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바로가기

한겨레21

기사 공유 및 설정

문재인 정부, 여섯 장면의 결정적 기억

2017년 5월~2022년 3월 문재인 정부가 마주한 주요 사건 6개가 남긴 것
등록 2022-03-13 12:18 수정 2022-03-14 02:51
2017년 7월16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 완화를 위한 소상공인·영세중소기업 지원대책’ 발표. 연합뉴스

2017년 7월16일,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부담 완화를 위한 소상공인·영세중소기업 지원대책’ 발표. 연합뉴스

2017년 5월9일부터 2022년 3월9일에 이르기까지 4년10개월. 떠올리면 스치는 몇 개의 장면이 있을 것이다. 어쩌면 이어질 사진에 담긴 장면일지도 모르겠다.
사진은 무대 위 모습을 주로 포착했다. 대통령 혹은 정치인과 관료의 모습이다. 그들은 다소 급하게 최저임금 인상을 추진하거나, 남북 정상회담의 환희에 차 있다. 조국 사태에 당황했고, K-방역 성과에 고무됐다. 의미 있는 정치인을 잃었고, 부동산 가격 급등 앞에 급하게 방향을 튼다. 다만 주인공은 이 사진 속 인물들이 아니다. 그들을 바라보았던 당신이다.
시민, 유권자. 낯선 정책이 두려웠는데 마땅한 설명을 듣지 못했고 평화의 환호는 지속하지 못했다. ‘세대 전쟁을 벌이는 청년’이라는 좁은 호명에 갇혔다. 길어지는 감염병 유행 속에 지게 될 부담이 두려웠다. 마땅한 미투 폭로는 뒤늦게 사과받았다. 부동산을 둘러싼 이율배반을 보며 분노가 자리잡았다. 정부에 실망했는데, 대안도 마땅히 찾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 5년은 물론 몇 장면으로 간단히 정리할 수 없다. 돌아보니 좋았던 순간도 있다. 그나마 임기 말까지 40% 넘는 지지율을 유지한, 전에 없던 정부다. 그 가운데 구태여 아쉬운 기억을 짚는다. 희망과 불안이 교차하는 새로운 5년 앞에서, 우리가 부딪히며 배운 것을 잊지 않기 위해서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공정성 vs 공정성

2017년 7월15일 최저임금 16.4% 인상

2017년 7월15일 이듬해 적용할 최저임금을 전년보다 16.4% 인상했다. 최저임금 인상은 그 폭의 객관적 적절성을 떠나(논란의 답은 결국 완벽히 실증될 수 없는 것이었다) 문재인 정부 5년 내내 이어질, ‘공정성’ 대 ‘공정성’ 갈등의 신호탄이다. 이 시점을 분석한 연구(이희정, ‘공정성 원칙을 둘러싼 갈등과 변화: 최저임금 인상 논쟁을 중심으로’)는 최저임금 인상 과정에서 드러난 다차원적인 공정성의 의미와 그 사이 경합에 주목한다. 자영업자, 저임금 노동자, 실직자, 노동시장에 진입하지 못한 이들, 생산성을 걱정하는 이들이 폭넓게 불려나왔다. 각자에게는 나름의 공정한 이유가 있다. 누군가 성장과 효율(형평 원칙)을 말하고, 누군가 인간다운 삶(필요 원칙)을 말한다. 둘 다 말하기도 한다. 공정성의 원칙들은 서로 경쟁한다.

다만 시민 누구도 상대가 주장하는 공정성이 품은 의미까지 부정하지는 않는다. 이를테면 최저임금 인상을 찬성한 쪽도 반대한 쪽도 모두 생산성 향상과 성장의 필요성을 말했다.(기존 성장 방식 vs 소득주도 성장) 동시에 저임금 노동자의 처지를 염려했다.(일자리 감소 vs 최소한의 임금) 방식의 적절성을 두고 다퉜을 뿐이다. 그러므로 공정성 갈등은 “사회 갈등을 해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다소나마 품고 있다. 이후 5년 우리는, 그 가능성을 찾았는가.

2018년 4월27일, 1차 남북 정상회담. 한겨레 이종근 기자

2018년 4월27일, 1차 남북 정상회담. 한겨레 이종근 기자

이벤트의 한계

2018년 4월27일 남북 정상회담

남북 정상이 판문점을 함께 넘는다. 대부분 시민은 구분 없이 평화를 염원한다. 2018년 2월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한반도 ‘남북 정상회담을 찬성한다’는 의견은 61.5%였다.(리얼미터·TBS 조사) 고용지표 부진 등으로 주춤했던 대통령 국정운영 지지율은 정상회담을 앞두고 70%를 회복했다.

