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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주택의 답은 프랑스에 있다

제1371호 표지이야기 보도 그 뒤, 기피시설이던 사회주택 단지는어떻게 ‘기회균등 수단’으로 탈바꿈했는가
등록 2021-07-25 16:57 수정 2021-07-26 01:11
프랑스 파리에서 센강 동쪽 유휴부지를 재생한 리브고슈. 이 지구에 지은 주택 7500채 중 30% 이상이 사회주택(한국의 공공임대주택)이다.

프랑스 파리에서 센강 동쪽 유휴부지를 재생한 리브고슈. 이 지구에 지은 주택 7500채 중 30% 이상이 사회주택(한국의 공공임대주택)이다.

프랑스에서는 공공임대주택을 사회주택(Logement Social)이라 부른다. 프랑스 전체 주택 중 사회주택의 비율은 2019년 1월 21.4%를 기록했고, 2025년까지 대부분의 코뮌(한국의 기초지방정부)은 전체 주택 수의 25%를 사회주택으로 공급해야 하는 법적 의무를 지닌다. 또한 2020년 12월 기준으로 사회주택 비율이 23.6%인 파리시는 2030년까지 전체 주택 수의 30%를 사회주택으로 확충하는 목표를 설정해 노력 중이다. 현재 프랑스 사회주택의 비율은 한국 공공임대주택 비율의 3배가량이다.

같은 집도 소득수준에 따라 임대료 달라져

오늘날 프랑스에서 사회주택은 많은 사람이 거주하고 싶어 하는 좋은 주택으로 자리잡았다. 사회주택에 입주하기 위해 장기간 대기하는 사람은 정부를 상대로 ‘주거저항권’을 행사해 더 빨리 사회주택을 공급받으려 할 정도로 사회주택에 대한 요구가 높다. 과연 한국과 다른 사회주택의 성공 이야기는 프랑스 사회만의 특수성일까?

프랑스 사회주택 건설은 19세기 중반 의식 있는 기업가와 지방정부의 장에 의해 시작됐고, 20세기 초부터 주택 공공회사가 직접 건설에 참여했다. 20세기 초반에는 기존 도시 안에 주택을 건설했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도시로 급격히 밀려드는 인구를 수용하기 위해 정부는 1950~60년대에 대도시 외곽에 택지를 개발해 우리나라 아파트 단지와 유사한 고층 위주의 현대식 대규모 주거단지를 조성했다. 이곳은 초기에 젊은 중산층이 주로 거주했고, 이들이 경제적으로 안정되면 교외의 전원주택으로 이주하고 새로운 중산층이 입주하는 순환 구조를 보였다. 하지만 석유파동을 겪으며 사회주택 단지에는 저소득층과 이민자 계층이 주로 남았다.

사회주택 단지가 저소득층 중심으로 변화되자 전통적인 모습의 프랑스 도시 환경과 동떨어진 단지 형태는 입주민이 저소득층임을 명확히 드러내는 부정적 요소로 인식됐다. 또한 도시 외곽에 있어 대중교통 이용이 불편해 입주민은 많은 시간과 비용을 들여야 도시의 일자리에 접근할 수 있었다. 교육시설이나 문화, 여가시설도 부족해 저학력·실업 문제가 심화했다. 양적 공급을 위해 주택만으로 채워진 도시 외곽의 대규모 사회주택 단지는 사회적, 경제적 문제가 복잡하게 얽힌 슬럼으로 전락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프랑스 사회주택은 제2의 전성기를 맞고 있다. 새로운 정책 방향에 따라 사회주택이 도시 속으로 돌아왔다. 소규모로 지어 주변 환경과 조화롭게 변화하고, 일반 민간주택보다 더 멋진 디자인과 더 높은 질을 지닌 훌륭한 주거로 재탄생했다.

오늘날 프랑스 사회주택은 소셜믹스(계층 섞기)가 가장 기본적인 원칙으로, 다양한 소득계층이 함께 거주한다. 사회주택은 국민의 70%가 입주 권한을 지닌다. 저소득층만이 아닌 대부분 시민의 보편적인 주거 방식임을 의미한다. 사회주택은 그 안에서 소득에 따라 ‘저소득 유형’(PLAI), ‘중간소득 유형’(PLUS), ‘고소득 유형’(PLS)으로 구분된다. 한 단지 안에 세 유형이 혼합돼 있고, 소득 유형이 달라도 거주하는 집의 규모나 공간은 동일하다.

