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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겨레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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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아온 군복

등록 2022-03-05 02:23 수정 2022-03-05 02:23
타이 방콕의 잡화점에 중고 의류로 내걸렸다가 교민에게 발견돼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고 변희수 하사의 군복 상의. 군인권센터 제공

타이 방콕의 잡화점에 중고 의류로 내걸렸다가 교민에게 발견돼 다시 한국으로 돌아온 고 변희수 하사의 군복 상의. 군인권센터 제공

‘그녀’가 없는 시간, ‘그녀’를 추모하는 곳에 군복이 자리했다. 성전환 수술을 받았다는 이유로 군에서 내쳐졌을 때조차 “내가 사랑하는 군은 계속하여 인권을 존중하는 군대로 진보해나가고 있다”며 눈물로 거수경례할 때 입었던 군복이다. ‘변희수’라는 이름 뒤엔 ‘하사’라는 직책이 붙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듯, 상의 오른편엔 군인으로 살고 싶었던 ‘그녀’의 이름이 박힌 명찰이 여전했다. 변 하사의 사망 1주기를 추모하는 사람들이 모인 2022년 2월27일, 서울 신촌 유플렉스 광장엔 변 하사의 군복이 놓였다.

먼 길을 돌아온 군복이다. “군인으로 죽고 싶다”던 변 하사의 군복은 2021년 마지막날, 타이 방콕의 한 허름한 잡화점에서 교민 ㄱ씨에게 발견됐다. 군복 상의에 남아 있던 명찰 덕이다. 변 하사의 이름을 기억한 ㄱ씨는 <한겨레>와의 인터뷰에서 “사실 나는 성소수자에 대해 깊이 있게 알지는 못한다. 그러나 자식 잃은 부모의 심정은 잘 안다. 가까운 지인의 가족이 비슷한 경우를 겪은 적이 있다. 그래서 유족이 원한다면 옷을 찾아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군복은 유품 정리 업체와 중고 의류 수출업체를 통해 방콕으로 넘어간 것으로 추정된다.

방콕은 변 하사가 자신의 성별을 찾은 도시다. 군복이 발견된 가게에서 20㎞, 자동차로 30분쯤 달리면 변 하사가 성전환 수술을 받은 랏부라나병원이 있다. 변 하사는 이곳에서 자신의 성정체성에 생물학적 성을 일치시켰지만, 또 그 이유로 군복을 벗어야 했다. 강제 전역된 변 하사는 군에 있었다면 의무 복무를 마치는 날짜인 2021년 2월28일을 하루 앞둔 2월27일(경찰 추정) 스스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2021년 10월 법원은 강제 전역 처분은 위법하다며 뒤늦게 변 하사의 손을 들어줬다.

1주기 추모제에 군복 옆엔 추모객들이 헌화한 안개꽃 다발들이 놓였다. 꽃다발 하나엔 ‘균열을 일으키는 용기, 일상에 스며드는 변화’라는 문구가 적힌 스티커가 있었다. ‘인권을 존중하는 군대로 진보’해야 한다는 당위, 진보할 것이라는 믿음, 진보하길 원한다는 바람, 그 언저리에서 군에 희망을 가졌을 변 하사의 용기는 조금씩 사회에 균열을 내고 있다. 국방부는 병역 신체검사 등 검사 규칙을 개정해 ‘성주체성장애’를 ‘성별불일치’로 바꿨다.

하지만 아직 일상에서의 변화는 지난하다. 변 하사를 추모하는 광고판은 서울지하철 6호선 이태원역에 걸리는 데 7개월이나 걸렸다. 서울교통공사가 “사회적 합의가 이뤄지지 않았고 중립성에 영향을 준다”는 이유로 광고 게시를 승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차별금지법 제정도 아직 제자리걸음이다. 대선 후보 중 차별금지법 제정에 적극적으로 발언하는 후보는 심상정 정의당 후보뿐이다.

변 하사의 군복을 한국 돈 8천원에 사서 유족에게 보낸 ㄱ씨는 군복을 산 날, 변 하사의 변호인인 김보라미 변호사에게 이렇게 전자우편을 보냈다.

“최근에 저 가게 앞에 주차할 일들이 생기기 시작하더니 그날 생각지도 못하게 야상(군복)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분명히 예사롭지 않은 인연일 거라 믿고, 저 역시 편견 없이 세상을 보고, 어려운 분들의 목소리에 관심을 가지겠습니다.” 균열을 낸 변 하사의 용기에, 일상에 스며드는 변화로 화답할 때다.

장수경 <한겨레> 기자 flying710@hani.co.kr

*뉴노멀: 이주의 주요 뉴스 맥락을 주관적으로 들여다보는 코너로 김규남 기자, <한겨레> 이승준, 장수경 기자가 돌아가면서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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