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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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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애 죽음이 세상에 경고장 되어야죠”

산재로 숨진 이선호씨 아버지 이재훈씨,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말하는 아들의 죽음
등록 2021-05-29 09:31 수정 2021-06-01 07:09
2021년 5월21일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세종시 고용노동부 청사 앞에서 열린 ‘산업재해 방지 대책 촉구’ 집회에 참석해 고 이선호씨 아버지 이재훈씨를 위로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2021년 5월21일 고 김용균씨 어머니 김미숙씨가 세종시 고용노동부 청사 앞에서 열린 ‘산업재해 방지 대책 촉구’ 집회에 참석해 고 이선호씨 아버지 이재훈씨를 위로하고 있다. 박승화 기자

아버지는 의자에서 일어나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였다. 눈물만 쉼없이 쏟아냈다. 5월26일 경기도 평택시 안중백병원에서 열린 고 이선호(23)씨의 추모 미사. 다른 이들이 몇 번을 일어났다 앉았다 할 동안, 터져나오는 울음을 주체하지 못한 아버지는 좀처럼 일어서지를 못했다.

이선호씨는 아버지와 함께 일하던 평택항에서 4월22일 숨졌다. 개방형 컨테이너(FRC·천장이 없고 양옆만 날개처럼 막힌 형태) 바닥 위의 나뭇조각을 주우라는 지시에 따라 선호씨는 컨테이너 가까이 다가갔다. 그를 미처 보지 못한 지게차가 왼쪽 컨테이너 날개를 접었다. 그 충격으로 선호씨가 서 있던 쪽의 오른쪽 날개가 순식간에 그를 덮쳤다. 지게차 방향을 유도해야 할 신호수는 없었다. 선호씨를 짓누른 날개의 무게는 300kg. 원래 그가 맡은 업무는 동식물 검역이다. 컨테이너와는 무관하다. 안전교육을 받은 적도 없다. 안전핀이 뽑힌 컨테이너가 쓰러질 가능성을 그는 미리 알 수 없었다.

사고 이후 한 달 동안 아버지는 서울과 평택, 세종 등을 오가며 아들의 죽음을 알렸다. 쉴 새 없이 몰려드는 언론과 인터뷰하고, 산업재해 대책 마련을 요구하며 집회에서 마이크를 잡았다.

아들을 잃은 엄마와 아빠

이재훈씨는 5월21일 세종시로 향했다. 고용노동부 세종청사 앞에서 열린 ‘산업재해 방지 대책 촉구’ 집회에 참석하기 위해서다. 이날 집회에는 2018년 한국서부발전 태안화력발전소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다가 컨베이어벨트에 끼여 숨진 김용균씨의 어머니인 김미숙 ‘김용균재단’ 이사장도 참석했다.

집회가 열리기에 앞서 아버지 이재훈씨와 어머니 김미숙씨가 세종시의 한 사무실에서 마주 앉았다. 어머니는 이선호씨 얼굴이 그려진 걸개그림을 볼 때마다 “용균이 얼굴이 겹쳐 보였다”며 “너무 똑같은 아픔”을 위로하는 마음을 건넸다. 대화하는 2시간 내내 아버지의 마음속에 슬픔, 분노, 회한이 휘몰아쳤다. 그래도 대화가 끝날 무렵 아버지는 말했다. “앞으로 어디든 불러주이소. 내가 필요한 곳이라면 가서 뭐라도 도움이 꼭 될 테니까.”

이날 아버지의 검은 옷깃에는 어머니의 선물이 달려 있었다. ‘죽지 않고 일할 권리’라는 글자와 함께 고 김용균씨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그려진 ‘배지’다. 5월13일 열린 고 이선호씨 추모 문화제 때 건넨 선물이다.

이선호씨 사고 이후 꼭 한 달이 지났다.

이재훈 “많이 힘들었죠. 빈소 지키는 선호 친구들한테 미안하고 죄스럽죠. 코로나19 시기에 허구한 날 빈소에서 밤새우고… 접고 싶었어요. 회사(사용사업주인 동방)와 싸우는 일에 애들까지 희생시킬 필요가 있나 했는데 (제대로 된 사과가) 차일피일 미뤄지다보니 오늘까지 왔어요.”

