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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천 명 근거 내라”는 법원에 의대 증원 제동 걸리나

등록 2024-05-04 00:45 수정 2024-05-05 23:12
2024년 4월30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이 휴진을 알리는 팻말을 든 채 병원 안을 걷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2024년 4월30일 서울 신촌세브란스병원 교수들이 휴진을 알리는 팻말을 든 채 병원 안을 걷고 있다. 한겨레 김혜윤 기자


이러다가는 ‘2천 명 특검’이라도 해야 할 판이다.

서울고등법원이 2024년 4월30일 정부에 의과대학 정원 2천 명 증원의 과학적인 산출 근거를 제출하라고 요구했다. 의대 교수, 전공의, 의대생 등 18명이 낸 의대 정원 증원 집행정지 신청 항고심 심문에서다. 1심에서 원고 자격을 문제 삼아 신청을 기각한 서울행정법원과는 사뭇 기조가 달라 보인다. 두 달 넘게 악화일로를 걷는 ‘의-정 갈등’이 결정적 변곡점을 맞을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완곡히 말해 변곡점이지, 본안소송 판결 때까지 증원 절차의 전면 중단이다.

정부는 기한(5월10일)에 맞춰 충실한 자료를 제출하겠다고 밝혔다. 그동안 정부가 제시한 근거는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개발연구원(KDI), 홍윤철 서울대 의대 교수의 연구 자료다. 정작 연구 당사자들은 그 결과물이 일시에 2천 명을 증원하는 근거가 될 수 없다고 한다. 과연 법원이 고개를 끄덕일 만한 자료가 나올 수 있을까. 그런 자료가 있다면 역술인 ‘이천공’이 제 이름 따서 정했다는 괴담까지 유통되는 지경에 이르기 전에 이미 공개했어야 하지 않을까.

2천 명이라는 숫자는 과학적 근거와 별개로 의료개혁의 맥거핀(관객을 오도하기 위한 연출 장치)이 된 지 오래다. 2천 명을 의료개혁의 물신으로 삼던 정부는 4월19일 일부 국립대 총장들의 건의를 못 이기는 척 받아들였다. 결국 비수도권 국립대들만 증원분의 50%를 반납했다. 이대로 가면 비수도권의 의료 불평등은 더 심화될 수밖에 없다. 의사 단체들에 2천 명은 0명을 관철하기 위한 주술인형이다. 증원안이 백지화할 때까지 바늘로 찌르고 또 찌를 터이다.

정부와 의사 단체들이 2천 명이라는 맥거핀에 대해 공유하는 쓸모가 하나 있기는 하다. 필수의료와 공공의료를 강화하라는 시민들의 요구에 시치미를 떼는 데 더없이 유용하다.

안영춘 기자 jona@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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