에서 996명이 확진됐는데 이 가운데 99명이 사망했다. 치명률 10%는 국내 코로나19 일반 환자의 치명률 1.7%를 크게 웃도는 수치다.

정신질환자는 코로나19 환자가 되어도 차별을 겪는다. 의료 현장에선 코로나19에 걸린 정신질환자를 받아주는 병원이 없다고 호소한다. 정신질환자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있는데다 비정신질환자보다 코로나19 치료에 몇 배 이상 에너지가 소모되는 탓이다. 경증이라고 해도 생활치료센터나 일반 병원에서 그들을 받기 꺼린다. 현재 정신질환 코로나19 환자 병상을 담당하는 전진용 국립정신건강센터 과장은 “공황장애나 불면증, 경증 조현병 환자는 코로나19에 걸리면 생활치료센터에 가도 되는데, 편견 때문에 센터들이 환자를 받지 않는다. (코로나19 집단감염이 일어났던) 청도대남병원 당시만 해도 병실이 상대적으로 여유 있었는데, 지금은 병상 사정이 달라져서 알아보는 데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구치소 수용자와 가족들도 주변의 따가운 시선 때문에 제대로 문제를 제기하기 어렵다. 형이 확정되기 전에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적용돼야 한다지만 현실은 다르다. “죄지었으니 그에 맞는 벌 받으러 온 거지, 코로나19에 걸리려고 온 건 아니잖아요. 국민청원을 올릴까 하다 말았어요. 수감자에 대한 시선이 좋지 않고 우리도 힘이 없으니까요. 기사 댓글은 일부러 안 봐요.” 한 수용자 가족의 말이다.

전문가와 인권·장애인단체들은 기본적으로 ‘탈시설’이라는 큰 목표 아래 당사자 목소리를 반영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백재중 신천연합병원장은 이렇게 짚었다. “한국의 정신병원은 병원이라기보다 거주시설이다. 코로나19 격리에서 해제된 청도대남병원에서 퇴원한 환자들도 결국 지역사회가 아닌 다른 정신병원으로 돌아갔다. 궁극적인 지향점은 정신장애인도 지역의 한 시민으로서 살아가도록 해야 한다.”

당사자 인권과 민주주의 회복이 필요해

장애인 문제 해답도 거기에 있다. 인권운동사랑방의 어쓰 활동가는 “반복되는 집단감염 문제를 어떻게 인식할 것이냐는 측면에서 현장 목소리를 잘 듣는 게 필수적이다. 현장의 말을 다 따르라는 게 아니라 이 문제를 온몸으로 겪는 이들의 말을 경청하는 데서 정책을 시작하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진희 장애여성공감 공동대표는 “사회적 지원과 참여에서 더 멀어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에서 K방역의 빈틈이 메워져야 한다”고 말했다.

코호트 격리 조처 이후 교정시설, 장애인시설, 정신병원 등 시설 수용자들의 목소리를 듣기가 더 어려워졌다. 감염 위기에 처한 당사자의 목소리가 담장을 넘어 바깥세상에 들리지 않는 곳을 민주주의 사회라고 부를 수 없다. 게다가 이들을 더욱 고립시켜 결과적으로 건강 불평등을 키우는 방식의 국가 방역 체계는 이미 많은 희생을 낳았다. 방향 전환이 필요하다.

고한솔 기자 sol@hani.co.kr·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장수경 기자 flying710@hani.co.kr·전종휘 기자 symbio@hani.co.kr

*표지이야기 - 코로나19 격리시설 보고서
http://h21.hani.co.kr/arti/SERIES/2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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