김미숙 “실질적으로 뭘 하겠다는 (재발 방지 대책) 증서가 있어야 해요. (회사는) 언제든 말을 뒤집을 수 있으니까요. 친구들이 청와대 게시판에 국민청원도 올리고 (죽음을) 알리려 많이 노력하고, 참 훌륭하더라고요. 그런 친구들 보면서 선호가 얼마나 잘 살아왔는지 느껴졌어요.”

“안 싸우면 내가 죽겠기에”

아들의 죽음을 알려야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뭔가.

이재훈 “처음엔 아들 죽음 앞에서 흥정하기도 싫고, 저도 8년 동안 그 회사에 다니며 돈을 벌었으니 조용히 할까 했어요. 근데 나를 달래러 온 (회사) 사람마다 속을 뒤집어놓고 가데요.”

김미숙 “구체적으로 어떻게요?”

이재훈 “언론이 회사 입장을 물으면 ‘현장에 안전관리자가 있던 거로 파악되는데…’ 이래요. 다음날엔 ‘작업지시자를 안전관리자로 착각했다’고 해요. 작업을 왜 그렇게 시키냐고 하면 ‘인천, 부산도 다 그렇게 시킨다’고 해요. 아, 경종을 울려야겠다 싶었어요. 민주화운동 하면 박종철·이한열 나오듯이 산재 하면 김용균·이선호 나오게 바꿔야겠다.”

김미숙 “(저도 2018년 아들이 숨졌을 때) 안 싸우면 내가 죽겠더라고요.”

이재훈 “(회사에선) ‘회사와 관리자 잘못이 있고, 노동자 잘못도 살펴봐야 한다’ 이렇게 얘기하더라고요. 회사 입장에선 당연히 노동자 잘못이라 하고 싶겠죠. ‘(폐회로텔레비전) 보니까 우리 애 잘못 하나도 없더라, 찾아봐라’ 했어요.”

김미숙 “회사마다 똑같이 대응하는 매뉴얼이 있나봐요. (노동자에게 잘못을 전가하는 일을) 계속해왔기 때문에 몸에 밴 거죠.”

아버지 이재훈씨와 아들 선호씨는 일용직 노동자로 동방 평택지사에서 일했다. 사용사업주인 동방은 항만 하역과 운송, 보관사업 등을 하는 국내 계열사 10곳을 거느린 큰 회사다. 선호씨가 그날 개방형 컨테이너 이물질 제거 작업에 나간 것도 동방의 협조 요청 때문이었다. 동방 쪽은 5월13일 유족을 찾아와 감사팀이 작성한 ‘평택지사 중대재해사고 발생경위 및 책임소재 조사 보고서’를 내밀었다. A4용지 한 장짜리 문서였다. “와서는 장례식을 언제까지 안 할 거냐, 죽은 아이한테 좋을 게 없지 않냐고 하는 거 아입니까. 그래서 ‘우리 아(애)가 지금 죽었는데 여기서 ‘좋은’ 건 대체 뭔데? 오지 마라’고 했어요.” 이재훈씨는 분통을 터뜨렸다.

박승화 기자

박승화 기자

아빠도 아들도 비정규직

이재훈씨는 평택항에서만 8년을 꼬박 일했다. 작업반장을 할 정도로 일에 인이 박였다. 2021년 3월부터 일터 분위기가 달라졌다. 회사가 인력을 줄여서다. “5명이 하던 걸 3명이 하게 됐어요. 사람이 모자라니 (잘 알지도 못하는) 다른 파트에도 가서 일해야 하는 거예요. 작업 전문성은 떨어지고 노동강도가 높아졌는데, 이런 일이 비일비재했어요.”

원래 회사에 안전관리자가 없었나.

이재훈 “없었어요. 내가 작업반장이니까 처음 (인력이) 들어오면 주의할 것 몇 가지는 꼭 알려줬죠. (사고가 일어난) 그날만 해도, (동식물 검역을 맡았던 선호와 달리) 컨테이너 작업을 전문으로 하는 직원이었다면 안전핀이 뽑힌 상황에서 쓰레기 주워오란 지시에 응하지 않아요. (위험하니까) 안 해. 그런데 우리 애는 모르니까 한 거죠.”

김미숙 “맞아요. 그걸 해야 하는지 (안 해야 하는지) 모르니까요.”

