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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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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답만 말하려다 아무 말도 안 했다

숙제·예습 열심히 했지만 잘하지 못할까봐 말 안 한 ‘모범생의 두려움’
등록 2021-05-29 12:06 수정 2021-06-03 01:06
영국과 한국 두 곳의 학교에 다닌 딸 애린이는 그 두 곳 중간 어디쯤에 있는 ‘기준’을 찾으려 한다.

영국과 한국 두 곳의 학교에 다닌 딸 애린이는 그 두 곳 중간 어디쯤에 있는 ‘기준’을 찾으려 한다.

나의 9할(어쩌면 그 이상)은 ‘메이드 인 코리아’다. 머문 시간도 그렇거니와 가족, 친구, 언어, 취향, 습관, 생각, 정서 등 나를 이루는 대부분은 한국에서 만들어졌다.

내게 큰 영향을 미친 것 중 하나는 학교다. 보낸 세월만 봐도 그렇다. 초등학교 입학에서 대학교 졸업까지 16년, 대학원까지 합하면 26년을 학교에 다녔다. 내내 성실했다. 특히 고등학교 시절은 다시 돌아간대도 그보다 더 열심히 할 수 없다. 그렇다고 대학에 입학한 것을 오롯이 내 능력과 노력의 결과라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운칠기삼(運七技三)이 딱 맞는 말이다. 서울 중산층 가정에서 태어난 것도, 집 옆에 대입에 사활을 건 고등학교가 있었던 것도, 그해 학력고사 수학이 유달리 어려워서 애초에 포기하고 답을 찍은 나나 열심히 문제를 푼 수학 천재나 성적 차이가 크지 않았던 것도 다 운이었다. 대학에 들어간 다음의 시간은 모호하게 흘렀다. 천천히 흐른 것도 빨리 간 것도 아니다. 그냥 안전하고 단조로운 상자 속에서 보낸 것 같다. 그 안에서 지성이 날카롭게 단련되고 세상 보는 눈이 활짝 열렸는지는 잘 모르겠다. 항상 뭔가를 열심히 하기는 했다.

‘아무 말 대잔치’에 끼고 싶지 않아서

내가 50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이 아닌 곳에서 뭔가를 배운 건, 3년 전에 수강한 ‘지역사회 통역사’(Community Interpreter) 자격 과정이었다. 영국에서는 평등법에 따라, 이민자가 언어 제약으로 차별받지 않도록 보건·행정·교육·복지 등 공공영역에서 필요한 경우 모국어 통역사를 제공해준다. 나는 한국어-영어 통역사가 되려고 했다. 우리 반에는 헝가리, 폴란드, 프랑스, 포르투갈, 터키, 브라질 학생이 있었다. 첫 시간에 선생님이 20년 교사 경력에 한국 학생은 처음이라고 하자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나는 때때로 맥락도 없이, (아무도 시키지 않았는데) 한국을 ‘대표’해야 할 것 같은 사명감을 갖곤 한다.

매주 영국의 공공서비스를 공부하고 통역에서의 윤리적 문제를 토론했다. 나는 자료를 꼼꼼히 읽고 조사하는 숙제도 열심히 했다. 쓰기 과제는 분량보다 더 많이 쓰려 했다. 이왕 학생이 된 바엔 ‘좋은 학생’이 되고 싶었다. 그런데 잘 안됐다.

수업의 절반이 토론인데 나는 거의 말하지 않았다. 영어 실력이 달리기도 했지만, 읽기 자료에 이미 ‘정답’이 있고 그 얘기는 벌써 나왔으니 별로 덧붙일 말이 없었다. 다른 학생들은 말이 많았다. 어떤 말은 질문과 직접 관련이 없어서 ‘아무 말 대잔치’ 같은데 그걸 선생님이 고개를 끄덕이며 듣는 것이 짜증 났다. 나는 ‘아무 말’ 따위를 해서 어리석게 보이고 싶지 않았다. 결국 ‘좋은 학생’이 되기는커녕 있는 듯 없는 듯한 학생으로 12주 과정을 마쳤다.