이벤트로 만든 통합은 다만 오래가지 않았다. 애초부터 ‘조건부의 평화’를 우리는 말하고 있었다. 정치권과 언론 등 공론장에서 논의되는 평화는 문재인 정부에서도 조건을 단, 이벤트 수준을 넘지 못했다. “언론이 구성한 평화 담론이 적극적 모형 없이 특정 사건, 의제, 정치적 공방 등을 중심으로 구성돼 있다.”(최종환, ‘남북한 언론이 재구성한 평화 담론의 비판적 분석’) 북한의 태도와 무관하게 우리가 먼저 만들 수 있는 평화 논의는 깊어지지 못했다. 조건은 늘 그랬듯 외부로부터 허물어졌다. 북-미 정상회담 결렬(2019년), 북한의 개성 남북공동연락사무소 폭파(2020년)를 겪었다. ‘북한 정권과 대화와 타협이 가능하다’고 답한 시민은 2018년 54.7%에서 2020년 33.7%까지 줄었다.(서울대학교 통일평화원구원, ‘통일인식 조사’)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2019년 10월14일, 조국 법무부 장관 사의. 공동취재사진

2019년 10월14일, 조국 법무부 장관 사의. 공동취재사진

대선 키워드의 등장

2019년 8월 조국 사태

2019년 8월9일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 지명부터 10월14일 사임에 이르는 조국 사태 속에 결과적으로 20대 대선의 핵심 단어가 탄생했다. 윤석열과 청년. 당시 검찰총장이던 윤석열 당선자는 이때부터 2021년 3월까지 청와대와 갈등을 이어간다. 대선 주자로 성장했다.

청와대와 검찰권력의 갈등 구도에서 청년 담론이 폭발한 건 의외다. 조국 전 장관 자녀 특혜 논란을 고리 삼아 청년은 ‘불공정의 피해자 자리’를 점했다. 가해자는 586 기성세대다. 신진욱 중앙대 사회학과 교수는 2019년 ‘세대 갈등’을 언급한 기사(18개 중앙일간지와 4대 방송사) 건수가 2018년보다 1.5배 늘었으며, ‘세대’와 ‘불공정’·‘공정’을 연결한 기사 건수는 2배 늘었다고 분석했다. 다시 공정이다. 기성세대와 갈등하는 청년이라는 막연한 호명이, 실재하는 청년 누군가의 문제를 해결하는 데 적합했던 것 같지는 않다. “(특정 세대에 선악의 딱지를 붙여) 정작 각 세대의 다수 구성원이 가장 심각하게 생각하는 정치경제적 문제는 논외로 밀려나게 되는 것이다.”(신진욱, <그런 세대는 없다>)

2020년 2월11일, 코로나19 정례브리핑. 연합뉴스

2020년 2월11일, 코로나19 정례브리핑. 연합뉴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강렬하고 지속적인 위험

2020년 2월 코로나19

코로나19는 2020년 1월20일 국내 첫 확진자 발생을 시작으로 2월 본격적으로 확산됐다. 강렬한 위험이고, 지속되는 위험이다. 위험 앞에서 통제와 행정력을 바탕으로 한 정부의 초기 대응은 지지받았다. 2020년 초 40% 수준에 그쳤던 대통령 국정 지지율은 코로나19 대응을 거치며 2020년 5월 67%까지 회복한다. 여당은 제21대 총선에서 승리한다. 이즈음 정부는 ‘세계를 향해 K-방역의 성과를 홍보한다’는 것을 국민에게 내보인다.

다만 코로나19는 또한 지속되는 위험이다. 길게, 불공평하게 짊어질 부담을 ‘국민’이라는 호명으로만 설득할 수 없다. 시민 사이 어떻게 부담을 나눠 질 수 있는지, 민주적인 논의 과정은 생략했다. 코로나19 대유행 1년을 앞두고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2020년 말 자영업자가 분노했다. 의료진이 몸과 마음의 소진을 호소하며 울었다. 국정 지지율은 코로나19 3차 대확산을 겪은 2020년 12월부터 30% 수준으로 내려앉는다.

2020년 7월13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영결식. 공동취재사진

2020년 7월13일, 박원순 전 서울시장 영결식. 공동취재사진

새롭고 마땅한 전선

2020년 7월 박원순 전 서울시장 사망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을 두고, 젠더와 인권이라는 보편적 가치와 진영 정치라는 한국적 가치가 비극의 형태로 맞붙었다. 가해와 피해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주요 인사들의 태도는 2차 가해 논란을 불렀다.

