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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력하는 천재를 보고 싶다고? 최정을 보라

고교 ‘소년 장사’ 시절부터 프로 20년차까지 노력 또 노력… 이승엽 감독 뛰어넘고 KBO리그 개인 통산 홈런 신기록 세워
등록 2024-05-03 11:30 수정 2024-05-06 02:07
에스에스지(SSG) 랜더스 최정이 2024년 4월28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케이티(KT) 위즈와의 경기에서 통산 469호 홈런을 친 뒤 동료들에게 축하받고 있다. 연합뉴스

에스에스지(SSG) 랜더스 최정이 2024년 4월28일 인천 SSG랜더스필드에서 열린 프로야구 케이티(KT) 위즈와의 경기에서 통산 469호 홈런을 친 뒤 동료들에게 축하받고 있다. 연합뉴스


2017년 최정(에스에스지(SSG) 랜더스)을 인터뷰했을 때다. “당신의 야구는 지금 몇 점이냐”라는 물음에 그는 “50점”이라고 답했다. 홈런왕까지 올랐던 이의 답으로는 너무 겸손했다. 그는 “한때 나의 야구는 0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50점짜리가 됐고 10년 뒤에는 100점짜리로 만들고 싶다”고 부연했다.

이승엽의 통산 홈런 기록(467개)을 넘어선 2024년 4월24일 그에게 다시 물었다. “50점짜리 야구”를 하던 때로부터 7년이 흘렀으니 60점, 70점은 넘었겠지 했으나 아니었다. 최정은 “그때 50점을 줬으니까 1년에 1점씩 올라간다고 생각하고, 7년이 지났으니 57점을 나에게 주고 싶다”고 했다. 역시나 그는 자신에게 후하지 않다.

‘지옥 훈련’ 김성근조차 학을 떼는 선수

보통의 야구 선수는 40살 전후로 은퇴하니 자신에게 그리 점수를 짜게 주면 은퇴 때까지 65점도 못 받겠다 싶다. 그러나 최정의 야구를 생각하면 자신에게 박한 것이 얼추 이해된다. 최정은 “항상 지금에 만족하지 않고 계속 성장하고 싶다”는 얘기를 해왔다. 일견 순둥이처럼 보이지만 야구에는 늘 진심이고 열심이었다. 오죽하면 ‘지옥 훈련’으로 유명한 김성근 전 에스케이(SK) 와이번스(현 SSG 랜더스) 감독마저 학을 뗄까.

최정은 고교 시절부터 유명했다. 타격은 발군이었다. 아마추어 최고 타자한테 주어지는 이영민 타격상을 받았다. 그런데 수비가 문제였다. SK에는 투수로 입단했다. 고교 시절 비공식 기록으로 구속이 시속 150㎞까지 찍힌 적도 있다. 그만큼 어깨가 강했다.

신인 때는 3루수, 유격수로 기용됐는데 송구 실책이 많았다. 1루로 던지면 동료 수비수 글러브가 아닌 1루 더그아웃으로 공이 날아갔다. 자신감은 점점 떨어졌다. SK 코칭 스태프는 타격 능력이 아까워서 최정을 주전으로 기용하고 싶었으나 늘 수비가 발목을 잡았다. 2005년 홍현우(은퇴)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만 18살에 1군에서 홈런을 때려내고, 2006년에는 김재현, 이승엽, 김태균에 이어 10대 나이로 두 자릿수 홈런(12개)을 기록했던 그였다.

내야수가 안 돼 외야수로 바꿔보려 했으나 도저히 안 됐다. 수비 부담이 적은 1루수가 가장 무난하지만 보통 1루수는 몸집이 큰 홈런 타자의 몫이었다. 최정은 당시 비쩍 마른 체형이었다. 결국 한화 이글스 투수와 트레이드 말까지 나왔다. ‘소년 장사’는 수비 보완이 절실했다. 반쪽짜리 선수는 언제든 밀려난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 있었다.

에스에스지(SSG) 랜더스 최정이 2024년 4월24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개인 통산 468호 홈런을 친 뒤 팀 동료 추신수, 롯데 전준우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에스에스지(SSG) 랜더스 최정이 2024년 4월24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에서 개인 통산 468호 홈런을 친 뒤 팀 동료 추신수, 롯데 전준우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2006년 말 김성근 감독이 SK에 부임했다. 11월 마무리 캠프 때부터 혹독한 훈련이 이어졌다. 최정은 악착같이 매달렸다. 하루 1천 번 땅볼을 받아냈고 1천 번 방망이를 돌렸다. 고된 타격 훈련으로 손에 상처가 나서 방망이를 잡지 못할 때는 글러브를 끼고 수비 훈련을 더 많이 했다. 최정은 그때 ‘수비에도 기술이 있구나’를 깨달았다고 한다. 힘들다는 생각을 해본 적은 없었다. 힘들더라도 그 속에서 잔재미를 찾아내는 게 그의 장점이었다. 최정은 “수비 연습 때 이런저런 자세를 해보면서 모르는 것을 조금씩 익혀가는 재미가 있었다. 다음날 훈련 스케줄이 어떻게 될지 궁금하고 기대됐던 때”라고 그 시절을 돌아본다.