이재훈 “시키니까 한 거예요. 옆에서 고려인 노동자가 ‘안 해도 되니 돌아가자’고 했는데 (다른 인물이) 재차 지시해요. 그러니까 아이가 ‘아저씨는 여기 줍고 제가 저기 주울게요’ 하고 가다가 사고를 당한 거죠. 그런데 현장에 달려온 직원은 (119가 아니라) 회사 윗선에 보고했어요. 대응 매뉴얼로 배웠대요. 이런 사고가 났다 하면 119 신고 먼저 하는 회사가 없더라고요, 희한하게.”

김미숙 “없어요. 119 신고는 (보고가) 회사 맨 위로 갔다가 다시 내려온 뒤에야 돼요. 그만큼 시간이 걸리죠. 용균이 때도 밤 10시45분에 사고가 났고 새벽 3시30분에 발견했는데, 119가 온 건 다음날 오전 7시였어요.”

이재훈 “모든 잘못은요, 회사에서 비용 절감을 위해 안전관리요원을 안 세웠기 때문이에요. 설사 우리 애가 스스로 뛰어들었다고 쳐도 안전요원이 있으면 막았을 거예요. 8년 동안 안전교육도 없었어요. (회사가) 변명의 여지가 없어요.”

김미숙 “(회사가) 위험 소지를 만들어놓고 잘못하면 노동자 탓으로 만들어요. 사실 우리가 밖을 걷다가도 위험한 곳은 못 가게 하잖아요. 회사에도 (그런 게) 당연히 있어야 하는데 회사는 원·하청을 나누고 하청한테 모든 책임을 전가하죠. 시스템 문제가 제일 커요.”

“사고 나면 119 신고 먼저 하는 회사가 없더라”

아버지 이재훈씨와 아들 선호씨는 ‘우리인력’이라는 직업소개소를 통해 동방의 일을 하게 됐다. 우리인력은 동방과 인력공급 계약을 맺고 하루 일당 11만5천원을 받은 뒤 소개료와 식대를 뗀 9만8천원을 이씨에게 지급했다. 직업안정법에서는 ‘근로자공급사업’을 노동조합만 하게 돼 있어, 이러한 인력공급은 불법에 해당한다. 이른바 ‘사람 장사’를 해서 중간착취까지 한 셈이다. 게다가 이들에게 직접적인 업무 지시는 사용사업주인 동방이 했다.

비정규직 착취는 김용균씨 사고 때도 마찬가지였다.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규명과 재발방지를 위한 석탄화력발전소 특별노동안전조사위원회’가 작성한 ‘고 김용균 사망사고 진상조사결과 종합보고서’는 “발전설비의 정비 및 운전 시장에 진입한 민간업체들은 미숙련 상태의 청년 노동자를 대거 고용해 임금비용을 낮추고 이를 통해 높은 수익을 올렸다. 또한 3년 단위의 단기 도급계약으로 노동자들을 불안정한 고용상태에 빠트렸고, 안전을 무시한 운영으로 위험에 노출시켰다”고 지적한 바 있다. 떨어지고, 부딪히고, 넘어지고, 끼이는 산재 사고가 줄어들지 않는 구조적 원인이다.

이재훈씨는 사회를 향해 반드시 하고 싶은 이야기 두 가지를 꼽았다. “이 땅에서 자식 키우는 부모님이 아셔야 해요. 우리 애가 아르바이트 가는 줄만 아는데 거기서 일하다 다쳐서 돌아오거나 죽어서 못 돌아올 수 있다는 걸요. 또 위험하고 힘든 일은 거부할 권리가 있다는 걸 분명하게 젊은 사람들한테 알려주고 싶어요. 부당노동행위 지시거든요. 돈 벌러 간 입장이니 쉽지 않지만 위험해서, 힘들어서 못하겠다고 말하는 건 당연한 권리예요.”

사고를 예방하고 감독할 책임이 있는 정부를 향해서도 목소리를 높였다. “해양수산부 평택지방해양수산청이나 고용노동부 평택지청 담당 공무원이 정말로 관리·감독을 철저히 했으면 이런 일 안 당해요. 왜 시정하지 않는지 지적하고, 안 되면 행정처분을 내릴 수 있는 권한이 있잖아요. 왜 (누군가) 다칠 수도, 죽을 수도 있는 작업장을 만들어놓고 돈을 벌게 하냐 이거예요.” 끓어오르는 분노를 삭이느라, 이씨는 말을 잇지 못했다. “해양수산청에서 ‘컨테이너 날개가 바람에 쓰러져 다쳤다’고 보고서를 작성해 상급기관에 올렸대요. 확인도 안 하고 회사에서 불러주는 대로 그냥 쓴 거예요.”