자격증을 땄으나, 그 뒤 한 번도 통역사로 일한 적이 없다. 여러 상황이 있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잘하지 못할까 두려웠기 때문이다. 익숙한 상황(Comfort Zone) 밖에서 하는 영어는 여전히 버벅대는데 통역사로 나섰다가 괜히 망신만 당할 것 같았다. 일을 제대로 못하면 의뢰인에게 민폐가 될 듯해서 그것도 싫었다.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는데 배우는 게 두렵다니

자괴감이 들었다. 어릴 적부터 ‘공부 잘하는 학생’이었는데 도대체 이게 뭔가… 한심했다. 나는 과정 내내 지나치게 긴장했고 틀린 답을 말할까봐 걱정했다. 그저 연습 상황인데도 평가받는다는 생각에 겁냈다. 결국 어렵게 과정을 마쳤지만 현장에서 일하는 것을 포기했다. 소심한 성격 탓이 크겠지만 지금까지 내가 받은 교육에도 일부 책임을 묻고 싶다. 배우는 것을 두려워하는 공부 잘하는 학생이라니….

큰아이 애린이는 중학교 2학년 때 이곳에 왔다. 이제 5년이 되었는데 여전히 한국을 판단의 준거로 삼을 때가 있다. 이를테면 자기가 만든 작품을 선생님이나 다른 학생들이 칭찬해주면 속으로 이런 생각을 한다. ‘한국에는 이것보다 잘 그리는 사람이 수두룩하거든요. 그에 비하면 나는 아무것도 아니에요.’ 친구들이 애린이가 작품에 들인 시간과 노력에 경탄하면 이런 마음이 든다. ‘한국에서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야. 거긴 다들 진짜 열심히 해.’ 이런 속마음 때문에 칭찬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한다.

아이가 한국 학교에 다니면서 알게 모르게 습득한 메시지는 두 가지인 것 같다. 하나는 ‘열심히 (해야) 한다’는 것이다. 어떤 일을 할 때 자기 역량을 최대한 발휘해서 최선을 다한다. 이건 그 자체로 좋은 가치다. 다른 하나는, 그 ‘열심히’의 기준이 상대적이라는 것이다. 더 열심히 하는 사람이 있으면 나는 열심히 했다고 말하기 어렵다. 성취도 그렇다. 나보다 더 잘한 사람이 많으면 내 성취는 자랑할 만한 게 못 된다. 애린이는 성품상 ‘다른 사람보다 더 잘해야 한다’든가 ‘다른 사람을 이겨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대신 ‘다른 사람이 더 잘하는데 내가 칭찬받으면 안 된다’는 생각을 한다. 사고 방향은 다르지만 두 생각의 뿌리는 같다. 오롯이 자신을 기준으로 삼지 못하고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자기 위치를 잡는다.

틀려도 괜찮다, 모르면 물어보면 된다

그래도 애린이는 요즘 들어 이 두 메시지를 그런대로 자기 안에서 정리해내는 것 같다. 얼마 전에 이런 말을 했다. “한국과 영국 두 곳의 학교에 다녀서 알게 된 것이 많아. 사회마다 삶의 기준이 정말 달라. 한국에선 엄청 중요했던 것이 여기서는 아무것도 아닌 것도 있고, 영국에선 잘한다고 하는데 한국 기준에는 한참 못 미치는 것도 있고. 기준은 상대적이니까 나는 그냥 ‘내 기준’을 정하려고. 한국과 영국 중간 어디쯤 되겠지. 내가 정한 기준에 맞춰 열심히 하면 될 것 같아.”

아이는 자기답게 사는 방법을 찾아가는 것 같다. 나도 그래야 할 텐데, 오랫동안 칭찬인 줄 알고 살았던 ‘모범생’의 습성이 약해져야 내가 자유로워질 텐데 쉽게 사라질 것 같지 않다. 그래서 자꾸 주문을 외워본다. (틀려도 괜찮다 + 모르면 물어보면 된다 + 고치면 된다 + 부족하면 배우면 된다 + 잘하고 있으니 너무 애쓰지 마라) × 3

이스트본(영국)=글·사진 이향규 <후아유> 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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