김성근 감독은 최정을 이렇게 표현한다. “최정만큼 나한테 덤비는 선수는 없었다. 센 훈련 강도에 불만 없이 훈련을 이겨냈다. 보통 독한 선수가 아니었다. 핑계도 없는 아이였다. 훈련 강도를 120% 정도로 준비해 갔는데도 120% 다 해냈다. 프로 선수의 본보기이자 교과서 같은 선수다.”

‘반쪽짜리’에서 다 되는 국가대표 3루수로

일련의 과정을 거치면서 빵점에 가까웠던 수비는 점점 정상 궤도로 진입했다. 2007년 수비 때부터 잡지 못했던 공을 척척 받아냈고, 1루로 빨랫줄 같은 공을 정확하게 뿌려댔다. 단지 3~4개월 만의 변화였다. 그는 힘든 과정 안에서 한계를 극복했고, 극복 과정에서 어떤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힘이 생겼다. 공격만 되는 반쪽짜리 선수는 어느덧 공격과 수비 다 되는 국가대표 3루수로 자리매김해 있었다. 타고난 재능에 끈질긴 노력이 더해지면서 일궈낸 성과였다.

최정은 타석에서도 물러섬이 없다. 공이 날아와도 굳이 피하지 않는다. 허벅지에, 허리에 시퍼런 실밥 자국이 선명하게 찍히는 나날이 늘어나는데도 타격 자세에 흐트러짐이 없다. 전세계 ‘사구왕’으로 등극하게 된 이유다. 최정은 2022년 한·미·일 프로 최초로 통산 300사구(몸에 맞는 공)를 넘겼고, 2024년 4월29일 현재 331개를 넘겼다. 프로 20년 동안 1주일에 한 번꼴로 맞은 셈이다. 그런데도 고통을 참아가며 홈런을 때리고, 안타를 날려왔다.

통산 최다 홈런 신기록에 도전하던 4월17일에도 기아(KIA) 타이거즈 선발 윌 크로우가 던진 공에 옆구리를 맞았다. 초기 진단에서 갈비뼈 미세 실금 판정을 받았으나 다행히 2, 3차 진료에서 단순 타박상으로 드러났고 홈런 행진을 이어갈 수 있었다. 그는 부상 위험으로 타격폼 수정도 고려했으나 밸런스 문제로 쉽지가 않았다. 그래서 그냥 맞더라도 현재의 타격폼을 유지하고 있다.

스스로는 부정하지만 그를 곁에서 지켜본 이들은 최정의 근면, 성실함에 찬사를 보낸다. ‘SK 왕조시대’ 때 최정과 함께 뛰었던 김재현 SSG 단장은 “모든 사람이 최정의 재능을 칭찬하지만, 야구를 대하는 열정과 노력이 없더라면 대기록을 달성할 수 없었을 것”이라고 했다. 메이저리그 출신의 추신수는 “동료로서 최정을 보니 중계 화면에서 봐왔던 것보다 대단한 선수라는 것을 솔직히 많이 느꼈다. 더 대단한 건 본인이 얼마나 대단한 선수인지,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이라고 했다.

“완성형으로 가려고 노력”한다는 37살
에스에스지(SSG) 랜더스 최정이 2024년 4월24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 5회 초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개인 통산 468호 홈런을 치고 있다. 이 홈런으로 최정은 이승엽 두산 감독을 넘어 통산 홈런 1위를 기록하게 됐다. 연합뉴스

에스에스지(SSG) 랜더스 최정이 2024년 4월24일 부산 사직야구장에서 열린 프로야구 롯데 자이언츠와의 경기 5회 초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개인 통산 468호 홈런을 치고 있다. 이 홈런으로 최정은 이승엽 두산 감독을 넘어 통산 홈런 1위를 기록하게 됐다. 연합뉴스


최정의 현재 나이는 37살. 하지만 훈련을 게을리하는 일은 없다. 이숭용 SSG 감독은 “스프링캠프 때 쉬어도 된다고 하는데 단 한 번도 훈련을 빠지지 않았다”며 “같은 선수 출신으로서 리스펙한다”고 했다. 김성근 감독은 “노력이 얼마나 사람을 높은 곳에 올려놓을 수 있는지 최정은 보여준다”고 했다.

최정은 결코 화려한 선수가 아니다. 말솜씨도 빼어나지 않다. 소위 빅 마켓 소속 선수도 아니다. 하지만 그는 한 곳에서 뚜벅뚜벅 누구도 가보지 못한 길을 가고 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완성형으로 가려고 노력한다”는 최정. 야구 천재는 흙투성이 유니폼으로 완성됐고, 쉼 없는 노력은 케이비오(KBO)리그 최초의 500홈런으로 가는 길을 열었다. 노력하는 천재의 모습을 보고 싶다고? 최정을 보면 된다.

김양희 한겨레 문화부 스포츠팀장 whizzer4@hani.co.kr

 

*‘김양희의 인생 뭐야구’는 오랫동안 야구를 취재하며 야구인생을 살아온 김양희 기자가 야구에서 인생을 읽는 칼럼입니다. 3주마다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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