미투 운동은 지난 5년 한국 사회에 가장 중요한 전선을 짰다. 갈등의 핵심은 여당이냐 야당이냐, 혹은 개혁 세력이나 보수 세력이냐가 아니다. 그 모두 결국 주류 남성들 사이의 갈등일 뿐이다. 그들의 반대편에 서야 할 이는 폭력을 당하고, 또한 구조적으로 감춰져온 이들이다. 2018년 서지현 검사의 미투는 검찰 내 성범죄와 구조적 묵인을 폭로했다. 김지은씨는 뒤이어 안희정 전 충남도지사의 성폭력을 폭로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죽음 직전에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폭력이 있었다. 더불어민주당은 결국 제20대 대선 과정에서 소속 지자체장들의 성폭력과 이어진 2차 가해를 사죄했다.

2021년 3월4일, 변창흠 전 국토교통부 장관 LH 투기 관련 브리핑. 연합뉴스

2021년 3월4일, 변창흠 전 국토교통부 장관 LH 투기 관련 브리핑. 연합뉴스

분노

2021년 3월 LH 직원 부동산투기 폭로

5년 내내 지속돼온 부동산 가격 상승에 얽힌 분노는 공기업 직원들의 투기에서 폭발했다. 2017년 정부는 부동산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했으나 정책으로 드러난 의지는 의심스러웠다. 뒤늦게 세금, 대출 정책을 강화했지만 청와대 수석비서관들의 다주택마저 해결하지 못했다. 갑자기 방향을 틀어 2021년 2월 주택공급 정책을 주장하다 불과 한 달 뒤 공급 예정지에서 공기업인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의 투기가 드러났다. 한편에서 부동산 가격 안정을 말하며 한편에서 소유(내 집 마련)의 욕망을 드러내거나 조장했다.

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무주택자 대부분은 부동산 가격 상승 이전에도 집을 소유하기 쉽지 않았다. 주택 문제는 소유 여부가 아니라 ‘쾌적한 주거 환경에서 삶을 영위할 권리’의 개념에 대한 재조명에 맞춰져야 했다”고 말했다. ‘집은 주거를 위해 존재한다’와 ‘소유 자산으로서 존재한다’ 사이에서 정부는 방향을 정하지 못했다. 가뜩이나 투자 대상을 찾지 못한 돈이 풀려 있던 시기, 정부의 모호한 신호는 결국 집은 사고 봐야 하는 쪽으로 읽혔다. 소유하지 못한 이들은 주거를 택한 이들이 아닌, 소유 기회를 놓친 이들로 규정됐다. 분노는 자연스럽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 이미지를 누르면 크게 볼 수 있습니다.

2022년 3월10일 아침. 치열했던 밤과 새벽을 지나, 당신은 다시 여느 날처럼 하루를 보낸다. 날씨가 꽤 포근하다. 마음은 편치 않을 것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전문가들은 실제 각 시민이 처한 문제의 해결과 무관하게, 때로 해를 입히며 시민을 선택적으로 호명하고, 갈라내고, 외면한 정치 구조가 잘못이라고 말한다. 잘못에는 여야가 따로 없다.

“자영업자는 20년 넘게 열악한 구조가 문제가 됐는데도 중장기적 산업구조조정과 관련한 접근이 미약했다. 불만의 표출을 정책적 반대로만 인식한 측면이 있다. 세대갈등론은 진짜 문제(청년 소외)와 답을 회피하기 위한 나쁜 정략에서 비롯된 경향이 크다.”(김윤철 경희대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 “두 거대정당 정치 엘리트들이 자신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의 이익을 대표하고 정책 대결을 통해 표를 얻는 것이 아니라, 실체 없는 거대 담론을 설정하고 이를 통해 권력을 교체하는 현상이 반복된다. 이런 담론이 정책에는 해를 끼쳐도 지지를 얻는다.”(문우진 아주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구태여 위로를 덧붙인다. 승자임에도 패자임에도 흔쾌하지 않은 마음. 대통령이 바뀌어도 이대로라면 나아질 것 같지 않은 막막함. 혐오에 바탕을 둔 정권교체만으로는 당면한 내 문제를 해결할 수 없으리라는, 어쩌면 악화하리란 두려움. 5년을 돌아 우리는 마침내 정치가 왜 변해야 하는지, 실감하게 되었다. 변화는 새 당선자가 아니라 대선 다음날에도 불편한 삶을 고민할 당신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방준호 기자 whorun@hani.co.kr

한겨레는 타협하지 않겠습니다
진실을 응원해 주세요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