박승화 기자

박승화 기자

또 다른 아들의 죽음을 막으려면

어머니도 (아들 김용균씨가 사망한) 2018년 생각이 많이 나셨을 것 같다.

김미숙 “그때도 안전 조처 아무것도 없었어요. 이번에도 마찬가지고요. 아버님 모습이 저하고 많이 흡사해요. 추모제 때 선호 걸개그림이 걸렸는데, 자꾸 용균이 얼굴하고 겹쳐 보이더라고요. 그 아픔이 지금도 똑같아요.”

이재훈 “(적어도) 오늘보다는 노동환경이 나아져야죠. 우리 애 죽음을 경고장으로 (삼아) 비뚤어진 세상을 조금 더 바르게 (만들어) 나아가야죠. 중대재해처벌법도 그래요. 일단 (원청) 사업주에게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어야 하고요. 사람이 죽으면 최하 징역형이 나와야 해요.”

중대재해처벌법은 안전·보건 조치 의무를 위반해 인명 피해를 발생시킨 사업주, 경영책임자, 공무원, 법인의 처벌 등을 규정해 중대재해를 예방하기 위한 법이다. 김씨는 해당 법안 통과를 위해 2020년 12월부터 29일 동안 고 이한빛 피디의 아버지 이용관씨와 함께 국회에서 단식농성을 이어갔다.

이 법안은 우여곡절 끝에 2021년 1월 국회를 통과했지만 합의 과정에서 실효성을 잃은 ‘누더기’법이 됐다는 비판이 제기됐다. 5명 미만 사업장을 처벌 대상에서 제외하고, 50명 미만 사업장은 공포 뒤 2년 동안 법 적용을 유예받는 등 적용 범위가 대폭 줄어든데다 사업주 책임을 강화하는 조항도 축소됐기 때문이다.

“벌금 없이 징역부터 나와야”

더불어민주당에서 중대재해가 발생했을 때 법인과 경영책임자에게 최소 1억원 벌금형을 내리도록 하한선을 만드는 개정안을 내놨다.

이재훈 “돈 없는 놈한테야 1억원이 큰돈이지만 사업주한테 1억원이 돈입니까. 차라리 벌금 없이 징역부터 나와야, 사업주가 (사실상) 안전관리자가 돼 ‘현장에서 위험한 거 하지 마’ 할 것 아닙니까.”

김미숙 “그렇게 돼야 해요. 사고 이후 산업안전보건법 개정안(김용균법), 중대재해처벌법이 만들어졌지만 엉망이잖아요. 너무 기업 논리로만 돌아가니까요. 실제로 법 뜯어보면 (노동자가) 보호받지 못하게 (적용 범위가) 너무 협소해졌어요.”

경영책임자가 산재와 관련한 증거를 인멸하거나 진상조사를 방해할 때는 중대재해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해 사망 책임을 묻는 ‘인과관계 추정’ 조항도 국회 논의 과정에서 삭제됐는데.

김미숙 “인과관계 추정 조항이 정말 중요해요. 유족은 (가족을 잃은) 아픔만도 너무 벅찬데 왜 사건을 파헤치고 증거를 제시하는 상황에 놓여야 할까요. 자동차 사고가 나면 차에 무슨 결함이 있는지 회사가 제시하게 돼 있다고 들었어요. 사고 관련 증거는 회사가 다 갖고 있어요. 산재도 회사가 파악해서 증거를 제시하게끔 해야죠.”

이재훈 “어머니가 큰 결심 하시고 단식까지 하셔서 중대재해처벌법이 일단 통과됐지만 누더기가 됐죠. (김씨를 가리키며) 멍석을 깔았으니 우리가 또 법을 보완해서 나아가고 그러다 부족해지면 다른 단체들이 요구하고. 법은 (현실에 맞춰) 바꿔가면 돼요. 하지만 아예 못 지킬 거라면 안 만들어야죠. 꼭 (가진 자들이) 지키기 힘든 법이니까 법을 이상하게 만드는 거예요.”

김미숙 “(2021년부터) 용균이 관련 재판이 진행되는데 법이 허술해요. 그래도 최소한 이 사건이 어떻게 처리되는지 많은 이에게 알리고 (현실을) 바꿔내는 발판을 만들기 위해 목소리를 내야겠다고 생각해요. (판결이 바라는 만큼) 안 나오더라도요.”