개발사업에서 사회주택 최소 30% 이상 공급

예를 들어 2020년 파리시의 사회주택 상한 임대료는 제곱미터(㎡)당 저소득 유형 6.18유로(약 8400원), 중간소득 유형 6.94유로, 고소득 유형 13.54유로이다. 지역에 따라 25~37유로인 파리시 평균 민간주택 임대료에 비하면 사회주택 임대료는 가장 높은 소득 유형이라 해도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사회주택에 입주하기 원하는 사람은 가족 수에 적합한 규모의 주택을 신청하고, 자신의 소득에 따라 세 가지로 나뉜 유형에 맞춰 임대료를 낸다. 이렇게 같은 집이라도 소득수준에 따라 다른 임대료를 내므로, 같은 단지 안에서 사회적 혼합이 자연스레 이뤄진다.

파리에서 센강을 따라 동쪽으로 걷다보면 철도시설 유휴부지를 재생한 리브고슈(Rive Gauche)라는 매력적인 지역을 만난다. 리브고슈는 전체 면적이 약 130헥타르(ha)이고 주거 인구는 2만 명이다. 6만 명의 일자리를 수용하는 파리시에서 가장 큰 규모의 최신 재생 지역이다. 이곳은 파리7대학, 프랑스국립도서관, 유럽 최대 규모 스타트업의 요람인 ‘스타시옹 에프’(Station F) 등이 자리잡아 이를 중심으로 업무·상업·문화·주거가 어우러진 활기 가득 찬 지역이다. 파리시에서 가장 핫한 지역인 이곳에서 세련되고 아름다운 디자인의 건축물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이 지구에 지은 주택 7500채 중 30% 이상이 사회주택이다.

파리시는 이처럼 개발이나 재생 사업을 할 때 사회주택을 최소 30% 이상 공급하고 이와 함께 중간주택을 25% 이상 짓는 제도를 적용하고 있다. 중간주택은 임대료를 규제하는 중산층 대상 공공주택으로 국민의 85%가 입주할 수 있다. 모두 시민의 주거 안정성과 도시의 공공성을 높이려는 방안이다. 도시의 핵심이 되는 멋진 지역에 질 높고 저렴한 주택을 공급하니, 사회주택은 당연히 시민이 선호하는 주택으로 자리잡았다.

프랑스 사회주택은 시민에게 기회균등의 수단으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사회주택을 도시 내 매력적인 입지에 우선해서 지어 일자리와 교육, 문화시설에 대한 접근성을 높이고 지역 특성을 고려해 주택 유형을 구성한다. 부유층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에는 저소득층 대상 사회주택 비중을 높여 우수한 교육·문화 인프라를 서민층이 누릴 수 있게 하고, 역으로 저소득층이 많은 지역에는 고소득층 대상 사회주택 비중을 높여 사회적 혼합을 유도한다. 한 주택단지나 건물 내에 사회주택, 중간주택, 일반 분양주택이 섞이는 것은 기본이다.

프랑스 시민에게 기회균등 수단

이를 위해 먼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는 선별된 부지를 저렴하게 공공 건설기관에 공급한다. 다음으로 사업시행 기관은 역량 높은 건축가의 설계로 멋진 디자인의 공간을 만들고 친환경적 공법과 재료를 도입해 건축의 질을 높인다. 이는 탄소제로 시대의 도시환경 조성과 주거비용 저감에도 도움이 된다. 필요한 경우 도시계획 제도의 예외를 허용해 서민의 주거 질을 높이고 매력적인 도시환경을 만들도록 한다.

수년 전부터 서울 한복판에선 미군기지 이전 부지를 용산공원으로 조성하는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여의도 면적과 거의 같은 300만㎡의 이 부지는 서울뿐 아닌 국가 차원에서 잠재력과 중요도가 매우 높다. 현재는 공원으로만 조성할 계획이지만 입지와 환경이 탁월한 이 부지의 일부를 활용해 공공임대주택을 지으면 어떨까? 친환경적이고 수준 높은 공공주택을 지어 다양한 계층에 공급한다면 향후 한국의 주택 정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에 대한 답은 프랑스 사례가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다.

글·사진 최민아 토지주택연구원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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