아버지와 어머니의 삶

노동부와 해수부는 5월24일부터 동방에 대해 특별감독을 시작했다. 이씨는 아들의 죽음뿐 아니라 자신이 8년 동안 일용직으로 일하며 임금착취를 당한 점에 대해서도 합당한 보상을 요구하고 있다. 누구도 안전을 책임지지 않는 비정규직의 노동환경이, 불법·편법으로 인력을 ‘싸게’ 운용하려는 구조가 개선되지 않으면 언제든 비슷한 사고와 죽음이 반복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무엇이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보나.

이재훈 “여태까지 사용사업주가 위법, 불법으로 고용했던 것 다 밝혀내야 해요. 그동안 제가 왜 일용직인지 몰랐어요. 당연한 건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중간에 인력사무소가 한 번 바뀌었을 뿐, 고용계약서는 본 적이 없어요. 선호도요. 업무도 동방에서 지시받으면 지게차 운전도 하고 동식물 검역도 하고 ‘멀티’로 했어요.”

김미숙 “저도 비정규직으로 8년 동안 인쇄회로기판(PCB) 공장에서 일했어요. 처음 공장 들어갈 때 (계약서를) 한 번 쓰고 그다음엔 못 봤어요. 회사는 1년마다 이름을 바꿨고요. 매년 한 번씩 채용하는 것처럼, (2년을 채워 정규직 전환 안 하려고) 편법을 쓰는 거죠. 신고하면 걸렸겠지만, 일자리가 있어야 하니까 (못했죠). 옆 부서원들이 대량 해고된 적이 있는데 해고 1순위는 바른말 하는 사람이었어요. 사전 통지 없이 문자 한 통으로 해고하는데 놀랐죠. (정규직과) 일은 똑같이 하는데 비정규직은 부당한 대우를 받는구나 싶었어요.”

일용직인지 모르고, 계약서를 한 번도 못 보고

산재 유가족이기 전에 비정규직 노동자였던 두 사람은 아들의 죽음 이후 자신의 노동을 돌아보게 됐다. 그리고 두 사람의 삶은 완전히 바뀌었다.

김미숙씨는 “왜 그동안 있었던 산재 유가족은 목소리를 내지 않았을까” 원망도 많이 했다. “그 사람들이 목소리를 냈더라면 내 자식은 안 죽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생때같은 자식을 허망하게 잃는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다른 이들이 목소리를 낼 수 있게끔 밑바탕이 되겠다”고 생각한다. 여전히 “애 아빠는 사고 난 발전소를 어떻게 폭파시킬 수 있을까 곱씹고 나도 이런 구조를 만든 기업가나 정치인들이 죽도록 밉”지만, 김씨는 꿋꿋이 버틴다. “죽어서 내 자식한테 그래도 ‘나 이렇게 노력하고 왔다’는 말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 때문에요.”

이재훈씨는 동방에서 진정성 있는 사과와 명확한 재발 방지 대책을 받아 장례 절차 등이 마무리되는 날이 오면 평택을 떠날 생각이다. “지금도 내가 이게 뭐 하는 짓인가 싶어요. 저놈만 깨워가꼬 집에 가면 최고인데…. 그 뒤로는 아무 계획이 없어요. 평택 뜬다는 거밖에.” 다만 아들의 유골은 친구들이 있는 평택에 두고 갈 예정이다. 친구 같던 아들, ‘삶의 희망’이던 아들을 떠올리는 이씨는 지금도 하루에 수십 번씩 감정이 요동친다. 이날 노동부 청사 앞에 마련된 아들의 영정 앞에서도 이씨는 무릎을 꿇고 “미안하다”고 되뇌며 오열했다.

5월26일 이선호씨 추모 미사가 진행되는 동안, 빈소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보낸 조화가 하나 더 들어왔다. 앞서 빈소에 놓인 하얀 국화들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시들어 있었다. 아들이 아버지를 떠난 뒤, 한 달 넘는 시간이 훌쩍 흐른 까닭이다. 시든 꽃이 난 자리에 새로 온 조화가 자리잡았다. 아버지의 눈빛을 꼭 닮은 선호씨의 영정 옆에서, 아버지의 싸움을 응원한다는 듯이, 고개를 다시 들 날을 기다린다는 듯이.

세종·평택=박다해 기자 doal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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